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성경 지명 이름 설교말씀]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두란노 서원 2020. 5. 1. 12:07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에 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성경 지명 이름 설교말씀 중에서 가이사랴 빌립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1. 이름

1) 로마가 주후 20년경 헤롯 대왕에게 하사하였다.

2) 초기엔 '파니온', 혹은 '하네아스'라고 불렸다. 이것은 목축신 ''신에게 바치는 동굴과 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3) 헤롯 대왕의 아들인 빌립이 자신의 이름과 디베료 가이사의 이름을 합쳐서 이 도시의 이름으로 삼았다.

4)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마16:13) 혹은 '가이사랴 빌립보 동네들'(막8:27)이란 식의 표현들이 흔하게 사용되곤 하였다.

5) 아그립바 2세가 네로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서 도시명을'네로니아스'라고 바꾸었다.

6) 로마 시대 말기와 비잔틴 시대 때는 가이사랴 파네아스로 불렸다.

7) 4세기 이후로는 파네아스라고 불렸으며, 현재는 바니야스(Banias)라고 불린다.

2. 지형과 위치

1)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2)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3)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국경 도시이다.

4) 높이가 2700m인 헤르몬 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5) 요단강이 흘러나오는 세 개의 샘 중에 하나인 나할 파니야스가 있다.

6) 이스라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도시였다.

7) 이 도시로부터 요단강 서쪽의 비옥한 평야가 시작이 되었다.

8) 평야에 대한 방비가 시작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3. 도시로서의 역할

1) 상업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2) 도시 자체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3) 66년에서 70년에 발생했던 유대 전쟁에 참전한 티투스와 베스파니안의 군대가 이곳에서 쉬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예루살렘 함락을 위한 중간 도시의 역할을 했다.

4) 현재는 몇 개의 동네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4. 성경 속에서의 언급

1) 오직 두 번만이 언급되고 있다(마16:13막8:27).

2)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장소이다.

 

원어설교 :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가이사랴 빌립보 Κισαρεια ή φιλιππου : 카이사레이아 헤 필립푸 Caesarea philippi

창10:19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랑을 지나 가사까지와 라사까지였더라

 

이곳은 본래 '판'(Pan)신을 숭배하는 중심지인 관계로 ''신의 명칭을 따서 '바네아스'(Baneas)라 불렀습니다. 그 후 헤롯 대왕의 아들 빌립은 자신의 도시를 확장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도시를 '가이사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해안 지역에 있는 또 다른'가이사랴'와 구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 빌립보'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은 자신의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그의 권위를 영원히 기념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1. 가이사랴 빌립보는 권세를 보여줍니다

빌립 왕은 자신의 권세를 영구히 존속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바네아스'라는 도시를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고백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같은 최고의 권세를 가진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cristo"(그리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신적 권세를 가지신 왕으로서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세자이십니다. 그리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고백은 세상의 최고 권위자인 가이사랴 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를 세운 빌립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자기의 이름을 높이는 데만 사용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불의에 대항할 권세를 주셨습니다(눅10:19). 그래서 제자들은 그 권세를 가지고 예수께서 진리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치유하시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런 사실은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치료하는 사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행3:1). 그래서 제자들은 이 치유의 권세를 통해서 고난과 무지, 그리고 이기주의에 빠져 삶의 의지를 상실하거나 소외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육체적으로 치유하며(마12:15), 정신적으로 건전케 하고(눅7:21), 사회로 다시 복귀(눅19:1-10)시키는 예수님의 정체를 증거 했던 것입니다.

