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중지시켰습니다. 그리고 대신 숫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림(창 22:1-24)
창세기 22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명령을 하신 것과 그가 그 명령을 순종한 것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선언하신 것을 증거하며, 또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자손들에 대해 조금 기록한다.
[1-2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런 일들, 즉 이삭이 출생되어 자람, 이스마엘을 내보냄,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음 등의 일들이 있은 후, 아마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그에게 명령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번제는 제물을 온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이다.
그 명령은 아브라함이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지나쳐 보이는 명령이었다. 이삭은 그가 약속하신 아들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로 인해 근심하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 21:12)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귀하고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스러운 아들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자이시며 그의 명령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오직 순종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가감하지 말고(신 4:2; 12:32),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신 5:32) 지켜야 하고 행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이 명령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포기할 수 있어야 함을 교훈하는 뜻이 있다. 주 예수께서도,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4:26-27, 33).
순종은 온전해야 한다. 부분적 순종은 불순종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울 왕에게서 생생하게 증거되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왕 아각과 또 양과 소와 어린양 중 가장 좋은 것을 남겨두었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고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삼상 15:9-11). 또 사무엘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지적하였다(삼상 15:22-23).
[3-4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묵묵히 순종하였다. 그는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무엇을 질문하거나 대항하지 않았다. 그는 지체치 않고 그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 즉 종들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즉 모든 준비를 갖추고 하나님의 지시하신 곳으로 떠났다. 제삼일에 그는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보았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까지는 삼일 길이었다. 모리아산은 바로 예루살렘이다. 역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아브라함이 거주한 브엘세바에서(창 22:19) 모리아산 즉 예루살렘까지는 지도에 보면 약 70km의 거리이다. 그 정도면 서울 광화문에서 청평이나 용인까지의 거리이다. 그것은 긴 여행이었다. 또 그 기간은 아브라함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순종하며 자신의 감정을 이겨내었다. 그의 순종은 일시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삼일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5-8절]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나와 아이 곧 우리가(원문)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갔다가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19는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은 번제 나무를 취하여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였다. 번제할 나무를 진 것을 보면 이삭의 나이가 15살은 되었을 것 같다. 그때 이삭은 말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당황스런 질문을 듣게 된 아브라함은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했다.
[9-10절]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가지런히 놓은 후 이삭에게 말했을 것이다. “아들아, 하나님이 너를 번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았다. 이삭은 아버지께 반항한 것 같지 않다. 아버지처럼 이삭도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것 같다. 아브라함은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막지 않으셨다면, 그는 아들을 죽였을 것이다.
[11-12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것은 다급한 음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실제로 이삭을 죽이기를 원치 않으셨다. 하나님의 뜻은 이삭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단지 아브라함의 마음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시험하여 무엇을 확인하신다는 것은 인간적 표현 즉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 표현이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중심을 아시지만, 이 일을 통해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 드러내셨다.
하나님의 사자는 말씀하시기를,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다.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라는 표현은 그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암시한다.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종종 하나님의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은 충분히 검증되었다. 비록 그가 독자 이삭을 지극히 사랑했지만, 그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그를 사랑했고 그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였다. 이것이 참 경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며 그의 명령은 인간이 순종해야 할 절대적 명령이다.
[13-14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해 이삭 대신 한 숫양을 준비하셨다.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뿔이 수풀에 걸린 한 숫양을 보았다. 그는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렸다. 아브라함은 그 땅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보시리라 혹은 준비하시리라”는 뜻이다. 그 후에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15-19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하나님의 사자의 두 번째 음성은 복의 선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면서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믿을 만하지만, 특히 맹세하며 선언하신 말씀은 더욱 그러하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복을 선언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였기 때문이다. 18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복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창케 하시고 복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시고 그 대적의 문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 자손이 혈통적으로, 수적으로, 세력적으로, 또 영적으로 번창할 것을 뜻한다. 또 대적의 문을 얻는다는 말은 대적들을 정복한다는 뜻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메시아 예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해 온 세상이 복을 받을 것을 뜻한다. 과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은 죄와 사탄의 권세와 죽음에서 구원을 받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 복이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신약교회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20-24절]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아키카)[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므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이 일들 후에 아브라함은 형제 나홀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의 아내 밀가는 여덟 아들을 낳았다. 우스는 욥이 살았던 땅의 선조 같고(욥 1:1) 브두엘은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를 낳았다. 또, 아마 밀가가 죽은 후, 나홀은 르우마를 후처로 얻어 네 아들을 더 얻었다.
본장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본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이제 그를 통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복을 얻었다.
둘째로, 아브라함의 순종을 본받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예로 우리에게 교훈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지혜와 능력, 그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세상의 가장 귀한 것보다 더 귀히 여기고 그의 모든 명령을 즐거이 순종하자.
셋째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복된 길임을 알자. 예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높임을 받으셨다(빌 2:8-11). 순종에는 큰 상이 따른다(계 22:12). 우리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큰 복을 누리자.
[출애굽기 14장 성경 좋은 말씀] 홍해의 기적(출 1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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