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시편 110편 히브리어 강해] 왕 제사장 심판자인 메시아(시 110:1-7)

두란노 서원 2021. 5. 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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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110편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왕 제사장 심판자인 메시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신약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삼중직이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왕과 대제사장과 선지자가 나누어져 있었지만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모두 하나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만왕의 왕이며 대제사장으로 속죄 사역을 하셨으며 심판자이며 예언자이며 선지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삼중 직분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이 사역을 감당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이 삼중 직분이 모두 이루어졌으니 마지막 종말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심판주로 이 땅에 오시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로부터 영광을 받으러 오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왕 제사장 심판자인 메시아(시 110:1-7)

 

1절 레다비드 미즈모르 네움 아도나이 라도니 셰브 리미니 아드 아쉬트 오예베이카 하돔 레라겔레이카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110:1

여호와께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 '다윗의 시'란 제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내 주'는 히브리어 '아도니'를 번역한 것으로서 앞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다. 비록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긴 하지만 그리스도는 천사들보다 우월하신 분으로서 천사들을 부리시는 하나님이시다(1:13, 14).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무지를 지적하기 위해 본 시 서두를 인용 하면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왜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칭하였는지 질문하셨다(22:44). 그리고 베드로는 삼천 명을 회심시키는 설교에서 본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곧 이 말씀의 성취임을 지적한다(2:34, 35).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왕국과 하나님의 통치에 반기를 든 원수가 결국 패배할 것이며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려도 왕국은 결코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모든 대적들이 멸망할 것임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발등상'의 히브리어 '하돔'은 '짓밟'는 뜻의 히브리어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호수아는 태양이 멈추기를 기도한 후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을 붙잡아 군장들에게 그들의 목을 발로 밟도록 한 바 있다(10:22-24). 한편, 다윗은 성전이 하나님의 발등상인 언약궤를 봉안(奉安)하는 곳이라고 말하였으며(대상 28:2). 이사야는 땅이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하였다(66:1).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 임금의 우편은 그 당시 임금 다음으로 높은 자만이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비유는 바로 그 당시의 이전 관습을 연상시킨다. 하나님은 천사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우편은 모든 천사들보다 훨씬 높은 자만이 앉을 수 있고 이 자리에 앉는 자는 모든 피조물들 위에 높임을 받는 자인 것이다. 나아가 이는 메시아가 여호와의 보좌에 같이 앉아 세상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표현이다(Anderson).

2절 마테 우즈카 이쉘라흐 아도나이 미치욘 레데 베케레브 요예베이카

시 110: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110:2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 혹자는 여기서의 ''(마테)단순히 징계하기 위한 '막대기'라는 정도의 뜻으로 해석한다(Alexander). 왜냐하면 왕의 홀을 가리키는 말로는 주로 '쉐베트'가 사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45:6; 24:17; 14:5; 19:11; 21:10; 1:5; 슥 10:11 ).

그러나 문맥상 본문의 '마테'''로 번역해도 무방하겠다(scepter, NIV, RSV). ''은 여기서 메시아의 권세와 권능을 상징한다. 결국 본문은 메시아의 권세와 권능은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수여된 것임을 나타낸다(45:6; 1:8).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 본문을 하나님이 메시아께 하신 말씀으로 보는 견해와 다윗이 메시아에 대해 한 말이란 견해가 있으나, 개역 성경은 일반적 견해에 따라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는 메시아의 통치가 대적들을 쳐서 굴복시키는 측면에서 언급되는 반면, 3절에서는 주의 백성의 자발적인 헌신을 유발시키는 측면에서 언급된다(17:14 참조).

3절 암메카 네다보트 베욤 헬레카 베하드레 코데쉬 메레헴 미쉐하르 레카 탈 얄르두테이카

시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 (베욤 헬레카) - 본문의 해석에 대하여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가 분분하다. 먼저 영역본을 살펴보면 KJV'당신의 권능의 날에'(in thy day of the power), RSV'당신의 군대를 인도하여 낼 때'(on the day you lead your host), 그리고 NIV'당신의 전투의 날에'(on your day of batttle) 등으로 번역했다.

그런가 하면 이를 '당신의 대관식 날에'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Anderson). 그러나 '권능'의 히브리어 '하일''', '권력' 또는 '군대'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본절이 문맥상 5절과 연관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NIV, RSV의 번역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된다(Kidner, VanGemeren).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 히브리어 원문대로 직역하면 '새벽의 자궁으로부터 이슬 같은 당신의 청년들이 당신께로 (나옵니다)'가 된다.  본  구 절의 해석에 열쇠가 되는 단어는 '이슬'로서,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견해로 나뉜다.  

(1) 헌신적으로 메시아를 따르는 젊은 전사(戰士)들의  수효가  많음을  비유하는 표현이라고 본다(삼하 17:12 참조, Van Gemeren).  (2) 이를 수효의  많음을  강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여기며, 오히려 거룩하게 장식한 청년들의 아름다움이나 광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본다.  

