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산상수훈 교훈으로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식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금식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사람에게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습니다. 우리는 금식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보이려고 해야 합니다.
산상수훈 금식에 대한 예수님 말씀(마 6:16-18)
16절 호탄 데 네스튜에테 메 기네스데 호스페르 호이 휘포크리타이 스퀴드로포이 아파니주신 가르 타 프로소파 아우톤 호포스 파노신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네스튜온테스 아멘 레고 휘민 호티 아페쿠신 톤 미스돈 아우톤
성 경: [마6:16]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금식에 대하여]
금식할 때에 - 모세의 율법에는 1년에 한 번 지키는 속죄일에 모든 백성이 다 금식(禁食)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레 16:29-31;23:26-32;민 29:7). 그리고 바벨론 유수 기간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정기적으로 금식할 것을 규정하였다(슥 7:3-5;8:19). 그러나 이런 국가적 차원의 금식 외에 각 집단이나 개인의 차원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금식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금식은 때때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또는 주 앞에서 더욱 겸비해지기 위해서(느 9:1, 2;시 35:13;사 58:3;욘3:5 등) 그리고 헤어날수 없는 큰 번민과 위기 또는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기 위한 방법으로(출 24:18;삼하 1:12;예 4:16;행 14:23 등) 행해졌다. 사실 이금식은 구약 시대뿐 아니라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신앙적 측면에서 자기 훈련의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구약 시대에서부터 금식이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으로 행해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이 가해졌다(사 58:3-7;렘 14:12;슥7:5, 6). 그중에서도 특히 금식을 하면서도 이웃 구제에 무관심한 사실에 대해 혹독한 비판이 내려졌었다(사 58:1-7).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 이는 바로 앞의 '금식할 때에'라는 말이 현재 시상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당시에 금식은 어떤 특별한 행사라기보다 유대인들이 늘상 계속해 오던 행사였던 것이다. 사실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한 주에 두 번, 즉 월요일과 목요일 경에 금식하였다. 그리고 '안나'와 같은 경건한 여선지는 일상적으로 금식하였다(눅 2:37). 그런데 이러한 금식을 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배고픔과 같은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같은 고통을 자기 의(義)와 경건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자연적 고통에 인위적인 표정까지 가미(加味)하는 위선을 범하지 말 것을 명하셨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신앙생활을 결코 자기의(義)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전락(轉落)시켜서는 안 된다. 오직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뤄져야 하는 참된 경건인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 금식을 할 때에 자연적으로 용모가 흐트러지고 또한 자신의 내적인 죄악을 깊이 통회하고 자복하는 중에 기름을 바르지 않고 재(災)를 뒤집어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자신의 진실된 통회의 표시로써 금식이 행해졌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자신의 종교심을 자랑하고 또 사람의 칭찬과 존경을 받으려는 동기에서 외식적인 금식이 행하여졌던 것에 대해서이다.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 여기서 '흉하게 하다'는 뜻의 원어 '아파니주신'과 사람에게 '보이려고'라는 뜻인 '파노신'은 그 음운상 비슷한 단어로서 헬라 문학에 있어서의 일종의 재담적(才談的) 표현이다(Robertson). 한편 '얼굴을 흉하게 하는'것이란 먼지와 재 등을 머리에 뒤집어씀으로써 본 얼굴을 거의 보이지 않게 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다(삼하 15:30;겔 24:17).
자기 상을...받았느니라 - 2절 주석 참조.
17절 쉬 데 네스튜온 알레입사이 수 텐 케팔렌 카이 토 프로소폰 수 닙사이
성 경: [마6:17]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금식에 대하여]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 여기서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어떤 특별한 기름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몸단장을 위한 한 절차로서 사용된 것을 말한다(룻 3:3;삼하 12:20;전 9:8). 그 한 예(例)로써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아이의 병을 위해 금식하다가 그 아이가 죽고 나자 금식을 중단하고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발랐다(삼하 12:15-20). 이처럼 기름을 바르는 것은 금식의 행위를 밖으로 나타내 보이지 않는 구체적인 대응 방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얼굴을 씻으라 - 이 역시 일상의 몸단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지시를 하신 예수께서 금식 그 자체를 금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는 금식의 필요성을 절대 부인하지 않으셨다(9:14, 15). 다만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는 것이므로 특별히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슬픈 기색을 지을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18절 호포스 메 파네스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네스튜온 알라 토 파트리 수 토 엔 토 크륍토 카이 호 파테르 수 호 블레폰 엔 토 크륍토 아포도세이 소이 엔 토 파네로
성 경: [마6:18]
주제1: [천국 시민의 새 생활]
주제2: [금식에 대하여]
네 아버지께 보이게 - 금식은 자기부정의 행위이며 육신의 고행(苦行)이고, 또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위한 일종의 육체적 단절 행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온갖 세상 욕망과 혈기를 죽이고 더욱 거룩, 겸손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금식은 반드시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여야지 조금이라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차라리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4절 참조).
[잠언서 15장 강해설교말씀] 유순한 대답, 사랑, 분노(잠 1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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