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요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진리의 영 보혜사 성령 약속(요 14:16-20)

두란노 서원 2021. 4. 11. 14:15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진리의 영 보혜사 성령 약속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을 두고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고 주님이 주시면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계시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을 때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는 부활 승천하시고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내 안에 살아계셔서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내가 잘못된 길로 가면 내 안에서 탄식하십니다.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리의 영 보혜사 성령 약속(요 14:16-20)

 

16절 카이 에고 에로테소 톤 파테라 카이 알론 파라클레톤 도세이 휘민 히나 메네 메드 휘몬 에이스 톤 아이오나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 여기 이른바 "구하겠다"는 말의 헬라 원어, 상대방을 향하여 동등 처지를 취하고 구하는 태도와 과히 틀림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혜사"란 말"대언자"를 의미한다. 요일 2:1에 예수님을 "대언자"라고 하였으니, 성령을 가리켜 "다른 대언자"라고 함이 적당하다.

령은 우리를 위하여 도고 하여 주시는 대언자이시다(롬 8:26). 그뿐 아니라, "보혜사"란 말을 위로자란 의미도 가진다. 그가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음과 마찬가지의 힘과 평안과 기쁨과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실 그의 역사를 가리킨다.

여기 약속된 보혜사의 오심은, 오순절 임하실 성력을 가리킨다. 그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라고 하셨으니,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단 한 번 있을 것이지만, 역사의 영구할 것이 알려진다(28:20).

17절은 토 프뉴마 테스 알레데이아스 호 호 코스모스 우 뒤나타이 라베인 호티 우 데오레이 아우토 우데 기노스케이 아우토 휘메이스 데 기노스케테 아우토 호티 파르 휘민 메네이 카이 엔 휘민 에스타이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저는 진리의 영이라." 이 말씀은, 진리(그리스도의 인격과 속죄 사업에 대한 설명 계시)가 성령님의 것이라는 뜻이다. 세상이 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은 육안에 보이는 데로만 무엇을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그를 받는 이유, 그가 그들 속에 거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까닭이다. 그것이,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하신 말씀이 의미한 바이다.

‘진리’로 번역된 ‘알레데이아스’는 ‘알레데이아’의 단수 소유격이며 70 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에메트’의 역어로 흔하게 나타난다. 영역본들은 이것을 번역함에 있어서 일관되게 ‘진리(truth)’라 하지 않고 ‘신실성 (faithfulness)’이라는 의미를 취하였다. 이는 대다수의 구약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진리에 관한 히브리적 개념이 불변성(stability) 확고부동(firrnness) 확실성(reliability)이라는 의미들을 시사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분은 사건들을 밝히 드러내 시 며 어떤 사건을 그 참된 모습으로 제시하는 분이시다. 제자들에게 감추어진 부분을 확실하게 보여 주시는 이해의 빛이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밝히 말씀하셨음에도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진리의 영이신 ‘파라클레토스’가 알게 하여 주신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쫓는 자마다 진리 가운데 행하게 되고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으며(갈 5: 16), 거룩한 열매들이 나타난다.

18절 우크 아페소 휘마스 오르파누스 엘코마이 프로스 휘마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18

너희에게로 오리라 - 이것은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실현될 또 다른 형태의 예수의 통행에 대한 약속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나신 것은 잠시뿐이었고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과 더불어 그분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셨다. 이는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시겠다(마 28 : 20)는 약속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 동사 ‘에르코마이’는 3절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나타내는 현재 시제이다. 그러나 여기에 재림이라는 종말론적인 사건의 의미까지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바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갈지라도 제자들이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예수 자신의 모습을 육안으로 볼 수는 없어도 성령을 통해 언제나 함께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므로 오히려 세상 마지막 날 이루어지는 재림과 결부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우리는 예수의 임재가 곧 하나님의 임재이듯이 성령의 임재는 예수의 임재이며 하나님의 임재도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마감하면서 예수님 승천 이후 제자들의 사역에 관한 간단한 언급에서 그들이 성공하게 된 비결을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막 16:20)’라고 기록했다. 실제로 제자들에게 임하셔서 역사하신 분은 성령인데(행 2:1-3) 마가는 ‘주’ 즉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역사했다고 전함으로써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은 사도들과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오늘 우리들과도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때문에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상태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오늘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결코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곁에는 언제나 그분이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굳게 믿는 자만이 외롭고 고독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19절 에티 미크론 카이 호 코스모스 메 우크 에티 데오레이 휘메이스 데 데오레이테 메 호티 에고 조 카이 휘메이스 제세스데

