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시편 8편 주일설교말씀] 크신 하나님(시편 8: 1- 9)

두란노 서원 2021. 1. 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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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시편 8편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크신 하나님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물론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다가 결국 불순종함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대속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시편 8: 1- 9)

 

시 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 8: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시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 8: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시 8: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시 8: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시 8: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오늘 읽어드린 시편 가운데 보면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는 장엄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시인은 뜰에 않아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과 달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 시편을 지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밤하늘에 쏟아질 것처럼 찬란하게 뿌려진 별들을 바라볼 때면 누구나 신비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별들의 움직임 속에서 인간의 운명을 찾아보려고 애써왔던 것입니다. 별똥이 떨어지면 누군가가 죽었다고 생각하였고, 보지 못했던 새 별이 나타나면 누군가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점성술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시인은 그 별들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동시에 보잘것없는 인간의 초라함 그러나 그 속에 두신 놀라운 하나님의 형상을 생각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시인의 신앙은 크고 놀라운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조화 있게 아름답게 그리고 광대하게 만드신 이유를 생각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이 우주의 끝이 얼마나 되는지 사실상 아무도 모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의 반지름을 약 3백40억 광년으로 보았습니다만 실제로 이 우주가 얼마나 큰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이 우주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들 합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1973년에 별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이 별은 지구에서 백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별인데 그 별빛이 어느 정도 밝은가 하면 태양 10조 개를 합친 것만큼의 밝기라고 하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광대한 우주를 만드셨을까요? 분명히 여기에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 알 길이 없지만 오늘 읽은 시편을 통하여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이 시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하늘을 보라는 것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하였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하늘에 두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얼마 전에 김동길 박사의 강의가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런 가운데도 가장 두드러진 것 하나를 지적하라고 한다면 짐승은 아직도 네 발로 기어 다니는데 사람은 오래전부터 두 발로 서서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대단한 차이가 아닌 듯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차이는 없습니다. 우리도 다른 동물들과 다름없이 네 발로 기어 다니면서 먹이를 구하여 고된 삶을 여러 백만 년 이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만이 홀로 서서 이 놀라운 문화생활을 창조하게 된 것일까요?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였을까요? 그것은 하늘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보기 위해서 일어섰다는 것입니다. 기어 다니면서 하늘을 보기는 거북하니까 결국 앞 발을 들고 일어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인간이 똑바로 서기에는 아직 좀 이르다는 것입니다. 위하수니 하는 병이 생기는 것은 서서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하늘을 보기 위해 일어섰다는 사실만은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까닭은 반드시 구름과 별과 달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말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길은 하늘을 보고 거기에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20세기 후반에 사는 현대인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요즈음 밤하늘을 자세히 쳐다보신 분이 계십니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라는 상자에 매여 우리는 밤하늘을 쳐다보는 일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또 도시의 밤하늘을 쳐다보아도 옛날처럼 별이 초롱초롱 하지를 않은 것입니다. 공해 때문에 별이 잘 안 보이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여름 저녁이면 마당에 모깃불 지펴 놓고 멍석을 깔고 거기에 않아 더위를 식히면서 쏟아질 것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 별들을 헤어 보고는 했던 것입니다. 그때 어린이들은 큰 별을 골라 나의 별로 정하고 그 별을 따 보겠다는 꿈을 간직하면서 어머니 무릎에서 잠들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새장 같은 아파트에 갇혀버린 현대 도시 어린이들은 그 찬란하고 신비한 밤하늘을 보지 못하고 자라면서 하늘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것만을 보면서 그것을 배우고 거기에만 얽매어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현대인들의 병의 근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찬란하고 광대하게 만드신 까닭은 바로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그것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과학이 발달하여도 이 광활한 우주의 신비함에 비교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며 자기의 위치를 바로 깨닫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우리도 옛 시인처럼 다시 하늘을 쳐다봅시다. 거기에 위대한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거기서 원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에 보면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하였습니다. 다른 시편에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9 : 1) 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광활하고 신비한 우주공간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과 그가 크신 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만드신 까닭은 하나님이 그만큼 크고 위대하신 분임을 나타내 보이시려 함에 있다 하겠습니다. 그의 능력이 한이 없으시다는 사실과 그의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요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40:26)이 위대하고 크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창조하셨고 구속하셨으며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사 43:1) 이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며 그가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셨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66:12,14)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하심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기업의 풍성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그 신비한 별들을 지으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크신가를 생각하고, 또한 그가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시인은 밤하늘을 쳐다보며 그 우주의 신비와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함과 동시에 그 가운데 창조하신 사람을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이 말속에는 겸손과 동시에 인간의 위대함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광대한 우주를 바라보면서 인간이 지극히 미미함을 느꼈으나 동시에 하나님이 이 모든 삼라만상을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하여지어 주셨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이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한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광대하게 만드신 까닭은 그것을 보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 생각을 크게 하도록 하며 조그만 일로 그 마음을 괴롭히지 말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땅만을 내려다볼 때는 근심과 절망과 불안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만을 바라볼 때 우리는 눈살이 찌푸려지고 한숨과 탄식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좁아지고 짜증과 불만만이 터져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하늘을 쳐다보면 우리의 짧은 생애에 비하여 영원한 삶을 생각할 수 있고, 이 좁은 땅 대신 무한한 하늘을 볼 수 있으므로 우리의 마음은 넓어지고, 불안은 사라지며, 짜증 대신 기쁨이 우리 영원 속에 고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라볼 수 있으며 삶을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희망찬 별을 밤하늘에 빛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을 크게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높은 하늘과 험준한 산과 넓은 대양을 두신 것입니다. 생각을 크게 가졌을 때 우리의 삶은 자라기 시작하여,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던 사소한 일을 넘길 수 있을 것이며 남의 허물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따라 우리도 이제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쳐다봅시다. 시시한 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짜증이나 내면서 만물의 영장인 우리의 고귀한 삶을 시들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깨닫고 보다 크게 생각하고 보다 넓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는 자는 거기서 위대한 하나님과 웅장한 우주 그리고 위대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이 시인의 크고 놀라운 신앙처럼 여러분의 신앙도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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