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나와 한나의 소개 말씀(삼상 1:1-8)
사무엘상 1장에서 사무엘이 탄생할 것에 대해서 말씀한다. 에브라임 산지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엘가나는 브닌나와 한나의 두 부인을 데리고 있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자식이 없다. 이것 때문에 한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고 있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서 마음에 고통이 있다. 하나님은 한나에게 자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가 되매 하나님은 한나에게 자녀를 주셨는데 사무엘을 주셨다. 한나의 서원 기도가 하나님 뜻에 합당했기 때문에 자녀를 주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해야 한다. 브닌나와 같은 자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삼상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1:1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산지'는 팔레스틴 중안부에 위치한 구릉 지대로서, 이곳은 팔레스틴 남부에 위치한 유대 산지보다 훨씬 비옥하였으며, 특히 이곳의 서부지역은 더욱 그러하였다. 아울러 이곳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개시된 이후 이스라엘에 의해 제일 먼저 점령된 지역이었다. 또한 이 때문에 이 지역에 위치한 '실로' (Shiloh)는 가나안 최초의 성지(聖地), 즉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장소가 되어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 시대, 그리고 사무엘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사회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3절>. 한편 이 지역이 '에브라임 지파가 그 지역을 기업으로 분배받았기 때문이다(수 17:15). 그러나 에브라임 산지에 에브라임 지파만이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 에브라임 산지의 남쪽은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역시 거주하고 있었다(수 18:11).
라마다임소빔 - '라마다임소빔' (Rama-thaim-Zophim)은 '숩 족속의 두 고지(언덕)' 또는 '숩 땅에 있는 고지들'이라는 의미로서, 사무엘 가문의 조상이었던 '숩'(혹은 '소배', 대상 6:26)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정착함으로써 붙어진 지명이다. 아마도 두 개의 고지(언덕) 위에 세워진 듯한 이 '라마다임소빔'은 에브라임 산지 중 베냐민 지파 거주 지역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단순히 '고지'(高地)라는 이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라마'와 동일한 지역이다<19절>. 한편 '라마'(Ramah)는 사무엘이 태어난 고향이요, 그가 활동한 사역의 중심지이며, 또한 후일 사무엘이 죽어 장사된 곳으로, 사무엘 시대에 주요한 위치를 점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본절에서 특별히 '라마다임소빔' 이란 원지명을 사용한 이유는 팔레스틴 지역에는 많은 '라마'(언덕 마을, hill town)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과 사무엘의 고향 '라마'와 서로 구별하기 위함이다라는 말로 간단히 표하고 있다(2:11 ; 7 ; 8:4 ; 15:34 ; 16:13 ; 19:18; 25:1 ; 28:3). 한편 이 지역은 후일 시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부자 요셉의 고향과 동일한 '아리마대'로 불렸다(요 19:38)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 - '엘가나'(Elkanah)는 본문의 족보와 역대기의 족보(대상 6:1, 27, 28)를 종합해 볼 때, 레위 지파의 후예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를 '에브라임 사람'이라 칭한 까닭은 그가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이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가 그 지역에 거주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레위 지파는 타 지파처럼 일정한 기업을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의 종교 생활을 지도해야만 했었다(민 35:1-8). 또한 '라마'는 여호수아에 의해 정식으로 지정된 레위인의 성읍도 아니었다(수 21:17). 따라서 사무엘의 조상 '숩'(Zuph)은 자신의 조상에게 원래 할당된 지역을 떠나 바로 이곳으로 들어와 살게 된 듯하다(삿 17:7, 8).
여로함...엘리후...도후...숩 - 이들은 사무엘의 부친 엘가나 가문의 조상들이다. 그런데 이들 조상들의 이름이 역대기의 족보에서는 약간 달리 나타나고 있다. 즉 대상 6:26, 27에서는 '여로함-엘리압-나핫-소배'란 이름으로, 그리고 대상 6:34, 35에서는 '여로함-엘리엘-도아-숩이란 이름으로 각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는 (1) 독법(讀法)의 다양성과 (2) 의도적인 개명(改名), 그리고 (3) 시간의 흐름에 따른 철자의 변이(變移)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이와 같은 족보의 소개는 사무엘서의 역사성을 확증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대체로 어떤 주요 사건이나 인물을 소개할 때 그 사건이나 인물의 역사성(歷使性)부터 증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창 5:1 ; 10:1 11:27 ;36:1 출 6:14-27 ; 대상 1-9장 ; 마 1:1-17 ; 눅 3:23-38).
