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구약성경 지명 하나님 말씀]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욘 1:3)

두란노 서원 2020. 11. 20. 17:11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구약성경 지명 하나님 말씀 중에서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는데 거역하고 니느웨 반대편인 다시스로 도망을 쳤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으로 도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다시스의 구약 지명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욘 1:3)

 

다시스의 명칭은 תרשיש(타르쉬쉬)입니다. 타르쉬쉬의 뜻은 금속의 정련, 전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스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 첫째 주장은 스페인 남부 지브랄타(Gibraltar)에 가까운 타르테수스(Tartessus)로 추정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이 의견이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둘째는 이탈리아의 서쪽 섬 타르시스(Tarshish)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다시스는 야완의 아들이며 노아의 증손자로 나옵니다.

창10: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베냐민 지파 빌한의 아들이다(대상7:10).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려 한 곳이다(욘1:34:2).

아하수에로 왕을 섬겼던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중 한 사람이다(에1:14).

솔로몬이 자기의 다시스 배들을 보낼 때 두로 왕 히람의 노련한 선원들을 요청했다(왕상9: 26; 10:22).

다시스의 배들은 지중해와 홍해에서 해상 무역에 큰 역할을 하였다.

 

욘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타르쉬쉬는 '금속의 정련' 혹은 '보석'을 뜻합니다. 보석 중에서도 벽옥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요나서에 언급되어 있는 이 지명은 욥바에서 배를 타고 갔었던 것으로 미루어 지중해나 대서양 연안에 위치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 남부 대서양 연안에 있었다가 오래전에 폐허가 된 고대 도시 타르테수스와 동일한 곳으로 보기도 합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치고 있다는 것은 신앙의 정련을 받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정련을 받아야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금속이 불속에 들어가서 정련을 받아야 좋은 도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고난의 풀무불에 들어가야 그때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됩니다. 다시스는 금속을 정련하는 곳이기 때문에 신앙에도 연단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금이나 은은 뜨거운 용광로에서 단련됩니다. 그래야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도가 높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의 순도를 높이시고자 사용하시는 도구는 바로 연단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신앙에 따르는 시험이나 고난을 불평한다든지 낙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므로 그분이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시험하고자 오는 시련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권고합니다. 그 이유는 이 일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의 영광에 참여케 하려고 이와 같은 시련을 주시는 것이므로 불평은 합당치 않다는 말입니다. 인격이든 신앙이든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고난과 시련이라는 도구로 끊임없이 단련되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요나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연단을 받고 회개하여 결국 니느웨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의 풀무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녹여주셨습니다. 주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죄의 차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사망에게 매어 종노릇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참으심으로 우리가 참 자유를 얻었으며, 죄의 노비 문서가 소각된 것입니다. 시련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주님께서 주셨다면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주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고자 하다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잘못을 범하여 어려움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고통인 것이 분명 하나 내가 져야만 할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적인 태도입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면 십자가의 무게가 비록 중하다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원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질고를 지셨습니다. 

주님이 나의 고난의 질고를 지셨으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요나는 사명의 십자가를 버리고 다시스로 가다가 금속이 정련되듯이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지게 되었고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동안 있다가 회개하여 정련받고 다시 니느웨로 갔습니다. 우리는 요나처럼 하나님의 사명을 거부하여 도망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의 풀무 속에서 연단받아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니느웨와 같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다니엘 4장 하나님 말씀]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단 4:1-37)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4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을 부강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drn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