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성경공부자료

[구약 히브리어 단어공부] 영광(카보드)의 히브리어 단어 의미

두란노 서원 2023. 6. 2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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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영광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영광(카보드)의 히브리어 단어 의미

 

영광(3519, 카보드) 풍부, 다량, 다수, 부, 영예, 영광

카보드(명남, 여)는 카바드(3513)에서 유래했으며, '풍부, 다량, 다수, 부, 영예, 영광'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0회 나온다.

카보드는 물건의 물리적으로 큰 무게나 '양'을 언급한다. 2:9에는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것이 풍부함이니라(모든 종류의 바라직한 물건이 '대량' 있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22:24에서 엘리야김은 "그 아버지의 집의 모든 영광(모든 중한 것들)"을 건 벽에 단단하게 박힌 못에 비유한다. 이 의미는 9:11에도 나타나는데, 여기서 카보드는 '큰 무리' 혹은 '군중'을 의미한다: "에브라임의 영광이(군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이 단어는 단순히 '무거운'을 의미하지 않고 물건의 무거운 양을 나타낸다.

카보드는 종종 '부, 재물' wealth과 중요하고 긍정적인 '명성'(구체적인 의미로) 모두를 나타낸다. 라반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이 불평한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31:1 - 최초의 성경의 용례).

두 번째 의미는 45:13에 나온다. 여기에서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게 "나의 애굽에서의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내 아버지께 고하라"고 말한다. 이 때, 이 단어는 만약 가족들이 애굽으로 온다면 그들을 부양할 수 있다는 보증과 요셉의 지위에 대한 보고 모두를 내포하고 있다. 나무, 숲, 삼림도 위압하는 속성, 풍부함, '장려함(영광)'을 지닌다. 하나님은 앗수르왕을 벌하시어 그의 삼림의 대부분을 소멸시키실 것이다: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10:18-19).

85:9에서는 부요함 또는 풍성함의개념이 두드러진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혹은 풍성함)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이 의미는 85:12에 다시 나온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카보드는 또한 '영광, 즉 당당한 인물이나 지위를 강조하는 추상적인 의미를 지닌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다: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대제사장들인 그들이 죽었다: 삼상 4:21).

17:3에서 카보드는 요새화된 도시, 주권(자치), 백성들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사물들의 충만함이라는 보다 더 구체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속성들 중에는 '영예', 존경, 지위가 있다.

5:13에서 '영예'의 개념이 카보드로 표현된다: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따라서 카보드와 그 병행어('무리')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즉 상류 계급과 평민을 나타낸다. 많은 구절에서 이 단어는 현실보다는 미래를 나타낸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4:2).

이 단어가 '영예' 혹은 '중요함'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는 두 가지의 어감을 지닌다.

첫째로, 카보드는 자기가 살고 있는 영역 내에서의 개인의 지위를 강조할 수 있다(11:16). 이 '영예'는 그릇된 행위나 태도로 인해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26:1, 26:8) 바른 행동으로 증명될 수도 있다(20:3, 25:2). 따라서 이 단어의 강조점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 주어진다.

둘째로 카보드의 많은 용례들 중에는, 왕가에 속하는 '영예'와 같은 '고귀(성)'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도 있다(왕상 3:13). 따라서 이 단어는 귀족이 누리는 존경 받는 지위와 사회적 구별에 대해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단어가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될 때는 하나님께 합당한 속성을 나타내며 그 속성으로 인하여 모든 인정을 받는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곧 하나님의 중요성과 가치와 의의를 인정하라고 아간에게 명했다(7:19). 이 구절과 이와 유사한 구절들에서 '영광을 돌리다'라는 말은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이 해야만 할 일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구절들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예배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29:1). 어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그런 구절들은, 찬미자들이 자연에서 그의 '영광'을 보고 예배에서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자연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주권을 찬미한다는 것이다. 어떤 구절에서 이 단어는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며 특별히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킨다고 한다(40:5). 그러나 몇몇 구절들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역사와 백성을 주관하신 과거의 증거들과 연관시킨다(16:7, 24:16).

[동의어] (관련성구)

(142, 아다르) 장엄하다, 영광스럽다

아다르(동)는 '넓다, 부어 오르다, 크다, 위대하다, 장엄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회 나온다.

