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사도행전 1장 헬라어 강해] 성령을 통한 복음의 증인(행 1:6-11)

두란노 서원 2021. 4. 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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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1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성령을 통한 복음의 증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셔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가 40일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인이 됩니다. 증인은 눈으로 본 자가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체험하고 보고 거듭나야만 주님을 증거 하는 증인이 됩니다. 구원받은 확증도 없는데 복음을 증거 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가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증도 없으면서 복음의 증인이 된다고 하면 위증죄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에 없다면 우리는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확신을 얻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통한 복음의 증인(행 1:6-11)

 

6절 호이 멘 운 쉬넬돈테스 에페로톤 아우톤 레곤테스 퀴리에 에이 엔 토 크로노 투토 아포카디스타네이스 텐 바실레이안 토 이스라엘

행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에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1:6

저희가 모였을 때 - 원문에는 `멘 운'(그래서)이라는 일종의 연결어(連結語)가 있으나 한글 개역 성경에는 빠져 있다. 여기에서 `저희'는 사도들을 말하고(2) 그들이 모인 곳은 예루살렘에서 동편에 있는 감람원(the Mount of Olives, NIV)이라 하는 산이었다(12).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천사들을 통하여 그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제 거기서는 다시 몇 날 후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만나시리라 약속하신다. 이렇게 함으로 그는 제자들의 복종을 시험하셨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승천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그가 그들에게 약속한 대로 "함께 모였다." 이 사실에 대해 본문은 설명해 준다.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 `묻자와'(에페로톤)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제자들이 반복하여 질문했음을 암시한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 사도들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4)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줄 곧 그들은 이스라엘의 만족적인 독립과 회복을 통하여 실현될 하나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10:35-45; 눅 22:24-32).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더불어 그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지만, 이제 부활하신 주를 보고서 다시금 정치적 회복에 관한 기대가 되살아나게 된 것이다.

주께서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 ‘회복하심이’에 해당하는 ‘아포카디스타네이스’는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주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포카디스테미’의 직설법 현재 동사이다. 문맥으로 볼 때 이 동사는 미래적 의미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현재형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누가의 의도적 표현이다. 즉 누가는 제자들이 정치적 의미의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매우 임박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명백한 미래적 사건을 묘사하는 데도 현재형으로 기록한 것이다.

한편 이 질문은 제자들의 영적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질문이다. 여기서 ‘회복하심이’라고 번역된 ‘아포카디스타네이스’의 원형 ‘아포카디스테미’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쓰여서 마지막 때에 하나님에 의해 바른 질서가 회복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즉 모든 불의의 세력을 멸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문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 세례를 베푸시는 시점이 자신들이 희구하고 있던 로마의 정치적 속박으로부터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인가를 물은 것이다. 이는 눅 24:21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를 이스라엘을 구속할 분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던 사실과 그 맥이 닿아 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도 자신의 스승인 예수가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영적 메시아이신 하나님의 아들임(요 10: 10)을 알지 못하고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고대하던 정치적 메시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욜 2:29를 보면 마지막 때가 되면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말씀이 예수께서 오시기 8 백 년보다 더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 요엘에 의해서 벌써부터 예언되고 있었다. 제자들은 5절에서 예수께서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이러한 요엘의 예언과 연관 지워 말세가 가까웠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이며 또한 그들은 말세에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정치적인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눅 1:32, 33에서 예수께서 다윗의 위를 받고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라고 한 천사의 예언을 그들이 오해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7절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투스 우크 휘몬 에스틴 그노나이 크로누스 에 카이쿠스 후스 호 파테르 에데토 엔 테 이디아 엑수시아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1:7

때와 기한은(크로누스 에 카이루스) - 이 두 단어는 각각 보다 긴 시간과 보다 짧은 시간을 가리킨다(G. Miligan). 그러나 더 엄밀하게 말하면 전자는 시간의 지속(duration)을 가리키고 후자는 정해진 한 순간을 의미한다(살전 5:1).

