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룻기 2장 주일설교말씀] 새로운 인생(룻기 2:1-7)

두란노 서원 2021. 1. 2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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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룻기 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새로운 인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기근이 있다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모압으로 떠났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모압 여인인 룻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시적 관점에서 볼 때 성도가 베들레헴과 같은 떡집의 교회를 떠나니 결국 세상에서 고통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교훈받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평생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에 와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보아스를 만나게 되고 나중에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고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올라가는 귀한 인물이 됩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인생(룻기 2:1-7)

 

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유력한 자가 친족으로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 2: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 2: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룻 2: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룻 2: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유대나라의 절기 가운데 큰 절기가 셋 있습니다. 유월절과 오순절과 또 하나는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유대 나라의 부활절로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부활절로 대신되었고,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초막절은 추수감사절로 바뀌어졌지만 그 근본적인 뜻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나라의 맥추감사절과 같은 오순절을 지키면서 그때 꼭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룻기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비참한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시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시고 또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순절을 보내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룻기는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서 여러 가지 방법과 모양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실패를 통하여, 때로는 우리가 범한 지난날의 죄악을 통하여 혹은 우리들 가정의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장에서 하나님은 기근을 통하여 나오미의 가정에,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 하나님을 피해 남의 나라로 도망을 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피하지 마십시오. 성도들 가운데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자꾸 피합니다. 또 어떤 이는 하나님과 싸웁니다. 내면적으로 끊임없이 피하고 다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의 전 실존을 다 맡겨놓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작은 머릿속에 하나님을 내포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머셸 퀘스트'가 쓴 신앙의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는 `'하기가 두렵습니다.

주님은 나를 어딜 데리고 가시려는 겁니까.

나는 허탕 칠까 두렵습니다.

나는 덮어놓고 백지에 도장을 찍기가 두렵습니다.

나는 한번 `'하면 자꾸만 `'해야 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닙니다.

주여 당신은 내가 어디를 가나 뒤쫓아 오시고 나를 사로잡습니다.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려고 잡음을 불러들이지만

주님은 잠깐 조용해진 틈을 타 내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나는 주님을 멀리서 보았기 때문에

만나지 않으려고 길을 비켜 갔지만

주님은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어디로 가야 숨을 쉴 수 있습니까.

나는 주님께 손을 내어 드리기가 두렵습니다.

주님의 손에 한번 잡히면 놓여 날 수가 없을까 두렵습니다.

나는 주님의 눈과 마주치기가 두렵습니다.

말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길이 막혀서 올 데 갈 데 없어서 이대로 숨어 살고 있습니다.

나는 붙잡히기가 싫어 반항하고 있습니다.

질 줄을 뻔히 알면서도 주님과 싸우고 있습니다.

내가 눈앞에 사물을 붙들려고 손을 뻗었을 때

그것들은 나에게서 이미 사라지고 맙니다.

주여, 나는 기분이 과히 좋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꺾은 꽃은 내 손 안에서 이미 시들고

나의 웃음도 입가에서 맴돌다 사라집니다.

내가 추는 춤도 내 마음을 슬픔으로 울먹이게 합니다.

모든 것이 허무해 보이고 모든 것이 속절없어 보입니다.

주님은 내 주위에 사막을 만드셔서

나는 배 고픕니다. 나는 목마릅니다.

이 세상은 나를 먹여주고 만족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주여 나는 지금껏 주님을 위해 일도 했고

주님께 나 자신을 드린다고 드렸는데

당신은 나에게서 무엇을 더 바라십니까.

 

아들아, 나는 너를 위해서도, 이 세상을 위해서도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너는 지금까지 네 마음 내키는 데로 해 왔지만

그런 행동이 이제는 다 쓸모가 없구나.

너는 나에게 안정과 지지를 받으려 했고,

네 일에 나를 부단히 관여시키려 애써 왔다.

그러나 아들아 너는 내가 하여야 할 일을 뒤집어 놓고 말았구나.

그동안 나는 너를 눈여겨보았고 네 선도 다 지켜보았다.

그러기에 나는 너에게 더 이상의 것을 바라고 있다.

이제부터 너는 너의 뜻을 버리고

하늘에 계신 성부의 뜻을 받아들여라.

아들아 `'하고 말해다오.

나는 이 세상에 오기 위해 마리아의 `'가 필요했듯이

너의 `'하는 대답이 필요하다.

네 일터에 내가 있어야 하고

너의 가정에도 내가 있어야 하고

네가 사는 구역에도 내가 있어야지 네가 있어서는 안 된다.

