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출애굽기 12장 히브리어 강해] 하나님 열 번째 장자 죽음 심판(출 12:29-36)

두란노 서원 2021. 4. 7. 16:27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12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하나님 열 번째 장자 죽음 심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을 제정해 주시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애굽 백성에게는 열 번째 재앙을 내려 장자를 심판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장자 재앙은 넘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보고 저주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은 사람은 피를 바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장자 재앙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구원받게 됩니다. 모든 저주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모든 저주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애굽 백성에게는 생명을 치는 심판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으니 내 안에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은혜로 모든 저주가 넘어갔음을 고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열 번째 장자 죽음 심판(출 12:29-36)

 

29절 바예히 바하치 하라옐라 바아도나이 히카 콜 베코르 베에레츠 미츠라임 미베코르 파르오 하요셰브 알 키세오 아드 베코르 하쉐비 아쎄르 베베이트 하보르 베콜 베코르 베헴마

출 12: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않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12:29

바로의 장자로부터 - 애굽에 10대 재앙이 내려지던 당시의 바로 왕은 아멘호텝 2(B.C. 1448-1424)였다. 그런데 성경 기록에 의하면, 마지막 열 번째 장자 재앙 시 그의 왕위를 이을 장자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따라서 그의 뒤를 이은 애굽 왕은 그의 장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 외적 자료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즉 애굽 기제(Gizeh)에 있는 대형 스핑크스의 발 사이에 기록된 '' 비문이 이를 입증한다. 곧 그 비문에는, 이 스핑크스가 꿈에 한 젊은이(아멘호텝 2세의 뒤를 이어 애굽 왕이 된 투트모세 4))에게 '특별히' 애굽의 왕위를 약속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곧 이 젊은이가 애굽의 정상적인 왕위 계승자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 왜냐하면 그가 만일 애굽 왕의 장자라면, 그는 당연히 합법적이고도 자동적으로 애굽의 왕위 계승권자가 됨으로 이와 같은 치장된 꿈 내용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 W.C. Hayes, The scepter of Egypt, 2. p.147).

옥에 갇힌 사람 - 가장 미천한 자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된 말인데, 11 : 5에서는 '맷돌 뒤에 있는 여종'으로 표현되어 있다. 당시 이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힘겨운 강제 노동을 하였다(16 : 21).

다 치시매 - 혹자는 이 열 번째 재앙을 급성 전염병에 의한 자연적인 동시 다발적 죽음으로 해석한다(Knobel, Hartmann). 그러나 분명 이 열 번째 재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심판 사건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11 : 4-8). (1) 재앙이 분명히 미리 예고되었다. (2)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정확히 처음 난 것에만 국한되었다. (3) 지리적으로 엄격히 애굽인들에게만 적용되었다. 문법은 나카 동사로서 히필 완료 시제를 사용한다. 히필형은 하나님께서 직접 애굽의 장자들을 모두 치셔서 심판하셨다는 의미다. 완료 시제는 애굽의 모든 집집마다 장자 재앙을 받았다는 의미다. 

30절 바야콤 파르오 라옐라 후 베콜 아바다이브 베콜 미츠라임 바테히 체아카 게돌라 베미츠라임 키 에인 바이트 아쎄르 에인 솸 메트

출 12: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12:30

일어나고 - 죽음의 재앙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발생하여 애굽인들이 놀라 급히 일어난 것을 묘사하는 동사이다.

큰 호곡이 있었으니 - 11 : 6에서 이미 예고된 말의 성취이다. 애굽인들에게 있어 가계의 대들보이자 소망인 장자를 잃은 것은 무엇보다 큰 슬픔이었다. 그러나 이 통곡의 밤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조차 그 입을 봉하고' 고요히 잠든 평안의 밤을 지낼 수 있었다.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 아들이 없는 집도 있었을 것을 감안할 때 이 표현은 수사학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그 대상 지역이 전국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애굽인의 장자와 모든 첫 태생이 죽임을 당했다(29, 30절). 만약 바로가 이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랑스럽고 귀중한 생명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인가! 완고한 불신앙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 주고야 만 것이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재앙이 닥쳐온 때가 기록되어 있다. 곧 “밤중”이라 했다. 그래서 공포가 더했다. 그들은 이전에 내린 사흘간의 흑암 재앙으로 두려움에 싸여 조금도 잠을 취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 겨우 조용히 한밤의 휴식을 취하려는 그 밤에 또다시 경보의 사이렌이 울린 것이다. 멸망시키는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해서 칼을 뽑았을 때는 한낮이어서 별로 공포스럽지 않았다(삼하 24:16). 그러나 애굽의 멸망은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이었던 것이다(시 91:6). 머지않아 “보라, 신랑이로다”라는 경보가 울릴 것이다(마 25:6).

2. 재앙의 대상은 다른 사람 아닌 그들 각 가정의 기쁨과 소망이 되는 “처음 난 것”이었다. 그들이 히브리인의 자녀들을 죽였으니, 이제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들을 죽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들의 죄를 그 자손들에게서 찾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다(롬 3:5).