‘때’로 번역된 ‘크로누스’의 원형 ‘크로노스’는 일반적으로 연대기적 기간을 가리키며 ‘기한’으로 번역된 ‘카이루스’의 원형 ‘카이로스’는 일반적으로 환경이나 형편과 관련된 어느 특정한 시점을 가리킨다(막 13 :33). 또한 ‘크로노스’는 긴 시간 즉 시간의 지속을 나타내며 ‘카이로스’는 짧은 시간 즉 시간의 한 정점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두 단어가 동시에 사용될 시에는 종말론과 관련한 시간을 언급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살전 5:1). 본절에서도 종말론적인 시간을 가리키기 위하여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 예수는 `'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6) 직접적으로 `아니다'라고 답하시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제자들의 관심을 장차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으로 돌리셨다(8). 이미 예수는 자신도 그의 재림의 날과 시를 알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만 그것을 알고 계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24:36; 13:32; 살전 5:1, 2; 벧후 3:10).

너희가 알 바 아니요 - 직역하면 ‘아는 것은 너희의 것이 아니다’이다. 특히 원문은 ‘너희의’에 해당하는 ‘휘몬’을 부정어 ‘우크’의 바로 뒤 곧 우크와 더불어 새로 시작되는 문장의 앞쪽에 배치하여 ‘너희가 해야 할 바 는 따로 있다’라는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다.

예수께서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본문과 같이 대답하신 것은 중요한 것은 종말의 때가 언제인가가 아니고 종말의 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다. 종말의 때가 언제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성부에게 속한 일로 성자나 천사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마 24:36 ; 막 13:32 ; 살전 5:1, 2).

그러나 그때를 준비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즉 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8절) 복음을 세상의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것이다(막 13:11). 예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이 종말의 때가 아니라 종말을 맞이하기 위한 자세  즉 성령 충만함을 입어 복음 전파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본문과 같은 단호한 부정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한편 누가가 종말의 시기에 관한 예수의 이 말씀을 특별히 기록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초대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생전에 자신과 함께한 자들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9:1).

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상황임에도 마지막 때가 임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초대 교회의 공동체는 예수의 말이 거짓인지 기독교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인지를 염려하며 불안해했을 것이다. 본문은 바로 이런 염려와 불안에 대한 해답이 된다. 즉 누가는 예수께서는 재림의 시기를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에 관심을 가질 것을 말씀하셨음을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시각을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8절 알라 렙세스데 뒤나민 에펠돈토스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 에프 휘마스 카이 에세스데 모이 마르튀레스 엔 테 히에루살렘 카이 엔 파세 테 이우다이아 카이 사마레이아 카이 헤오스 에스카투 테스 게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8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이 하늘의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키셨다. 그 능력(뒤나민)이란 그들의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는데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을 말한.

예수 자신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처럼(10:38; 3:16; 1:10; 눅 3:21, 22) 이제 제자들도 그와 똑같이 기름부음을 받아 사역을 수행할 수 있어야 했다. 증인(證人)으로서의 사역은 본서 전체에 걸쳐 두루 나타나는 주요 주제이다(2:32; 3:15; 5:32; 10:39; 13:31; 22:15).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장 나라로서의 증인의 사역에 이어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 완수해 나가야 될 과제로 남겨졌다. 여기에서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5절에서 언급된 성령의 세례를 의미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의 영역을 요약하고 있다. 이 지리적인 명칭들은 마치 본서의 목차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F.F. Bruce). , 본서의 기록에 의하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1-7)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8:1-11:18) 온 세계에로 확장되어 갔던 것이다(11:19-28:31). 누가복음에서는 복음 사역의 지리적 이동 상황이 갈릴리로부터 베레아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이어져 가는데 본서의 경우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까지 퍼져 나간다.