쳐다보는 눈도 내 눈이어야지 네 눈은 안 된다.

주어야 할 말은 내 말이지 네 말이 아니다.

변화시킬 생명도 내 생명이지 네 생명이 아니다.

내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다오.

모든 것을 내게 다 맡겨다오.

나는 너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이 세상에서 너의 `'하는 대답이 필요하다.

 

! 주여, 주님의 요구는 너무나 집요하십니다.

그러나 누가 주님을 거역할 수가 있습니까.

내 나라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임하고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게 하소서.

 

신앙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오미는 자기의 가정에, 사는 동네에 기근이 닥쳐오자 피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기근을 견디면서 기근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나오미와 그의 가정은 모압으로 피했습니다. 거기서 모압 여인 둘을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자기의 계획이 성공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십 년을 채 넘기지 못해서 나오미의 남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젊은 두 아들도 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제야 고국을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둘째 며느리인 룻은 그녀의 친정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나라인 유대 베들레헴으로 함께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구원이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뛰어들어 그 품에 안겨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죽기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212절 말씀을 보면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려고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각오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깨어지고 허점이 생겼습니까. 다 이룬 것 같은데, 모든 것이 다 내 손안에 들어온 것 같은데, 그런데 잡힌 것이라고는 없는 그런 인생이십니까. 새로운 각오가 필요합니다. 두 여인, 나오미와 룻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절망, 냉소, 궁핍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마라'라고 불러주기를 원할 만큼 냉소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룻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가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언가 하려고 작정했습니다. 들에 나가 이삭을 줍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룻이 얼마나 열심히 이삭을 주웠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깐 쉬고는 계속해서 보리 이삭을 주웠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실망과 낙담을 치유하는 최상의 방법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여러분 자신이 비참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더 비참한 사람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십시오. 여러분보다 더 건강하지 못한,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십시오. 인생이 늘 우울하십니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은 많은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한국신학대학장을 했고 우리나라 구약의 권위자이신 김정준 박사님의 `삶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분은 폐결핵을 앓아서 20일 이상을 더 살 수 없는 죽음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었습니다. 마산 요양소에서 죽음 직전의 사람들만 모아 둔 방에 수용되었습니다. 김목사님은 누워서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이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껏 주위의 사람들을 고생만 시키고 남을 위해서 한 일이 없는데 이제 남은 20여 일 동안이라도 무언가 남을 위해서 일을 하고 죽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는 성령이 주신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피를 토하여 옆자리의 죽어가는 사람들의 피를 닦아 주고 눈을 부릅뜨고 죽는 사람들의 눈도 감겨주며, 기도해 주고, 그렇게 하는 가운에 20일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죽지 않고 오히려 핼쑥한 얼굴에 핏기가 돌며 50, 100일을 지나며 한 단계씩 더 양호한 방으로 옮겨 마침내는 건강을 회복하여 박사가 되고 또 한국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룻은 자기의 비참함 가운데서도 시어머니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향도, 장소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발길이 닿는 대로 갔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는 보아스라는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그는 능력이 있고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나오미의 가정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를 만남으로 인하여 룻의 인생은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됩니다. 보아스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신앙입니다. 룻의 인생은 전부가 우연이었습니다. 모압 땅에 이민 온 나오미의 가정에 며느리가 된 것, 남편의 죽음, 그리고 시어머니를 따라 먼 외국에 온 것, 그것도 보리를 추수할 때 오게 된 것, 보아스의 농장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나오미에게는 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 편에서 보면 모든 것은 우연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그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덜란드의 수상을 지냈으며 신학자요, 저널리스트며, 예술가인 아브라함 카이프는 1880년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을 설립하여 학장으로 취임하면서 한 연설 가운데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 께서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은 인간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단 한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136절에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들은 주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주님을 통하여 존재하고 있고 주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연히 세상에 태어났고 우연히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우연히 살다가 우연히 사별하게 되고 우연히 인생을 살다가 우연히 예수님을 알게 되고 우연히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우연이라는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룻의 깨어진 인생, 산산조각 난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종과`'하는 믿음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룻의 인생을 섭리하셔서 놀라운 인생으로 새롭게 짜 맞추셨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하고 화려하게 산다고 할지언정, 주님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가난뱅이 나오미와 룻과 같은 여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참하게 깨어진 인생이라 할지라도 주님으로 옷 입게 되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궁전의 여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짧은 한마디로 우리의 믿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피하며 주님과 늘 다투던 우리의 인생을 청산하고 우리들의 작은 인생을 크신 하나님의 섭리와 그 품 안에 맡겨놓고 사는 우리들의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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