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사도행전 25장 강해설교말씀] 제3차 세계선교 여행(행 25:1~27)

두란노 서원 2023. 5. 1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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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5장에서는 바울이 새 총독인 베스도 앞에서 변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베스도 앞에서 자기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가서 심문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제3차 세계선교 여행(사도행전 25:1~27)

 

요절: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말하기를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25:12)

주제: 바울은 항고하여 로마의 가이사 황제 앞에서 재판받을 것을 신청하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사도행전 25장을 강해합니다. 24장에서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법정 변명을 한 후 총독의 호의로 영내에서 자유를 얻고 친구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이로부터 2년간 그는 가이사라 감옥에서 지냅니다. 이 감옥에 있을 때에 이미 개척한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를 옥중서신(Prison Epistles)이라 합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이 옥중서신의 내용과 신학이 깊고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런 서신들이 가이사랴 총독청의 감옥에서 깊은 기도 가운데 쓴 서신들입니다.

1. 바울이 가이사황제에게 상고하다(Paul Appeals to Caesar, 25:1-12)

(1)베스도(Festus)가 도임한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하니(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즉시 떠나갈 것을 말하고(5) 또 말하기를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아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하니라(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일 혹 십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7) 그가 나오니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8) 바울이 변명하여 말하기를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하니(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기를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10) 바울이 말하기를 제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제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11) 만일 제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저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저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제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하니(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말하기를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하니라.

1-5. 벨릭스 총독에 이어 베스도(Festus, AD 59-61)가 유대국에 총독으로 부임한 지 삼일 후에 그는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표현을 사용),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바울을 고소하며,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였습니다.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입니다. 신임 총독 베스도는 대답하기를,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얼마 있으면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베스도의 답변을 통해 바울을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로부터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함을 얻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는 결코 인간의 살해 음모 같은 일에 희생되지 않을 것입니다.

6-8. 신임 총독 베스도는 그들 가운데서 8일 혹 10일 이상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바울을 재판석으로 데려오라고 명하였습니다. 그가 나오자 2년 동안 기다려온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했으나 능히 증명하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변명하여 말하기를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황제)에게나 제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성도는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범죄치 않고 떳떳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적 문제뿐 아니라 세속적 문제에서도 법을 어겨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도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9-12.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바울은 말합니다. “제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제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제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死罪)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분들의 저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저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삽나이다. 제가 가이사께 호소(항소)하노라.” 베스도는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대답했습니다.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가이사 황제 앞에서 재판받기를 호소하는 것은 당시에 로마 시민이 가진 특권입니다. 이것은 옛시대에 죄수의 인권을 존중한 좋은 일이었습니다. 옛시대에도 이러했는데 하물며 오늘날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재판이 지구상에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재판은 매우 엄숙한 일입니다. 재판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2. 헤롯왕 아그립바2세와 버니게(Bernice) 앞에서 변명하다(25:13-27)

(13) 수일 후에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샤랴에 와서

(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15)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16) 내가 대답하기를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17)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니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 왔으나(18)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19)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20)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21)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두라 명하였노라하니(22)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저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베스도가 말하기를 내일 들으시리이다하더라.(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24) 베스도가 말하기를 아그립바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회중들이 크게 외치되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호소한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26)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27)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줄 아나이다하였더라.

바울에 대한 재판이 있은 지 수일 후에 유대 지역왕인 헤롯 아그립바(Herod Agrippa II, AD 27-100, 아그립바 1세의 아들, 본명Marcus Julius Agrippa, 헤롯대왕의 왕가의 마지막 왕)왕과 그의 고모인 버니게(Bernice, 아그립바 1세의 큰딸)가 베스도 신임 총독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 날을 있었습니다. 이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로 야고보를 죽였던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입니다. 그는 AD 48년부터 70년까지 팔레스틴 북부와 북동부를 다스렸습니다. 버니게는 그의 고모 즉 아그립바 1세의 큰 딸이었고, 작은 딸은 앞에서 나온 직전 총독 벨릭스의 아내인 두루실라(Drusilla)입니다(24:24). 좀더 설명을 하자면 25장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예수님의 사도인 야고보를 칼로 죽인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12:20-23). 바알 종교의 본산지인 두로와 시돈 지방 사람들에게 화친 조약을 맺기를 원하면서 영감이 넘치는 연설을 해서 대단히 박수를 받았는데, 헤롯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치니 벌레들이 달려들어 먹혀 죽고 말았습니다. 이때가 AD 44년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에는 그는 겨우 열일곱 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으로 즉위하지 못하고 헤롯 왕국은 검찰관의 정부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삼촌 헤롯이 죽자, 샬레츠의 왕은 AD 48년에 클라우디우스로부터 그 지역의 주권을 받았고, 그것으로 성전의 감독과 대제사장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4년 후에 그는 그의 삼촌 빌립과 리사니아스(3:1)가 다스렸던 테트라르키들을 왕의 칭호와 함께 받았습니다. AD 55년에 네로 황제는 갈릴리 성읍들 중 일부를 추가함으로써 왕국을 확장시켰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기 위해 살았고, 일흔 세살에 트라야누스(AD 100) 밑에서 죽었습니다.