3. 재앙이 미친 범위가 나타나 있다. 바로의 왕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에까지 이르렀다. 비록 왕자나 농사꾼이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똑같이 취급당하는 법이니,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기 때문이다(욥 34:19, 20 참조). 그러므로 “여호와께 살육당한 자가 많으니”(사 66:16) 바로와 하나님의 논쟁이 끝났을 때는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이”(욜 3:14) 떨어졌다.

4. 재앙으로 인해서 큰 외침이 들렸다. 그로 인해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다”라고 했다. 그들의 외아들과 모든 것의 “처음 난 것”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 온 땅에 넘쳤다. 밤에 우리의 가족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병이 나면 이웃 사람들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애굽인들은 모두 똑같은 재난을 당했으므로 누가 와서 도와줄 수도 위로해 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31절 바이크라 레모쎄 우레아하론 라옐라 바요메르 쿠무 체우 미토크 암미 감 아템 감 베네 이스라엘 우레쿠 이베두 에트 아도나이 케다베르켐

출 12: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12:31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 바로와 모세의 마지막 대면에서 바로는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10 : 28)고 모세에게 말했으며, 모세도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10 : 29)라고 말했다. 따라서 여기서 바로가 모세를 불렀다는 것은 바로가 모세를 만났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마 호출을 받은 모세는 바로가 보낸 그의 신하(11 : 8)들을 만나서 바로의 말을 전해 들은 것으로 생각된(Pulpit Commentary).

너희의 말대로 - 지금까지 모세와 아론은 몇 번씩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줄 것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번번이 거절되었던 이 요구가 마침내 열 번째 재앙이 임하고 나서야 비로소 성취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비록 간교한 인간의 방해를 받을지 모르나, 끝내 당신이 정하신 때에 성취되고야 만다(1 : 9).

이스라엘은 떠나가도 좋다는 명령을 받았다.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라”(31절). 바로는 모세에게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않으리라”라고 했지만, 지금 그는 모세를 다시 불러들였다. 이와 같이 전에는 하나님께 도전했던 자들도 절망에 처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바로는 너무 놀라 더 고집을 부린다면 다음번에는 자기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앞서 지금 이 밤에 떠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이방 역사가들은 이 문제를 그렇게 표현했다) 두렵기 때문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바로가 “너희가 간 후에 내가 과거와 같은 재앙을 받지 않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라고 겸손히 요청했던 사실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32절). 하나님의 교회에 원수 된 자들은 그들 자신에게도 원수가 되니 조만간 그들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32절 감 초네켐 감 베카르켐 케후 카아쎄르 디바르템 바레쿠 우베라케템 감 오티

출 12: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12:32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 이로써 양과 소를 남겨두라던 바로의 주장(10 : 24)은 무너지고 대신 모는 백성이 모든 재산을 갖고 나가겠다던 모세의 본래 요구가 관철되었다. 더욱이 애굽인들에 의해 신으로 숭배되어 온 바로 조차도 모세에게 '자신을 축복해 달라'라고 간청하고 있다. 실로 장자 재앙은 어떤 면에서 전 애굽의 멸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도무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할 의지가 없었고 동시에 애굽 신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 여호와의 능력과 모세의 권위 앞에 완전히 압도당한 연약한 인간 바로의 절실한 요청으로서, 곧 다시는 이러한 재앙들이 애굽 땅에 임하지 않도록 제발 여호와께 축복 좀 빌어달라는 뜻이다. 이는 모세로 하여금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겠다던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이기도 했다(7 : 1).

33절 바테헤자크 미츠라임 알 하암 레마헤르 레샬르함 민 하아레츠 키 오므루 쿨라누 메팀

출 12: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12:33

재촉하여 - ‘재촉하여’로 번역된 동사 ‘테헤자크’의 원형 ‘하자크’는 튼튼하게 하다(대하 28 :20 ; 사 28 :22) 돕다(스 1:6) 격려하다(삼상 23 :16) 강조하다(왕하 4 :8) 재촉하다(삼하 24 :4)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와예하제크)’라고 할 때 (11:10) 사용된 ‘강퍅케 하다’와 동일한 단어이다. 

결국 여호와께 불순종하던 바로의 ‘강퍅한(하자크)’ 마음이 애굽 땅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재앙을 불러왔고 그와 함께 재앙을 당한 많은 애굽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가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재촉하는(하자크)’ 간청을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우리는 통일한 단어가 각기 다른 문맥에서 다르게 사용되는 언어의 유희 (Word play)를 통해 죄의 결과가 비참한 최후를 가져옴을 똑똑히 볼 수 있다. 바로가 ‘강퍅한(하자크)’ 마음을 빨리 풀었다면 자식 잃은 백성들의 슬픈 ‘재촉(하자크)’은 없어도 되었을 것이다.