 

3. 권세는 섬김을 통해서 빛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어떤 권위, 혹은 권세를 소유하는 것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며, 그것이 마치 자신을 지켜주는 것처럼 자신만만해합니다. 그러나, 권세의 본질은 역시 하나님에게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지고의 권위이시며, 모든 주체의 지배자이십니다(사45:22엡4:6).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히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라는 단어를 한문으로 풀이하여 보면 '()을 자기()가 짊어지고 가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께서 부여하신 권세는 다른 사람을 섬길 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께 '가이사랴 빌립보'를 세운 빌립 왕과 같은 세상의 권세를 요청하고 있습니다(마20:20-28).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치신 권세는 바로 봉사와 섬김의 권세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어디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권세는 어리석은 빌립처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데 사용하기보다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봉사하는 데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설교1 :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가이사랴 빌립보의 질문

마16:13-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수많은 단체들이 있으며 그들은 나름대로기준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그 기준에 적합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만이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속하여 장차 천국을 얻으려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교회 회원이 되는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주님은 3년 간 제자들을 가르치신 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천국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주님께서 던지시는 필수적인 질문이요, 과제입니다.

 

1.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에서 하신 질문입니다

1) 우상숭배의 도시임

가이사랴 빌립보는 이스라엘 북쪽 끝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 지역은 페니키아, 다른 한쪽으로는 수리아와 접경을 하고 있는 변방지역입니다. 자연히 그곳은 이방 민족의 종교에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가나안 우상인 바알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헬라 문명이 침투하자 그 우상에 심취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명 자체가 로마 황제 가이사와 분봉 왕 빌립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우상, 그리스의 신화, 그리고 로마 황제의 신격화가 어우러진 곳이 가이사랴 빌립보요,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거짓 우상과 신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 관심과 초점을 주님께 돌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2) 예수도 우상처럼 여겼음

주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던진 질문 가운데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13)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활한 세례 요한,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열거한 인물들은 영웅적, 신화적, 이상적인 존재들입니다. 불의를 질타한 세례 요한, 신비로운 권능을 지닌 엘리야,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와 같은 모습을 예수에게서 발견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저마다의 소원과 욕망을 채워줄 구세주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예수를 거룩하신 하나님, 구세주로 알지 못하고, 또 믿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맞추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 혁명의 선봉장, 물질 축복과 부귀 공영의 축복을 주시는 복덩어리, 휴머니즘의 화신으로 예수를 받듭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람들은 예수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참 제자를 구별하시려는 질문입니다

1) 개인적인 신앙 결단과 고백이 요구됨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있느냐고 물으신 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고 물으셨습니다. 즉 온 유대 사람들이든, 가이사랴 빌립보 사람이든지 그들이 예수를 어떻게 말하고 믿든지 너희는 예수를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신앙은 개인적인 결단과 고백의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 고백과 결단을 지닌 사람만이 예수의 참 제자로 인정받고 교회의 회원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처럼 어느 면에서 매우 고독하고 단독적인 행로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의 지식, 이웃의 도움도 그분과 나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게 할 수는 없습니다. "너는 나를 어떻게 믿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늘 홀로 결단하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예수의 절대성을 믿어야 함

이와 같은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모든 제자들을 대신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은 저마다 주님의 정체와 신분과 본질을 나타내는 대명사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명칭들이 모두 '절대자'에게만 붙이는 것들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명칭들인 것입니다. 주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대답은 결국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라는 놀라운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과 함께 절대적인 존재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예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 같은 혁명 영웅도, 엘리야 같은 초능력 소유자도, 많은 눈물을 흘렸던 사랑의 예언자 예레미야도 절대적인 존재들은 아닙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를 온전하게 이기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구세주는 오직 인간으로 오신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3.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필수 과정입니다

1) 참된 지식은 신앙생활의 기반임

주 예수를 온전하게 알고 믿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반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훗날 베드로 서신을 통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3:18)고 교훈했습니다. 주 예수의 절대성을 알고 믿는 성도만이 참된 영적 성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한 인간이 아니라 절대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예수의 언약과 그 행사도 절대적인 진리로 믿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와 같은 믿음이 결여된 사람은 주님의 말씀도 상대적인 가치로 여기고 세상 시류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2) 참된 지식이 있어야 천국 영광에 참여하게 됨

주님은 제자들의 고백을 들은 후 곧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이요, 부활하게 될 것임을 통고하셨습니다(21). 절대자 하나님이시기에 죽음을 능히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이 믿어주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절대자로 믿을 수 없다면 그분의 대속 은혜도, 부활도, 승천도, 또 재림도 천국으로 인도하시리라는 언약도 상징적으로만 믿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는 성도만이 신앙의 고난과 시련과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고 끝내는 약속하신 천국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질문은 모든 세상이 세속화되는 이 종말의 때에 성도들의 신앙에 방향을 잡아주는 경종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지금 누구라 하느냐"고 말입니다.

