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광복절 주일설교말씀] 참 자유(갈라디아서 2:16-21)

두란노 서원 2021. 3. 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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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광복절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참 자유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광복절은 우리가 일제 치하에서 고통당하다가 해방된 날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도 사탄의 압제 하에서 죄악 가운데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인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성도는 다시 원죄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중간에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을 얻었으니 참 자유를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 자유(갈 2:16-21)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 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함이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오늘은 광복절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이제는 그날이 별로 의미 없는, 그냥 쉬는 날처럼 되고 말았습니다만 그러나 이 날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참 자유]란 무엇이며 어떻게 할 때에 우리는 이런 자유를 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김 병걸 시인이 쓴 [8.15의 분노]란 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찢어지는 가슴으로 40년 내내 불러왔는데, 너는 어찌 대답 없느냐, 목놓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냐, 우리의 환호였던 눈물이었던 벅찬 가슴이었던 해방아". 결국 우리는 1945에 해방은 되었으나 아직도정치적, 사회적 참 자유는 없다는 절규인 것입니. 그러면 도대체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속박하는 정체가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보고 그러고 나서 참 자유를 얻는 비결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1] 첫째로 자연이 인간을 속박하였습니다.

 

본래 자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인간은 무지해서 태양을 태양신이라고 해서 섬기고, 하늘을 천신이라고 해서 섬기고, 땅을 지신이라고 해서 섬기고, 물을 수신이라고 해서 섬기고, 돌을 석신이라고 해서 섬기고, 나무를 목신이라고 해서 섬기고, 심지어 뱀이나 소나 코끼리를 섬겼습니다. 바로 여기서 고대의 우상숭배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2] 나쁜 관습이 우리를 속박합니다.

 

지금도 인도에 가면 갠지스 강을 거룩한 강이라고 믿고 그 물에 목욕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시체를 버리고 오물까지 버리면서 이 오염될 대로 된 강물을 죄를 씻어주는 거룩한 물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소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나쁜 관습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 사람을 위해서는 돈을 벌벌 떨면서 안 쓰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묘지를 잘 써야 자손이 잘 된다고 하면서 수천수억의 돈을 쓰는 습관은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빨리 고쳐야 합니다.

 

[3]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정치, 인간의 경제, 인간의 제도가 인간을 속박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영국의 작가, 셈머세트 모음의 [인간의 굴레]란 자서전적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생이란 페르샤의 융단 같아서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 낡아버리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제도도 낡아지고 마침내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과거에 정치적으로 억압 속에서 살았지만 그러나 너무도 그런 억압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기성세대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정치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와 우리가 원하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자유 등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으나 그러나 아직도 선진국가에 이르려면 멀었습니다. 더구나 경제적 자유는 아직도 요원합니다. 또 제도 가운데는 인권을 유린하는 잘못된 제도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없애기까지는 우리는 참 자유인이 될 수 없습니다.

 

[4] 거짓된 종교와 미신이 우리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물론 옛날 같은 바알신이나 몰록 신은 없지만 많은 현대판 거짓 종교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돼지 대가리를 앞에 놓고 절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큰 돌 앞에서 합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황금만능주의는 현대인의 가장 무서운 우상입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제외하고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입니다.

 

[5]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죄라는 폭군입니다.

 

죄를 범하기까지는 죄가 가장 매력 있는 존재로 보이나 일단 범하고 나면 갑자기 폭군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가 아름답게 보이게 되며 또한 매력 있게 보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한 번만] [이번만] 하고 우리를 유혹하지만 일단 범하고 나면 [내 말 안 들으면 폭로할 거야]하고 위협합니다. 이처럼 죄는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는 범하는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2. 그러면 참 자유란 무엇을 말합니까?

 

먼저 우리는 자유와 해방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란 내적 해방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Freedom이라고 부릅니다. 다음으로 해방이란 외적 자유 즉 Liberty가 있습니다. 따라서 Liberty란 말은 정치적, 사회, 경제적 해방같이 외적인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하고 Freedom란 양심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처럼 내적인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외적인 자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중요한 것은 내적인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해방이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점차적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것은 내적인 자유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말하는 참 자유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참 자유란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의 복음 시대가 되면서 율법으로부터 우리는 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안 지키면 지옥에 가지 않을까? 면서 벌벌 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율법에서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참 자유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해질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3]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참 자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이 있지만 죽음만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린 애도 [너 죽어]하면 꼼짝 못 하고 아무리 돈 많고 권력이 많은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벌벌 떱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만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이 죽음을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참 자유를 얻어야겠는데 그것은 바로 율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요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요,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와 같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3. 그러면 우리가 참 자유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나 자신이 먼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만 합니다.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아무리 해도 참 자유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율법에 얽매이게 됩니다. 죄에게 끌려다니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죽음의 횡포 앞에 무참하게 무너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소유해야 우리는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은 사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광적으로 사치했기 때문에 황제인 나폴레옹도 감당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귀양 가서 있게 되었습니. 이때 조세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폴레옹은 "이제야 조세핀이 행복하겠군"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사치병, 권력병, 락병, 이기주의병, 교만병, 불신병 등 너무도 많습니다. 이것은 내가 죽어야 없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옛사람은 장사 지내고 내 안에 주님을 즉 영생을 그 마음속에 소유한 자만이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이 무엇입니까? 17:3절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이기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교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체험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율법에 얽매이지도 않고, 죄에 끌려다니지도 않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2] 8:32절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참 자유를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연과학의 진리를 깨달았을 때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지하면 인간은 얽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진리란 세상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진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지만 죄로 인해 사탄의 종이 되었으나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이 진리를 깨달아야 참 자유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4:6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그와 교제하며 그를 따르는 사람만이 참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누가 진리를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주님의 제자가 됩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즉 주님의 말씀에 거하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씀 안에 거한다는 말은 말씀을 항상 묵상하면서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3] 고후 3:17절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영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지시대로 살면 율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죄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되고 죽음 때문에 벌벌 떨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번 주간을 광복절 주간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진정한 해방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해방은 율법에서 자유로워져야만 합니다. 죄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죽음에서 해방되어야 합니. 그러려면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지시에 따라 사는 성령의 사람이 되고,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이 되어 참 자유인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아멘]

 

그러기 위해서 한 가지 꼭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5:1절의 말씀대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는데 왜 우리는 죄를 짓고 죄의 종이 됩니까? 저는 해방되고 나서 할아버지 댁의 머슴에게" ! 자네는 이제 자유니 마음대로 가서 살게"하고 말했더니 두 손으로 빌면서 주인님, 제게 주인님을 떠나 어디로 가서 살겠습니까? 돈은 안 주셔도 좋으니 그저 밥만 먹여주십시오 하고 비는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해방시켜 주셨는데 그 어리석은 머슴처럼 다시 죄에게 가서 머슴 노릇, 종노릇 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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