(a) 니팔형에서 '크게 되다, 영광스럽게 되다'. 또는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다'를 의미한다.

15: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여호와는 당신의 오른손으로 원수를 부숨으로써, 당신의 오른손이 그 권능으로 자기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애굽인들을 멸망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을 진정한 전사임을 입증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애굽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그의 원수들을 멸망시키신 영스럽고도 강하신 분으로 자기 자신을 입증하셨다.

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고 그의 원수들을 멸망시킴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거룩함에서 영화롭게 하셨다. 거룩(코데쉬)는 유한한 피조물의 모든 불완전과 오점을 초월한 가장 고귀하고 비길 데 없는 하나님의 위엄이다(19:6).

(b) 히필형에서 '영광스럽게 하다, 크게 하다'를 의미한다.

42:21,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여호와께 자기의 의의 목적(여기에서는 율법의 행위에 대하여 보상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목적과 약속과 구원의 계획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서 언급한 것이다) 때문에(또는 위하여) 기뻐하셔서 토라 즉 그가 그의 백성을 주신 명령, 교훈, 계시물로 크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셨다. 이 언급은

원래 주로 시내산의 율법에 대한 언급이며, 동사들은 선포의 엄숙함에 관한 것이 아니고 내용의 풍성함과 고귀한 성격에 관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의 표준에 따라 산다면 하나님은 그들에 복을 주실 것이다. 이것은 율법을 크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의미를 가진다(참조: KBC). 그러나 현재의 이스라엘의 상태는 그 하나님의 편에서의 자비의 표명과 목적 얼마나 현저한 대조를 보여주는가!(48:10 이하)

이 상황이 불충성에 대한 징벌이라는 것을 호세아는 보충적 설명을 한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기도다"(8:12)

[동의어] (관련성구)

(1346, 가아와) 솟아오름, 위엄, 교만

가아와(명여)는 가아(1342)에서 유래했으며, '위엄 majesty, 교만 prid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솟아오름', 바닷물이 '불어 오름'을 묘사한다(46:4).

(b) '위엄', 이스라엘의 위엄은 하나님이시다(33:29). 모압의 위엄(16:6 = 48:29), 악어의 위엄(자랑) (41:7), 하나님의 위엄(33:26, 68:35). 13:3에서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자들인) 용사들"이란 표현이 좋다. 어떤 특별한 교만이나 당당함보다는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의 용감성에 중점을 둔 표현이다.

(c) '교만, 거만함', (10:2, 31:19, 31:24, 36:12, 73:6, 14:3, 29:23, 9:8, 13:11, 25:11, 3:11).

[동의어] (관련성구)

(1347, 가온) 높임, 위엄, 교만

가온(명남)은 가아(ha;G; , 1342)에서 유래했으며, '높임 exaltation, 위엄 majesty, 자랑, 교만 pride'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랍비 문헌에서 이 단어는 학식이 많은 자를 의미한다. 가온은 바빌로니아에 있는 수사(Susa)와 품페디타(Pumpedita)의 랍비 아카데미의 우두머리였다. 사디아 가온(Saadiah Gaon)은 가장 특출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0회 나온다.

(a) 가온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탁월, 위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위엄' majesty은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을 인도해내신 사건에서 나타났다(15:7). 따라서 구원 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위엄' majesty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excellency)로다"(47:4). 여기서 가온의 의미는 카보드(영광)의 의미와 비슷하다.

이 단어가 장엄하고 울창하며 풍부하고 빽빽한 것으로서 자연에 적용될 때 그 의미는 '위엄' majesty과 관련된다. 시인들은 "교만한 물결"(38:11)이나 요르단의 울창한 수풀을 언급하는데 이 단어를 사용한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문자적으로 '위엄' majesty)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12:5, 49:19, 50:44).

(b) 가온의 많은 용례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이 경우에는, 겸손의 반대어인 인간의 '교만' pride을 나타낸다(16:18). 이 단어는 잠언에서 오만, 악행 패역한 말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엄위하신 하나님에 의해 선택 받은 당당한 민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돌아서서 그들의 탁월성을 그들 스스로가 얻은 특권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새로운 오만 불손한 태도를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셨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6:8). 70인 역자들은 이 단어를 휘브리스(오만, 거만)와 휘페레파니아(오만, 교만)으로 번역한다.

