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갈라디아서 사순절 설교말씀] 십자가 신앙(갈 2:20-21, 마 16:24-28)

두란노 서원 2022. 4. 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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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여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내가 살아났습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게 됩니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십자가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고 주님만을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 목: 십자가 신앙

 

설 교 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말씀:  갈 2:20-21, 마 16:24-28

 

요    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주제: 하나님의 사랑, 뜻, 임마누엘 등 십자가 신앙으로 승리하자

오늘은 삼일절 회상 주일입니다. 내년이면 삼일절 100주년이 됩니다. 어느 때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다시는 외세에 침입 받아 주권이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기도제단을 쌓읍시다.

 

지금 사순절 기간입니다. 오늘은 십자가 신앙을 묵상하겠습니다.

 

세상에 달력이 있듯이 교회에도 달력이 있습니다. 이를 교회력(Church Calendar)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다리며 축하하는 대림절(강림절, 대강절 Advent, 성탄절 전 네 주간)부터 시작되어 추수감사절로 매년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림절 – 성탄절 – 주현절 – 사순절 – 부활절 – 성령강림절 – 추수감사절입니다. 저는 언더우스 선교사님께서 졸업하신 미국 최초의 신학교 New Brunswick 신학교와 Princeton 신학교에서 예배학을 수년간 강의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미국 교단들은 교회력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미국 예배학회 회원으로 예배를 연구하고 계발하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순절이 캐톨릭에서 시작된 것으로 우리는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안식교와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어느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예배학자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된 주일성수, BC주전/AD 주후, 부활절 일자, 이것도 다 부정합니까? 왜 우리가 안식교도의 주장을 따라야 합니까? 니케아 회의, 칼게돈 회의는 동방과 서방 기독교가 함께 모여 의논된 것입니다. 예배학 자료에 사순절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다 뿐이지 디다케 자료에 보면 부활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습관이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앞두시고 40일 금식기도 하셨고, 모세와 엘리야도 40일간 금식기도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교회 생활을 한 것을 기억하며,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날로부터 40일 후 창조절(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 티쉬리 1일)을 지킨 것을 사순절에 적용시킨 것입니다. 사순절(四旬節)을 영어로 렌트(Lent)라고 하는데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독일어의 Lenz)에서 유래된 말로, '봄'이란 뜻으로 만물의 소생을 말합니다. 주님의 수난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요 3:16). 성금요일과 부활 주일을 준비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주님의 삶과 사역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을 잘 지켜야 고난주간이 더욱 실감납니다.

 

캐톨릭 식의 사순절이란 (1)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날까지 육류(붉은 고기)를 먹지 않고 생선은 허용합니다 (2) 14 Station(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언도 받는 곳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심까지를 14군데로 나누어 명상하고 순례하는 것) (3) 사순절 기간 동안 이스라엘, 파티마, 카트리나 등 성지 순례하여 회개의 고행을 해야함 (무릎으로 아스팔트 광장을 4마일 기어 다님) (4) 죽어서 해골된 성인, 성자, 성도의 뼈들을 모은 곳에서 금식해야 함 등입니다. 우리는 이런 캐톨릭 전통을 전혀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마 16:24-27 말씀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따르면서 이 시대의 구레네 시몬이 되며, 십자가 밑에서 고난에 동참한 사도 요한이 되어 주님의 뒤를 온전히 따르는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는 기간을 사순절로 삼고 기도와 말씀과 구제와 봉사에 힘쓰는 기간입니다. 오랫동안 사순절을 지켜오고 있고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 교회에서 사순절을 지키며, 우리나라에 선교를 하셨던 선교사님들도 이 절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순절 기간에

 

(1) 특별 새벽기도회를 실시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부활절을 준비합니다.

(2) 특별히 회개를 많이 하여, 주님을 두 번 십자가에 달리게 하지 않게 합니다. 민족과 나라를 위한 회개 기도회를 실시합니다.

