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구약 인물 강해 설교] 에스더(바사의 왕비)

두란노 서원 2020. 8. 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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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구약 인물 중에서 에스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주제1 : 에스더

제목 : 바사의 왕비

 

1. 이스라엘의 회복

 

1) 고레스의 칙령(25:11; 45: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패역하던 이스라엘과 유대를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을 사용하여 멸망시키셨습니다. 이미 바벨론의 위치가 대두되기 이전에 멸망 사실을 예언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도 예언해 주셨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포로 기간이 70년이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도할 인물이 고레스라는 사실을 400년 전에 예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자 고레스가 왕위에 올랐고 그는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참조, 1:1-4). 물론 고레스는 자신의 정책에 따라 모든 종교를 관대하게 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귀환(2:2; 7:9)

 

고레스의 칙령이 내려진 후 유대인들은 속속히 본토로 돌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귀환은 3차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1차 귀환은 스룹바벨에 위해서 주도되었는데 이대 귀환한 자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참조, 2:64-67). 2귀환은 에스라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3차 귀환은 느헤미야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 그러나 3차에 걸친 귀환에 동참한 자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지들로서 귀환한 이후의 이들의 삶은 매우 비참한 것이었습니다(참조, 5:1-5). 그러나 이들은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 등의 지도자들과 학개, 스가랴 등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3) 귀환하지 않은 자들(29:5-6)

 

고래스는 칙령은 유대인들에게 복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이 그것을 기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갈대아 땅에 정착하고서 어느 정도의 기틀을 잡은 자들은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편안한 삶을 살던 이들에게 귀환하는 행로의 고생과 가나안에서의 고난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본토로의 귀환이 아닌 갈대아에서의 안락한 삶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2. 아하수에로의 잔치

 

1) 아하수에로(1:1; 45:1)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의 왕으로서 일반 역사서에는 크세륵세스(Xerxes,485-465)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다리오를 이어 왕이 되었으며 그의 후계자는 아닥삭스다였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영토는 매우 광대했는데 동쪽으로는 인도 남쪽으로는 구스(수단)이르렀습니다. 그가 유대인에 대해 가지는 위치는 고레스의 그것을 계승한 것입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들은 모두 성전 재건과 유대인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들은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행동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이용하신 것입니다.

 

2) 잔치(1:2-3; 1:4)

아하수에도 왕은 즉위한 지 3년 만에 즉위식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당대에는 왕들이 즉위 잔치를 베풀기 전에 주로 전쟁을 먼저 치러야 했습니다. 아하수에로 역시 애굽과 바벨론에서의 반역을 제어하는 전쟁을 한 후에 3년 만에 즉위 잔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즉위식은 곧 그때로부터 공식적이고 본격적인 통치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의 즉위 잔치는 그의 나라의 영화를 한눈에 보여 주는 대단한 잔치였습니다. 이 잔치180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3) 와스디의 폐위(1:12)

 

왕은 잔치의 절정으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왕비의 아름다움을 보이고자 하였습니다. 왕은 술에 취하여 왕비를 불렀으나 와스디는 그의 부름을 거절하였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의 왕명 거역은 곧 왕의 권위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박사들은 왕비의 폐위를 건의하였고 왕은 그대로 시행하였습니다.

 

3. 에스더

 

1) 하닷사(2:3-4; 2:10)

와스디의 폐위와 왕비의 필요성은 에스더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은 하닷사인데 그것의 뜻은 도금량 나무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새로운 페르시아식 이름을 사용하는데 것은 '별'이라는 뜻을 가진 에스더라는 이름입니다. 그녀는 고아로서 사촌인 모르드개의 손에 양육되었습니. 모르드개는 그의 이름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마르둑을 경배하는 자) 상황에 잘 적응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고레스의 칙령에도 귀환하지 않고 갈대아에 남은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이런 사고방식은 에스더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2) 아름다움(2:9; 2:15)

 

에스더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를 비롯하여 모든 보는 자에게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록 그녀가 다른 여자들보다 치장을 덜 하였지만, 그녀는 결국 왕의 마음에 들어 사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3) 바사의 왕비(9:14)

 

비록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인간 적인 생각에서 왕비가 되고자 애썼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위하여 이들을 세우 셨습니다. 이방 결혼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의 출세욕은 결국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한 전 단계로 사용된 것입니다. 비록 페르시아 역사 기록에는 아하수에로의 왕비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녀는 그의 왕비로서 유대인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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