[동의어] (관련성구)

(1926, 하다르) 장식, 광체, 장려, 위엄

하다르(명남)는 하다르(rd'h; , 1921)에서 유래했으며, '꾸밈, 장식, 빛남, 광채(휘), 장려, 탁월, 위엄'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0회 나온다.

하다르는 다음과 연관되어 있다.

①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 보이는 자연의 장관(23:40, 111:3, 35:2).

② 사람(53:2, 고난 당하는 종, 위엄이나 당당한 모습),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로서의 인간(8:6), 노인의 흰 머리카락(20:29), 현숙한 아내(31:25).

③ 이 명사는 도시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예루살렘(5:14), 시온(1:6), 바사, 룻, 붓(27:10).

④ 또한 요셉의 지파들(33:17)과 아마도 팔레스틴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11:20).

몇몇 구절들은 이러한 영광이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떠나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 자신의 타고난 영광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떠나시면 그 영광도 떠난다. 그러므로 이 영광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또한 취소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다르는 흔히 왕과 왕의 위엄이나 하나님 자신에 대해 사용된다. 전자에 대해 사용된 실례로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21:5, 45:3, 14:28(하다라). 이것은 왕권의 부여 뿐만 아니라, 느부갓네살(4:344:37)과 벨사살(5:23)에 의해 예증되는 바와 같은, 왕위에 합당한 행동을 가리킨다.

다음의 구절들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된다: 29:4, 90:16, 96:6(대상 16:27), 104:1, 111:3, 145:5, 145:12.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의(하나님의) 위엄의 영광'이라는 구와 '여호와의 두려움/무서움'이라는 구의 병행적 관계이다(2:10, 2:19, 2:21).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인들에게 이 둘로부터 '숨으라'(한글개역 - "피하라")고 경고한다. 이사야의 이 경고는 심판을 받게 될 파괴적인 죄의 목록 바로 뒤에 나온다. 분명한 것은 이사야가 백성들이 하나님의 탐색 불빛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숨을 것을 백성들에게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것은 백성들이 순수한 빛과 위엄을 지니신 하나님과 교제를 할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사악하고 타락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권고가 아니라 저주이다.

'하드라트 코데쉬'라는 구문은 특별히 설명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어구는 구약성경에서 4회, 즉 29:2, 96:2, 대상 16:29, 대하 20:21에 나온다(110:3에는 관련 어구 '하드레 코데쉬'가 나온다). RSV는 네 구절에서 '하드라트 코데쉬'를 '거룩한 의장' holy array으로 번역하고, 110:3의 '하드레 코데쉬'를 '거룩한 산'(다른 사본의 표기, 한글개역-"거룩한 옷")으로 번역한다. 따라서 "거룩한 '의장' array(한글개역-"옷", "것")으로 여호와를 경배하다"(예, 9:2). 16:4에서는 '거룩한 의장' holy array이 '빅데 코데쉬'("거룩한 옷[들]" holy garments)라는 어구와 병행되어 있는 것같다. 또한 여러 구절들에서 동사 하다르(rd'h; , 1921, 63:1)와 명사 하다르(rd;h; , 1926, 104:1, 40:10, 잠 31:35)는 동사 라바쉬(입다 clothe)와 연결되어 사용되어 있다. 16:14에서는 동사 숨/심(7760)과 연결되어 나오는데, 이는 아마도 일종의 임관식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한편, KSV는 '하드라트 코데쉬'를 시종 '거룩의 아름다운 것' the beauty of holiness로 번역한다. 오늘날 우가릿 자료들에 비추어 이 구문은 다르게 번역될 수도 있다. 크레트 서사시 A항 154, 155행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크리트는 보았는데 그것은 꿈이었다. 엘(El)의 종, 그것은 (거룩한) 모습이었다'.

논의하에 있는 성경의 구절들에 있어서 주된 강조점은, 하나님의 실제적 임재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것에 대한 언급을제외하고는 예배자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모습에 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함 가운데 나타나실 때 하나님 앞에 엎드리다"로도 번역할 수 있다.

