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6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마냥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뱀의 머리를 십자가에서 짓밟아 버렸습니다. 사탄이 웃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부활시켰습니다. 죽음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육체는 때가 되매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신령한 몸으로 주님과 같이 부활됩니다. 이렇게 부활된 우리는 주님과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심판하러 오시는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막 16:1-8)
1절은 카이 디아게노메누 투 삽바투 마리아 헤 마그달레네 카이 마리아 헤 투 이아코부 카이 살로메 에고라산 아로마타 히나 엘두사이 알레이프소신 아우톤입니다.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16:1
“안식일” 곧 토요일 자정이 지나고 유대인의 새 날인 일요일이 시작되었다. 여인들은 향료를 준비했다. 향료는 시신에서 풍기는 악취를 막기 위해서 시신 위에 뿌려졌고 이는 사랑의 헌신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안식일에는 아무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에 갔다.
안식일 - 헬라어 삽바톤은 히브리어 샵바트를 음역한 것이다. 이 히브리어의 기원은 불명확하다. 어원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샤바트(그치다, 끝내다, 쉬다)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명은 창 2장에 암시되어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함으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와이스닐트).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을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샤바트). 구약의 안식일 준수의 기원을 바빌로니아, 가나안 겐 족속에서 끌어내고자 한 시도는 실패하였다.
2절은 카이 리안 프로이 테스 미아스 삽바톤 엘콘타이 에피 토 므네메이온 아나텔일란토스 투 헬리우입니다.
막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절은 카이 엘레곤 프로스 헤아우타스 티스 아포퀼리세이 헤민 톤 리돈 에크 테스 뒤라스 투 므네메이우입니다.
막 16: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16:2-3
그 주간의 첫날 아주 이른 아침 해가 뜨기 바로 전에 여인들은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새벽 어둠 속에 집을 나서서 해가 뜬 직후에 무덤에 도착하였다. 분명히 그들은 무덤 위에 있는 공식적인 인봉이나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고대 근동에서는 보통 시체에 향품을 바르는 것은 여인들이 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운명하셨기 때문에 안식일에 들어가서 시체에 향품을 바르지 못했다. 그래서 안식일이 끝나자마다 새벽같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여인들이 갔던 것이다.
4절은 카이 아나블렢사사이 데오루신 호티 아포케퀼리스타이 호 리도스 엔 가르 메가스 스포드라입니다.
막 16: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절은 카이 에이셀두사이 에이스 므네메이온 에이돈 네아니스콘 카데메논 엔 토이스 덱시오스 페리베블레메논 스톨렌 류켄 카이 엑세담베데산입니다.
막 16: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16:4-5
누가와 요한은 합법적인 증인을 위해서 필요한 수인 두 천사가 나타났음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는 한 사람만 언급하고 있는데 아마 이것은 대변인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여인들은 하나님의 사자와 만나자 깜짝 놀랐다. 강한 감정을 나타내는 이 복합 동사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건에 부딪칠 때 압도당하는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벌써 굴려졌으니 - 동사 아포퀼리오(BI-D.; Diod. 등)는 아포(575)와 퀼리오(2947: 구르다, 굴리다)에서 유래했으며, 굴려내다, 버리다 to roll off or away를 의미한다. 문법은 동사 직설법 완료 수동태 단수 3인칭이다. 직설법을 쓴 것은 예수님의 무덤에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완료 시제는 완전히 봉인이 해제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수동태는 사람이 무덤의 돌을 해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굴려져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 사건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적 사건이며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성경이 문법을 통해서 증명하고 있다.
6절은 호 데 레게이 아우타이스 메 에크담베이스데 이에순 제테이테 톤 나자레논 톤 에스타우로메논 에게르데 우크 에스틴 호데 이데 호 토포스 호푸 에데칸 아우톤입니다.
막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16:6
여인들은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사람 예수의 시체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미 예수의 몸이 없었다. 천사의 메시지는 부활하신 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며 동일한 역사적 한 인물임을 밝혀 주었다. 또한 빈 무덤이 그것을 증거해 주었다. 부활의 확실성은 하나님께 받아 천사가 전해 준 이 증언에 근거하며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결단 앞에 서게 한다.
그가 살아나셨고 - 동사 에게이로(Homer 이래)는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a) 타동사로 '깨우다'(잠에서), 자동사 수동에서 '잠깨다, 일어나다',
(b) 타동사로 '자극하다, 일으키다, 각성시키다, 분발시키다', 자동사 수동에서 '각성하다, 분발하다',
(c) 타동사로 '일어서게 하다, 세우다', (건물 등을) '세우다, 일으켜 세우다', 자동사에서 '일어서다, 오르다',
(d) 타동사로 '죽은 자를 일으키다', 자동사 수동에서 '죽은 자로부터 되살아 나다'를 의미한다.
문법은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이다. 직설법은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말한다. 과거 시제는 예수님의 부활은 지금 일어났지만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말한다. 수동태는 예수님의 부활은 성자 예수님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에 의해서 부활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도 마지막 때에 하나님에 의해서 부활된다.
7절은 알르 휘파게테 에이파테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카이 토 페트로 호티 프로아게이 휘마스 에이스 텐 갈릴라이안 에케이 아우톤 옾세스데 카도스 에이펜 휘민입니다.
막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16:7
여인들에게 하나의 임무가 주어졌다. 그것은 부활의 소식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제자들과 베드로”라는 말은 베드로를 구별하는 마가의 독특한 표현이다. 이것은 마가의 자료의 상당 부분이 베드로로부터 나온 것임을 반영한다. 베드로가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아 열 한 제자의 무리 속에 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 법에 의하면 여인들은 신빙성이 있는 증인으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활의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8절은 카이 엑셀두사이 타퀴 에퓌곤 아포 투 므네메이우 에이켄 데 아우타스 트로모스 카이 에크스타시스 카이 우데니 우덴 에이폰 에포분토 가르입니다.
막 16: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16:8
여인들은 두려웠고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두려웠던 것은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의 경이로움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경외감과 두려움에 압도되어서 침묵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무서워하여 - 동사 포베오(Homer 이래)는 포보스(5401: 두려움, 공포, 경외)에서 유래했으며,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 놀라다, 존경하다, 경외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문법은 동사 직설법 미완료 중수디포 복수 3인칭이다. 직설법 미완료를 사용한 것은 이 여인들이 계속해서 심히 놀라 떨었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지만 성경은 문법을 통해서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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