34절 바이사 하암 에트 베체코 테렘 예흐마츠 미쉐아로탐 체루로트 베시믈로탐 알 쉬케맘

출 12: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12:34

발교되지 못한 - '발효되지 않은'이란 뜻으로 이러한 반죽을 구운 떡이 곧 무교병이다<12 : 8>. 이는 '고난의 떡'으로 흔히 묘사되는데(16 : 3),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당한 고난을 회상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믈라'는 '감싸다'라는 뜻의 '사말'에서 유래한 말로 내복 위에 걸쳐 입는 외투용 '넓은 천'을 말한다. 이는 여러 조각으로 된 커다란 옷감으로 물건들을 싸는 데도 쉽게 이용될 수 있었다.

직역하면 ‘그들의 옷으로 싸서’이다. ‘옷’으로 번역된 ‘시믈라’는 ‘감싸다’는 뜻의 ‘사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내의 위에 입는 넓은 천으로 된 몸을 감싸는 겉옷을 가리킨다. 셈은 술 취한 아버지의 하체를 이 ‘옷(심라)’으로 덮어 주었고(창 9:23) 요셉의 형제들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잔이 발견되자 바로 이 ‘옷’을 찢고 슬퍼하였다(창 44: 13).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인들에게 이 ‘옷(의복)’을 구했다 (35절). 이 옷은 모든 가정에 다 있는 것이고 커다란 천이었기 때문에 그릇을 싸기에 편리했을 것이다. 이처럼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따로 반죽 그릇을 싸는 천을 마련하지 못하고 겉옷에 싸서 메고 나온 것은 애굽에서 나오는 그 일이 매우 급박하게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 준다.

35절 우베네 이스라엘 아슈 키드바르 모쎄 바이쉐알루 미미츠라임 켈레 케세프 우켈레 자하브 우세말로트

출 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12:35

3 : 22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것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전리품을 얻는 것과 흡사하다.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으나, 하나님은 이제 지난날 그들의 수치를 완전한 승리로 바꿔 주셨다.

구하매 - '빌다'(KJV, borrow)란 뜻이 아니고, '요구하다'(RSV, ask)란 뜻이다(Kurtz, Hengstenberg). 은혜 <11 : 3>.

애굽인들이 이스라엘인더러 떠나 주기를 간청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인들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주머니가 비었으므로 그런 여행을 할 수 없노라. 떠날 채비를 갖추어 주면 떠나겠노라”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것은 극한 상황에 이르는 고난 중에 예비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인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어 원하는 것을 요구만 하면 제공해 주도록 하신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것을 주도록 애굽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마치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법궤를 되돌려 보낼 때 속건제로 드릴 선물을 함께 보낸 것같이, 그들도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속죄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삼상 6:3, 6).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인들에게 요청하여 받았다기보다는 빌려주었던 것을 찾거나 돌려받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36절 바아도나이 나탄 에트 헨 하암 베에네 미츠라임 바야쉐일룸 바예나첼루 에트 미츠라임

출 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12:36

(1) 종들은 일한 만큼 주인에게서 품삯을 받으며, 만일 주지 않을 때는 품삯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 정복자가 정복한 적들로부터 전리품을 취하는 것과 같다. 바로는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께 반역한 죄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몰수당한 것이다.

(3) 신하들이 왕으로부터 하사된 토지를 받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온 땅의 소유권자이시며 땅의 풍요도 그의 것이니, 그것을 어떤 사람에게서 취하여 다른 사람에게 주신들 누가 감히 항변할 수 있으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할 바를 행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로 된 것이다. 그 지시와 명령은 그들 자신을 충분히 정당화해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일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행해도 좋다는 권한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누가 감히 그런 정당성을 자랑할 수 있으랴!).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기억해 두자.
①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은 어떤 잘못도 범하실 수 없다.
② 하나님은 압박당하는 자들에게 의를 베푸실 것이다(시 146:7). 그러므로 “죄인의 재물은” 종종 의로운 자를 위해 쌓은 것이 되고 만다(잠 13:23; 욥 27:16, 17).

물품을 취하였더라 - ‘나찰’은 ‘구출하다’ (겔 14:4), ‘벗기다’ (대하 20 : 25), ‘빼앗다’ (창 31 :9 ; 삼하 20 :6 ; 시 119:43) 동의 다양한 뜻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인들의 옷을 벗겨서 (LB, Stripped of) 취하였고 그들의 금은 장식과 기구들을 빼앗아 (KJV Spoiled) 취하였다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당시 애굽인들의 관점에서는 그들의 의복이나 금, 은붙이를 빼앗기는 일이 대수롭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지 않으면 그들의 장자들이 죽임을 당한 것처럼 그들의 생명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재산을 다 가져가도 좋으니 아무쪼록 그들이 빨리 애굽을 떠나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5장 헬라어 강해] 베데스다 38년 된 병자 치유 사건(요 5:1-9)

 

[요한복음 5장 헬라어 강해] 베데스다 38년 된 병자 치유 사건(요 5:1-9)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5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베데스다 38년 된 병자 치유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이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drn153.tistory.com

[마태복음 종말론 성경공부] 마태복음 24장에서 본 재림의 징조

 

[마태복음 종말론 성경공부] 마태복음 24장에서 본 재림의 징조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종말론 성경공부 중에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본 재림의 징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예언한 것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구

drn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