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로마서 14장 주일설교말씀] 약한 형제를 비판하지 말자(롬 14:1~23)

두란노 서원 2022. 5. 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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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장에서는 비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먹는 자는 먹지 못하는 자를 비판하지 말고 먹지 않는 자도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비판할 수도 있고 자기보다 부자인 사람을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비판하다 보면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제목: 하나님께 더 가까이: “약한 형제를 비판하지 말자” (롬 14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로마서 14:1~23

요절: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주제: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비판하지 말고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자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로마서 14장을 강해합니다. 윤리 부분인 롬 12-16장은 “사랑의 실천”이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실된 사랑, 선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 포용적인 사랑으로 권면이 이어집니다. 14장은 서로에게 덕을 세우자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는 형제자매들 간에 서로 판단하지 말 것을 교훈합니다. 특히 음식 문제나 절기 문제를 두고 교훈합니다. 분명한 계명 위반은 지적되고 정죄되어야 하겠지만, 음식 문제나 절기 문제 같은 불분명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또 얼마 동안 자유를 허용하였습니다. 사랑의 실천이 주제입니다.

내일은 발렌타인 데이(Valentine’s Day)입니다. 매년 2월 14일에 지키며,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Claudius Gothicus, 210~270년 재위 268~270년)는 결혼을 금지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남자들이 군대 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가정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제 발렌타인(St. Valentine)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몰래 주례를 하다가 발각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창살로 들어온 낙엽에다 사랑의 편지를 써서 새들로 하여금 청년들에게 전달합니다. 이 편지 말미에는 당신의 사랑의 열매를 염원하는 발렌타인으로부터(from your Valentine) 라고 서명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AD 269년 2월 14일에 처형당했습니다. 이날을 기념해서 후대 사람들은 발렌타인의 날로 정하고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2월 14일은 생명의 약동을 상징하는 춘분(3월 21일)을 앞두고 사랑하는 부부와 연인 사이에 사랑을 고백하며 선물과 편지를 교환하는 날입니다. 유럽에서는 새들이 짝짓기 하는 날이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저녁식사, 액세서리, 명품가방, 비싼 초콜릿을 사랑의 편지와 함께 선물하는 날로 지킵니다. 일본 전통이 한국에도 들어왔답니다. 내일 밸런타인데이에 겟세마네 신학교 봄학기를 개강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형제와 자매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시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판단하지 말라(롬 14:1-12)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들이되 의심스러운 쟁점을 피하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믿음이 있지만 연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못하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또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거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느니라. 실로 그가 서게 되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서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니, 각자 자기 생각에 확정해야 하리라. (6) 날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주를 위하여 소중히 여기고, 날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는 자도 주를 위하여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이는 우리 중에는 아무도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없고 자신을 위해 죽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하리니, 그러므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의 것이라.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사 다시 사셨으니, 이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11) 이는 기록된 바 "주님께서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라고 하였음이라. (12)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들에 관해 직접 설명하리라.

1-2절.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들이되 의심스러운 쟁점을 피하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믿음이 있지만 연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느니라” 주후(AD) 49년경,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열려 오랫동안 토론한 후에 이방인 신자들을 괴롭게 말고 단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게 하자고 결정한 적이 있습니다(행 15:29). 로마서는 주후 56년경에 쓰였다고 보는데,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이 모든 지역과 교회들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회 안에는 음식과 절기에 대한 법에 대해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한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약한 자들은 옛습관에 젖어 거기에서 자유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주초 문제에 대해 믿음이 초보적인 사람들은 민감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용납하고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신앙적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 명료하게 계시된 진리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분명한 진리들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진리의 지식과 믿음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이해하는 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믿음이 있는 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비판하지 말고 그들을 용납해야 할 것입니다.