[동의어] (관련성구)

(1927, 하다라) 장식, 영광

하다라(명여)는 하다르(1921)에서 유래했으며 '장식, 꾸밈, 영광'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하다라는 14:28에서 왕의 '장식'즉 왕의 '영광'을 의미한다: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b) 하다라는 거룩한 '장식'을 의미한다(대상 16:29, 대하 20:21, 29:2, 96:9).

[동의어] (관련성구)

(1935, 호드) 빛남,광채, 장려, 위엄, 영광, 영예

호드(명남)는 '빛남, 광채, 장려, 위엄, 영광, 영예'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4회 나온다.

호드는 역시 '위엄' 혹은 '영예'를 의미하는 동족어 하다르와 함께 흔히 병렬적으로 사용되는데, 항상 호드 웨하다르의 순서로 나온다: 21:6, 45:3, 96:6(=대상 16:26), 104:1, 111:3, 40:10(7회). 70인역본은 호드를 독사(doxa, 7회)나 엑소몰로게시스(4회), 그 외의 여러 단어들로 번역한다. 다른 셈족 언어들에서는 지금까지 호드의 동족어근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유일하게 히브리어에만 존재한다. 호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의 특성이나 속성으로 사용된다.

(a) 사람: 27:20, 모세와 여호수아; 5:9, 지혜로운 아들; 10:8, 다니엘(KJV는 '아름다움' comeliness으로, RSV는 '빛나는 용모' radiant appearance로 번역한다); 14:7, 회개하고 여호와의 축복을 회복한 후의 이스라엘 백성; 여호야김(22:18).

(b) 동물들: 특히 말, 39:20, 10:3.

(c) 식물들: 감람 나무, 14:7.

호드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사용된다. 하나님의 위엄은 창조물에서 볼 수 있다: 8:2, "주의 영광이 하늘 '위에서' 울려 나온다". 혹은 여기에서 우리가 천상의 음악을 염두에 둘 경우에는 "주의 영광이 하늘로 '말미암아' 울려 퍼진다".

148:13, "하나님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있으시다"(한글개역 -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3:3,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을 덮는다".

성경 기자들이 우주에서의 하나님의 손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145:4). 이 영광은 하나님의 옷자락의 일부이다(104:1). 우리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시 30:30, 8:2).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교제하며 살아가는사람에게 이것을 물려 주신다: 21:6, 대상 29:25(솔로몬). 최종적으로 이 속성은 성전을 세우시고 왕의 영예를 지니실 메시야에게 적용된다: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6:13).

[동의어] (관련성구)

(2892, 토하르) 맑음, 청정, 정결, 깨끗함

토하르(명남)는 타헤르(2891)에서 유래했으며, (a) '맑음, 밝음, 청정', (b) '깨끗함, 정결, 순결'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회 나오며, 24:10에서는 (a)의 의미로, 12:4, 12:6은 (b)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89:44에서 영광에 대해 사용되었다.

[동의어] (관련성구)

(3308, 요피) 아름다움, 미 beauty

요피(명남)는 야파(3302)에서 유래했으며, '아름다움, 미 beauty'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회 나온다.

(a) 요피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3:24, 45:12, 1:11, 6:25, 31:30).

(b) 요피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비유로 하여 예루살렘을 묘사한다(16:14-15, 16:25).

(c) 요피는 두로의 왕과 두로가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혜를 묘사하기 위해 겔 28장에서 몇 회 사용되었다. 두로의 원수들은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힐" 것이다(28:7). 왕 자신은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다"고 묘사된다(28:12). 그러나 28:17이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라고 선언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왕의 실각을 입증해 주는 것이었다. 만약 두로의 왕이 사탄을 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할 잠재 세력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d) 요피는 33:17에서 유다의 이상적 왕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이스라엘의 미래 소망은 메시야의 인격 속에 있다고 예언하면서, 이사야는 "너의 눈은 그 아름다움(beauty, 한글개역-"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할한 땅을 목도하겠고"(33:17)라고 말한다. 70인역본은 하나님의 하늘의 영광을 염두에 두고서, (칼로스 보다는 오히려) 독사(doxa)로 번역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예피'를 독사로 번역하는 것은 매우이례적인 것이다.

