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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지명 원어 설교] 기브아 Gibeah

두란노 서원 2020. 8. 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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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구약 지명 중에서 기브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기브아 Gibeah

 

1. 지명에 대한 언급

1) 기브아(גבעה)는 '언덕, 작은 산'(a hill, hill-town)이란 뜻으로 그 지형 형태를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다.

여호수아 18:28'기브앗'과 동일 지명이다.

유다 산지에 있는 성읍 중 하나로서(수15:57) 지금의 베이트 임마르(Beit Immar) 서북쪽 약 16Km에 있는 엘 자바(EI Jabah)로 알려진다.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의 소유지로 그 부친 엘르아살이 묻힌 곳(수24:33), 고프나(Gophna) 북쪽 9Km 지점의 게바(Geba)로 알려져 있다(요세비우스; Jos, Antiq. 5.1.29).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며 사울(주전 1050-1010)의 고향(삼상10:26삿19:14삿20:10삼상11:4)으로서 유다와 에브라임의 산지를 통과하는 대로에 있는데(19:11), 블레셋이 기지를 세운 베냐민의 게바(Geba) 또는 제바(Jeba)와 동일지로 여겨지며, 기브아로 알려진 곳은 고지대라는 지형 형태에 따라 기브아 엘로힘(Gibeath-elohim)으로 알려진 것이다(삼상10:5).

2) 기브아는 오늘날 주로 예루살렘 북쪽 약 6Km, 세겜으로 가는 대로에 해수면 750m 산지에 있는 텔 엘 풀(Tell el Ful;콩의 언덕)로 알려지고 있으나 베들레헴 남동쪽 12Km에 위치한 엘 제바(El-Jeba)나 또는 키르벳 엣 텔(Khirbet et-Tell)로도 추정된다.

2. 지정학적 상황

1) 베냐민 지역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 사이에서 항상 공격의 초점으로 그델과 유대 지파의 예루살렘 사이에서 매우 압박을 당해왔고 여전히 남아 있는 기브온(Gibeon), 체비라(Chephi- rah), 바알라(Baalah), 브에롯(Beeroth)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남북을 잇는 중요한 도로를 차지하고 있어 항상 공격의 위험이 있었다.

2) 오늘날 남북으로는 기브아, 라마, 미스바, 벧엘로 이어지고, 동서로는 욥바, 아얄론, 벧호른, 기브온, 여리고로 이어지는데, 해안 고속도로로부터 요단 산지의 왕의 대로로 연결되는 중요한 도로가 베냐민 산지를 지나간다.

3) 실로 지역의 남쪽인 벧엘 지역에 이르면 평지를 만나게 되고 동쪽으로 요단 계곡(여리고), 서쪽으로는 해안도로(아벡)에 이른다. 이곳부터 펼쳐지는 벧엘 고원은 분열왕국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대의 국경선이었다.

 

3. 성경적 배경

여기서 레위의 첩에 대한 심한 폭력이 행사되었는데 결국 베냐민 지파를 거의 전멸시키고 단지 600명의 남자만 남는다(사19:1사20:1). 후에 블레셋은 베냐민 산지를 정복하고 그곳에 군사 기지를 세운다(삼상10:5). 그러나 사울은 이스라엘 왕국의 첫 왕으로 등극하여 이스라엘 주변에 사사 시대에 정리하지 못한 남방의 아말렉, 요단 동편의 모압과 암몬, 그리고 해안의 블레셋 족속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계속하였다. 이미 주변의 대부분의 이방 족속들은 민족 공동체로서 국가단위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울 왕은 이들과 힘의 대결을 벌이면서 가나안 땅에 세력 균형을 만들고 이스라엘의 우상을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울이 왕이 된후 블레셋을 무찌르고 자기 이름을 따라 그곳을 '사울의 기브아'라하여 수도로 삼는다(삼상15:34). 여로보암의 아내 미가야가 거기 출신이고(대하13:2) 앗수르 왕 세나체립(Sennacherib)이 그곳을 공격했다(사10:29). 헷나라의 수도로서 이스라엘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속여서 동맹(수11:19)했다.

 

4. 역사적 변천과 고고학적 발굴

이 유적지는 1868년 워렌(C. Warren)이 팔레스타인 발굴 재단(Palestine Exploration Fund)의 도움으로 발굴을 시작하였다. 1843년 처음으로 독일 십자군과 1922 WF Albright의 발굴로 확인되었다. 1922, 23, 그리고 1933년 올브라이트가 미국의 예루살렘 동방학 연구소(The American School of Ori-ental Research in Jerusalem)의 도움으로 주전 12세기부터 로마시대까지 5개의 정착 시대가 발견되었다.

최초의 정착 시대는 주전 12세기로 밝혀졌고 아주 작은 무리가 거주했으나 베냐민 지파에 의해 정복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의 마을도 골육상잔과 그로 발생한 대화재로 소실되었다(사19:20).