요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14:19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 여기서 갑자기 "내가"란 말씀으로 시작된 것은, (16-17)의 논제(성령)달라진 느낌이 있다. 즈안(Zahn)은 이것을 논거로 하여, 이 구절 말씀은 재림을 취급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기서 "내가"란 말을 사용하신 이유는, (16-17)에 관설된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 자신의 속죄 사업의 연장이요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삼위일체 안에서 성령과 일체이기 때문에 그가 여기서 "내가"란 말을 기탄없이 사용하셨다. 위의 16-17절은 성령의 오심을 약속하신 것뿐이고, 이 구절(18 )부터는 성령의 역사와 예수님 자신과의 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내가"란 말로 가르치신 것은, 자연스럽다. 여기 "내가... 너희에게로 오리라"하신 말씀은 재림을 가리키는가? 그의 부활을 가리키는가? 혹은 성령의 강림을 가리키는가? (1) 재림을 가리킨다는 학설이 옳지 않은 이유는, "조금 있으면"이란 말(19절 초두)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온다는 것은 미구에 오심을 의미한. 그뿐 아니라, 그의 오심을 세상이 보지 못한다는 말도 재림설에 맞지 않는다.

림 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보리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1:7). (2)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켰다는 학설도 여기 맞지 않는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땅에 계신 기간은 길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그것이 18절의,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성취시킬 수 있겠는가 함이 문제 된다(Smide). (3) 많은 주석가들이, 이것을 성령 강림에 관한 말씀으로 여긴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성령 강림 사건에 주님의 부활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페인(Fein)은 말하기를, "부활절과 오순절은 일체(一體)로 합류한다"라고 하였다(Ostern und Pfingsten fliessen zu einer Einheit zusammen. - Theol., S. 383).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이 말씀은, "내가 사는 고로 너희도 살게 되리라"라고 번역하신 것이 헬라 원문과 부합한다. 그리고 우리 한역의 "이는"이란 말은 잘못된 번역이다. 그러므로 이 문구는, 위의 말씀에 직속하는 이유 문구가 아니고 하나의 독립 문구이다. "내가 사는 고로"말씀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으나(Lange, Barrett).

다른 학자들은 이것이 예수님의 고유하신 생명 근원을 의미한다고 한다(Grosheide). 어쨌든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영적으로 살려 주시는 근원이 되심을 보여준다. 크로솨이데(Grosheide), 이 점에 있어서 상반절의 "나를 보리니"란 말씀이, 살게 하여 주는 원인을 나타낸다고 한다. , 산다는 것(영생의 생명)은 실상 우리 심령이 하나님을 봄으로(앎으로) 생기는 것이다. 17:3 참조.

18절부터 27절 까지는 보혜사의 하실 일에 대하여 말한다. , (1) 신자들을 거듭나게 하여 살리심(19), (2)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합하게 하심(20), (3)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심. (4) 사도들로 하여금 진리(예수님의 업적과 말)를 깨닫도록 하심(26), (5) 신자들에게 평안을 주심이다(27).

20절 엔 에케이네 테 헤메라 그노세스데 휘메이스 호티 에고 엔 토 파트리 무 카이 휘메이스 엔 에모이 카고 엔 휘민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 이 말씀은,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한 관계를 가리킨다. 신자와 그리스도와 연합에는 여러 가지 방면이 있으니, (1) 신자가 선택 관계로 그리스도와 연합함(1:3-4).

(2) 신자가 구원 사상(救援史上)의 그리스도 행적에서 그와 연합함. , 그의 죽으심, 그의 부활, 그의 승천의 복된 사실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6:3-11; 2:4-6; 3:3-4). (3) 신자가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연합함(2:10). (4) 신자가 그의 행위와 생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와 연합함(6:4; 고전 1:4-5). (5) 신자가 죽음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와 연합함(살전 4:14,16). (6) 신자가 부활할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한다(고전 15:22; 8:17). 이렇게 이 연합은 영원하며, 죽음도 그것을 파괴시키지 못한다.

[출애굽기 12장 히브리어 강해] 하나님 열 번째 장자 죽음 심판(출 12:29-36)

 

[출애굽기 12장 히브리어 강해] 하나님 열 번째 장자 죽음 심판(출 12:29-36)

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12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하나님 열 번째 장자 죽음 심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을 제정해 주시고 살

drn153.tistory.com

[요한복음 5장 헬라어 강해] 베데스다 38년 된 병자 치유 사건(요 5:1-9)

 

[요한복음 5장 헬라어 강해] 베데스다 38년 된 병자 치유 사건(요 5:1-9)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5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베데스다 38년 된 병자 치유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이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drn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