(e) 요피는 구속받은 백성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9:16 이하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그리 큰지!". 하나님의 백성은 지금도 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할 것이다(참조: 90:17).

[동의어] (관련성구)

(3367, 예카르) 귀중한 것, 영광

예카르(명남, 아람어)는 히브리어 예카르(3366)에 해당하며, '귀중함, 영예(로운 것), 존경, 영광'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회 나온다.

(a) 2:6에서 '귀중한 것들'을 의미한다.

(b) 2:37, 4:27, 4:33, 5:18, 5:20, 7:14에서 '영광, 영예'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동의어] (관련성구)

(3513, 카바드) 무겁다, 힘겹다, 짐이 되다, 존경하다, 영화롭다, 존귀하다

카바드 또는 카베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무겁다, 힘겹다, 짐(부담)이 되다, 영화롭다, 존귀하다, 견고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15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푸알,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기본의미는 '무겁다' be heavy, '중량 있다' be weighty이며, 이 단어의 의미는 거의 문자적 의미로 쓰이지 않고, 비유적 의미(예: "죄가 무거운")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비유적 용법으로부터 사회적 유명인사 즉 영예롭고 인상적이며 존경할 만한 저명인사에 대한 개념의 단계에 쉽게 이른다. 이러한 후자(비유적인 의미)의 용법은 출현 횟수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카바드의 문자적 의미는 다음 구절에서만 사용된다. 삼상 4:18, "엘리가...비둔한 연고라", 삼하 14:26, "압살롬...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카바드는 세가지 비유적 용법을 나타낸다.

첫번째의 용법은 대부분 바로와 관계하여 발견되며 일곱 구절에서 쓰인다(7:14, 8:15, H11, 8:28, H32, 9:7, 9:34, 10:1, 삼상 6:6). 그 상황 혹은 히브리 백성의 청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바로의 거부는 마음의 완악함 혹은 강퍅함으로 간주된다(참조: Gildlestone의 주장, SOT, pp. 66-67). 마찬가지로 귀(6:10, 59:1, 7:11), 눈(48:10)은 둔하고 무디게 될 수 있다.

가혹함에 대한 비유로서 무거움은 노역(5:9 등), 멍에(왕상 12:10 등), 전쟁(20:34 등)을 말해준다. 이러한 가혹한 재난은 3회에 걸쳐서 재앙으로 무섭게 내리치시는 하나님의 손으로 표현되고 있다(삼상 5:6, 삼상 5:11, 32:4).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람의 손은 다른 어떤 사람을 무겁게 누를 수 있다(1:35, 33:7).

또한 어떤 사람은 반드시 고의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 짐이 될 수 있다(삼하 13:25, 대하 10:10, 대하 10:14, 대하 25:19, 5:15).

혹독한 속박이 비유적 의미,즉 "무거운 멍에"에 의하여 표현된다는 사실(참조: 왕상 12:4, 대하 10:4, 대하 10:11)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인 "내 멍에는 쉽고"(11:30)라고 말씀하시도록 하였다.

가혹함에서 큼이란 의미가 되는 것은 단순한 단계이며, 여러 경우에서 함축적인 의미를 고려하여 완전히 명백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심히 중했다는 진술이 그것이다(18:20).이러한 것은 죄가 컸다는 말인가, 아니면 죄가 심각했다는 말인가? 또한 24:20, 38:4, 6:3 등도 그러하다. 어쨌든 죄는 그것을 지는 자로 하여금 무겁고 둔하게 하는 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참조: 1:4, 27:3).

2:6은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를 공격할 때 이러한 방법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참조: 3:15). 한 경우에 아브라함은 재물이 풍부한 자로 언급되며(13:2), 그 문맥은 그의 재물의 풍성함이 언급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한다. 이것은 잇따른 용법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두 번째의 주요한 부류는 이 단어의 비유적 용법의 확대이다. 이 경우에 이 단어의 개념은 가치 있거나 혹은 인상적이라는 의미에서 무게가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번역은 "영예로운, 존경 받는, 영광스러운, 영화로운" 등과 같다. 니팔형과 피엘형의 어간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의미들을 지닌다.