정착시대는 주전 11세기로서 요새가 세워진 시대이다. 가로 30m 세로 48m의 직사각형 건물로서 모퉁이에 4개의 망대로 강화된 포곽벽으로 둘러싸인 궁정 뜰의 형태로 되어 있다. 포곽 안에 있는 여러 개의 방들은 저장소로 사용되었다. 발굴자에 의하여 이 요새가 사울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나 블레셋에 의해 지어졌다가 사울이 정복하여 사용한 것으로 말하는 자들도 있다. 사울이 세운 성곽 주전 11세기말 등의 흔적(대상12:3)이 발굴되었다. 기브아의 요새는 레위인의 보복 싸움 때 함락되고 사울 생전에 허물어졌는데, 사울의 요새 건축에 사용된 나무의 유적으로 백향목과 소나무의 숯으로 밝혀졌다. 올브라이트는 제일 먼저 발굴한 두번째 요새, 곧 망대를 아사 왕이 세운 것으로 생각하나(왕상15:22) 10년후 다시 제2철기 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알고는 이 성의 축성 연대를 주전 9세기말로 확정했다. 이때 사용된 나무는 살구나무로서 초기의 침엽수가 없어졌음을 말해 준다.

벽의 바깥면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돌 장벽으로 보호되어 있는 이 요새는 아마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베가가 유다 왕 아하스에 대해 전쟁하던 주전 735에 파괴된 것 같다. 후에 다시 재건되었으나 주전 597년 바벨론에 의해 다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정착시대는 헤롯 시대로서 티토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가는 도중에 최종적으로 파괴되었을 것이다. 로마 시대에 요세푸스는 티토(Titus)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기사에서 가바스 사울(Gabath Saul)이라는 마을을 언급하며 예루살렘에서 7Km 지점이라고 말한다(Antiq 5:51). 대제사장 엘리아살의 무덤이 가바다(Gabatha)에 있다고 하는데 바로 이곳을 말한 것이다(Antiq 5.119). 라헬의 무덤도 이곳에서 멀지 않다고 기록한다(Antiq. 6.56). 여기서 예수께서 탄생하신 구유와 거의 같은 형태의 돌구유가 발견되었다.

5. 지형과 기후

세노미니안(Cenomanian)이란 각석회암층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천연적인 도로로 사용하기에 적합하고 특히 우기에 탄탄한 지반으로 좋다. 특히 물 저장에 용이하여 고대 솔로몬과 헤롯의 건축 자재로 많이 이용되었다. 투로니안(Turonian)의 준강석회암으로도 형성된 산지이다. 라마, 기브아, 게바, 기브온, 미스바와 같은 고원 지대에 위치한 도시들을 포함하는 베냐민 평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기후는 고산 기후이고 연강우량은 600mm 이상이다. 이슬은 년 4달 정도 내리고 온도는 섭씨 7에서 30까지이고 겨울에는 10센티의 눈이 내리기도 하고 비를 동반하는 찬 바람이 불고(욥37:9), 여름에는 사막에서 더운 바람이 분다(사21:1).

 

원어설교 : 기브아 Gibeah

 

기브아 גבעה : 기브아 Gibeah hill

삼상11:4 이에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고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본문의 기브아는 히브리어로 גבעת שאול(기브아트 샤울, 삼상11:4)로서 원형은 גבעה(기브아)입니다. 원래의 뜻은 '언덕, 구릉, 평지보다 높은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인명으로도 사용되며(대상2:48-49), 그 지역에 사는 사람 전체를 나타내기도 합니다(삿20:9,13).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산지가 많아 이 용어가 많은 곳에서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팔레스타인은 대체로 산들이 많고 바위가 많은 지대로서 농사는 한 해의 강우량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신11:11).

 

1. 산지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은 산지가 아니라 평지입니다. 산지에서는 목축이 고작입니다. , 염소, 소 등의 가축이 먹을 정도의 풀과 나무가 있습니다. 농사는 물이 있고 토양이 좋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원주민들과 이방 사람들을 몰아내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원주민들과 이방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섭씨 40도 전후가 되는 곳에서 산지를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사울의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땅으로서 그들은 평지에 거하지 못하고 산지에 거하면서 주변 민족의 도전과 눈치를 보며,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산지는 피난처가 됩니다

산지는 고통스럽고 힘든 곳이지만 목숨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는 최선의 장소입니다. 평화시에는 평지가 좋지만 환난의 시간에는 산지만큼 목숨을 보존하기에 좋은 곳이 없습니다. 산지에 거하므로 어디에 피난처가 있으며 도피처가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숨을 곳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지에 있는 사람들은 양식이 풍부하지 못합니다. 평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풍부한 양식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가 증거해 주는 것이지만 조금 배고픈 듯한 환경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가장 좋은 환경이고, 배부르고 평안한 상태는 멸망에 이르는 지름길이 됩니다. 배는 고팠지만 이스라엘은 살아남았고, 배부르고 평안했던 주변의 원주민들과 이방 민족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을 세상에서 나의 피할 바위, 방패, 산성(시18:2)이라고 고백합니다.

 

3. 성도는 피난처를 증거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자기가 보호막이며 피난처인 것처럼 우리의 눈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일 먼저 망할 곳은 편안해 보이고 안전할 것 같은 그런 곳입니다. 산지의 삶은 당혹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보호막이 되었고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쉼이 없고 피난처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고 숨어 있을 곳이 없는 자들에게 쉼과 피난처와 숨을 곳이 어디인지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쉼이 아닌데도 쉼이 있는 것처럼 속고 있는 자들에게, 피난처가 아닌데도 피난처로 믿고 있는 자들에게, 우리는 피난처를 바로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환난의 날에 구원의 장소가 어디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24:16)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그 산'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산은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구원과 소망과 생명의 산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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