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추수감사절 하나님 말씀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매년마다 우리가 추수감사 주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여호와께서 가정을 지켜주시고 사업을 지켜주시고 자녀를 지켜주시고 건강을 지켜주신 것에 감사하는 주일로 지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시 100:1-5)
시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시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오늘은 감사 주일입니다. 성경에 있는 감사의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인격적 존재이며 인격적 존재는 예의를 가지는 법입니다. 또한 이 예의는 은혜와 공로에 대하여 감사할 아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고로 이 감사는 말 뿐만의 것이 아니고 마음과 생활과 표현으로 나타내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에 항상 감사의 표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위싱톤에 의해 정해지고 (11월 26일) 선포되었던 선포문 내용의 한 문구대로 "진실하고 겸손한 감사"여야 하는 것입니다.
1. 성경의 감사
각 나라 사람들은 매사에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아니합니다. 감사는 인생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사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도 감사보다 더 성경적 신앙의 본질을 잘 나타내어 주는 동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17장 9절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사도행전 24장 3절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하나이다" 로마서 16장 4절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이라도 내어 놓았다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이 세 가지 경우를 관계의 문맥 내에서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감사는 항상 역사 내에서 계약적 하나님의 구체적 행위에 의해 증진되었습니다.
히브리어의 "감사"란 말 "토다 - "는 "감사한다"라는 야다에서 온 말로서 손을 펴는 것, 공언, 공경, 특별히 예배자들의 성가대, 신앙고백, 감사.. 등의 뜻을 가졌고, 동사 "야다"는 "손"이라는 말 야드에서 온 말로 "손을 쓰다, 던지다, 경배하다(손을 펴서), 찬양하다, 감사하다"...등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감사란 표현을 자주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이 감사는 시편 기자의 특별한 주의를 끌었고 전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결시켜 주고 있습니다. 역대상 16장 4절을 보면 "다윗 왕이 레위인 중에 어떤 사람을 택하여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시온으로 올라가는 명절 행렬은 "기쁨의 함성과 감사의 노래로"채워져 있었고 (시 42:4), 성전에도 감사함으로 들어갔습니다 (시95:2, 100:4), 맹세의 지불로 감사의 주어지는 희생에도 감사가 수반되었습니다.
또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의 심판도 감사로 행해졌습니다 (시 26:7). 모든 이스라엘 족속은 주의 이름을 감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시 122:4).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감사로서 일관되고 있었습니다. 감사! 감사! 또 감사! 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도 감사로 일생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된 것 다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면서 회개하고 속죄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신약 헬라어의 감사는 엑소모르게오마이 (마 11:25 = 눅 10:21)와 안도모레오마이(눅 2:38)가 드물게 나타나는 반면에 동사 유카리스테오는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명사형은 유카리스티아는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명사형은 유카리스티아(thankfulness)와 카리스(thanks)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부여된 축복에 감사했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의 고백을 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 감사절의 유래
다음으로 어떻게 해서 감사절을 지키게 되었는지 그 유래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370여 년 전 즉 1,620년의 일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종교 개혁자 위크마(Wycliffe)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Puritans)들은 형식 종교인영국 국교의 박해를 만나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마치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여 하나님만 믿고 애굽을 떠난 것 같이 배를 타고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화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도 마음껏 자유로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는 이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탄압하는 기세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자유를 찾아 배를 탔습니다.
때는 1,620년 9월 6일 그들은 처음 한 해 먹을 양식을 싣고 정처 없이 망망한 바다에 메이 플라워호(May-flower)를 띄웠던 것입니다. 배에 오른 사람은 남자 78명, 여자 24명이었습니다. 그해 11월 19일 63일간의 죽음의 항해를 마치고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땅이 지금의 미국 푸리마우드(Plymouth)였습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한 발은 배에 싣고, 한 발은 육지를 딛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상륙하여 산림을 채벌 하여 먼저 토막 교회를 짓고, 그다음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집을 세우니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지나는 사이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라 병이 들어 그들 반수가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원망 없이 청렴하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통하여 토인들과도 가까이 지나게 되었고, 청교도라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 원두, 밀, 보리씨... 등을 파종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예상외의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처음 추수한 오곡백과 곡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추수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협력해 준 근처의 토인들을 청하여 칠면조를 잡고 옥수수와 밀가루 빵과 원두로 케이크를 만들어 성찬으로 식탁을 나누며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때가 11월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후 해마다 점점 풍성해지는 오곡백과를 거둘 때마다 추수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곤 했습니다(1864년 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의 제의로 이 아름다운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여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게 하니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감사일은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11월 중에 지키게 되었습니다.