3-4절. “먹는 자는 먹지 못하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또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음이라. 남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거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느니라. 실로 그가 서게 되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서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라.” 우리는 음식 문제에 있어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업신여기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셨다면 우리도 그들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판단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들의 서고 넘어짐이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고, 그들이 넘어진다 할지라도 그들을 세우실 능력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형제의 부족을 판단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5절.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니, 각자 자기 생각에 확정해야 하리라.” 음식의 문제뿐 아니라 절기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유대인은 지금도 토요일 안식일을 지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금요일 해지는 시간부터 토요일 해 지는 시간까지가 안식일로 사밧 살롬(Sabbat Shalom)이라 인사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유대인들을 MJ 즉 Messianic Jew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신약의 부활절, 성탄절과 함께 구약의 율법대로 절기들을 지킵니다. 그러나 실상 구약의 의식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본질적이지 않고 불명료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각각 자신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2절에서도 그는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6-8절. “날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주를 위하여 소중히 여기고, 날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는 자도 주를 위하여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義)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님을 위해 살 것입니다. 음식과 절기에 대한 그들의 확신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들은 다 주님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7-8절. “이는 우리 중에는 아무도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없고 자신을 위해 죽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하리니, 그러므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의 것이라.”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삽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 마땅합니다. 성도의 삶의 목표와 죽음의 목표는 우리 자신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5에서도,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합니다.

9절.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사 다시 사셨으니, 이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심으로 주님과 그리스도로 확증되셨고 이제 산 자와 죽은 자의 주(主)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그분을 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살든지 죽든지 그분을 위해 살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분께서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도 마지막 날 다시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10-12절.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이는 기록된 바 "주님께서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고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들에 관해 직접 설명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주님이시요 우리는 다 그분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곧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요 5:22; 고후 5:10).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형제들을 용납하고 그들을 판단치 말아야 합니다.

1-12절을 요약하면 우리는 음식과 절기 문제 같은 신앙의 비본질적 문제들에 대해 각각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하고, 믿음이 약한 자들을 비평하지 말고 용납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목표와 죽음의 목표를 우리 자신의 무엇으로 삼지 말고 오직 하나님으로 삼읍시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는 자세를 가집시다.

 

2. 화목과 건덕(健德)을 힘쓰자(롬 14:13-23)

(13) 그런즉 우리가 더이상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형제들 앞에 거치는 것이나 방해물을 놓지 아니하였는지 판단해야 하리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아무것도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으나 어떤 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이니라. (15) 그러나 만일 네 음식 때문에 네 형제가 슬퍼하게 되면 네가 이제 사랑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니, 네 음식으로 그를 망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 (18) 이러한 것들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쁨이요,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느니라. (19) 그러므로 이제는 화평을 위한 일과 서로를 세워 주는 일들을 따라야 할지니라. (20)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망치지 말라. 사실은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남을 실족케 하며 먹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이니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네 형제를 실족하게도 아니하고, 성나게도 아니하며, 연약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22) 네게 믿음이 있느냐?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13-14절. “그런즉 우리가 더이상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형제들 앞에 거치는 것이나 방해물을 놓지 아니하였는지 판단해야 하리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아무것도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으나 어떤 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이니라.” 서로 판단하지 말고 형제나 자매들 앞에 거치는 것이나 방해물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거치는 것(stumblingblock)이란 ‘프로스콤마 πρόσκομμα)이며 방해물(an occasion)이란 ‘스칸달론(ἢ σκάνδαλον)’이라는 헬라어 번역인데 여기서 스캔들이란 말이 나옵니다. 14절의 ‘부정하다’는 원어(코이노스 koinos)는 ‘깨끗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약한 자를 용납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형제들에게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두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행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시험과 장애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은 먹는 문제에 관하여 무엇이든지 스스로 더러운 것이 없고 더럽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 그것이 더럽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디모데전서 4:4에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니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리낌으로 먹는 음식은 사람의 양심을 더럽게 만듭니다.

15-16절. “그러나 만일 네 음식 때문에 네 형제가 슬퍼하게 되면 네가 이제 사랑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니, 네 음식으로 그를 망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받지 않게 하라.”

