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3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온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신을 섬겨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에 절을 하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절을 하지 않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넣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풀무불에 집어넣을 것을 명령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풀무불에서 구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금 신상에 절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믿음이 새로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겨서 하나님이 바벨론을 통해서 포로로 잡아왔는데 이곳에서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고난이 나에게 유익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영적 유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성경 본문: 단 3:13-18
단 3: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단 3: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단 3: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비파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단 3: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단 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단 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자녀가 잘 되는 복, 재물이 풍족한 복, 장수의 복, 건강의 복 등 여러 가지 복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복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번영과 행복을 말합니다. 즉 인간의 번영과 행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며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과의 신앙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런 구약에 나타난 복은 장수와 많은 자녀, 현숙한 아내, 많은 재산,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임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복의 개념이 영적인 의미로 승화되어 구원, 믿음 가운데 갖는 기쁨과 평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곧 복이란 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복이다.
오늘 본문 말씀은 남쪽 유다 나라가 바벨론의 침공으로 고국에서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된 후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중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다니엘의 용감한 세 친구가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부인도 배반하지도 않음으로 구원받는 세 청년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 앞에 당한 신앙의 형편을 돌아보아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13절에서 18절까지는 느부갓네살 왕과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 속에서 이 세 사람의 확고한 신앙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세 친구는 갈대아 사람들로부터 참소를 당해 왕 앞에 불려 왕 앞으로 이끌리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3장 5절-6절에 보니 왕의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하면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유로 고소를 당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느브갓네살 왕은 노하고 분하여 이 세 사람을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물어서 왕의 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금 기회를 부여하면서 이 세 사람을 위협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답변은 확고한 대답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풀무불"과 "왕의 손"에서 건져내주실 것을 믿었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절을 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분명한 대답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의 대답은 풀무 불속에 들어갈 준비를 한 대답이요 곧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대답이었습니다. 왕 앞에 호출되어 왕과 대면한 이 세 사람은 우상숭배냐? 죽음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황이 주어질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을 택합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준이 일반적인 사람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가 없었고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잠깐 동안인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고자 상황에 따라서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자이기 때문에 당장은 안전하고 평안한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자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고 급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이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줄 믿는 신앙이었고 하나님께서 건져주시지 않아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으며 충성하겠다는 신앙이었습니다. 즉 풀무불 환난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인 것입니다.
이 신앙은 곧 하나님의 일만 섭리로도 만족하겠다는 신앙이요 고난을 계속 받아도 하나님의 뜻이요 또 그 고난이 그들에게 유익할 줄을 아는 신앙이며 곧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은 하나님의 수중에서 관할되는 줄 아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또한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나 있는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 같이 믿는 신앙입니다. 이 세 사람의 신앙은 자신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를 기뻐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죽음과 고난을 두려워함며 비진리와 타협하고 우상 앞에 절하게 되면 그 후로부터는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며 기쁨도 없고 가치도 없으며 종래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그와 반면에 주님을 위하여 죽음과 고난을 택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을 주셔서 그로 하여금 죽음을 면케하시고 고난을 견디게 해 주시고 내세에 상급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첫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둘째, 진리에 대한 자신들의 명확한 데로 아무리 진리를 많이 알고 있을지라도 그 진리대로 살 수 없다면 가장 불쌍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약 4:13-15)
넷째, 영원한 미래에 대한 부동의 신뢰입니다.
이 세상에서 범해지고 있는 큰 죄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약한 자가 되어 염려하게 되고 슬퍼하며 불안해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이 세상에서 평안함과 즐거움이 넘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상대방에게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신뢰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하나님은 신뢰하기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아야 하며 이러한 깨달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까지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꾸준해야 합니다. 개인 날이건 궂은날이 건 개의치 않고 주님을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주위 환경이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굽히지 않아야 합니다. 따뜻한 미소를 줄 때는 물론이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준다 할지라도, 두려운 말로써 우리를 낙담케 할지라도 혼비백산할 정도로 우리를 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은 무한히 선하시며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원망할 수도 불평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산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가져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민족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왕 앞에 나아감으로 민족을 위기에서 구출하였고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쓴잔을 마시우면서 아버지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구하는 생활뿐 아니라 드리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재능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드리고 몸과 마음과 정성을 드려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짖는 간구 소리에 응답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믿읍시다. 이 땅의 축복이 내게 없을지라도 끝까지 우상 숭배하지 말고 신앙을 지킵시다. 이 땅에서 상급이 없을지라도 맡은 일에 충성합시다. 나에게 눈에 보이는 표적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예수 믿은 것이 기적인 줄 알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더욱더 힘써서 하나님을 경외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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