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욥기 7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인생의 허무를 토로하는 욥(욥 7:1-10)

두란노 서원 2021. 11. 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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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7장에서는 욥이 인생의 허무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환난이 찾아와서 하루아침에 바닥을 치니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라도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하루하루를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살아가는 것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허무를 토로하는 욥(욥 7:1-10)

 

1절 할로 차바 레에노쉬 알 알레 아레츠 비키메 사키르 야마이브

성 경: [욥7:1]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 `전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바'`군대',`전쟁', `부역'(40:2)등의 뜻을 가진다. 본문은 군대에 징용된 자가 무거운 고역을 강제적으로 해야 하듯 인간 역시 고역스러운 삶을 영위해 나가야 되지 않느냐는 의미이다. 한편 여기에서 욥은 인생 일반을 취급함으로써 자신의 현재 고통스러운 삶의 정황을 직접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인생 일반의 고통이라기보다는 현재 자신의 고통의 심각성이라 할 수 있다. 즉 그의 현 상황은 군인이 강제적(의무적)으로 힘든 고역을 수행해야 하듯, 자신에게 주어진 재난(1:13-1 9)을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욥의 현재 상황은 주인(하나님) 에게 고용되어 하루의 노동량(욥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를 `재난'으로 볼 수 있겠다)을 묵묵히 감당해야만 하는 `품군'(본절 하반부)이나 다름없었다.

2절 키에베드 이쉬아프 첼 우키사키르 이카베 파알로

성 경: [욥7:2]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 고대 히브리 사회에 있어서 품꾼의 노동 시간은 엄격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날이 밝거나 해가 뜰 때 일을 시작하여 해질 무렵에 그것을 끝냈다. 따라서 품꾼에게 있어서 해가 저무는 것은 단순히 일의 종결 시간을 뜻하는 것 이외에 고역스러운 노동에서 해방되어 안식과 평화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여기서 욥은 고난의 때가 속히 끝나기를 소망하는 자신의 심경을 노동시간이 속히 끝나기를 염원하는 품꾼의 심경에 비유하고 있다.

3절 켄 하니할리티 리 야리헤 샤비 비렐로트 아말 미누 리

성 경: [욥7:3]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내가 공허한(무익한) 달들을 부여받았다'(NIV, I have been allotted months of futility)이다. 여기서 욥이 자신의 지난날들을 `무익한' 것으로 묘사한 이유는 고난을 타개하려는 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재난이 자신에게 닥친 이후로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산과 소유는 여전히 상실된 채로 있었으며 자손 또한 다시 낳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육체의 질병은 더욱 가중되고(5),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친구들과의 관계마저 갈등을 겪게 되었다. 따라서 욥은 이제 절망의 벽에 부딪혀 지나간 날들이 마치 열매 없는 무용지물과 다름없었음을 토로하고 있다.

4절 임 샤카비티 비아마리티 마타이 아쿰 우미다드 아레브 비사바이티 니디딤 아데 나셰프

성 경: [욥7:4]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전신에 퍼진 피부병(2:7,8)으로 인해 전전반측(轉轉反側)하는 욥의 참담한 심경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밤은 휴식과 평안의 시간이요, 잠은 하루 동안의 피로와 고통을 풀어주는 묘약(妙藥)이다. 욥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시간들이 여느 사람보다 더욱 필요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부분의 낮 시간 동안에 친구들과 변론함으로써 심신이 지쳐 있었을 것이며, 또한 추한 몰골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속히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밤은 더 큰 형극의 시간이었다. 여느 병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의 질병은 밤에 더욱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13-15). 이러한 육체적 고통 이외에도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지 않나 하는 영적 회의와 갈등 때문에도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5절 라바쉬 비사리 리마 비기쉬 아파르 오리 라가 바이마에스

성 경: [욥7:5]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 여기서 `구더기'(라마)는 흰색의 길고 미끄러운 형태의 벌레로서(Quain's, Dictionar of Medicine, vol. 1, p. 512), 욥의 피부가 곪은 데에서 기생한 것으로 추측된다(17;14). 그리고 `흙 조각'(1) `'(공동번역), (2) `피부로부터 나오는 흙덩이'(Keil & Delitzsch), (3)`먼지'(KJV, dust ; RSV, dirt), (4) `상처의 딱지'(NIV, scabs ; Lange, `굳어진 꺼풀')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여기서는 기와 조각으로 긁고(2:8), 종기가 나서 지저분하게 된 욥의 몸을 비유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편 본문의 묘사에 근거해 볼 때 욥의 질병의 상태가 상당히 악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 - 이는 욥의 피부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가(RSV, hardens) 다시 터지는 것을 가리킨다. 욥은 자신의 몸에 피부병이 발병한 이래로 여러 달이 흐르는 동안(3) 이러한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쳤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문을 원문에 따라 정확히 번역하면 `나의 살갗이 깨어진다. 그리고 곪는다'인데, 이것 역시 종기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곪아 터지고 그 위에 새 살이 돋아나는 피부병의 일반적 증상을 가리킨다.

