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고린도전서 헬라어성경말씀]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노라(고전 3:1-9)

두란노 서원 2022. 10. 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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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노라(고전 3:1-9)

 

바울은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한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하고 있었다. 밥을 먹지 못하고 젖을 먹는 수준의 신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장성한 자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성 경: [고전3:1]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 '신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이스'는 2:14, 15과는 달리 본절에서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킨다. 2:14, 15에서는 이 단어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대조되어 구원받은 사람을 의미하였지만, 본절에서는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네피오이스)와 대조되고 있다. 즉 본절에서 '신령한 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숙해 가는 자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상태가 여전히 성숙되지 못하고 정체(停滯)되어 육적인 편견과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수준에 있다고 규정한다.

고전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성 경: [고전3:2]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 ''에 해당하는 헬라어 '브로마'는 원래 '고기'(meat)라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성인이 먹는 단단한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단단한 음식에 해당되는 형태로 복음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어린 신자로 여겨,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음을 시사한다. 바울의 이러한 화법은 헬라 세계에 퍼져있던 밀의 종교의 방식과는 다르다. 밀의 종교에서는 신도의 수준에 따라 일정 수준에 이른 신자들에게만 은밀하게 자신들의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바울이 이런 방식으로 복음의 진리를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가르쳤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앙의 상태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이기 때문이다(Calvin). 오히려 복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형식을 달리하여 가르쳤다고 보는 게 더욱 타당하다. 이렇듯 하나님의 계시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상태에 따라 깊고 넓게 가르쳐야 한다.

󰃨 지금도 못하리라 -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처음 방문하여 복음을 가르칠 때, 그들은 단순한 믿음의 도리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고린도 교인들이 복의 초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여 정체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까닭에 다른 형태로 복음을 설명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고전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성 경: [고전3:3]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 '육신에 속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르키코이'는 1절에서 언급한 '사르키노이스'보다 강한 표현으로 '사르키노이스'는 육신 자체를 가리키는 반면 '사르키코이'는 육신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이 말이 신앙생활을 적게 한 사람에게는 비난이 되지 않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 한 사람에게 사용되면 비난하는 투가 된다(Morris).

󰃨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 바울은 본절에서 육신에 속한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시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젤로스'는 근본적으로 '뜨거움', '열심' 등을 의미하여 헬라의 전통 작가들의 문헌과 신약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덕목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질투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어 그릇된 경쟁의식에서 나온 감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대개 '젤로스'를 육에 속한 사람이 갖고 있는 정서로 본다(5:20). 한편 '시기'가 외적으로 표출되면 분쟁이 유발되는데, '분쟁'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리스'가 어떤 헬라어 사본들(P, D, F, G, TR)에서는 '분열'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코스타시아이'로 되어 있다. '분열''분쟁'의 결과로써 필사자가 좀 더 과격하게 고린도 교회의 분열상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고린도 교인들은 여러 파로 나누어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각기 독자적인 태도와 노선을 취하였음을 시사한다.

󰃨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 '사람을 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안드로폰'은 통상적인 죄인의 삶의 방식인 이기심, 교만, 시기 따위의 정서를 정당하게 여기고 수용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요구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버린 칭의인(稱義人)으로 살아가야 한다(2:20;5:24). 그렇기 때문에 본절에서 바울은 이를 염두에 두고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스스로 시인할 수밖에 없도록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고 있다.

고전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성 경: [고전3:4]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아볼로에게라 하니 - 헬라어 본문에 나오는 접속사 '가르'('왜냐하면')는 본절이 앞절의 진술에 대한 이유가 됨을 나타낸다. 고린도 교인들이 '시기''분쟁'에 가득한 어린 신자들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바울'파와 '아볼로'파 등으로 나뉘어 있는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당파를 짓고 있는 분열상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본절에서 제시하는 바울파, 아볼로파 외에도 몇몇 분파들이 더 있었다(1:12). 그런데 바울이 본절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모인 바울파와 견주어 자신과 깊은 관계에 있던 '아볼로'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어떤 특별한 사역이나 어떤 특정한 인물에 속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돼었음을 설득력 있게 가르치기 위함이다.