(3) 구제와 봉사를 실시합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을 돌보며, 사랑의 봉사를 실천합니다. 영락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에 헌혈을 많이 합니다.

(4) 자기가 평소 좋아하던 취미생활(운동, 특기)를 쉬기도 하며, 아동부, 청소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탕, 초코렛, 피짜, 햄버거를 먹지 않는 기간으로 삼기도 합니다.

(5)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오락과 쾌락을 절제하기도 합니다.

(6)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를 통독하며 예수님 닮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7) 더욱 개인전도, 세계선교에 힘을 써 주님의 지상명제를 실천하는 기간으로 삼습니다.

 

기타 각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순절 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전통과 습관을 지켜오다가 사순절이 캐톨릭 에서부터 나왔다고 하면서 다 버리겠다고 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사순절마다 가장 많은 은혜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안식교도들의 이단사상이 한국교회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를 버리겠다면, 저는 단호히 반대합니다. 좋은 전통은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일도 성수하지 말아야 합니까? 안식교도들처럼 토요일을 성수해야 합니까? 교회 헌금도 내지 말고, 전도와 선교도 하지 말고, 구제와 봉사도, 금식도 모두 중단해야 합니까? 아예 교회를 문닫는 것이 맞습니까? 이것이 과연 성경적이냐고요?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위험합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바르게 배워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오랫동안 한국교회에서 지켜 온 사순절을 쉽게 버리지 맙시다.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에도 사순절 교독문이 다섯 개 나옵니다(124-128번). 한국 교계가 절기를 인정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사용한다고 성경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바보짓입니다. 신천지가 보혜사를 사용한다고 우리도 이 용어를 금지해야 하나요? 이초석이가 예루살렘 사용한다고 우리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나요? 박태선이가 감람나무 사용했다고 한국교회는 ‘감람’이란 말을 하면 경계하고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북한에서 ‘동무’용어를 사용한다고 우리도 어깨동무란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까? 캐톨릭이 좋아하는 십자가를 거부해야 합니까? 캐톨릭의 십자가는 돌아가신 예수님을 달아 매단 것은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성전에 장식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렇다면 캐톨릭의 금서 목록 1호가 되는 킹제임스 성경은 왜 한국 교단에서 거부합니까? 적어도 교단에서 이런 것을 결정할 때는 세계 교회사의 흐름과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해석하는 것인가를 조사한 후, 또한 평신도들의 생각도 수렴한 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이미 결정된 것들도 지금 볼 때 잘못 된 것이면 수정을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 교회 제단에는 십자가가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주님 오실 때까지 성경적 절기는 유효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일년 52주일을 지키는 성수주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장막절)은 신약의 부활절, 성령강림절로 지켜집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련된 초막절은 마라나타 신앙으로 앞으로 이뤄질 영적 절기로 지켜져야 합니다. 이런 절기를 모두 없애자는 것이 세대주의입니다.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1830년경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전천년주의자들의 운동으로 일명 “계약기 분할주의” 교파 및 교회의 형식적 제도와 조직을 경시하는 교회갱신 운동 단체인 플리머드 형제단 Plymouth Brethren에서 유래했고 지도자는 아일랜드 출신의 다비(J. N. Darby, 1800-1882)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는 매체는 스코필드 관주성경이며 달라스 신학교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은 (1) 지나치게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을 추구하며 (2)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의 무관계성을 주장하며 (3) 전천년왕국설을 근간으로 이 세상을 일곱 경륜으로 구분한다. 무죄시대, 양심시대, 인류통치시대, 약속시대, 율법시대, 은혜시대, 왕국시대로 구분하며 각 시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보존에 앞장서고 있는 웨이트박사(Dr. D.A. Waite)께서는 아흔이 다 되셨는데도 현재 Bible For Today Baptist Church를 목회하고 계십니다. 웨이트목사님은 철저하게 예정설을 부인하며 절기를 부인하여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지키지 않으며, 극우 정치관을 가지고 있어 극단절 종말론에 빠져 있습니다. 저도 웨이트박사님의 이런 신학과 신앙관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것만 수용하고 다른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십자가 신앙을 다시 새롭게 인식하며 십자가를 더욱 사랑합시다. 우리가 질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만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4-25)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밥티스마[세례, 침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7-18)