 

설교자료

◈ 우상의 의미와 폐해

우상을 의미하는 아웬(און)이란 말은 '텅빈, 공허, 헛되고 공허한 것'이란 뜻이다(사41:29).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들을 섬기는 자들은 힌두교도들이다. 그들은 33천만의 신과 생활의 신성함을 가르치고 동물들은 그냥 놀도록 내버려 둔다. 인도의 4억 5천 명의 힌두교도들은 대략 7천5백만의 소들을 모시고, 원숭이, , 그 밖의 다른 해로운 동물까지도 그들의 수확물을 먹거나 헤쳐도 그냥 놔둔다.

 

 

◈ 영웅 숭배

호메로스의 시들에서 영웅이라는 용어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서 묘사되듯 모든 자유인을 의미한다.

특별히 이 말은 서사시에서 뛰어난 인물, 즉 전쟁과 모험에서 뛰어난 인물들이나 용기나 충성심이 특출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영웅 전기의 기본적인 도식인 불가사의한 탄생, 생명이 위태로웠던 어린 시절, 성인 시절의 엄청난 업적, 위험과 시련의 성공적 극복, 숨겨진 보화의 획득, 신부를 얻거나 포로가 된 처녀를 구출함, 영웅적인 죽음 등은 인간의 자기 이해에 대한 것을 표현한다.

영웅의 상은 인간이 자신의 정신을 보다 완전하게 발전시키고자 하고 자신의 불완전한 상태를 초월하고자 하는 열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웅들의 모험담은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상징적 표상으로 간주된다.

 

◈ 고백자(confessor)

이 말에는 고대 교회가 박해받을 때에 순교는 당하지 않았지만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붙여진 별칭이다.

후대에는 이 명칭이 위험은 무릅쓰지 않았지만, 거룩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보다 일반적으로 적용되었다. 주후 4세기 이후에는 순교는 당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고백자들이 교회에서 공공연하게 숭배를 받았었다.

 

◈ 결단

결단 속에서만 참된 미래를 가진다. 그 미래는 그가 이미 손안에 쥐고 있는 거짓 미래가 아니라 그가 아직 지니지 못한 무엇을 주는 참된 미래다.(불트만)

 

◈ 지식에 이르는 길(인식론)

철학자들은 객관적이고 타당하고 절대 불변한 지식에 이르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 방법을 얻기 위한 이론이 인간의 인식에 관한 이론, 즉 인식론이다.

고대의 철학은 인식 이론에 대해 객관성을 검증할 수 없었으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론을 출발점으로 근대 철학을 이룰 수 있었다. 인식론은 관념이 객관적 세계보다 먼저 이루어졌다는 관념론과 물질이 관념보다 먼저라고 보는 유물론적 인식론으로 크게 나뉜다.

관념론은 이성, 영혼, 신 등이 선재하고 그 후에 물질세계가 이루어진다는 형이상학으로 발전되어 관상, 직관적 지식을 중시하고, 유물론적 인식론은 물질의 운동 법칙에 따라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변증법적 방법으로 실천을 통한 인식의 발전을 중시한다.

그러나 참된 지식에 이르는 길은 성경의 계시에 따른 여호와를 통하는 길이다(마11:27).

 

설교2 :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가이사랴 빌립보의 고백

마16:15-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고백이란 상대방과 강한 교제(Communication)의 의지가 담긴 몸짓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우정이 담긴 고백 후에는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서로의 고백을 나눈 장소나 환경을 기억하며 소중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참된 고백은 참된 교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주 예수께 대한 참된 신앙 고백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베드로의 주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분을 섬기려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신앙의 원형을 제시해 줍니다.

