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잠언 1장 주일설교말씀] 말씀과 지혜(잠 1:20-29)

두란노 서원 2021. 1. 3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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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1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말씀과 지혜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식은 세상에서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하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지혜는 말씀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식의 은사도 받아야 하고 지혜의 은사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세상의 지식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을 때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늘의 지혜를 받아 구원받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과 지혜(잠 1:20-29)

 

잠 1: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잠 1: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잠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잠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잠 1: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잠 1: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잠 1: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 1: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잠 1:28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잠 1: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구약성서의 지혜문학이라고 할 때 주로 '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금언집'이라는 설명이 붙는 "잠언집'말합니다. 이 지혜 문학은 사람을 교육하여 지혜를 끼치게 하고 슬기로운 가르침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으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잠언은 분명히 어리석은 자는 교육을 받아 지혜로워지는 것을 멸시하고 지식의 근원인 야훼를 무시한다고 말합니다(1:7).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를 지혜를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로 판가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혜를 여성 언어인 헬라어 소피아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마치 남성 언어인 로고스(믿음)와 대치시켜 생각해 왔습니다. 로고스 (믿음)와 대치시켜 생각해 왔습니다. 로고스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본다면 소피아는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뜻으로 이해해 왔고 소피아(지혜)와 동일시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잠언이 우리에게 전해준 지혜의 내용은 우리가 이해해 온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잠언은 지혜를 하나의 인격으로 기록합니다. "지혜가 거리에서 외치고 장터에서 목청을 돋우며 떠들썩한 네거리에서 소리치고 성문 어귀에서 말을 전한다"(1:20-21)는 것입니다. 지혜는 사람과 같이 외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머문 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 사람들이 모이는 곳, 사람들이 모여서 재판하는 곳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이 이러한 공공장소에 나와서 자기가 당한 억울한 사건을 만인에게 공개하여 선처를 바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결국 지혜의 외침은 억울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외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외면한다는 것은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의 외침과 호소를 외면하고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혜는 억압받는 자들의 입에서, 소외된 자들의 삶에서 그리고 차별당한 자들의 항의에서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지혜를 무시하는 일이고 야훼를 외면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혜가 부르지 않느냐? 슬기가 목청을 돋우지 않느냐? 지혜가 길과 언덕에서 부르고 슬기가 네거리에서 자리 잡고 목청을 돋운다. 마을 어귀 성문에서, 문 여닫는 곳에서 외친다."라고 잠언은 말합니다. 백성들이 정의를 부르짖고 억울하게 당한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곧은 말만 하고 바른 소리만을 입 밖에 낸다. 내 입은 진실만을 말하고 내 혀는 그른 소리를 꺼려한다."(8:6-7)고 지혜는 말합니다. 진실을 왜곡하고 보도하는 세상에서 지혜는 진실을 밝히려고 현장고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지혜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지혜가 고백합니다. "야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고 처음에 모든 것을 앞서 나를 지으셨다. 땅이 생기기 전, 옛날에 나는 이미 모습을 갖추었다. 깊은 바다가 생기기 전에 샘에서 물이 솟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그가 하늘을 펼치시고 깊은 바다 둘레에 테를 두루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다... 땅의 터전을 잡으실 때, 나는 불어 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 언제나 그의 앞에서 뛰놀며 날마다 그를 기쁘시게 해 드렸다.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 그가 만드신 땅 위에서 뛰놀았다. "고 이 고백에 따르면 지혜는 야훼의 피조물입니다.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참여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존재합니다. 특히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즐거워하여 사람들이 사는 이 땅 위에서 뛰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이 지혜를 거절한다고 합니다. "너희는 불러도 들을 체도 않고 손을 내밀어도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나의 온갖 충고를 물리치고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아 너희가 참변을 당할 때,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운 일이 닥칠 때 내가 비웃으리라...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길 줄 모르고 지식을 멀리한 탓이다."(1:24-29) 잠언이 전해준 지혜는 하나님의 세상 안에서의 임재,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과의 파트너 쉽을 실현하려는 매개 표시의 존재입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의 진리가 이 세상에서 실현되도록 돕는 인격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버림을 당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지혜의 설명을 들으면서 신약성서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 것을 느낍니다. 예수도 하나님의 진리로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예수는 죽었습니다. 예수가 죽은 후에야 사람들은 그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미리 예언하듯이 기록한 성경말씀이 요한복음 1장의 말씀입니다. 마치 요한이 잠언의 지혜를 소개하듯이 요한복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1:1-11).

 

이 요한복음의 말씀은 잠언의 지혜의 내용과 똑같습니다. 결국 요한은 예수가 몸으로 오셨지만 '예수는 말씀으로서 태초로부터 계신 분이고 그 말씀이 이 세상에 예수라는 빛으로 오셨지만 살마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죽였다고 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기독교는 예수의 근원을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과 구약성서에서 설명한 지혜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는 히브리어 호크마를 헬라어로 소피아라는 여성 언어로 사용합니다. 에 비해 "말씀"은 헬라어인 로고스라는 남성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 두 언어가 의미한 내용은 꼭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여성 언어인 "지혜가" 신약시대에 와서 남성 언어인 "말씀"으로 대치된 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오늘 우리 안에 살고 계신 하나님의 현상으로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도 삶 전체를 통하여 보여주셨고 지혜도 외치고 있듯이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계시면서 고통을 함께 경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혜이며 말씀인 예수는 민중과 함께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억압당한 민족과 함께 그들의 해방을 갈망하고 계십니다. 가난하고 버림 당한 백성들과 함께 가진 자들의 나눔을 기다리며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다시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외면하지 맙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지혜와 함께 그리고 예수와 함께 민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민중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그 자리에 함께 참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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