개인의 평판은 이러한 용법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고위층에 속하며 부유한 자는 자연적으로 사회에서 존경 받고 저명한 인사가 되었다(22:15 등). 이러한 지위와 부와 장수는 일반적으로 의로운 삶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생각되었다(참조: 왕상 29:28 등). 사람이 이와 같은 위치에 이르게 되면 자연적으로 존경을 받게 되는 반면에, 또한 그러한 존경과 영광을 받을 만하다고 기대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임과 권한을 지닌 위치에 있는 자는 존경 받을 만하였다(20:12, 1:6). 존경 혹은 영예를 표하는 것이, 어떤 사람이 존경, 관심, 순종을 받을만하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으로 상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존경할만한 말을 뒷받침 못하는 생활은 지고한 형태의 위선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면서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죄를 거듭 거듭하여 저질렀다(29:13).

또한 사람은 용기 있고 충성스런 영웅적인 공적의 결과로 존경을 받았다. 다윗의 용사들은 이러한 식으로 마해지고 있다(왕상 11:21 등). 이러한 자들은 스스로 이름을 빛낸 자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께서도 영광 받을 만하다. 하나님의 이름은 의, 신실함, 심판과 구원에서 영화롭다(66:2, 79:9, 40:5).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왕이시며(24:7-10), 영광스럽게 행하셨다. 그는 또한 우주의 주권적 우두머리로서의지위 때문에 영광받으시기에 합당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그의 탁월하신 인격 때문에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영광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 아름다움에 있어서 인상적이다. 제사장의 옷들은 그 직분에 대한 숭고한 위엄과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특별히 매우 아름답게 디자인 되었다(28:2, 40). 위대한 왕국의 영광은 일반적으로 레바논의 커다란 숲의 웅장함과 수려함에 비교되고 있다(8:7, 10:18). 인간의 특별한 아름다움은 이성적, 도덕적 감응(response) 능력이라고 나타난다(49:6, 108:1[H2], 2:11).

성경이 하나님의 영광을 제외한 모든 영광의 허무함에 대하여 매우 참담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름다우의 요지에 있다. 이사야는 특별히 다음의 내용을 가르친다. 아름다운 것은 얼마나 빨리 시드는가. 커다란 삼림이 얼마나 빨리 쇠하여져서 병든 그루터기의 앙상한 벌판으로 변하는가(10:18). 인간은 얼마나 쉽게 자신의 진실된 영광을 진실로 값싸고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가(106:20). 인간이 자랑과 교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만든 어떤 인상적인 것이나 혹은 주목할만한 것은 멸망에 필연적으로 이르게 된다(16:14, 17:4, 21:16).

["영광"(카보드)에 대한 몇가지 언급은 우리가 마음을 언급할 때와 같이 말해진 "간장"(카베드)에 대한 잘못 발음된 언급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같다. 따라서 16:9의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라는 구절은 "내 간장도 즐거워 하며"라고 의미할 수 있다. 이 문맥에서 몸의 지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것에 유의하라. 물론 문자적으로 간장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는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70인역본과 신약성경은 그 단어들을 "내 혀가 즐거워하며"로 번역한다. R. L. Harris.]

