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장에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하고 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직분을 받은 분이다. 구약에서는 삼중 직분이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모두 받으셨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을 모두 담당하셨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우월하신 분이다.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모세도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구원받았다. 애굽에서 누렸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오늘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을 생각하라(히 3:1-6)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2 그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히3: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히3: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3: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히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유대인 가운데 모세를 존경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들은 스스로 모세의 제자 됨을 자랑한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모세를 존경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한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은 구속사 관점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요9: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유대인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교만하게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큰 인물이다. 예수님은 모세 정도의 위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본문은 증거 한다. 변화산의 사건(마 17:1-8)만 보더라도 예수님이 모세보다 우월하심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1. 그의 충성을 생각하라(2). 우리는 모세의 충성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으며 자신의 맡은 일에 충성한 사환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환으로 충성한 모세 정도가 아니고 아들이면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7-8). 그것이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우리는 그의 충성을 깊이 생각하여 우리의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자(고전 4:2)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교회에서 충성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게 해야 한다.
2. 그의 영광을 생각하라. 모세에게도 영광이 있었다. 모세가 율법을 받아서 내려왔을 때 사람들이 그의 얼굴의 광채 때문에 눈이 부셔서 그를 쳐다볼 수 없어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율법을 가지고 있었던 모세도 이렇게 광채가 났는데 하물며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은 어떠하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출 34:29-35).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영광도 있었다. 그러나 모세의 영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 뒤에 받으신 부활과 승천의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을 참고 나아가자(롬 8:18).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고난을 가져가셨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자.
3. 그의 존귀함을 생각하라. 모세의 존귀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로서 존귀하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존귀함과 하나님 우편에 않으시는 존귀한 분이시다. 불신앙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용서 못하실 죄는 바로 불신앙의 죄이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이다.
4. 마음을 강퍅하게 말라(7-11).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 가게 하시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는 광야의 표적으로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리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모세를 원망하며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겼다. 이런 불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강퍅함이 위험하다. 예수님은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육체로 굶어있는 자들을 배부르게 하셨다. 이런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 만나가 하늘에서 내린 것을 연상하게 만들려고 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린 생명의 떡이다. 만나를 먹으면 죽지만 생명의 떡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생한다.
5.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지 말라(12-14).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라라”(약 4:8).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산다는 것은 곧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그룹을 통해서 보호하셨다. 생명 과실은 인간이 임의로 먹지 못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 먹을 수 있다. 구속사 관점에서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이다. 엡 4:18을 보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들을 죽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까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항상 곁에 계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6. 순종하라(16-19). 애굽 땅에서 나와서 홍해도 건넜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한 사람들이 불순종함으로 광야에서 다 죽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안식할 그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나? 그것은 그들의 불순종 때문이다(요 3:36). 불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다.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죽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불순종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는데 섬김으로 불순종했다.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켰다. 우리는 순종함으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자. 예수님 안에서 평안과 안식이 있다.
7. 약속에 참예하라(히 3:15-19) 위대한 약속을 받았을지라도 이에 참예하지 못한다면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약속에 참예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받는 약속을 하셨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때 천국 백성으로 참여할 수 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가 약속을 받은 자만 되지 말고 참예하도록 힘쓰자. 광야에서 엎드러진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약속에 참예하기 위해서는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약속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8. 결심과 기도
1) 늘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2) 성도들을 위하여 올바른 믿음이 되게 하소서.
3) 주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하소서.
[여호수아 19장 매일 말씀] 단 지파의 의미(수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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