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교회 음악 연구 중에서 C.C.M의 역사와 이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C.C.M의 역사와 이해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박정한(lovefh)
찬양문화선교 CCMG 대표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이란 말은 무엇인가? 이 말은 사전적 의미와 같이 현대적인(동시대의,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이하 CCM) 이렇게 CCM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가스펠 음악이 대략 세 가지로 구분되던 시기였다.
그 첫째가 성스러운 가스펠(Sacred Gospel),
둘째로 Inspirational,
셋째로 Contemporary Gospel이었다.
Sacred Gospel은 교회에서 불리던 음악이고 Inspirational은 오늘날의 이즈리스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컨템퍼러리로 분류된 것은 그 당시 남부 가스펠에서 가장 흔했던 4중 창단의 노래를 지칭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가장 유행(?) 했던 스타일이 바로 이 남부지방의 남성 4중 창단이었기 때문에 컨템퍼러리로 구분된 것은 남부 가스펠이었다.
이러한 CCM은 각기 그 나라와 지역의 특생에 맞게 발전해왔으며 불리어 왔다. 그러므로 CCM은 그 내용은 같으나 그 스타일은 각기 독특한 스타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은 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전자악기의 출현, 그리고 이러한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전 세계에 일반화됨에 따라 음악의 사운드, 예술적 차이는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회의 음악도 이러한 것을 계기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음악이 CCM으로 변화된 첫 번째 시도는 1964년 미국의 레이 랩(Ray Repp)이라는 사람이 가톨릭 교회에 포크(Folk)미사를 선보인 것이었다. 이듬해인 1965년 랄프 카마이클은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선교영화 (The Restless Ones:쉼이 없는 사람들)에 음악을 삽입하면서 싱코페이션(박자의 강약을 바꾸거나 전환하는 것)이 가미된 음악을 사용했다. 즉 음악의 기법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해 유명한 팝아티스트인 배리 맥가이어(Barry Mcguire)가 록 음악계의 반항적 물결을 떠나는 신호처럼 (Eve Of Destruction 파멸의 전야)라는 앨범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팝 음악 스타일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아마도 이 시도가 CCM의 구체적인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1967년 미국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그 운동이 정점에 달했다. 이때에 많은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이 일고 있었는데 기독교 젊은이들은 그다지 과격하지 않았다. 이때에 랄프 카마이클과 커트 카이저는 가서 그대로 전하라(Tel it like it is Natural High) 같은 청소년 뮤지컬로 크리스천 음악을 거칠게나마 현대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반전운동과 함께 일어난 미국의 반문화운동은 자유와 평화의 상징, 마약(LSD), 자유연애, 그리고 로큰롤을 성스러운 것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히피족들의 운동에 반대하는 대항문화가 일어난 것이다. 즉, 이러한 반문화 히피 운동이 내세운 자유와 사랑에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의 자아실현이 불가능한 점을 깨달은 세대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참 평안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참된 가치를 발견한 젊은이 들은 그들이 가진 문화적 언어로 새로운 스타일의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CCM의 긍정 적면이 아닌가 싶다.
1969년 래리 노먼(Larry Norman)이라는 젊은 아티스트가 캐피털 레코드에서(Upon this rock)이라는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정통 Rock 음악에 신앙의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래리 노먼 앨범은 크리스천 록의 선구적 신호 탄과 같았다. 이 해에 칫 CCM 앨범이라 할 수 있는 마일런 브페브르와 홀리스모크의 (Mylon), 래리 노먼의 (Upon this rock), 존 피서의 (The cold cathedral)이 나왔다.
캘리포니아 갈보리교회에서는 태평양 연안에서 회심한 히피들을 위한 대규모 침례식을 거행했다. 갈보리는 크리스천 음악이 음악이 갖고 있는 소리나 외양보다는 그 마음의 조건과 더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은 교회였다.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는 그리스도인을 격려해 스타일이 어떻던지 주님을 위한 음악을 만들도록 했다.
