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버이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거룩한 삶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목: “그리스도의 편지” (고후 3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고후 3:1~18
요절: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인데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고후 3:3)
주제: 성도의 마음 판에 쓰여진 그리스도의 편지로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자
5월은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제5계명대로 우리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을 새롭게 주일로 삼기를 바랍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는 말씀은 모세의 두 돌판에서 오른 판에 기록된 사실이 의미가 있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랍비며 미국의 유대교 신학교(Jewish Theological Seminary) 교수였던 헤셀(Abraham Joshua Heschel, 1907-1972)는 말하기를 부모 공경의 계명은 1-4 계명과 6-10 계명을 잇는 계명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부모님 공경으로 사랑하며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계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56년 5월 8일부터 “어머니의 날”을 실시하다가 '아버지의 날'이 거론되자 17회 차까지 어머니날을 기념하다 1973년 5월 8일부터는 '어버이날'로 바꾸어 지켜오고 있습니다. 양주동(梁柱東, 1903~1977, 시인, 문학평론가, 국문학·영문학자) 선생님의 “어머니의 마음”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그립니다.
1.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2.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3.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한국 교회에서 “어머니 주일”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1930년 구세군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어머니 주일의 정신을 일반 대중에게도 전한다는 의미에서 1955년 5월 8일(주일)을 “어머니 날”로 제정, 공포하였습니다. 1960년 어머니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개칭하였습니다. 해방 후 “어머니 날”에 널리 부른 노래가 바로 “높고 높은 하늘이라 Mother's Love”로 1946년에 윤춘병(尹春炳 1918~2010) 목사님 작사에, 박재훈(朴在勳 1922~ 캐나다 토론토 큰 빛 교회 원로) 목사님의 작곡하신 노래는 《어린이 찬송가, 1953》 99장에 발표된 이후 널리 애창되어, 마침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채택되어 어머니 날에 널리 불려졌습니다. 윤춘병 목사님은 평남 중화에서 태어나셨는데 저의 큰삼촌 벌 되십니다. 오소운 목사님에 의하여 이 노래를 작사하게 된 배경을 듣게 됩니다. 윤목사님은 평양 요한 학교, 중앙신학교 등을 거쳐 감리교 목사가 되셨고 기독교 대한감리회 동부연회 초대 감독으로 은퇴하셨습니다. 8.15 해방을 맞은 그 해로 윤목사님께서 월남을 하셨습니다.
서울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건만 친구 하나 없는 그분에겐 허허벌판과 같았습니다. 영양실조에다 과로로 인해 병석에 눕고 말았으나 간호해 주는 이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약 한 첩을 쓰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병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컸습니다. 조용한 방에 혼자 누웠노라면 가슴을 깎는 고독에 그분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누구 하나 따뜻하게 찾아주는 이 없는 나의 외로운 병상. 잠들면 꿈속에서 고향 길을 헤매었고 깨어나면 생각 속에 고향 길을 오고 갔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향 길을 오가노라 그의 마음은 창 밖으로 흐르는 구름을 따라 38선을 넘나들었습니다. 윤목사님이 38선을 넘어오던 날, 마을 뒤 읍으로 가는 큰길 가에는 행인들이 쉬어 가는 늙은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 소나무 밑에까지 따라오신 어머님은 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시며 “인제 가면 언제 오는 거냐?” 목 메인 소리를 남기고는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 아들의 뒤를 지켜보시던 모습이 병상에 누운 내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어머님께서 내가 병들어 누운 것을 아시면 얼마나 애타 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창밖에 흐르는 흰 구름을 따라 고향 하늘을 더듬었습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하늘보다 더 높고 더 푸른 건 어머님 사랑. 어머님 은혜야말로 하늘처럼 넓고 하늘처럼 다정해서 1946년 4월에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 지은 노래랍니다.