인간의 허무함과 땅의 영광과 대조하여 하나님의 명백하고 변치않는 아름다움이 있다(145:5). 이러한 의미에서 명사인 카보드는 매우 진기하고 특색있는 의미를 나타낸다. 45회에 걸쳐 어근의 이러한 형태는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을 말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언제 언급되든지 간에 이 용법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이 단어의 어조는 너무나 강하여 헬라의 고전에서 사람의 어떤 '의견'으로부터 70인역본과 신약성경의 '절대 객관적인 어떤 것'에로 '독사'의 의미를 개조시킨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시적인 현현이라는 용례의 대부분은 성막(16:10, 40:34 등)과 포로 및 회복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의 성전(9:3)과 관계있다. 이러한 현현은 하나님의 스스로 드러내 보이심과 사람들 가운데서 거하시려는 그의 의향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와 같이 그 현현은 일반적으로 그 분의 거룩하심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더불어 거하시기를 원하시며, 그의 실체와 탁월하심이 인간들에게 알려지도록 하시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그의 거룩하심에 대한 놀라운 특성을 인정하고 믿음과 순종 안에서 출발하여 그 특성이 사람들 안에서 나타나게 할 때 오직 가능하게 될 뿐이다(14:10, 6:3, 스 10, 11).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충만케 되고 그리고/ 혹은 분명히 드러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여러 진술들은 교훈적이다. 한편 그러한 진술들은 하나님만이 지니시는 위대함에 대한 명성을 매우 합당하게 가리키는데, 그것은 왕으로서 본질적 지위 때문만이 아니라 구원자와 구세주로서 그분의 탁월한 활동 때문이다. 그러나 앞의 논의에서 지적한 것같이 더 이상의 어떤 것이 여기에서 의도되었다. 땅을 가득히 채우는 것은 하나님의 명성뿐만 아니라 그의 임재 바로 그 자체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목적의 성취를 향한 그분의 첫 단계는 그 분의 임재로 성막을 충만케 하시는 것이며, 그 다음에 성전을 충만케 채우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및 속성의 실체와 탁월함은 그 아들 안에서 드러난 것 외에는 어디서든지 나타내지 않는다(4:2). 거의 눈이 멀 정도의 그의 영광의 특성은 다음에서 충분히 묘사된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참조, 17:1-5).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또한 교회에서의 그의 임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실로 온 땅을 충만히 채운다. 셋째 용법은 '크기, 숫자, 무게'에 대해 사용되었다(삼하 14:26, 시 8:24, 3:10).

[동의어] (관련성구)

(5082, 네디바) 고귀함, 고상한 일

네디바(명여)는 나다브(5068: 고결한, 고상한)에서 유래했으며, (a) 고귀함, 귀족' (b) '고상, 고귀, 고결'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회 나오며,

(a) 지위의 '고귀함, 영예'(30:15),

(b) '고상한 것(일)'(32:8)에 대해 사용되었다.

[동의어] (관련성구)

(6286, 파아르) 영광스럽다, 자랑하다, 아름답다

1. 파아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영광스럽다, 자랑하다, 아름답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4회 나온다.

(a) 칼형에서, '아름답다, 영광스럽다, 자랑하다'.

(b) 피엘형에서, '아름답게 하다, 영광스럽게 하다'를 의미한다. 성전에 대해, 60:7, 60:13,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55:5, 가난한 자를 도우는 것에 대해, 149:4.

(c) 히트파엘형에서

① '영광스럽게 되다, 여호와로 말미암은 백성으로, 60:21, 61:3, 스스로 영화롭게 하다, 44:23, 49:3.

② '자랑하다', 7:2, 10:15.

2. 파아르는 피엘형에서 '가지를 살피다'를 의미한다, 24:20.

[참고 - 동사 파아르는 구약성경에서 13회 출현하며 피엘형으로 6회(그 중 4회는 55:5,60:7, 9, 13), 힛파엘형으로 7회 나타난다(그 중 5회는 10:15, 44:23, 49:3, 60:21, 61:3).

피엘형의 경우 파아르의 근본 의미는 '아름답게 하다' beautify, '영화롭게 하다' glorify이다. 이 6회 용례에서 동사의 주어는 항상 하나님이다.그 대상은 예를 들어 55:5, 149:4의 경우 그의 자녀(들)이거나 또는 그의 성소(7:27, 60:7, 13)이다. 이 개념이 힛파엘형의 파아르 용법으로도 전이된다(44:23, 49:3, 60:21, 61:3). 이 어간의 부가적 의미로 7:2, 10:15에 보이듯이 '자랑하다' to boast가 있다. 모세가 바로에게 말하고 있는 8:5은 문자적으로 '나에 대해 당신 자신을 영화롭게 하라'라고 읽히지만 '내게 명령을 주소서' 또는 '내 앞에서 당신 자신의 생각을 말하소서'를 의미하는 것 같다.

동사에 있어서의 '아름답게 하다' beautify와 '자랑하다' boast의 차이는 여기서 파생된 실사에서도 발견되는데 일차적 의미는 '아름다움' beauty이지만 '자랑' pride이라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참조, 10:12, "앗수르왕의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또한 13:19[바벨론]과 20:5[애굽]).