3. 우리나라의 감사절
우리나라에서는 11월 둘째 주일 지나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고 지켜 내려오는데, 이 날은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알렌(Allen) 의사가 인천에 상륙한 날입니다. 알렌 의사를 뒤이어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들이 1885년경에 왔습니다. 제1회 장로회 총회는 이와 같은 이유로서 감사일을 11월 둘째 주일 수요일로 정하고 선교받은 것을 감사하여 우리도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고 추수감사절의 헌금은 외국 선교비로 쓰기로 하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4. 물질 추수의 감사
누가복음 12장 16절에서 21절까지를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결론으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부자가 되고 하나님을 위하지 아니하는 자가 이와 같으니라"(21)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야비하고 천박한 감사의 태도를 말한 것입니다. 이 감사(정신)는 무종교적이며 유물적이며 자기중심의 태도인 것입니다. 능력과 노력으로 자신의 창고가 찬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물질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우상숭배입니다. 유대인의 우상숭배, 바알 예배는 하나님을 불신앙 하며 모독하는 죄악이니 최대의 범죄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서도 이와 같은 종교인이 있으며, 이와 같은 정신 태도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수입, 수확을 자기 능력, 혹은 자연의 결과로만 아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몰각하는 것이요, 이런 사람은 대개가 향락주의, 폭력주의, 무신론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히브리인의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인의 감사는 재물 얻을 능력을 내게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드리면 그 무엇으로든지 채워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오 우리에게 임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레위기 23장 9절에서 14절까지를 보면 물질 추수를 기념하는 감사의 초실절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6절에 기술한 무교절 의식의 일부입니다. 구약 다른 부분에는 아니하고 여기에만 기록한 것을 보니 원시적인 의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의식은 추수한 곡식을 달리 사용하기 전에 곡식의 첫 이삭 한 단을 성소에 봉헌하라고 했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 한단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이 절기는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밀알 하나가 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냥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가 많이 맺힐 터이라"라고 하신 대로 떨어져 죽으시고 고린도전서 15장 20절 -23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도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생겼으니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의 부활도 생겼도다... 그러나 각각 그 차례대로 부활할 터이니 먼저는 처음 익은 열매 되신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붙은 자요"라는 한 말씀과 같이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초실절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절기입니다.
5. 영적 추수의 감사
시편 65편, 116편, 12절 등을 보면 "여호와 내게 주신 은사여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다윗 성도의 신앙적 감사의 태도입니다. 다윗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자연은 총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 65:9-13). 풍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권고하시는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땅 위에 죄악이 관영할 때마다 흉년이 지는 일은 역사상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떤 때는 인간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풍년이 지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정한 시기 (죄악이 관영한 시기)가 이르기까지 베푸시는 자연 은총의 덕입니다(마 5:45-48). 그런고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순경에나 역경에나 언제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경에서 뿐만 아니라 역경에서도 자신의 뜻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의 특별 은총은 에베소 1장이나 요한일서 4장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하시고 흑암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시리라"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감사를 한층 더 하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 문 앞에서 자기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소와 양의 제물에 대하여 그 머리에 손을 얹고 감개무량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죄를 대신하여 피를 뿜고 가죽을 벗기울 제물에 대하여 그들은 눈물과 감사로 그 머리에 손을 얹었던 것입니다. 이 제물은 이사야 53장의 말씀과 같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감격에 사무쳐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화창하며 속죄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의 찬송을 드렸던 것입니다.
또 레위기 23장 17절에서 20절까지를 보면 오순절 절기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절기로 소맥 추수를 끝맺는데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이 날을 오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절기에는 "누룩을 넣어 만든 떡 두덩이"를 드렸는데 이것은 신구약 두 교회의 불완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조직하시려고 강림하셨지만 이 시기에는 지상교회가 가라지로서 가득 차 불완전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유형의 교회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완전해지려면 주님이 이 땅에 강림하시고 우리가 부활되면 완전해집니다. 그때는 무형의 교회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번 추수감사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항상 감사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상 3장 하나님 말씀] 솔로몬의 일천번제 기도(왕상 3:4-15) (0) | 2020.11.24 |
---|---|
[가정예배 하나님 말씀] "마음 속 우상부터 없애라"(삿 6:25) (0) | 2020.11.24 |
[창세기 1장 하나님 말씀] 천지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창 1:3-25) (0) | 2020.11.23 |
[출애굽기 2장 하나님 말씀] 생명을 얻는 믿음(출 2:1-10, 마 15:21-28) (1) | 2020.11.22 |
[룻기 1장 하나님 말씀] 전과 다르게 사는 법(룻 1:6-14) (0) | 2020.11.21 |
[구약성경 지명 하나님 말씀]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욘 1:3) (0) | 2020.11.20 |
[다니엘 4장 하나님 말씀]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단 4:1-37) (0) | 2020.11.19 |
[시편 34편 PPT 하나님 말씀 ] 주님의 이름을 높이라(시편 34:3) (0) | 2020.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