삼상1: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1:2
두 아내가 있으니 - 어쩌면 후사를 얻기 위함 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경건했던 엘가나까지 중혼(重婚)의 관습에 쉽게 물들었다는 사실은 사사 시대가 얼마나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암울했던 시기 였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한편 신명기 21:15-17의 규례는 마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를 용인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신명기의 규례는 단지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아내를 여럿 둠으로써 부득이하게 야기될 수 있는 경우를 대비케 하는 성경적 해결책일 뿐이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 '브닌나'(Peninnah)는 '진주', '보석', '산호' 등의 뜻을 지닌 이름이다. 이처럼 히브리 여성의 이름은 보석이나 꽃, 또는 동물의 이름과 관련된 것이 많이 나타난다. 영적으로 보면 한나를 괴롭히는 브닌나는 율법주의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의 예표이다. 한편 여기서 '자식'(옐라딤)은 '어린이' 혹은 '아들'의 복수형으로서, 이는 브닌나가 최소한 2명 이상의 자녀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나는 무자하더라 - 한나(Hannah)는 '사랑스러움' 또는 '은혜스러움'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히브리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름이다. 그러나 특별히 여기서 이 이름은 그녀가 자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한 후일 하나님의 은혜까지도 많이 입었다는(2:21) 실제적 사실과 잘 부합되는 이름이다. 그러나 초기에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함으로 인해 많은 번민과 소외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특히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자녀의 출산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증거로 삼은 반면(신 7:13 , 14 ; 시 107:13), 무자(無子)는 하나님의 징계나 저주의 결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창 20:18).
삼상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1:3
매년에...경배하며 - 경건한 레위인 엘가나는, 히브리 모든 남자는 매년 정한 기간에 중앙 성소로 올라가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율법 규정(출 34:23 ; 신 12:5)에 따라 이 의무를 이행하였다. 물론 성경은 매년 세 차례씩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출 23:17>. 그러나 극히 타락했던 사사 시대의 정황 속에서 엘가나가 이 정도나마 신앙적 열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성막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다.
실로 - 이곳은 당시 법궤가 보관된 곳, 곧 성소(Tabernacle)가 있는 지역이었다. 법궤(언약궤)는 처음에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 '길갈(Gilgal, 수 4:19)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가나안 정복 후 땅 분배할 동안에 '실로'(Shiloh, 수 18:1)로 옮겨진 후 이때까지 이곳 실로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예루살렘 북쪽 약 32Km 지점에 위치한 '실로'는 여호수아 시대 말기로부터 사사 시대 및 사무엘 시대 초기까지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요. 정치적 주 무대이며, 군사적 요해지(要害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 시대 말기에 블레셋 족속에게 법궤를 빼앗기고 실로가 파괴됨으로 말미암아 실로의 영광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5:1 ; 시 78:60-64).
만군의 여호와(여호와 체바오트). 이 명칭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jehovah God of Hosts)의 축약어로서, 구약 중 여기서 최초로 나오는 단어이다. 이 명칭은 초기에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시는 하나님(삼상 17:45), 후에는 하늘의 천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왕상 22:19)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명칭은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지상에 만물을 아울러 통치하는 분이심을 암시해 준다. 따라서 여기 이 명칭은 참된 경배와 제사의 대상이 되시는 분에게 적절히 적용된 명칭이다.
제사를 드렸는데(리즈보아흐). 제물과 감사의 헌물, 그리고 기도가 포함된 광의적 의미의 제사를 말한다. 그러나 특히 여기서는 엘가나가 제사 완료 후 그 제물을 가족들에게 나눠주었고(4절) 또 그들이 그것을 함께 먹었다는 점(9절)에서 볼 때, 여기서 엘가나가 드린 제사는 제사장의 몫 이외의 나머지 부분을 자신과 가족 또는 공동체 전체가 일정한 장소, 곳 성막의 뜰이나 성막의 별채<1:18>에서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던 '화목제'(和睦除, Peace-offering)를 가리키는 듯하다(레 7:14, 30-36; 민 6:20 ; 신 18:1).
엘리(Eli) - '엘리'는 제사장 가문중 유력한 비느하스 가문의 후손이 아니고, 이다말(민 4:28, 33)의 후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혼란한 사사 시대 말기에 대제사장직과 사사직을 동시에 갖고 있었음을 볼 때, 그는 유명하면서도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자녀 교육 실패의 결과, 방탕한 두 아들로 인해 결국 불운한 말년을 맞게 된다(2:27-36 ; 3:11-14 ;4:18).