 

1. 주님의 신분에 대하여 합당한 고백을 드렸습니다

1) 주님이라고 고백했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공생애 활동을 끝내시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려는 시점에서 제자들에게 행하신 이 질문은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제자들의 신앙을 최종적으로 점검하시고 확인하시며, 제자들 스스로 지니고 있는 신앙에 확신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 사도는 모든 제자를 대표하여 제일 먼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이 명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보다 아주 높은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나, 또는 존중하고 섬겨야 할 지위에 있는 존재에게 붙이는 존칭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신하가 왕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드리는 명칭입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도나이', 즉 주님으로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고귀하고 높은 신분을 지니신 '섬기는 대상'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2) 오직 주님만 섬겨야 함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 올바른 인식과 고백을 지녀야 합니다. 당시에는 오직 로마 황제만을 주님이라고 불러야 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도 로마 황제 가이사와 헤롯 빌립 왕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가나안은 바알신과 그리스의 해양 신''을 섬기는 도시였습니다. 즉 인간들의 권세와 온갖 거짓 우상을 주인으로 섬기는 도시에서 제자들은 예수님만을 자신들이 섬겨야 할 유일하신 주님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고전8:6)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예수님만을 나의 주인이요, 삶과 운명을 결정하고 주관하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며 섬겨야 합니다.

 

2. 그분의 직분에 대해 올바른 고백을 드렸습니다

1)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음

세상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종교의 위대한 사상가, 고상한 윤리의 모범가, 또는 인간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축복자쯤으로 알고 있는 예가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위대하고 영원한 종교적 가치와 진리를 가르치시고 사랑의 모범을 보이셨으며 인생에서 삶의 위기를 구해주시고 풍성하고 윤택한 생활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역이 예수님의 중심 사역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라는 고백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이 말은 구약에서는 '메시아'라고 했으며 그 뜻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거룩한 직분자"라는 의미입니다. 즉 다윗 왕과 같은 뛰어난 왕, 이사야, 엘리사,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 그리고 모세,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와 대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구약의 기름 부음 받은 거룩한 직분자들은 장차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 직분의 모형이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즉 죽음과 죄악의 사단 권세 아래 신음하는 세상 사람들을 구해 주시며 하나님과 교제하게 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해 주시는 예수님은 구세주 직분의 예표였던 것입니다.

 

2) 주 예수만이 유일하신 구세주임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치 않고 종교적 교훈이나 질병 치료나 물질 축복을 받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영벌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간다면 진리, 건강, 부와 명예도 다 헛된 꿈에 불과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라는 뜻은 바로 인간들을 불신앙의 죄, 온갖 불의, 죽음과 심판에서 구해 주시는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신약성경 그리스 말에는 ", 그리스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만이 주 예수님을 성경에서 예언되고, 온 인류가 고대하던 "그 구세주"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메시아요, 모든 인생들이 꿈에 그리던 그 구세주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그 몸으로 대속하여 갚아주시고, 대신 죽음의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 권세를 깨뜨리어 부활 승천하신 구세주는 오직 예수님 외엔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주님만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의뢰해야 합니다.

 

3. 그분의 본성을 온전히 고백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음

끝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이요, 개가 난 강아지는 개입니다. 아무리 고치고 꾸며도 사람의 후손이 개가 될 수 없으며 강아지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분의 본성과 정체가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인간으로 태어나셨으나 예수님의 본성은 하나님이시라는 놀라운 증언이며 고백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절대자로 섬겨야 함

예수님을 주님으로, 또 구세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그분을 절대자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못하면 진정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사역도, 교훈도, 언약도 하나님의 절대 권세 안에서 영원한 가치가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유효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이 행하신 대속의 사역도 재림과 영생의 언약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절대자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아는 성도입니다.