작곡자 박재훈(朴在勳, 1922~ ) 목사님은 1922년 강원도에서 박창숙의 4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보통학교를 마치고 평양으로 가서 요한 학교에 입학, 장수철, 윤춘병 등과 함께 1943년 3회로 졸업하셨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제국 고등 음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곧 학도병으로 끌려갔습니다. 훈련소에서 도망쳐 귀국, 평남 강서군 문동 국민학교의 교사로 교편을 잡은 그는 이유선(李宥善, 1911-2005) 교수에게 작곡법을 배웠습니다. 1946년 4월에 월남하여 서울 용산에 있는 금양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46년 그동안 작곡한 동요들을 모아《일맥 동요집》을 출판하였습니다. 바로 이 해에 어머니의 은혜를 작곡해서 발표했습니다. 그는 대광고등학교의 음악교사로 자리를 옮긴 후, 야간으로 새로 설립된 중앙신학교에 입학 제1회로 졸업하셨습니다. 6・25 사변 때에는 해군 정훈음악대에 복무하였습니다. 전쟁 후에는 기독교방송 음악과장, 영락교회 찬양대 지휘자로 일하였습니다.
1959년 미국에 유학 간 그는 웨스트민스터 합창 대학, 크리스천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귀국하여 한국찬송가위원회 간사로 있으며 음악 전문위원으로서《개편 찬송가, 1967》편집을 도왔습니다. 장수철이 세상을 뜬 후 그의 후임자가 되어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이끌고 북미 지역을 순회 연주하기도 하였습니다. 1965년부터는 숭전대학, 장로회 신학대학, 서울 신학대학, 서라벌 예술대학,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등의 강사로 출강하였으며 캐나다로 이민하여, 1982년 회갑을 넘긴 그는 미주 한인 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84년 토론토에 큰 빛 장로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다가 1990년 정년 은퇴하셨습니다. 그 후 임현수 목사님께서 부임하셔서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셨습니다. 1997년부터 150회 방문하여 18년간 북한 돕기에 최선을 다하다가 “김일성 대신 하나님을, 김정일 대신 예수님을 믿고 당 대신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설교가 문제가 되어 2015년에 갑자기 억류되어 2년 7개월간 독방에서 고생하시다가 캐나다 정부의 노력으로 석방되어 지금은 은퇴하시고 인천 송도에 살고 계십니다. 박재훈 목사님은 이렇게 회고하십니다.
“매해 어머니날이 되면 한국교회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미 ”어머님 은혜“는 1946년에 윤춘병 감독님이 서울에서 작사하고 내가 작곡한 노래다. 1938년 내가 평양 요한 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윤형은 장수철 형과 함께 3학년이었다(중략). 해방 후… 남하하여 살던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의 형님 박재봉 목사께서 한강 건너 흑석동에 살고 있었기에 나의 안내로 우리는 형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둘이서 전차를 타고 노량진 쪽으로 가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하던 중, 5월의 어머니 주일이 다가오므로 어머니의 은혜를 담은 노래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전차에서 내려 흑석동 고개를 넘으면서 어느 양지바른 곳에 이르러서 잠깐 쉬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윤형이 무엇인가 종이에 긁적긁적하더니 “이게 노래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면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어머님 은혜」이다.” [내 마음 작은 갈릴리] : 박재훈 지음, 서울 성실문화사, 2002. 41-42쪽.]
1.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2.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하나 있지.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아
3.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님의 그 사랑 거룩한 사랑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드리자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의 날 Mother’s day”이며 6월 셋째 주일은 “아버지의 날 Father’s day”로, 7월 넷째 주일은 어버이날(Parents’ day)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성경에 보면 노아의 아내, 이삭의 아내 리브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 등 모범적인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잠언 31장에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남긴 “현숙한 여인 a virtuous woman” 모습이 장하고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르무엘은 1) 솔로몬의 별명 2) 히스기야 3) 솔로몬 왕이 추구한 이상적인 왕(ideal king)이라고 합니다.
현모양처의 어머니 모습은 22가지 열거하는데 알파벳 순서로 기록합니다.
