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년 주일예배 설교문 중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죄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 앞에 가려고 하다가 죽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피를 보시고 모든 저주가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편 23~28)
시 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시 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시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함께 하길 바라면서, 여러분이 가장 소망하고 사모해야 할 복, 인간의 참된 최고의 복이 무엇인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한 해의 첫 달, 곧 1월을 영어로 January라고 합니다. January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Janus라고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의 이름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Janus 신은 두 얼굴을 가지고 한 얼굴로는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바라보고, 다른 얼굴로는 새로 다가오는 해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1월에 그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런데 두 얼굴을 가지고 이중적인 모습을 지닌 Janus 신처럼, 인간도 극히 대조적으로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 가장 위대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참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셔서, 이 인간의 신적 기원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코 소멸되거나 없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담긴 참 지식과 의와 거룩의 영광스러운 속성들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다만 창조 시에 부여받은 것들의 희미한 흔적들만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전 존재가 더럽혀지고 부패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 이중적 성격 때문에 그의 영혼에 늘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여도, 자기의 머리를 높이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지각하면서도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깨닫는 존재입니다. 또 땅에 있는 감각적이고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것들을 바라고 살면서 동시에 하늘에 속한 신령하고 영원한 복들을 소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의 전 존재가 더럽혀지고 부패했기 때문에, 진리를 갈망하나 본성이 거짓되고, 안식을 열망하나 일락에서 일락으로 방황하며, 영원한 복락을 간절히 사모하나 순간적인 쾌락들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나 그릇된 방법으로 찾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리고, 돈에서 재물에서 명예에서 권력에서 정욕에서 하나님을 찾으나 그런 것들 속에서 자기를 상실해 버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부유한 아버지 집에서 난 아들이지만, 먼 이국 땅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자와 같으며,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파는 자와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스칼이 자신의 명상록 '팡세'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지성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 안에서만 참 안식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지고하며 절대적인 선하심 속에서만 참 안식을 얻을 수 있으며,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깊은 내면에 심어 놓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만 참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신 안에 안식할 때까지는 우리에게 참 안식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본문을 노래한 아삽의 경우도, 악인들이 하나님 없이 교만하고 강포를 행하면서 부와 재물을 쌓고 즐기며 지내는 복, 곧 악인들의 형통을 보고 실족할 뻔했다가, 결국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진정한 참 복을 깨닫고 마음에 큰 기쁨과 위로와 안식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모든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선의 끊이지 않는 원천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최고선이시며, 하나님만이 모든 피조물의 최고선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우리의 복입니다.
일반적 의미에서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의 최고선이시지만 보다 특별한 의미, 곧 언약관계에서 말한다면 하나님은 언약 백성의 최고선이시요, 하나님은 언약 백성만의 최고선이십니다. 언약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물에 대해 가지시는 부성적 사랑으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구속주의 사랑으로서 자기의 언약 백성을 사랑하시며, "나는 저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저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은 더 이상 단순한 하나님이 아니시며,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은 영적으로 우리를 낳으신 우리 영혼의 아버지시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또한 이 언약의 하나님은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노래한 우리의 목자이시며,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주시는 분이시며,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러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진정 우리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기쁨을 얻게 되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므로 인해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광을 맛보며,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우리의 복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소원이 진정 하나님을 가까이하려는 그 한 가지 소원이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한 걸음씩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기에게 가까이 감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며, 우리가 가까이 나아갈 때 반드시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간절히 바라고 사모하는 한 영혼의 고귀한 고백이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저와 여러분도 과연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이런 고백은커녕,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욱 바라고 사모할 때가 많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 없이도 만족을 느끼며, 하나님을 의지함이 없이도 우리의 생을 잘도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마음대로 살며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며 살아왔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덧입히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긍휼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바로 그 은혜와 긍휼 때문에 우리의 생이 이렇게나마 유지되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덧입히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한 은혜와 긍휼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만을 우리의 바라고 사모할 자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담들이 무너지고 거리감이 다 사라지고 친밀한 교제와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우리는 의식할 수 있는 살아있고 인격적이며 특별한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나는,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나의 곁에 계시는 분이 되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은 곧 하나님과 함께 함이 되며, 따라서 우리의 눈은 그분을 보는 것과 같고 우리의 귀는 그분을 듣는 것과 같으며 우리의 마음은 그분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밀접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갈 때에나 버스를 탈 때에나 집에서 일을 할 때에나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나 직장에서 근무할 때에나 하나님은 항상 바로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 고백과 기도와 이야기를 다 들으시며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받으시며 우리를 붙들어 주를 떠나지 않게 하시며 마침내 주의 영광에 우리를 영접해 들이실 그런 인격적인 분이 되십니다.
그래서 아삽은 고백하기를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경건의 신비를 깊이 알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올 한 해 동안 하나님께 가까이하기를 힘쓰면 경건의 비밀을 더욱 많이 맛보며 체험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고백을 지금보다 더 깊고 심원한 의미에서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이시면 그곳에서 영원히 그분을 가까이하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만 가까이 부착하여 사는 삶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시행하는 일이나 기업체들의 사업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회의 윤리와 도덕의 풍토가 점점 더 타락해가며, 문학이나 영화나 연극 등 모든 예술이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더럽히기 쉬운 상황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과 가까이하기 위해 영적 투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런 영적인 투쟁 때문에 우리의 육체와 마음이 쇠잔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적 투쟁에서 승리하며 구원을 얻는 길은 하나님께 보다 가까이 나아가는 것밖에 없으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영적 교제를 누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라고 아삽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어떠한 환란과 시험이 닥치고 창수가 나도 무너져 내릴 염려가 없는 굳건한 반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면 우리에게 큰 화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음녀 같이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선이요, 최고의 복 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가 화요,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고 원천이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아삽은 27절에서 노래하기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멀리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은 우리의 의무요 본분이며, 우리의 특권이요 우리의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가까이" 이 말이 올 한 해 동안 우리의 간구요, 우리의 소원이요, 우리 입술의 노래요, 우리의 표어가 되게 합시다. 여호와의 복이 여러분 위에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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