고전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성 경: [고전3:5]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 '무엇이뇨'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어떤 사본(P, C, D, TR)에서는 인칭형인 '티스'('누구냐')로 되어 있으나, 고대 사본들(A, B)에서는 중성형인 ''('무엇이냐')라고 되어 있어 바울 자신과 아볼로를 매우 경시하여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음 절에서 언급하려는 하나님의 권위의 절대성과 그분의 사역의 완전성을 두각(頭角)시키고 인간 지도자의 권위의 상대성과 한계성을 대조적으로 약화시키려는 의도이다.

󰃨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 앞 구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형식을 취하여, '주'와 '사역자'를 대조함으로써 ''의 우위성을 나타낸다. '사역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이'는 본래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봉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용어가 신약성경에서는 자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되어 '집사'(16:1;1:1)를 의미하기도 한다. 본절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그들의 직무가 낮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함이다(Morris). 모든 행위의 주체자는 '그리스도'이시고 사역자인 바울과 아볼로는 도구에 불과하다.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성 경: [고전3:6]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 바울은 앞절의 논술을 뒷받침하기 위해, 식물 재배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본절에 나타나는 동사들 가운데 바울과 아볼로를 주체자로 삼는 '심었고'의 헬라어 '에퓌튜사와 '물 주었으되'의 헬라어 '에포티센'은 부정과거인데 반해, 하나님을 주체자로 갖는 동사 '자라나게 하셨나니'의 헬라어 '육사넨'은 미완료 과거이다. 이는 바울과 아볼로의 사역은 시간적인 한계를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영속적임을 보여준다. 본 구절은 고린도 교회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이 바울이라는 것과(18:1-18) 그의 동반자 아볼로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자세하게 해석하여 가르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한다(18:24;19:1). 그러나 그들의 사역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항상 있었고 절대적인 역할을 하셨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성 경: [고전3:7]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 본절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앞절에 이어 5절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아무것도 아니로되'의 헬라어 '티 우테'는 심고 물주는 사역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에 '오직...뿐이니라'의 헬라어 ''은 근본적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고전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성 경: [고전3:8]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 본절에서는 심는 이와 물주는 이를 접속사 '카이'('그리고','...도')로 연결시켜 바울이 언급하려는 것을 둘 다에게 동일하게 적용시킨다. '일반이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헨 에이신''하나이다'라는 의미로 둘 다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즉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역자들이 각기 하는 일은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하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동일한 교회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라는 표현은 사역자들이 하나님께 대해 개별적인 책임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사역자들이 자신이 수고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가진 재능이나 은사조차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은사에 관계없이 수고에 대한 대가로 상급이 주어진다(Hodge).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성 경: [고전3:9]

주제1: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주제2: [육신에 속한 자]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 본절에는 '하나님'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우'가 각 구절 맨 앞에 위치하여 강조되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바울이 줄곧 하나님을 모든 행위의 주체자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역자들'의 헬라어 '쉰에르고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혹자의 견해를 따르면 이 말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Meyer, Alford, Robertson). (2) 혹자는 문맥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Bengel, Morris, Vincent).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가 더 타당하다. 그 이유는 본절이 앞 구절에 대한 설명적인 표현이므로 문맥을 떠나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오르기온'은 신약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교회를 가리킨다. 바울은 자신이나 아볼로와 같은 사역자들을 경작자로 간주하고 고린도 교회를 밭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의 헬라어 '오이코도메' 역시 교회를 가리키는데, 바울은 이런 표현을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했다(15:20;2:20-22;벧전 2:5). 바울은 교회를 ''으로 비유하다가 갑자기 ''으로 비유의 소재를 전환하면서 자신의 논증을 다음 절에서도 계속 이끌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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