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창세기 5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아담의 족보 930세에 죽음(창 5:1-5)

두란노 서원 2021. 4. 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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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5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아담의 족보 930세 죽음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가정을 이루면서 살았지만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극을 보아야 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자식 때문에 슬픔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아담은 930세를 살면서 아들과 딸들을 낳고 죽게 됩니다. 인간의 죽음은 죄로부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게 됨으로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죽음도 있지만 육체의 죽음도 인간에게 왔습니다. 창세기 4장은 선택받지 못한 가인의 후손의 족보를 기록했다면 창세기 5장은 선택받은 백성의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아담의 후손을 통해서 구속의 대가 이어져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담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육체로 930세를 살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육체의 죽음을 반드시 오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은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아담의 족보 930세에 죽음(창 5:1-5)

 

1절 제 세페르 톨레도트 아담 아담 베욤 베로 엘로힘 아담 비데무트 엘로힘 아사 오토

창 5: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5:1

계보가 이러하니라(제 세페르 톨레도트) - 직역하면 '이것은 계보 책이다'. 이 중 '톨레도트'(계보, 역사)한편 '세페르'(, 조서, 두루마리, 편지, 증서)는 비록 낱장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라도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기록물인 '문서'''을 의미한. 그러므로 신 24:1에서는 '이혼 증서'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본장 전체는 인류의 시조(始祖) 아담과 그의 신앙을 계승한 아들 셋으로부터 노아까지 이어지는 ‘아담 자손의 계보’를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톨레도트’란 단어는 성경에서 번역이 가장 난해한 단어 가운데
하나이다. ‘낳다’ (3:16 ; 출 2:2), ‘출생하다’ <10:21 ; 전 7:1)란 뜻의 동사 ‘얄라드’에서 유래한 이 명사가 후손의 출생(출 28:10)이나 천지의 창조 (2:4)와 같은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밖에도 ‘톨레도트’는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단어이다.

영어나 한글에는 이 ‘톨레도트’란 히브리 단어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톨레도트’는 단순히 어떤 인물의 탄생이나 결혼 혹은 사망을 기록한 족보도 아니고 개인의 업적을 기록한 ‘사적(事績)’도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톨레도트’는 ‘출생’과 ‘세대’라는 의미를 포함함은 물론 인물들의 업적과 역사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톨레도트’가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 곧 하나님의 구속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부분들을 발췌하여 기록한다는 점이다. 성경의 ‘톨레도트’는 모든 사람의 족보를 다 기록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의 업적을 다 기록하지도 않는다. 오직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의미 있는 내용들만을 선별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톨레도트’ 역시 인류의 시발점에 있는 아담 자손의 계보를 밝힘으로써 하나님이 앞으로 그들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고 또 어떤 자손들을 통하여 자신의 구속사를 이끌어 나가실 것인가를 보여 주시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형상 - 원어 '데무트'3절에 나오는 '모양'(첼렘)과는 달리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유사성', '닮은꼴'(10:10; 단 10:16)을 가리킨다.

지으시되( 아사) - 인간 창조와 관련하여 앞서 나오는(1:27) '바라'(창조하다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단독적 '창조사역'을 강조한 단어라면(40:26; 31:22)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손수 창조하셨다는 애정적 측면을 강조한 단어이다(6:7; 신 32:6; 욥 10:9).

앞서 나오는 ‘창조하다’ 즉 ‘바라’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강조하는 단어이고 뒤이어 나오는 ‘짓다’ 즉 ‘아사'는 손수 정성을 다하여 지으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이처럼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시되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만들어진 소중한 존재임을 밝힘으로써 인간만이 지닌 존엄성을 다시 한번 보여 준다.

2절 자카르 우네케바 베라암 바예바레크 오탐 바이크라 에트 쉐맘 아담 베욤 히바르암

창 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5:2

'이쉬'(2:22)와는 달리 남성과 여성이란 양성중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성()으로서의 남자를 뜻한다(17:10; 신 4:16).

복을 주시고 - ''에 해당하는 원어 '바라크'의 원뜻은 '무릎 꿇다'(95:6)로 여기서부터 '찬양하다'(왕상 1:48), '축복하다'(28:6), '문안하다'(왕하 10:15)등의 뜻이 파생됐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셨다는 것은 곧 그에게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는 존재로 이끄셨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일컬으셨더라 - 하나님께서 각종 짐승의 이름은 아담에게 전권을 위임 하사 그가 짓도록 하셨으나(2:20) 인간의 이름만큼은 당신의 직접 지어 주신 까닭은 그들이 만물의 영장이긴 하나 역시 하나님의 주권 하에 놓인 피조물에 불과할 뿐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한편 여기서 ‘일컬으셨다’에 해당하는 ‘카라’는 ‘공식적으로 선언하다’란 의미가 있다. 이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당시 각종 짐승의 이름을 짓는 권한은 모두 아담에게 위임 (委任)하였으나 인간의 이름만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셨음을 상기시키는 표현이다(2 : 20). 한편 어떤 사물에 대해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그 사물에 대한 주권과 소유권이 있음을 보여 주는 행위이다. 