 

설교자료

◈ 사회관계와 커뮤니케이션

사회학자 모래노(T.L.Mo- reno)는 집단 성원 사이에는 일정한 감정적 정서의 흐름이 있다고 보았다. , 타 성원에 대한 긍정적 선택의 태도 내지 행동을 '견인'(attration)이라 하고 거부의 부정적 선택 태도를 '반발'(repulsion)이라고 했다. 이 두 감정에 의한 역학적 상호작용으로 인간관계와 집단 구조가 규정되는 것이다.

이 집단 성원 간에 이루어지는 교제와 커뮤니케이션에 따른 교제의 흐름, , 양 등의 차이가 각각의 인간관계를 만든다. 리더십은 이 집단의 리더와 멤버와의 커뮤니케이션 정도에 따라 집단의 유지, 존속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 고백

고백이란 우리가 의식하고 행했던 잘못으로부터 우리 영혼이 해방된다는 뜻이다. 도덕적인 죄와 그 죄로 인한 부담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죄를 씻어버리지 않을 때 언젠가는 실망과 좌절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고백을 하지 않은 죄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호칭

신약 성경을 보면 주라는 말이 세 가지 형태로 예수님께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때때로 그의 제자들에게 있어 교사, 랍비, 주인과 주님으로 호칭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의 인도자와 교훈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또 어떤 때에 예수님은 나의 주, 혹은 우리의 주로 호칭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여호와의 우편 보좌 위에서 통치하고 계신 메시아란 의미이다.

다른 때에는 하나님으로서 모든 영광을 가지신 주님으로 언급된다. 여기서 하나님과 주님을 구분하면, 하나님은 순전한 높임의 호칭인 반면, 주님은 주권적인 통치권을 실제로 행사하심으로 복종과 예배를 촉구하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 공자의 구원관

공자는 노나라 평창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구(), 자는 중니(仲尼)이다. 그의 구원관은 한마디로 ''()이었다. 그는 춘추 전국 시대의 어지러움을 ''사상으로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설파하지만 세상은 그의 뜻을 알아주지 않았다.

공자는 현실적인 인간 문제에 사고를 집중시켜 개인적인 인격 정립과 그러한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의 원만한 운영을 주요한 이치로하고 이를 실천하기에 힘썼다.

그는 인을 최고의 윤리관으로 내세우고 그것이 구현된 이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공자의 구원관은 내재적 구원관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 못한 인간적 구원관이다.

 

설교3 :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가이사랴 빌립보의 약속

마16:15-19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교회는 기억과 이상의 공동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확증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미래에 이루어질 그 언약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곧 성도들 신앙생활의 요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를 "새 언약의 중보자"(히9:15)라고 부릅니다. 주 예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아주 혁명적이며 영광스러운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의미와 교훈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늘의 에클레시아를 세우시겠다는 언약입니다

1) 신인류의 모임을 만드시는 것임

우리는 요즈음 신 세대니, 신 인류니 하는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신조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취향과 가치관과 행동 양식이 기성 세대와는 다른 세대들을 신세대, 또는 신인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새로운 인류는 없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 중에 하나님께서 신인류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모두 부패한 본성을 지녔으며 겉만 조금 다를 뿐 그 인간성들은 옛날 사람들이나 현대 젊은이들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에 하나님께서 불러내사 재창조하신 '신인류집단'을 세우시겠다는 의미가 바로 교회를 세우리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불러 모으신 거룩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의 정의입니다. 한결같이 타락하고 불신앙의 죄악 가운데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의 죄를 주 예수의 속죄의 피로 정결하게 씻음 받은 성도들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신인류요, 하늘에 속한 에클레시아인입니다. 인류의 구원 역사는 이 하늘의 에클레시아로 인해 시작된 것입니다.

 

2) 축복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임

어느 단체나 그 모임의 회원이 되려면 제시하는 기준과 조건에 부합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원래 에클레시아는 그리스 아테네 시민 통치기구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모든 아테네 시민이 에클레시아의 회원이 될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의가 구성되는 날 시민회의를 소집하는 나팔을 불었으며 그 나팔소리에 응하여 회의에 참여한 시민만이 진정한 에클레시아의 권리와 자격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부름에 응한 사람들', 즉 하나님의 축복 언약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응한 사람만이 주 예수의 교회에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과 순종으로 응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 이 세상의 큰 비극입니다.