(1)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10절)
(2) 남편의 마음은 그녀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11절)
(3) 그녀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12절)
(4) 그녀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13절)
(5)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14절)
(6)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15절)
(7)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16절)
(8)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17절)
(9)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18절)
(10)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19절)
(11) 그녀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20절)
(12)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녀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21절)
(13) 그녀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22절)
(14)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23절)
(15) 그녀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24절)
(16)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25절)
(17)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녀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26절)
(18) 자기의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27절)
(19) 그녀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녀의 남편은 칭찬하기를(28절)
(20)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29절)
(21)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0절)
(22)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31절)
하나님을 경외하며 칭찬받는 현숙한 어머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고린도후서 3장을 통해 “사랑과 승리의 직분”을 강해합니다. 새 언약의 직분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epistle)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서신(고후 3:1-5)
1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을 추천하기 시작하겠느냐? 혹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너희에게 추천하는 서신을 보내거나 너희로부터 추천하는 편지를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2 너희는 우리의 마음에 쓰여 있는 우리의 서신으로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인데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으나 5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1-2절. 추천(推薦)한다는 말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스스로 추천한다는 뜻입니다. 추천서(letter of recommendation)를 부친다는 말은 타교회의 추천서를 그들에게 부친다는 뜻이고, 그들로부터 추천서를 받는다는 말은 자신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추천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오늘날도 어떤 일꾼을 신임하려면 목회자의 추천서가 필요합니다. 일꾼은 한 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다른 교회들에서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물론 추천서도 다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쓴 추천서는 믿을 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교회의 인정받는 충실하고 모범적인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우리의 서신(편지)이라”는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증거하고 그의 일꾼 됨을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추천서는 없습니다. 이것은 추천서 이상입니다.
추천서는 그의 인격과 삶에 대해 증거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 목회자의 인격과 삶에 대해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1년 6개월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기 때문에(행 18:11) 고린도 교인들은 그의 인간 됨됨이와 그의 충성된 일꾼 됨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추천의 편지는 종이에 쓴 것이 아니고 바울 일행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 그것은 종이에 쓴 것보다 더 신뢰가 가며 생생합니다. 고린도에서의 전도 사역은 종이에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바울 일행의 마음 속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종이에는 쓰여져 있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는 생생히 기록되어 있으며, 마음속에 쓰여 있다고 해서 다른 이들이 확인할 수 없는 은밀한 서신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증거할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공개된 편지입니다.
3-5절.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편지, 즉 그리스도께서 추천하시고 확증하시는 편지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추천서이었습니다. 그 추천서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성신님(Holy Ghost)께서는 그들 속에 살아서 역사하시며 증거 하십니다. 그 편지는 돌판이나 종이에 쓰인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판에 쓰인 것입니다. 성신님께서 쓰신 이 추천서는 바울의 마음판에도 쓰였고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판에도 쓰였습니다. 마음판에 쓰인 그리스도의 추천서는 돌판이나 종이에 쓴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편지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이 같은 확신이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선한 것이 다 하나님께로 났고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우리 속에서 난 것처럼 스스로 만족하거나 자긍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모든 선한 사역과 그 열매는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새 언약의 일꾼(고후 3:6-18)
6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새 상속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시되 글자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나니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
7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무에는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무도 영광이 될진대 의의 직무는 영광이 더욱 뛰어나니라. 10 영광스럽게 된 것조차도 이 점에서 영광을 갖지 못한 것은 뛰어난 그 영광으로 인함이라. 11 없어진 것에도 영광이 있었을진대 남아 있는 것에는 더욱 영광이 있느니라. 12 그런즉 우리에게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우리는 매우 분명한 말을 사용하고 13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미 사라진 것의 마지막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모세가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것 같이 하지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가려졌으니 이는 이 날까지도 옛 상속 언약의 말씀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베일이 벗겨지지 아니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라. 그 베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졌으나 15 이 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베일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도다.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17 이제 주님께서는 그 영이시니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거기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곧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6절. ‘새 언약 New Covenant’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예레미야로 미리 말씀하신 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이것은 메시아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예언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새 언약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자리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눅 22:20).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대조됩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자들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옛 언약 곧 구약은 율법의 형식으로 주어졌고 새 언약 곧 신약은 복음의 형식으로 주어졌습니다. 구약은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강조했으나, 신약은 ‘믿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강조합니다.