 

주님의 지상명제대로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행 8:5-8). 이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신님(the Holy Ghost)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밥티스마[세례, 침례]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이에 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신님을 받았습니다.(행 8:14-17) 두 사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빌립은 계속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주님의 천사가 빌립에게 일러 말하기를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Gaza)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고 일러 줍니다. 그 길은 광야길인데그가 일어나 가서 보니 이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대언자 아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행 8:26-28). 영(the Spirit)께서 빌립더러 말씀하시기를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행 8:29) 빌립이 달려가서 대언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 내시가 대답하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고 빌립을 초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십시오” 하였습니다(행 8:30-31)

 

그가 읽고 있는 성경 구절은 바로 이사야 53:7-8이었습니다.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행 8:32-33) 하였거늘내시가 빌립더러 말하기를 “청컨대 묻노니 대언자가 이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킵니까? 자기를 가리킵니까? 타인을 가리킵니까?”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신앙을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밥티스마[세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으리요? 하니(행 8:34-36)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내시께서 온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행 8:37 성경의 주요 사본에는 다 나오는데 우리나라 개역성경에는 ‘없음’으로 나옴. 구역에는 있었음) 고백했습니다. 최초의 세례문답입니다. 이에 종에게 명령하여 병기를 머물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밥티스마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가니 주님의 영께서 빌립을 이끌어 가버리고 더 이상 보지 못했습니다(행 8:37-39). 이 내시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 복음을 전함으로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최초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빌립은 블레셋의 도시 아소도(Azotos = Ashdod)으로 가서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총독부가 있던 가이사랴에 이르게 됩니다(행 8:40).

 

에디오피아에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질 때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내시가 읽었던 이사야 5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구절을 기초로 2004년에 멜깁슨(Mel Gibson)은 <그리스도의 열정 The Passion of Christ>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뼈 조각이 부착된 채찍으로 예수님의 등을 때릴 때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붉은 피가 뒤범벅되는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 위하여 주님의 보혈을 흘리신 것입니다. 영화를 시작하면서 자막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고 나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시고 속죄의 피를 흘려주신 이후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한 후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나가 담대히 전했습니다. 바울께서 아테네에서만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6-34절에 보니 아테네에서 철학적 논쟁(신론, 부활)은 전해도 십자가의 도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깊이 후회하며 고린도에 도착해서는 “십자가의 신앙”을 열심히 전해서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십자가의 신앙은

 

1) 하나님의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멸망하지 않고 무궁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 3:16) 그래서 우리도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19-21)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4-5)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9-11, 19)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2) 하나님의 뜻을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주님께서 받으셔야 할 밥티스마였는데 이를 받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감람원 Olivet)에서 하신 마지막 기도에서 “오 내 아버지시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마 26:39, 마 14:36, 눅 22:42). 세베대의 아내이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께 두 아들을 주님의 왕국에서 좌우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할 때 예수님의 대답이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실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나를 잠기게 한 그 밥티스마로 밥티스마를 받을 수 있느냐” (마 20:22)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물과 성신님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의 잔에 동참하지 못하면 하나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3)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사는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2:20-21)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역설적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다시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하는 것은 나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말씀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 죄의 노예로 살던 옛사람이 죽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육신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늘 옛사람이 우리를 죄로 이끌어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모습은 죄와 절망뿐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롬 7:18-1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다시는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우리를 주관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나면 주님이 나와 함께 부활하셔서 나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 전까지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지만은 예수 믿고 내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고 난 다음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갈보리의 험한 십자가를 끝까지 사랑하며 최후의 승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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