(3) 아무도 모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역사(役事)  혹은  메시아의  역동적  특성을  나타낸다고  본다 (Anderson).  

(4) 이슬이 매일 새벽마다 새롭게 맺히듯이 메시야 왕국의 백성들이  나날이 새로워지며 번영과 행복을 누림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으로 본다.  이 중에서 우리는 문맥을 고려하여 (1)의 견해를 취하되, 보다 영적, 궁극적 의미에서  본문이  주께  헌신하는 성도들의 신선하고도 생기 있는 모습을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2), (4)의 견해  또한 수용하기로 한다.

4절 니쉐바 아도나이 베로 이나헴 아타 코헨 레올람 알 디브라티 말키 체데크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 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 '맹세하다'에 해당하는 '니쉐바'는 '만족시키다'의 뜻인 '쇼브아'의 니팔형 완료 시제이.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내 장막 사람의 말이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었는가"(3:31)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배부르'는 말이 본문의 '맹세하다'는 말과 같은 히브리어이다.

그리고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 좇기를 그쳤음이니라"(4:10). 이상과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은 일단 만족하신 사안(私案)에 대해서는 이를 결코 변경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14:18).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彷佛)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었다(7:3).

따라서 그의 인물됨에 대해서 추측 이상의 결실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그리스도의 현현(顯現)이었다고 주장하며 초대 교회의 교부인 오리겐(Origen)은 그가 천사였다고 말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제사장 임명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제사장이라 - 이 세상의 제사장은 몇 년 동안이나 또는 일생 동안만 그 역할을 감당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은 영원하므로 현재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우리 구원의 성취 여부의 관건이 되는 지극히 중요한 사안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중보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영원한'의 히브리어 '레올람'은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곧 영원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창 21:33의 기록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영존(永存)하시는 신성(神性)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5절 아도나이 알 예미네카 마하츠 베욤 아포 멜라킴

시 110: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110:5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 앞의 ''는 메시아를, 뒤의 ''(아도나이)는 성부(聖父) 하나님을 각기 지칭한다. 그리고 '우편'16:8; 109:31; 121:5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보호와 조력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본문은 여호와께서 대적들을 파하기 위해 싸우시는 메시아를 혼연 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도우신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메시아 혹은 하나님 중 누가 우편에 계시느냐 하는 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1절 주석 참조). 이 두 분은 근본적으로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그 노하시는 날에(베욤 아포) - 문자적 의미는 '그의 분노의 날에'이다. 이는 현실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극적이고도 결정적인 개입을 암시하는 날을 의미한다(2:5; 21:9; 13:9; 2:3). 이 날에는 주께서 열방을 심판하실 것이다(2:9; 7:8; 9:8; 76:9; 19:11-21). 현실에 관영하는 죄악과 모순을 제거하고 남은 자들의 구원을 확정할 이 날은 다분히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

한편, 이 날은 무조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에게는 구원을, 이방에게는 심판을 행하시는 날이 아니다. 오직 참다운 영적 이스라엘에게만 구원이 선포되고 다른 자들에게는 심판이 선언될 것이다.

6절 야딘 바고임 말레 게비요트 마하츠 로쉬 알 에레츠 라바

시 110: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110:6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말레 게이오트) - 문자적으로는 '시체를 채우다(쌓다)'이다(heaping up the dead, NIV). 영역본 KJV는 여기에 '그곳'(the places)이라는 말을 첨가했으며, 어떤 학자들은 '게이오트'위에 '골짜기'를 뜻하'가이'가 중음(重音) 탈락(haplography)된 것으로 본다. 그런가하면 제롬(Jerome)'시체'대신 '골짜기'를 넣어 읽었다. 어쨌든 본문은 메시아의 심판의 철저성과 엄정성을 엿보게 한다.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시며 - '머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쉬'는 집합 명사이다. 혹자는 이 단어를 단수로 보고 여러 민족을 통괄하는 제국의 왕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여러 민족의 열왕들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야의 심판이 우주적이어서 지상의 모든 나라들에게까지 임한다는 사실이다(Alexander).

7절 미나할 바데레크 이쉐테 알 켄 야림 로쉬

시 110: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110:7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 어떤 주석가는 살육으로 인한 피가 시내를 이루자 정복자 되신 그리스도가 이를 만족하게 마신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것이 비유적 표현이라 할지라도 피를 먹지 말라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적절한 것이 못 된다. 또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을 당할 것임을 가리킨 것으로 본다.

문맥상 이것 역시 적절치 않다. 이 말씀은 원수들을 추적하되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철저히 파하기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도 않고 흐르는 시냇물에 잠깐 목을 축이고는 곧장 적()을 쳐부수는 내용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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