이 아그립바 2세와 함께 온 버니스 또는 베레니케의 역사 (이름은 마케도니아의 페레니스 형태 인 것 같다)는 끔찍한 로맨스 또는 보르자 연대기의 한 페이지처럼 읽힙니다. 그녀는 헤롯 아그립바 I의 장녀였으며, 어린 나이에 샬레츠 왕 삼촌과 결혼했습니다. 이러한 성질의 동맹은 헤로디아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었고, 복음서의 헤로디아는 끊임없는 결혼에서 끊임없는 간음으로 넘어갔습니다 (마태복음 14:1 참조). 베레니케는 죽자 몇 년 동안 과부로 남아 있었지만, 칼시스 공국에 계승하여 우리 앞의 경우처럼 여왕의 명예와 같은 것을 준 동생 아그립바가 그녀와 함께 아직 어두운 근친상간으로 살고 있으며, 유대에서 아버지의 친구가 지닌 악덕을 일으키고 있다는 어두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칼리굴라황제는 너무 끔찍한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의심에 맞서 자신을 선별하기 위해 그녀는 실리시아의 왕 포레몬에게 그녀를 여왕으로 삼고, 아지즈가 여동생 드루실라를 위해 한 것처럼 유대교로 개종했다고 고백하고 할례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했습니다. 불길한 결혼 생활은 번창하지 않았습니다. 여왕의 억제되지 않은 열정은 다시 한번 숙달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떠났고, 그는 그녀와 그녀의 종교를 즉시 없앴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매혹의 힘은 여전히 컸고, 그녀는 조국의 파멸의 시간에 그들에 의해 이익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소송건을 헤롯왕에게 고발합니다. “(직전 총독)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멸하도록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니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 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피고인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두라 명하였노라.” 아그립바왕이 베스도에게 요청합니다. “저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응답하기를 내일 들으시리이다.”

재판 시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다 들은 후 판결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의 기본적 요소입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런 기본을 무시하고 바울을 정죄하고 죽이려 했으나 이방인인 로마 총독은 오히려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잠언에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18:17)고 말합니다. 재판하는 이들은 원고와 피고의 말을 충분히 듣고 판결해야 합니다. 또 베스도가 지체치 않고 재판을 연 것은 이방인 총독의 양심적이고 성실한 모습이었습니다.

23-27.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威儀)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왔습니다. 베스도 총독이 말했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 지도자들이 죽이려 했던 죄수 바울에 대해 이방인 총독 베스도는 그가 죽을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종교인이 타락하면 일반인보다 더 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기본적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도덕적 시시비비를 판단해야 하고,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유대인들처럼 악을 행치 맙시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합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정당한 이유가 없이 바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저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자들인가요? 이방인 총독이 죄 없다고 판단한 바울을 살려두지 못할 자라고 외쳐대는 저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자들인가요?

또 우리는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자가 됩시다. 바울은 총독의 법정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죄를 범치 않았다고 증거했습니다. 로마 총독 베스도가 보기에 그는 죽을죄를 범한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것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읍시다. 세상은 때때로 성도를 해하려고 하지만, 바울을 죽음의 위기로부터 지키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총독들의 법정에서 또 로마의 황제의 법정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만 보지 말고 그 현실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합시다.

사도행전 26장에서는 바울이 마지막으로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법정인 변명을 합니다. 이미 그는 황제에게 가서 재판을 받기로 항소해 두었으나 당시 로마법에 따라 법적 증언을 합니다. 오늘과 다음 주에 나오는 헤롯왕에 대해 정리를 하고 다음 주를 준비하겠습니다. 우선 신약성경에 나오는 헤롯이란 호칭을 가진 왕이 여섯 명 등장합니다.