구약에도 의식법 곧 제사 제도나 성막 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증거 되어 있었지만, 신약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증거 됩니다(요 1:17). 옛 언약의 일꾼들은 모세와 대언자(선지자)들과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또 새 언약의 일꾼 된 것은 의문(儀文 letter), 즉 율법 조문으로 된 것이 아니고 영으로 말미암은(of the spirit)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죄인을 정죄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죄로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십니다. 요 6:63, “살리는 분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롬 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성령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시니라](KJV).”
7-8절. 복음 사역은 단순히 사람의 말과 글의 사역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의 사역입니다. 전도자의 직분은 하나님 영의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말씀 사역자들은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의 영의 사역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 사역을 단순히 말로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영의 이끌리심과 도우심을 힘입어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사역은 영광스러운 사역입니다. 죽게 하는 율법의 직분도 영광이 있었다면, 살리시는 하나님의 영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 것이겠습니까!
9절. 율법의 역할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고 죄를 깨닫게 하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중요한 역할은 죄를 깨닫게 하고 심판을 선언하는 사역, 즉 정죄(定罪))의 사역입니다. 율법의 사역은 정죄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칭의(稱義)의 진리입니다(롬 3:21-24).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받는 의의 소식입니다. 복음의 일꾼들은 죄인을 정죄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의를 선포합니다. 복음 사역은 칭의의 사역입니다. 그것은 죄인들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입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스러웠다면 의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10-11절. 복음 사역은 영광스럽습니다. 율법의 사역도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 사역은 더 큰 영광이 있습니다. 율법의 영광은 없어질 영광이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역할의 한계입니다. 구약과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효과적이었습니다. 구약의 율법 체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영광은 한계가 없고 폐지되지 않는 영속적인 영광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신 완전한 의(義)의 영광입니다.
12-16절.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려와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할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출 34:29-35). 그러나 그는 말을 마친 후 그의 이마에 수건을 써서 그 없어질 광채를 가리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장차 없어질 것이며 앞으로 나타날 참된 실체를 예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구약시대에는 그 수건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의식적 율법의 내용들은 그 내면에 감추어진 메시아의 사역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수건이 벗겨져야 할 때입니다. 복음 사역은 수건을 쓰지 않는 사역, 즉 가려진 것이 없는 사역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은밀하지 않고 밝히 드러난 진리, 공개된 진리이며, 그 영광은 없어지지 않는 영속적인 영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읽을 때 아직도 수건을 쓰고 있습니다. 그 수건은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상징들에 대한 무지와 거기서 비롯된 잘못된 율법주의 사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가톨릭 여신도들도 면사포를 쓰는데 이것도 주님 안에서 벗어야 합니다.
17절.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신적 본질에 있어서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주님의 영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들의 죄를 씻으시고 죽은 영혼들을 살리실 때 죄로부터 그리고 율법과 그 속박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18절.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은밀히 감추인 것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믿을 때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됩니다. 지금은 그분의 영광을 본받는 작은 빛에 불과하지만, 점점 더 그분의 거룩한 형상을 본받으며 마침내 그분의 영광의 형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롬 8:29-3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서신(편지) 임을 항상 기억하십시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의 영안에서 하늘나라의 자유를 위해 힘차게 사십시다. 고린도후서 3장은 특히 신약시대의 특징을 증거 합니다. 구약시대는 율법과 정죄의 시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영과 의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구원의 서정에 모두 참여하여 복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자녀로서 부모님에게 효도를 다하게 하시며, 부모로서 자녀들을 효자, 효녀가 되게 하며, 말씀으로 양육하게 하옵소서. 성경책을 늘 읽고 가르치고 묵상하는 교사가 되게 하시사 자녀들에게 기도하시는 부모, 성경말씀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는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이런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가정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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