 

2.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1) 오직 주 예수님만이 주인 되심

예수님의 이 언약 가운데는 아주 중요한 경고와 선포의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18)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교회, 그리스도의 사상과 진리만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는 오직 주 예수뿐이십니다. 세상의 부와 권세, 사람의 사상과 지혜는 결코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주 예수 외에 다른 것을 머리로 삼는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라 우상숭배의 집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라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3:11)고 경고합니다.

 

2) 교회를 보전하실 것임

주님은 또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우리라는 말씀은 창조와 번영의 축복으로 가득 찬 언약입니다. '일어서게 하겠다(Syand), 건축하겠다(build), 설립하고 조직하겠다(establish)'는 의미입니다. 결코 쓰러지고, 파괴되고, 와해되는 세상 단체들의 운명과는 다른, 교회를 번영시키고 보양해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교회를 당신의 신부처럼, 몸처럼(골1:18엡5:25-32) 보호하시고 영광으로 치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 교회, 번영과 안식이 있는 교회, 하나님께서 세우시겠다고 언약하신 교회는 바로 이런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회원인 성도들의 삶과 그 미래가 영화롭게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3. 반석 위에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진리에 대한 믿음과 순종 위에 세우심

주님은 집을 모래 위에 세우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교훈을 하시며(마7:26,27),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건축 기반도 반석으로 고르시겠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반석이라고 불린 베드로가 교회의 기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그 위에 세우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16-18). 주 예수와 그 진리 말씀을 참되게 아는 사람들의 믿음이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의 터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회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엡2:19)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믿음, 순종, 희생의 반석 위에 오늘도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반석 위에 진리의 기둥인 교회를 세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승리의 도성이 되게 하심

중근동 지방의 마을이나 도성들은 대개 바위산 위에 건축합니다. 예루살렘 성도 해발 8-900m의 시온 산 위에 건축했습니다. 바위산은 홍수나 바람에서 성을 보호해 주고, 적의 공격을 막아주며 또 빗물을 저장하여 가뭄에도 식수를 공급해 주는 천연의 요새지입니다. 그 바위산이 지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반석의 개념입니다. 주님의 진리와 언약을 굳게 믿고 순종하는 교회는 철통 요새와 같아서 사단의 공격과 세상의 시험을 당하여도 패망치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전진 기지로서 세상을 타락시키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단 권세를 무너뜨리는 의의 병기가 될 것입니다.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는 말씀대로 세상에서 사단의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영원히 승리할 단체는 오직 주 예수의 교회뿐일 것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로마 황제와 그 하수인 헤롯왕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세상 권력자의 도시 속에서 주님은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단체를 설립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언약의 의미를 늘 기억하고 자신의 위치를 늘 확인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설교자료

◈ 신세대(18-24)의 특징

솔직하고 개방적임

도전적이고 자신감이 넘침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함

절대적인 도덕이나 가치보다 상대적인 가치를 중시함

개인주의적임

물질만능주의적 경향이 있음

 

◈ 신세대 문화의 특징

고도 경제 성장의 산출

정보화 및 전자 미디어 문화

후기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주도

강한 개인주의(손종국)

 

◈ 반석에 대한 해석

① 가톨릭 : 베드로 자신이다.

루터 : 반석이 그리스도 자신이다.

칼빈 : 반석이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다.

오스카 쿨만 : 반석은 고백자 베드로이다.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대표자라는 것이다.

 

◈ 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

불가시적 교회

불가시적 교회란 영적 교회를 말하며,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말한다(벧전1:3). 이는 성도 개개인이다.

가시적 교회

이는 같은 신앙을 고백한, 눈에 보이는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조직과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그것을 근거로 봉사와 전도를 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이바지한다. 뿐만 아니라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을 하는, 눈에 보이는 교회이다.