홉니와 비느하스가...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 70인 역(LXX)은 여기에 '엘리'도 삽입시켰으나 타당치 않다. 왜냐하면 당시 엘리는 노쇠한 관계로 제사장적 업무를 감당치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측컨대, 엘리는 제사장적 업무를 자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주로 일임하고, 자신은 사사의 직무만 감당한 거 같다.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들로서 제사장의 소임을 감당하기에는 부적격자들이었고(2:12, 22), 이는 결국 엘리 시대의 종말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삼상1: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1:4
제사를 드리는 날 - 모세 율법상 모든 히브리 남자가 일년 3차씩 중앙 성소에 올라가 준수해야 할 절기는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오순절, 칠칠절),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이었다(출 23:14-17). 그런데 이중 엘가나가 택하여 제사를 드린 날은 무교절(유월절)이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1) 이 세 절기 가운데 유월절이 가장 큰 절기였고, (2) 또한 이때는 전 가족이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1년 1차 유월절에 중앙 성소로 올라가던 관습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보편화된 것 같다(눅 2:41).
삼상1: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1:5
갑절(마나 아하트 아파임) - 이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즉 (1) '아파임'을 '사람들'이란 의미로 이해하여 '사람들의 분깃'으로 보는 견해, (2) '아파임'을 '분노' 혹은 '슬픔'의 의미로 이해하여 '엘가나는 한나에게 분깃을 줄 때 슬퍼하였다'로 보는 견해, (3) '아파임'을 잘못 삽입된 단어로 이해하여 단순히 '한 분깃'으로 보는 견해(LXX), (4) 복수명사의 어미를 갖고 있는 '아파임'을 두 사람의 의미로 이해하여 '두 사람의 몫'으로 보는 견해 등이다. 이와 같이 여러 해석이 나오는 것은 '아파임'이란 단어가 '콧구멍'(창 2:7 ; 애 4:20), '얼굴'(창 3:19 ; 사 49:23) '분노', '슬픔'(11:6)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가 브닌나 보다 더욱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과, 여러 갑절을 줌으로써 자신의 호의를 표현했던 중근동 지방의 일반적인 관습(창 43:34)으로 미루어 보아 위의 견해 중 네 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 일정기간 동안 한나가 아이를 잉태하지 못한 것은 '사라'(창 11:30), '리브가'(창 25:21), '라헬'(창 29:31), '마노아의 아내' 등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적극적인 섭리로 말미암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친히 모태(母胎)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잉태하지 못하던 여인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자녀를 낳는 예가 많다(창 18:10-15 ; 21:1-4 ; 25:21 ; 30:22-24 ; 삿 13:3 ; 눅 1:7,57). 그러한 의미에서 여기 한나의 불임(不妊) 역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써, 곧 꺼져가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과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한편, 이처럼 '육적(肉的)인 출생'에 관한 하나님의 주관과 섭리는 역시 '영적(靈的)인 출생'(중생)에 관한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롬 11:36 ; 엡 4:6).
삼상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1:6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 사가르 베아드 라흐마흐'를 직역하면, '그녀의 태(胎)를 닫으셨기 때문에'란 의미이다. 따라서 이 말은 '태의 문'을 열고 닫으시는 생명의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말이다.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 여기서 '격동하다'(카이스)란 말은 '괴롭히다', '약 올리다', '슬프게 하다', '충동질하다', '화나게 하다' 등의 뜻이 있다. 그리고 '번민케 하다'(라암)이란 말 역시 '괴롭히다', '세계 뒤흔들다', '자극하여 분노케 하다'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브닌나가 무자(無子)한 한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여자로 보고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음을 나타내는 말이다<3절>.
삼상1: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1:7
매년에...그같이 하매 - 이는 성소에 올라가 제사를 드린 후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가족에게 나눠줄 때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는 일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를 향한 엘가나의 호의가 단순한 동정이 아닌 순수한 사랑에 근거했음을 깨닫게 되나, 바로 이 일로 인하여 브닌나는 시기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나를 더욱 격동시키게 되었을 것이다.
삼상1: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1:8
어찌하여 울며...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 이 말은 엘가나가 한나의 우는 이유와 먹지 아니하는 이유를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이 말은 무자(無子)로 인해 겪는 그녀의 고통을 깊이 헤아리고 그녀의 슬픔에 동참하면서 진정으로 달래는 애정 어린 위로의 말이다. 여하튼 본절은 기쁨의 가족 잔치가 되어야 할 화목 제사의 시간이 되고 말았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창조의 원리(창 2:21-25)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일부일처(一夫一妻)의 제도가 아닌 일부다처(一夫多妻)의 가정-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가정, 야곱의 가정 등에서는 항상 기쁨보다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에스더 3장 강해 설교말씀] 악의에 찬 하만의 제안(에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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