내 증인이 되리라 - 영어의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증인'(르튀스)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했다. 이는 증인은 순교적(殉敎的) 자세를 가지고(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고 들은 것을(요일 1:1) 증거해야 함을 암시한다. `내 증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나를 위해서,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증거 하는 것'말한다(R.C.H.Lenski). 그리고 `내 증인이 되리라'는 미래 시제는 성령 강림의 약속의 실현과 더불어 제자들이 본격적으로 증인의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9절 카이 타우타 에이폰 블레폰톤 아우톤 에페르데 카이 네펠레 휘펠라벤 아우톤 아포 톤 오프달몬 아우톤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9

보는 데서 - `보는 데서'(블레폰톤)는 현재 분사로 그들이 예수를 직접 계속해서 보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올리워 가시니 - 이는 2절과 눅 24:51에서 승천에 관해 사용된 두 동사(에파이로)와 같은 말이다.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을 가시적(可視的)인 형태로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 광야에서 구름이 장막에 충만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시적인 증표로서 이스라엘 백성 위에 임한 것이었다(40:34). 또한 그러한 구름은 변화산상에서도 예수와 제자들을 에워쌌었는데(17:5; 눅 9:34, 35) 그것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가시적인 표시였다. 뿐만 아니라 감람산에서 예수께서 그의 재림을 묘사할 때에도(24:30;막 13:26;눅 21:27)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하였다.

10절 카이 호스 아테니존테스 에산 에이스 톤 우라논 포류오메누 아우투 카이 이두 안드레스 뒤오 파레이스테케이산 아우토이스 엔 에스데티 류케

행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 `자세히 보다'(아테니조)는 `긴장한 채 열중하여 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미완료형이 사용되어 행동의 계속성을 암시한다.

본문에서 ‘하늘’은 물론 공중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반드시 장소적 개념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하늘’에 해당하는 ‘우라논’의 원형 ‘우라노스’는 신약 성경에서 272회나 사용된 단어로서 다양한 용례로 사용되었다. ‘우라노스’는 천사들과(마 18 : 10 ; 엠 3:15) 하나님의 보좌(계 11 : 13)가 있는 곳이다. 

또한 하늘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며(막 1: 11 ; 히 12:25), 성령이 내려오는 곳이며 (2:2 ; 마 3:16), 진노와 심판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눅 17 :29).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에 의 하면 하늘은 예수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곳이다(히 8:1). 하늘의 모든 권세들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었다(골 1:16). 이처럼 성경에서 ‘하늘’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성과 관련된 신학적 개념으로 자주 등장한다. 

본문에서의 ‘하늘’ 역시 장소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보다 궁극적으로는 신학적인 개념을 지닌다. 만약 우리들이 본문을 전자의 개념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마치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하늘 즉 우주의 어느 한 지점이나 별 정도로 국한시키는 잘못을 범할 수 있고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와 장소적으로 떨어져 계신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승천은 이러한 장소적 이동의 개념을 넘어서 인간이 받는 제약이 없는 세계 물리적 법칙이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세계로의 이동을 말한다.

11절 호이 카이 에이폰 안드레스 갈릴라이오니 티 헤스테카테 엠블레폰테스 에이스 톤 우라논 후토스 호 이에수스 호 아날레드데이스 아프 휘몬 에이스 톤 우라논 후토스 엘류세타이 혼 트로폰 에데아사스데 아우톤 포류오메논 에이스 톤 우라논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11

갈릴리 사람들아 -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르시기 이전에는 한갓 갈릴리 사람, 즉 어, 세리에 불과했다. 또한 그곳 갈릴리는 요 7:52에 의하면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도외시되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보잘것없는 곳 출신의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담대한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던 것이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 이 말은 어정쩡한 태도로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 대한 일종의 책망이라 할 수 있다(I. Howard Marshall). 제자들은 과거 변화산상에서의 경험을 상기하면서(17:1-8) 구름이 걷히고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게 되리라는 기대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예수의 승천에 관한 말씀을 들었으며(6:62;20:17) 또한 향후에 감당해야 할 사명을 명령받은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8) 이 상황에서는 그것을 잊어버린 채 단지 예수와 함께 있으려는 데에만 집착하였다.

너희 가운데서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예수의 재림 사실에 대해서 그 방법까지도 강조하여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사실은 당신의 재림을 확신시키는 보증(保證)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재림의 약속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증거 하는 사역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동력과 근거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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