티프아라가 올바른 종류의 자랑이나 긍지를 말하는 경우 영화(혹은 영예), '기쁨' glorying을 의미한다. 이 점은 특히 잠언의 용례에서 잘 나타난다. 17:6 "아비는 자식의 '영화' glory니라", 20:29 "젊은 자의 '영화' glory는 그 힘이요", 28:12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 rejoicing가 있고"(4:9도 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영광' glory으로 말하는 구절들도 이들과 관련되어 있다(46:13, 62:3, 13:11, 33:9).

구약성경에서 광범하게 나오는 '아름다움' beauty을 뜻하는 어휘를 주목해 볼 만하다. 이러한 사실은 대등 관계로 사용된 티프아라의 동의어 수에서 잘 나타난다. 28:5, "여호와께서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96:6,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대상 29: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28:2, 40,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26:19,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뛰어나게 하시고." 4:2, "그 땅의 소산은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64:11[H10],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 63:15도 보라. - V. P. Hamilton.] (p.1145*).

[동의어] (관련성구)

(6643, 체비) 아름다움, 빛남, 영광

1. 체비(명남)는 차바(hb;x; , 6638: 빛나다)에서 유래한 듯하며, '아름다움, 빛남, 영광, 영예'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6회 나오며, '아름다움, 영광스러움'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체비는 은과 금으로 만든 장식(7:20), 흙의 산물(4:2)에 대해 사용되었다.

체비는또한 비유적으로 술고래의 화관 곧 사마리아(28:1, 28:4), 사울과 요나단(삼하 1:19), 두로(23:9), 바벨론(13:19)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BDB).

최고의 찬란함과 영예로움이 아름다운 또는 영광스러운으로 표현되었으며, 다음과 같은대상과 관련되었다: 약속의 땅(20:6, 20:15, 11:16, 11:41), 성전이 있는 산(11:45), 모압의 전략적인 성읍들(25:9), 가장 큰 나라 바벨론(13:19). 여호와는 스스로 꾸며낸 모든 아름다움을 멸하실 것이다(23:9, 28:1-4). 그러나 그가 자기의 남은 백성에게는 영화로운 면류관이 될 것이다(28:5). 여호와께서 통치하는 날 그의 가지도 아름다울 것이다(4:2, 참조: J. E. Hartley).

2. 체비(명남)는 '카젤 영양'을 의미한다. 영양은 음식으로는 허락되었으나(14:5, 12:15, 12:22), 희생제물로는 허락되지 않았다. 영양은 "빠름"(삼하 2:18, 대상 12:8, 6:5)과 우아와 아름다움(2:9, 2:17, 8:14)의 상징이며, 이 우미한 자태로 인하여 사랑의 맹세에 이용되었다(2:7, 3:5). 13:14에서 망명자들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동의어] (관련성구)

(8597, 티프아라) 아름다움, 영광, 영화

티프아라(명여)는 파아르(6286: 아름답게 하다, 영화롭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아름다움 beauty, 빛남, 장려 splendor, 영광, 영화 glory'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회 나온다.

티프아라는 올바른 종류의 자랑이나 긍지를 말하는 경우 영화(혹은 영예), "기쁨"을 의미한다. 이 점은 특히 잠언의 용례에서 잘 나타난다. 17:6에서 "아비는 자식의 '영화' glory니라", 20:29에서 "젊은 자의 '영화'glory는 그 힘이요", 28:12에서 "의인이득의하면 큰 '영화' rejoicing가 있고"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영광"glory으로 말하는 구절들도 이들과 관련되어 있다(46:13, 62:3, 13:11, 33:9).

티르아라는 '아름다움'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28:5에서 "여호와께서 ...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96:6에서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대상 29:11에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28:2, 28:40에서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26:19에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 뛰어나게 하시고", 4:2에서 "그 땅의 소산은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64:11에서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이라고 한다.

[창세기 오늘 성경말씀]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창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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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에서는 사탄이 에덴동산에 와서 여자를 미혹하고 있다. 사탄은 뱀에게 유혹당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었다.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여 결국 사탄에게 미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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