6절 야마이 칼루 미니 아레그 바이킬루 비에페스 티키바

성 경: [욥7:6]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베틀의 북 - 원문을 직역하면 `베틀 짜는 사람의 북'(KJV, NIV, RSV, a weaver's s-huttle)이다. 이것은 베를 직조할 때 실을 엮는 틀로서 대단히 빠르게 좌우로 움직인다. 이는 찰나(刹那) 같은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욥의 고백은 4절의 말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4절에서 욥은 자신의 날이 더디 간다고 토로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병중에 있는 자들은 그 기간을 매우 길게 느끼기 마련이다. 따라서 본절은 세월의 빠름에 그 초점이 있기보다는 그 덧없음(허무)에 초점을 맞추고 해석하여야 한다. , 본절에서 욥은 아무런 성과(회복) 없이 보낸 지난 몇 달(3절)이 자신에게는 전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절망과 무가치의 시간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본절 하반부).

7절 지코르 키 루아흐 하야이 로 타슈브 에니 리리오트 토브

성 경: [욥7:7]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 `호흡'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바람'(KJV, wind) `공기', `'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짧은 기간을 상징함과 아울러 허무와 덧없음을 의미한다(78:39; 1:14; 41:29; 5:13). 아마 욥은 자기 병이 치유 불가능하다고 예견했을 것이며, 따라서 죽음만이 그것을 모면하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부터 욥의 변론의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 6:1-7:6까지의 욥의 변론은 엘리바스와 그 친구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으나 본절에서부터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전자가 대화(dialogue) 형식이었다면 후자는 독백(soliloquy) 형식을 띠고 있다.

󰃨 복된 것 - 좁게는 (1) 그의 질병이 완치되는 것(2:8, 9), 넓게는 (2) 그의 건강, 소유(1:3), 자손(1:2) 등이 이전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5장에서 엘리바스가 욥에게 약속한 축복(5:17-27)과 동일하다. 그러나 욥의 현재 상황은 그 같은 축복을 회복할 가능성이 전무(全無)하였다. 이로써 욥은 끝없는 절망의 심연에 빠지게 되었다.

8절 로 티슈레니 엔 로이 에네카 비 비에네니

성 경: [욥7:8]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나를 본 자 - 원문을 정확하게 옮기면 `지금 나를 보는 자'(NIV, (the eye) that now see me)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를 보아왔던 자'(KJV, him that hath seen me)로 번역하는 것이 전후 문맥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전자의 견해를 취할 경우 본문은 욥을 위로하러 온 친구들을 가리키며, 후자의 견해를 따를 경우는 지금까지 욥을 알고 지내왔던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 전절(前節)에서 욥은 친구들과의 사별(死別)을 토로한데 이어, 여기에서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토로하고 있다. , 욥은 죽음이 현세에 있어서 인간관계의 단절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도 종결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죽음을 모든 것을 종결시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 같다. 한편 우리는 본문을 `죽음의 종결성'이란 측면에서만 살필 것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욥의 갈망'이란 차원에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 욥은 자신에게 재난이 닥친 이후로 줄곧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해 왔다. 이러한 그의 염원은 "내가 친히 그(하나님)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19:27)라는 고백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현재 욥의 상황은 이러한 그 의심적 염원 상태와 정반대로 전개되어 구원의 여하한 가능성 조차 상실되어 가고 있다. 육체적 질고가 악화되어 가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신뢰도 희박해져 간다. , 현재 욥은 영적. 육적 생명의 위급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9절 칼라 아난 바옐라크 켄 요레드 쉬올 로 야알레

성 경: [욥7:9]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 `음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올'은 `비었다', `깊다'를 의미하는 동사 `솨알'에서 유래하였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음부'를 죽은 자의 영혼이 내려가는 어두운 지하 세계로 인식했던 것 같다(37:35; 16:30, 33; 55:15; 5:14). 그런데 본절에 기초해 볼 때 욥이 음부 세계에 관해 어떤 관념을 가졌는지 정확히 추측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본서는 그 분류상 시가 문학(詩歌文學)에 속하며, 따라서 죽음과 음부 세계에 대한 욥의 묘사 역시 교리적 성격보다는 시적. 비유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은 음부에서 지속, 고정되며 현세로 되돌아오거나 다른 세계로 이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죽음과 음부 세계에 대한 욥의 이러한 관념은 죽은 이후에도 영혼이 지속된다고 믿은 고대 팔레스틴, 특히 애굽인들의 내세관과도 밀접히 연관된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자의 영혼이 현세를 왕래한다고 믿은 반면, 욥은 이 양자(兩者) 사이의 단절성을 믿었다는 측면에서 그의 내세관은 이방의 그것과 구별되며, 신약의 내세관의 한 토대를 형성했다 하겠다(마 18:9; 눅 16:19-31; 20:10).

10절 로 야슈브 오드 리베토 비로 야키레누 오드 미코모

성 경: [욥7:10]

주제1: [계속되는 욥의 답변(2)]

주제2: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하는 욥]

󰃨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 음부 세계와 현세와의 단절성을 의인법적 표현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8절 주석 참조). 고대 팔레스틴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생전에 그가 살던 집이나 아끼던 물건에 도로 돌아온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애굽인들은 영혼이 육체에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들이 미이라를 만들어 무덤 속에 보관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욥은 이방 세계에 살았으나 그들의 이 같은 종말관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관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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