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신경 강해 중에서 사도 신경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예배 중에 사도신경을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해서 알고 사도신경을 하면 신앙에 유익을 얻게 됩니다.
사도 신경의 기원
사도신경은 8세기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형태와 똑같은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400년 경 루피누스는 그의 저서 [사도신경 주석]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세계로 흩어지기 전에 한 자리에 모여서 그들이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짧은 요강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마태복음 28:19를 확장시킨 형태로 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교회의 신앙을 이 신조는 정의하고 있으며, 사도 신경은 모든 선교를 위한 설교의 기초가 되는 신앙의 근본적인 사항에 관한 교회의 신념을 선포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 틀림없다. 이 사도신경은 3세기 초반의 터툴리안의 저작물에서도 나타난다. 로마 교회에서는 기원 100년 경 이미 세례를 줄 때에 사용했던 고백문에서 사도신경의 신조와 같은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2. 신조의 필요성
신조는 첫째, 신앙을 정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규범과 모범과 표준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단들로부터 신도들을 보호하고,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셋째, 교육과 설교의 자료를 제공해 주기 위해 필요하다. 설교자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한정해 주며, 그가 만나게 되는 인간 상황의 모든 사건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계시된 원리들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어떤 신조도 완전할 수는 없으며, 궁극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조는 그것이 작성된 시대의 언어와 사상적인 범주 안에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3. 내가 믿사오니
사도신경에서의 "내가 믿사오니"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가르치신 바가 사실이라는 확신에 대해서 자기의 전 생활을 내어 맡기는 결단이요,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죽은 이삭을 살려서라도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처럼, 또한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경외함으로 방주를 만든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 서 가르치신 진리를 확신하고 그 진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믿음이다. 신앙 고백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할 때 하는 일회적인 고백으로 종교적인 회심의 고백이다. 다른 하나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하루의 삶을 맡기며 하나님과의 친교를 확인하는 반복적인 고백이다. 사도신경의 "내가 믿는다"는 말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우리의 삶과 신앙 생활의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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