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열왕기하 5장 강해 설교문]순종한 자에게 돌아오는 축복(왕하 5:8-14)

두란노 서원 2020. 3. 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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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열왕기하 5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순종한 자에게 돌아오는 축복이라는 말씀을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순종한 자에게 돌아오는 축복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과 많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순종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순종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고 그대로 그의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모든 말을 믿고 그대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도 힘든 처지가 되면 그대로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을 즉시 행동에 옮깁니다.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요? 내가 마음이 연약하고 힘이 없으니까? 사람의 말이라도 믿고 희망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기가 힘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크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점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물질이 말라버리고 죽을 지경에 이르니까 마음이 답답하니까 더 이상 자기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니까 옛 속담의 말처럼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라는 말처럼 어떤 순간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이 어느 때에 풀릴까 지금 이 고통이 어느 때에 사라질까 하며 가는 곳이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궁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점을 보고 그 사람이 내년에 잘 될거야 하면 그것을 믿고 마음에 품고서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내년에 도달하면 그것이 금방 풀릴까요? 아닙니다. 금방 풀리지 않습니다. 점쟁이들도 자기의 미래를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힘들어 죽게 된 사람에게 더 안 된다고 하면 마음이 죽어 결국 그는 인생을 자포자기하기 때문에 위로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지금 살아갈 때에 인간의 말에 순종하고 그대로 사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습니까?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지금도 살아 계신 분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은 그분에게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작금의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면 먼저 가는 곳이 교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요즘 신문을 보면 모든 광고란에 너무나 많은 사주 운세 광고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광고에 현혹되어 결국 자기가 고민하다가 자기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삼상 28 : 5-7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다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사울은 하나님께서 직접 베냐민 지파에서 뽑아서 왕으로 세워 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원하니까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의 기도를 들어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울이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나니까 두 번째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어기면 두 번 어기는 것은 너무나 쉽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숩게 보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울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잘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실수가 나옵니까? 자기에게 위기가 오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실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상 13 : 5-7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울에게 위기가 찾아오니까 사무엘이 오기도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먼저 와서 진을 치고 있는데 사무엘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당황한 사울은 자기의 도를 넘어 제사를 드리고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사람이 당황하고 급하게 마음을 먹으면 사람이 실수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아무리 급하다 하더라도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가도 돈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라도 불법을 행하면서 사업을 한다면 그 사업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통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으며 위기의식 속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엄청난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왕의 자리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사울이 신접한 사람을 찾으라 했습니까? 자기의 손으로 모두 죽인 술객과 박수를 다시 신하를 통해 찾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자기에게 위기의 상황이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다시 쳐들어 왔는데 선지자 사무엘은 죽었고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꿈으로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답답한 것입니다. 자기의 앞일을 모르니까 사울은 너무나 당황 하고 그래서 결국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는 인생을 살다보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사울 처럼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문제를 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이 없고 하나님이 아무런 말씀이 없다 하여 점쟁이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의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이 결국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문제를 푼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너를 떠나셨고 내일 너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붙이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은 목숨을 잃게 되고 그의 아들도 죽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도 문제는 풀리지 않으며 더욱 힘들고 패가망신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살면서 어렵고 힘든 것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이길 시험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너무나 힘드니까? 한 번 점쟁이를 찾아가서 물어볼까?

 

이 기간이 언제나 풀릴까? 하고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회개하시고 다시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이 없다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갈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엘리사와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이 나옵니다.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아는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소홀히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아만이라는 사람은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그 나라에서 큰 인물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문둥병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아만 장군에게는 큰 단점인 것입니다. 너무나 위대한 장군이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괴로운 일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병에 걸려 있으면 자기 자신이 위축되어 보이는 것입니다. 모세 시대에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의 진안에 들어오지도 못했습니다. 문둥병이 완전히 고쳐져야만 다시 진안에 들어와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문둥병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나아만은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은 작은 여자아이로부터 엘리사의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아만으로는 행운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작은 것을 통해서 우연하게 일을 풀어 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민족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어느 민족에게나 구원의 손길을 뻗어서 구원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3 : 13-15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방민족이나 유대민족이나 어느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방민족에게도 구원의 길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주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작은 여자아이를 만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기회는 아주 작은 것에서 옵니다. 아주 하찮은 것 같은 곳에서 기회는 옵니다. 만약에 나아만이 그 여자아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문둥병이 낫는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작은 것으로 여러분에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작은 것을 소홀히 생각하고 큰 것만을 생각한다면 결국 기회가 왔는데도 이것이 기회인지 조차도 모르고 흘러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기회가 옵니다. 그러니까 작은 기회가 와도 우리는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작은 것을 실행했을 때에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작은 일에 충성하라 그리하면 너의 아버지께서 큰 일을 주시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작은 것을 소홀히 생각하고 큰일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크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이 사람은 큰 희망을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내가 문둥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엘리사를 찾아간 나아만이 많은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엘리사 집 앞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엘리사는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사자를 보내 나아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이렇게 말하고는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람에서는 그래도 큰 군대 장관의 사람인데 이스라엘 땅에 와서 이런 모욕을 당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나 화가 난 것입니다. 나아만의 생각은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기를 높여주고 자기의 병을 고쳐줄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박수와 술객, 그리고 이방 신들이 흥행하던 때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방법대로 엘리사도 자기의 병을 고쳐줄 것을 생각했는데 이것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기의 병을 고쳐 준다고 생각하니 화가 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을 하시지 인간의 생각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많은 실수를 하는 것이 자기의 생각대로 일이 되면 잘 되는 줄 알고 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요단 강의 강물이 너무나 더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아만은 불평을 합니다.

 

“다멕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대접하지 않은 것도 화가 나는데 더러운 강물에 자기 몸을 7번 씻으라는 말에 그는 더욱 화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요단 강에 그것도 더러운 물에 몸을 씻으라 했을까요? 하나님이 꼭 그 방법으로 선택하여 나아만에게 지시하신 뜻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요단강이 아니라 기도만 해도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보시기 위해서 요단 강에 몸을 씻으라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만의 교만을 꺾기 위해서 하나님은 명령하신 것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나님의 사람을 우습게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숩게 본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행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나님은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순종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교만을 죽이고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나아만이 돌아가려고 하자 옆에 있던 부하들이 그에게 말합니다.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함이리이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기 종들의 말을 듣고 엘리사의 명한 데로 하기로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종들도 나아만의 생각이 옳다 그렇게 하자 했으면 나아만은 영원히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종들의 충언이 있었기에 그는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충언의 말을 듣지 않고 지나가면 하나님의 역사를 느끼지 못합니다. 여러분에게 충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여 흘려버리면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종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엘리사가 시킨 데로 요단 강에 몸을 7번 씻었더니 문둥병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깨끗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니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장 큰 축복은 순종했더니 자기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했더니 큰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교만을 죽였더니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축복이 옵니까? 무조건 믿는다고 축복이 옵니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니까? 나아만이 병을 고친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에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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