 

◈ 교회의 사명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계2:4,5)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엡1:5,6,11,12,14)

세계를 복음화하는 것(마28:19,20)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마28:19)

신자들을 가르치고 징계하는 것(마18:17롬16:17딤전4:6)

신자들의 교제를 준비하는 것(행2:42)

현 세계를 계몽시키고 악을 저지하는 힘으로서 활동하는 것(마5:13-16)

 

◈ 교회와 구원

전통적인 교회 :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3세기, 키프리안)

종교 다원주의 :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 하나님을 모른다 해도 그 종교 나름대로의 방법을 통해서 구속 사역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

성서의 가르침 :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 밖의 사람들의 구원 문제는 우리의 권한이 아니고 하나님만 아시고 결정하실 일이다.(이종성)

 

설교4 :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가이사랴 빌립보의 보장

마16:17-19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우리는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사회적으로 장래를 보장받고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가령 어떤 혁명 세력의 우두머리가 거사 직전 그 측근들에게 "이번 일만 성사되면 너희들에게 높은 지위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후 혁명이 성공하면, 약속대로 측근들을 높은 관직과 요직에 앉힌 사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의 신앙을 확인하신 주님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 교회에 대한 언약과 보장을 하셨습니다. 이 보장은 우리 성도들의 영원한 희망이요, 힘이 됩니다.

 

1. 교회의 부흥을 보장하셨습니다

1) 점진적으로 부흥하도록 하심

주님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보장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운다'는 뜻은 조직하고 설립한다는 일차적인 뜻과 함께 '부흥,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즉 교회의 부흥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쇠퇴하고, 소멸하는 단체가 아닌, 자라고 세워지는 교회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맹약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 그리스 원문에는 "내가 세울 것이다"라는 미래형을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로 하여금 당장 부흥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부흥시키겠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적인 꽃은 시간과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건물도 금방 지으면 부실한 것이 되어 얼마못되 무너지고 맙니다. 교회도 연단과 훈련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진리가 그 기초가 된 후에 부흥 성장이 되도록 주님께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목수 출신이신 주님께서 "내가 세워가리라"고 하셨다면 결코 부실하게 교회를 건설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교회로 하여금 합당한 훈련을 거치게 하시고 진리의 반석 위에 굳게 뿌리박게 하사 점점 튼튼하고 조화롭게 자라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엡2:20-22).

 

2)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하심

건축 공학의 발달로 옛날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초고층 매머드 빌딩들이 세계 도처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 하늘 높은 곳, 하나님 나라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건물은 세울 수가 없습니다. 바벨탑 사건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무한 성장을 주님께 보장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4:13)라고 성경을 통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장차 저 천국 주 예수의 영화로운 보좌까지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2. 교회의 승리를 보장하셨습니다

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물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은 또 교회에게 영광된 보장을 해 주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셨는데 이는 교회의 승리를 보장하신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죄악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사단의 권세를 뜻합니다. 사단의 권세가 결코 교회를 폐하도록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물이요, 큰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생명을 주고 사신 성도들이 모인 교회이기에 예수님께 더 큰 보물은 없는 것입니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 거룩한 하늘의 영광마저 유보하시고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사 죽기까지 대속 사명을 이루신 것입니다(빌2:5-11).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와 몸으로 비유합니다. 그리스도의 것을 해할 세력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30)고 했고 어떤 피조물이라도 교회와 그리스도와 맺어진 사랑은 끊을 수 없다고 성경은 단언하고 있습니다(롬8:37-39).

 

2) 사단 권세를 제압하게 만드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음부의 문이 견디지 못하리라"는 의미입니다. 옛날 전쟁에는 성문이 부서지고 열리는 것은 전투에서 진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마지막 보루가 성인데 그 성문마저 부서지고 함락당하는 것은 완전한 멸망이요, 패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단의 사망과 죄악의 권세를 늘 제압하는 힘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어두움이 빛에게 제압당하듯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영생 복음, 의와 선함의 향기는 사망과 죄악의 세력을 늘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생 복음 진리와 성도들의 의로운 삶은 교회의 큰 무기가 됩니다. 이 무기 앞에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세상의 세력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지금까지 존속하고 부흥되어온 것입니다.

