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주일 설교 말씀] “십자가의 꽃”(갈2:11-21)

두란노 서원 2020. 5. 3.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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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었고 부활하심으로 열매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의 꽃”(갈2:11-21)

 

명제: 율법 속에 피어난 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목적: 내가 십자가에 죽으면 내 안에 예수의 꽃이 핀다.

 

들어가는 말

 

오늘 하루의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임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셔야 했을까요? 그냥 돌아가셔도 되는데 꼭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했나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셨나요?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만 돌아가셔야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셨는지요. 그것은 죄악의 짐이 가장 컸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최고의 형벌입니다. 죄를 제일 크게 지은 사람의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죄악이 그렇게 컸을까요? 예수님은 원래 선하신 분이고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의 최고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나의 죄의 형벌이 컸기 때문입니다. 내가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마땅한 죄를 지었는데,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 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이 시간 십자가의 사랑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의롭게 되었습니까?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습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행위로 의롭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물론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나는 율법에 얽매여 사는 인생은 아닙니까? 오늘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원래 유대인입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켰고 율법 속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역하면서 말씀을 듣고 기적을 행하는 모습을 보고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바울도 유대인입니다.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는 사건이 나오게 됩니다.

 

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바울이 베드로를 어떻게 책망할 수 있습니까? 바울보다 더 선배이고 연장자인데 바울은 과감하게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베드로가 복음에 어긋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12절에 바울이 책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율법에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절대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선민사상이 강한 민족이기 때문에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과 함께 밥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안디옥 교회의 이방교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복음 안에 있으면서도 유대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이때에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식사를 하다가 할례자들이 와서 이 사람들이 베드로를 책망할 까봐 두려워서 도망을 간 것입니다. 원래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더 이상 율법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할례자들의 책망을 두려워하여 믿음이 약하여진 것입니다.

 

2: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런데 문제는 베드로 한 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있었던 유대인의 무리와 바나바까지 외식에 유혹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결국 환경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베드로에게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으로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환경과 상황에 나의 믿음을 포기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예수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결국 상황에 따라서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신앙자의 모습을 보인 것처럼 나도 이런 부끄러운 신앙을 소유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복음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봉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울은 자신 있게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2: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바울은 복음에서 빗나가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의 율법을 철저하게 따르지 않고,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방인들을 이제 유대인처럼 살게 하려고 한다고, 베드로를 책망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자신도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서 이방인들까지도 율법의 틀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23:1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까지도 지옥의 자식을 만드는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서도 율법의 유혹에 빠져 결국 자신의 행위를 들어내는 이런 믿음은 결국 지옥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다시 말합니다. 우리는 원래 유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방 죄인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의롭게 되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동의 아주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 속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최고였으며 율법을 완성시키신 분입니다. 그리고 율법 속에서 피어나신 하나의 꽃이 되었습니다. 이 분이 예수님입니다.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 세상에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될 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를 해결하거나 스스로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시고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렸습니다. 율법의 최고입니다. 왜 그럴까요? 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잘못이 있으면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최고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의 죄의 대가의 지불, 이것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의롭게 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대속물로 드려짐을 당하고 그곳에 모든 인류를 구원시킬 최고의 구원의 꽃을 피우신 것입니다.

 

백일홍 이야기

 

아주 먼 옛날 동해 바닷가에 아주 조그만 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올려야 무사히 한 해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의 재앙 때문이기는 하나 딸을 갖고 있는 부모들의 한숨은 땅이 꺼져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더욱이 딸을 가진 부모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이유는 제물로 바쳐진 처녀를 잡아가는 것이 귀신도 아니요, 도깨비도 아니요, 바다신령도 아닌 바로 천년 묵은 구렁이였던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몽실이란 처녀와 바우라는 총각은 서로를 아끼며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급기야 둘 중에 하나라도 떨어져 있으면 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해 가을이었습니다. 바우와 몽실이는 혼인을 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같은 소식입니까? 그 해의 마을의 제물로 몽실이 처녀가 뽑히고 만 것입니다. 둘이는 서로 부둥켜 안고는 울기도 하고 도망갈 궁리도 해보았지만, 두 사람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오랜 생각을 거친 끝에 바우는 자기가 그 구렁이를 죽여 버리고 몽실이와 행복하게 살겠다고 마음먹고 구렁이를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우는 구렁이와 싸우러 가기 전 몽실이와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만일 백일 후에 내가 오지 않거나 배의 돛에 빨간 깃발이 꼽혀 있으면 내가 죽은 것이니 도망을 가고 흰 깃발을 꽂아오면 내가 구렁이를 처치한 것이니 자신을 마중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 몽실이는 매일마다 바닷가에서 바우를 기다리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00일째가 되던 날. 멀리서 배의 앞머리가 보였습니다. 반가움에 달려 나가던 몽실이는 뛰어가던 도중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배에 꽂혀 있던 빨간 깃발 때문이었습니다.

 

이윽고 배는 육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겠습니까? 바우가 늠름한 모습으로 배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우는 곧바로 몽실이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죽어있는 몽실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몽실이를 끌어안고 울부짖던 바우는 무심코 배 위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역시 몽실이가 본 대로 그곳엔 흰 깃발에 빨간 피가 묻은 채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구렁이를 죽인 기쁨에 들떠서 구렁이의 피가 깃발에 묻은 줄도 모르고 그냥 그 깃발을 단 채로 한시 빨리 기쁜 소식을 알려야겠다고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바우는 몽실이를 양지바른 곳에 묘를 써 묻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무덤 위에서 붉게 물든 예쁜 꽃이 피어나서는 백일을 꽃피우다가 졌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백일홍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사단과 싸우시고 승리하시고 십자가에서 승리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자신의 몸이 죽고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구원받을 인류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에게로 올 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2:17-1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면서 죄를 지으면 예수님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더 이상 죄인의 신분이 아닌데 다시 예수님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면 이것이 바로 나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이제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는 죽고 예수님으로 다시 살아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죽었던 인생이 다시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죽으면 예수님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죽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예수님의 꽃이 피어나지 않습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같이 못 박혔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 박혔다는 것입니다. 이제 나의 율법은 죽은 것입니다. 나의 죄도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의 꽃이 내 안에 다시 피어났습니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내 안에 피어났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꽃입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꽃이 내 영혼에 내 마음에 피어났습니다. 이제 나는 구원의 꽃을 활짝 피우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절대로 십자가에서 헛되이 죽지 않았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공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이제 나는 예수님의 꽃이 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김춘수, <꽃>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 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불러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너무나 기뻐서 그 마음속에 들어가 구원의 꽃을 마음껏 피우시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꽃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득 피어나시고 향기로운 냄새가 퍼져나가는 역사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직 신학 연구] 삼위 일체(tr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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