따라서 본문은 이 세상의 모든 짐승은 인간의 지배와 다스림 아래 있으나 정작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실로 인간이 이를 망각하고 스스로 자기의 삶을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인생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며 실패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시 119:73).

3절 바예히 아담 쉘로쉼 우메아트 솨나 바욜레드 비데무토 케찰모 바이크라 에트 쉐모 셰트

창 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5:3

세(솨네) - '솨나'(돌아오다, 반복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태양의 일 주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아담의 나이 '일백삼십 세'는 오늘날의 연령 계산법에 의거한 나이와 똑같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모양 - 원어 '첼렘'은 원래 성질이나 성격상에 있어서의 유사성 또는 환(幻影), 그림자, 착각 등을 뜻하는 말이나(39:6) 여기선 '형상'(데무트)이란 말과 교호적(交互的)으로 사용되었다(1:26). 한편 아담은 타락 후 필연적 죽음을 선고받은 존재이니(2:19) 그가 자기 모양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곧 죽음이란 죄책(罪責)이 후손에게 전가되었다는 의미가 된다(5:12).

본절의 ‘모양과 형상’은 1:26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용한 말과 순서만 다를 뿐이지 그 내용은 동일하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자신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자식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혹자가 주장하듯이 인간 영혼을 그 부모에게서 이어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자식이 그 부모와 비슷한 외모를 가질 뿐 아니라 더 궁극적으로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과 모양을 잃어버리고 범죄 한 인간의 모양과 형상을 지니고 살아가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이다. 그러나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믿는 자를 구원하실 때 성도들은 다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하여 거룩한 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낳아 - 원뜻은 '해산의 고통을 겪다'(21:3; 렘 22:23)로 아담이 아들을 얻는 데에는 그 아내의 해산하는 고통이 반드시 수반됨을 기억시켜 준다(3:16). 낳았다고 했는데 문법을 히필(사역능동)을 사용했다. 구속사 관점에서 가인의 후손은 칼(능동)을 사용했는데 아담의 후손은 히필형을 사용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간섭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구속의 대를 이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4절 바이헤이우 예메 아담 아하레 홀리도 에트 셰트 쉐모네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4

자녀를 - 직역하면 ‘아들들 그리고 딸들’이다. 비록 본문에 나오는 족보의 명단에는 아담의 대표적인 아들로 가인에 의해 살해당한 아벨 대신에 ‘여자의 후손’(3:15)을 낳을 씨로 주신 ‘셋’ 한 사람의 이름만 나오지만 ‘아들들’ , ‘딸들’이란 복수로 기록된 본절의 표현으로 보아 아담에게서는 실제로는 많은 아들들과 딸들이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직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란 축복의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아담에게서 많은 자녀들이 태어나게 하였을 것이다. 

인류 초기 시대 사람들이 장수를 하였던 이유도 물론 노아 홍수 이전에는 오늘날과 달리 하늘에는 지구 전체에 걸쳐 물로 이루어진 층(層)이 있어 지금의 대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유해한 광선을 차단하여 살기 좋은 환경을 이루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인류가 단기간 내에 확산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로 우신 배려도 있었을 것이다.

5절 바이헤이우 콜 예메 아담 아쎄르 하이 테샤 메오트 솨나 우쉘로쉼 솨나 바야모트

창 5: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5:5

죽었더라 -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죽었다’이다. 이미 성경에는 형 가인에 의해 동생 아벨이 타살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4:8). 그러나 4:8에서 ‘쳐 죽였다’는 단어는 ‘살해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하라그’가 사용된 반면 여기서는 ‘무트’란 새로운 단어가 사용되었다. 즉 성경에서 타살이 아닌 자연사(自然死)의 기록 가운데 맨 처음으로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의 죽음이 ‘무트’란 단어를 사용하여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2:17)를 따먹는 범죄를 저지름으로 인하여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3:19).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서 본문의 ‘죽었다’로 번역
된 ‘무트’가 850회가량 등장하며 아담의 계보가 기록된 본장에서도 8번이나 이 단어가 반복하여 사용된 데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조금 더 오래 사는가 일찍 죽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연사인가 사고사인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로 성경에서 ‘무트’가 처음으로 기록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신 그 엄중한 경고가 바야흐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의 굴레는 인류의 죄악의 짐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때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만이 유일한 영생의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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