 

3. 교회의 특권을 보장하셨습니다

1) 기도 응답의 특권을 보장하심

주님은 교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축복으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천국열쇠'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특권, 이 세상의 어떤 단체도 그 특권은 없습니다. 오직 교회뿐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특권은 기도와 그 응답을 가리킵니다. 기도와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곧 대화와 교제를 의미합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29)고 했듯 세상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기도를 드리지만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곳은 교회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과 진리의 말씀을 통해 기도를 드리기에 응답받을 수 있으며,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2) 천국의 지혜로 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심

그 다음 땅에서 매고 푸는 특권을 보장하셨는데 이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고, 관계하며 단절할 줄 아는 지혜를 가리키는 뜻입니다. 천국 열쇠를 지니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교회는 참된 진리와 거짓 것을 분별하고, 맺어야 할 일과 풀어야 할 일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지녔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지혜와 판단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성령의 도우심에서 기인된 것이기에 세상 사람들의 지혜와는 다릅니다. 유일하신 주님과 섬겨서는 안 될 우상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십자가의 길로 가시기 전 주님께서 교회에게 해 주신 것은 진실한 성도에게 대한 삶의 보장입니다. 비록 시험과 시련, 유혹 중에 있을지라도 성도의 삶은 부흥하고 승리하며 안전함을 보장받았음을 믿고 전진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설교자료

◈ 보증

역사적으로 '보증'이란 말은 페니키아 지방, 상인들의 용어에서 유래, 성경 법률에서 '보증인'이란 동사 '알라본'인데 '이에 책임지고 등장하는자'(고후1:22엡1:4)이고, 히브리어 '아라브'는 '누구를 대신하여 부채를 갚겠다고 보증을 서다'라는 뜻. 영적인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삶의 완전성을 보증해 주셨다.

 

◈ 의의 보증

초대 敎會敎父인 폴리캅의 서신(the Letter of Polycarb)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한 의()의 보증이 되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 가이사랴 빌립보

본명은'파네아스(Paneas)'였으나 헤롯 빌립이 로마의 황제 가이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성지 가이사랴(행23:33)와 분간하기 위해 이렇게 명칭했다. 헐몬 산록에(메론 호수와 헐몬산 중간) 위치하여 성지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예수께서 도착하신 호수 건너편(마16:5)은 벳세다 부근이며, 요단 계곡의 북쪽을 나타낸다.

 

◈ 교회(εκκλησια)

 

교회란 '에크(εκ)'와 '칼레오(καλεω)'의 합성어. 썩을 세상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에도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을 말함.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심에 한 몸이 됨을 의미. 이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예속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마16:15-20엡5:22-32).

 

 

 

◈ 살아있는 敎會

이렇게 모이면 敎會는 사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는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것 때문에 다 유익하다고 고백하는 성도들로 구성된 敎會. 이들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기를 원하는 거룩한 열정에 사로 잡혀 있었다.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 살았고,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자기의 시간과 삶을 내어주고 있었던 성도들로 가득찬 교회는 살아있던 빌립보 교회였다(이동원 목사).

 

◈ 바울의 비유

바울은 교회의 은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으로 묘사했다(고전3:9). 왜냐하면 그 성숙도에 따라 36, 60, 100배의 생명력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집이라 하면 집을 경영하는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흥망이 결정되는데 온전한 敎會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터 위에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올바른 기도

경건한 태도

부족한 마음과 회개하고 자복하는 태도

모든 세상적 확신을 버리고 겸손히 용서를 비는 태도

응답의 확신있는 소망을 가지는 태도(존 칼빈 기독교 강요 )

 

 

[조직 신학 연구] 삼위 일체(trinity)

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위일체(trinity) 삼위일체란 하나님은 존재 양식에 있어서 각각 독립된 세 분의 실�

drn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