이러한 갈보리 교회에서 만들어낸 음악도 크리스천 문화의 한 부분을 형성해 나갔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또한 이 물결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일어나게 된 ‘예수운동(Jesus Movement)'과 중첩되어서 일반 매체인 ‘Time'등을 포함한 수많은 매체가 이 운동을 다룰 만큼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초창기 CCM이라고 하는 앨범들이 다수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작비용 등이 열악하고 수준도 낮았다. 하지만 순수한 음악임에는 틀림없는 것을 볼 수 있다. 1970년도에 들어오면서 1971년 갈보리 교회에서는 ’Marantha! Music'이라는 음악 선교단체를 설립해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2년 여름 CCM 은 미식축구 경기장인 카튼 보울에서 열린 ‘엑스폴로 72’‘대회에서 그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래리 노먼, 러브송, 리타 쿨리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배리 맥가이어, 안드레 크라우치 등이 출연해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게 되었다. 또한 Word 레코드사에서는 크리스천 전문 레이블인 Myrrh를 설립, 초창기 크리스천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CCM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 Sparrow사가 설립되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성장해온 CCM이 1978년에 새로운 사간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CCM을 전문으로 다루는 ’CCM'이라는 잡지가 창간된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초대형 가수 Amy Grant의 등장이었다.
1979년에는 포크의 대명사로 불리던 밥 딜런이 ‘Slow train coming'이라는 앨범을 내고 기독교인이 되어 공연 때마다 거듭 난 내용을 주로 하는 노래만을 불러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1979년에 크리스천 록을 비판해왔던 Bob Lason이 그 태도를 바꾸어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 점이다.
1980년 No Compromise!라고 외치며 젊은이들에게 강렬한 선교에 도전을 불러일으키던 Keith Green은 자신의 앨범을 자유 가격제로 판매함을 발표 충격을 주었다. 1982년엔 CCM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백워드 매스킹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즉 레코드를 거꾸로 돌려 들으면 사탄적 메시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늘 생각하며 만들어야 할 것이다.
1985년 워드 레코드는 일반 팝 회사인A&M사와 계약. Amy Grant의 앨범을 일반 시장에 보급했다. 그녀의 앨범에 수록된 ’Find a way'가 빌보드 Top 40위에 진입하고 크리스천 가수로는 처음으로 일반 pop 차트에 등장하게 되자 크로스오버라는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CCM은 일반 팝계의 흐름과 대등한 흐름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출연을 하게 되었다. 한편 마라나타 뮤직이 성장시켜온 컨템퍼러리 찬양 등은 호산나 인테그리티 뮤직의 프레이즈 앤 워쉽 시리즈로 거 열성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85년엔 CCM에서도 CD를 제작하기 시작해 음질면에서도 발전하게 되었다.
CCM의 역사가 30년을 넘어오는 1990년대에는 CCM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재가 되었다. 이 세상의 여러 문화 속에 침투하여 우리 크리스천들의 사상과 하나님에 대한 찬양, 선교적 메시지로 선교의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CCM이 유럽에도 들어가서 에미크란트, 샌디 페티, 화이트 하트, 페트라 등은 유럽 공연을 하였고 이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에게도 이 CCM 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1989년 발트해 공화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탈린에서 열린 에스토니아 89는 수많은 결신자를 배출했다. 소련의 공산화 이래 처음 열린 CCM 공연이었다.
1991년에는 유럽 각국의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이 스위스에 모여 유럽의 CCM을 모은 앨범 ‘첫 발자국’을 냈다. 그리고 이러한 CCM 이 아시아 권에도 들어오기 시작해서 국내에서도 이제 명실상부한 CCM의 태동이 시작되게 되었다. 국내의 본격적인 CCM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80년대 초기의 주찬양선교단의 사역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름’으로 더욱더 사역의 폭을 넓혀 국내의 CCM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 후로 여러 선교단체들이 탄생하게 되어 이제는 국내에서도 여러 찬양 양사 역자들이 늘게 되었고 발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국내에서도 발전하는 CCM의 사역들을 기대해 본다.
-하덕규 님의 강의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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