첫번째 헤롯은 흔히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BC 37~4)으로 알려진 인물로 그는 시이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황제로 있을 당시 팔레스틴 지역을 다스리던 인물입니다 (2:1; 눅 3:1). 그의 아버지가 그를 하스모니언 가문(이스라엘이 마카비 독립전쟁 승리 후 정권을 창출한 사두개파 가문)의 사위로 이스라엘 정치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그는 건축광이라 할만큼 각 지역마다 엄청난 규모의 건축을 하였습니다(마사다, 여리고, 예루살렘, 가이사랴, 헤로디움, 사마리아, ). 그는 또한 지중해변에 가이사랴 항구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가이사랴는 신약성경 당시 팔레스틴 지역의 행정수도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이두매(에돔지파) 출신이었기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당시 파르테논신전, 아데미신전에 버금가는 신전으로 증축하였는데, 결국 그의 생전에 완성못하고 그의 아들과 손자대에 완성되었습니다(AD 55).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잔학무도한 왕으로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베들레헴 일대 두 살 이하 아이들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이후 그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어 폐위되고 비참하게 죽어 헤로디움 별궁에 묻히게 됩니다. 헤롯 대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세 아들이 분봉왕(tetrarch)이 되어 이스라엘 전 지역을 세 지역으로 나뉘어 다스렸습니다.

헤롯 안디바/안티파스(Herod Antipas) (BC 4-AD 39)

그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14:1, 6:14). 안티파스(분봉 왕 헤롯)는 자기 형수 헤로디아(딸 살로매)와 재혼했으며 이를 여우라고 지적한 세례 요한(눅 13:32)을 감옥에 투옥시키고 결국 그를 처형하였습니다 (눅 3:19, 20; 14:1-12). 찌포리(나사렛과 가버나움 사이)에 별궁을 짓고, 디베랴를 갈릴리 수도로 건설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심문에 참여했습니다(눅 23:6-8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헤롯 아켈라오(Archelaus, BC 4-AD 6)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지역의 분봉왕으로 가장 넓은 지역을 다스렸으나 통치 초기부터 폭정한 악독한 헤롯으로 소문났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로 피난간 예수님의 가족이 3년 반 피난 생활을 접고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아켈라오가 통치한 지역을 피해 안디바가 통치한 나사렛으로 가게 되었습니다(2:22). 결국 그는 유대인들의 빗발친 불평으로 통치 9년을 끝내고 폐위되었고 그가 다스린 지역은 총독이 다스리게 되었답니다(AD 6-41). 그는 폐위되고 나서 AD 18년에 사망했습니다.

헤롯 빌립2세(Herod Phillip) (BC 4 AD 34)

헤롯 대왕의 제일 훌륭한 아들로 분봉왕이었습니다(3:1), 가이사랴 빌립보를 개발했고 벳새다를 재건했습니다. 헤롯 안디바의 이복 동생입니다.

헤롯 아그립바 1(Herod Agrippa I) (AD 44년 사망)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헤롯 대왕의 손자로 헤롯 안디바의 조카였습니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아그립바는 초기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던 인물입니다. 사도 야고보를 칼로 처형(행12:2)했고, 베드로를 투옥시켰습니다(행12:3). 그의 포악함과 교만함은 결국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 벌레에게 먹혀 죽고 맙니다 (12:20-23)

헤롯 아그립바 2(Herod Agrippa II) (AD 27~100)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아그립바 1세의 아들로 사도 바울을 심문했습니다(25:13, 26:1). 헤롯왕가의 마지막 통치자입니다.

AD 50년에 아그립바의 아들 아그립바 2세가 칼시스 지역의 왕이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아빌레네, 트라콘티스, 아코, 갈릴리 중심지, 베레아 지역을 통치하였습니다. 아그립바 2세는 바울의 변호를 들었지만, 바울은 로마 시이저의 판결을 요청하였고 아그립바 2세에게는 그를 풀어줄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제3차 세계전도여행은 파송 교회인 시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천부장, 유대 공의회, 총독 벨릭스, 2년 후 총독 베스도,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서 변명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신앙간증을 하면서 로마 시민권자이기에 로마 황제에 항소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주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로마로 갈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당하게 황제에게 항소하여 제4차 세계선교여행이 된 로마로 가게되는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에게는 악도 선으로 바뀌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십니다.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섭리에 순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께 더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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