식물 자체가 더럽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랑 없이 지식만 가지고 어떤 음식을 먹음으로 믿음 약한 형제를 근심케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 약한 자를 위해서도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음식 때문에 약한 자의 믿음을 파괴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하되 남에게 오해나 상함이나 거리낌을 주지 말고 유익을 주면서 해야 합니다. win-win 행위, 즉 상대방도 좋고 나도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17-18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 이러한 것들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쁨이요,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느니라.” 천국에서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 중요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님의 역사로 지금 이것들을 어느 정도 누리다가 장차 천국에서 충만히 누릴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다가 영생에 이릅니다(롬 6:22).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을 제자들에게 주십니다(요 14:27). 평강의 주님께서는 친히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살후 3:16). 또 성도들은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또 기뻐해야 합니다(살전 5:16). 성령님의 열매는 기쁨입니다(갈 5:22). 우리는 세상에서도 천국의 복을 누립니다. 또 의와 평강과 기쁨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19-21절. “그러므로 이제는 화평을 위한 일과 서로를 세워 주는 일들을 따라야 할지니라.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망치지 말라. 사실은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남을 실족케 하며 먹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이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네 형제를 실족하게도 아니하고, 성나게도 아니하며, 연약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서로를 세워 주는 일’이란 ‘덕을 세운다’(건덕, 健德)는 것으로 다른 이들에게 영적 유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화목하며 서로에게 영적 유익을 주는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먹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 즉 영과 혼의 구원의 일을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음식은 다 정결하지만, 거리낌으로 먹는 자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에게 거리낌을 줌으로써 그를 범죄케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사랑과 건덕(建德)의 원리입니다. 이런 정신에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8:13에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22-23절. “네게 믿음이 있느냐?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우리는 신앙에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개인적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거리낌으로 행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거리낌으로 음식을 먹는 자는 범죄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자기 확신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3. 복음은 비밀의 계시(롬 14:24-26)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가 읽는 개역이나 개역개정판에는 없지만 전통본문에는 23절 끝에 로마서 16:25-27이 있습니다. 복음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점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복음의 중심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로마서 1:2에서 바울은, “이 복음은 그분의 아드님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라”라고 합니다.

둘째로, 복음은 사도들을 통해 증거되었습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사도들에게 계시하셨고 그들은 그 복음을 전파하고 해설하였습니다. 로마서 2:16, “곧 내 복음에 이른바와 같이.”

셋째로, 복음은 구약시대에는 감취었다가 이제 계시된 내용입니다.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구약시대에도 복음의 은혜가 암시되어 있었으나, 신약시대에 밝히 계시되었습니다. 로마서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義)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대언자[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넷째로, 복음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명령을 좇아 된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친히 영원무궁 전에 작정하신 바이고 어느 사람의 창작물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다섯째로, 복음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인들과 달리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호 11:8). 그러나 이제 신약시대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있는 택한 백성을 복음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28:19).

여섯째로, 복음의 목적은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로마서 1:5,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믿음은 마음의 순종입니다(롬 6:17). 복음은 모든 사람을 회개시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케 하는 말씀입니다.

일곱째로, 하나님께서는 믿는 모든 자들을 복음으로 견고케 하십니다.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복음은 우리를 믿음과 소망에 굳세게 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도행전 20:32에 보면, 바울은, “지금 내가 너희를 주님과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3-26절은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로, 우리는 음식 문제나 절기 문제 같은 신앙의 비본질적 문제들에서 서로 판단하지 말고 특히 믿음 있는 자들은 연약한 자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약한 자를 용납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형제들에게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두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행하는 태도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각자의 견해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5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22절,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우리는 신앙에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개인적 확신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누립시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입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죄를 멀리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주님께서 주신 평안 가운데 살아야 하고,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씁시다. 화평 혹은 화목은 모든 성도들 간에 화목하고 사이 좋게 되는 것입니다. ‘세우는 것’ 혹은 건덕(健德)은 남의 믿음을 허물지 않고 그의 믿음과 인격에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 간에 화목해야 하고 남의 유익을 위하는 자가 됩시다. 복음으로 인격이 변화되고 사랑의 실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들로 복음으로 변화되어 믿음이 연약하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형제와 자매들에게 사랑을 베풀게 하옵소서. 먼저 믿는 자들이 본을 보이게 하시며 복음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일 발렌틴 날을 맞이하여 부부간에 끝까지 사랑하게 하시며, 진실된 사랑으로 교제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며 기도하고 축복하게 하옵소서. 사랑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편 43편 강해설교말씀] 낙망 중에 하나님을 바람(시 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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