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민수기 21장 히브리어주석강해] 불뱀과 놋뱀의 차이점(민 21:4-9)

두란노 서원 2021. 2. 1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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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수기 21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불뱀과 놋뱀의 차이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 땅을 우회하려고 하니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먼 길로 돌아서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원망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주신 만나까지도 하찮게 보고 있습니다. 만나는 신약에서는 복음을 상징합니다. 육적으로 힘드니 자신이 구원받은 것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불뱀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지금까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호하심을 치웠더니 불뱀이 몰려와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이고 있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살 수 있는 방법을 주셨는데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불뱀이 아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습니다. 이것을 보는 자가 살아났습니다. 모세는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은 자입니다. 놋뱀은 바로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구약의 성도는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불뱀과 놋뱀의 차이점(민 21:4-9)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겠습니다. 4절은 바이세우 메호르 하하르 데레크 얌 수프 리세보브 에트 에레츠 에돔 바티케차르 네페쉬 하암 바다레크입니다.

민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21:4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 이스라엘은 에돔의 방해로 인해(20:18-21) 평탄'왕의 대로'가 있는 에돔 동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홍해의 길' 즉 아카바 만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광야길로 가기 위해 다시 바란 광야로 들어가야만 했다(2:1; 11:18). 이스라엘은 이 광야를 통해 남쪽으로 계속 행군하여, 에돔의 서쪽 국경을 형성하며 남북으로 뻗어있는 세일 산을 지나, 아카바 만의 입구와 인접한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을 통과했다. 이렇게 우회(迂廻)한 이스라엘은 에돔의 동쪽 지역의 광야 길을 통하여 다시 에돔 북쪽의 모압 지역을 향하여 올라간 것이다.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 히브리어 카차르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추수하다, 모으다라는 뜻이다. 백성들이 에돔을 우회하여 돌아간다고 하니 불평과 불만을 모두 마음에 모아서 표출하는 것을 말한다. 위에 언급한 대로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했던 이스라엘이 지름길을 제쳐 놓고 또다시 고역스런 광야 길로 나서야 했기에 백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극한 분노를 일으키고 말았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와 같은 상황에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신앙과 믿음을 보일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5절은 바예다베르 하암 베로힘 우베모쎄 라마 헤엘리투누 미미체라임 라무트 바미드바르 키 에인 레헴 베에인 마임 베나페셰누 카차 발레헴 하켈로켈입니다.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21:5

어찌하여... 죽게 하는고 - 이러한 백성들의 원망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터져 나온 습관적인 불평이었다(14:2, 3; 20:2-5; 14:11, 12; 16:3; 17:3). 그러나 이것은 '죽음으로부터' 그들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경륜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패역한 행위로써, 진정 그들은 생명의 가치를 누릴 자격조차 없는 '죽어야 할 자들'이었다.

()한 식물 - 여기서 '박한'(켈로켈)은 '악한' 또는 '무시할 만'이란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하늘의 음식인 '만나'를 멸시한 백성들의 완악함을 대변한 말이다. '만나'는 실제로 세상의 여타 음식물보다 훌륭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이 이것을 처음 대할 때 스스로 경탄한, 실로 맛있는 식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를 멸시한 것은 곧 그들의 세속적이고 패역한 마음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멸시하는 것과 같다.

싫어하노라(카차) - '몹시 지겨워하고 질색하여 끊어버린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박한'이란 말과 조화를 이루어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만나)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원수처럼 미워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결국 그들이 싫어한 것은 단순히 먹는 식물이 아니라, 출애굽 자체와 그것을 주도하신 하나님이었다.

6절은 바예샬라흐 아도나이 바암 에트 하네하쉼 하세라핌 바예나쉐쿠 에트 하암 바야마트 암 라브 미이스라엘입니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21:6

불뱀들(네하쉼 세라핌) - 문자적으로는 '불붙은 뱀'이란 뜻이다. 여기서 '불붙은'이란 형용사는 당시 이스라엘이 여행하던 광야 지역(특히 아라바 지역)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毒蛇) 가운데 한 종류로서,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 뱀을 일컫는 표현이다(Leon Wood, Schubert, Pulpit Commentary). 그와 함께 이는 그 뱀의 맹독성(猛毒性)을 강조한 말이라 볼 수도 있다(Keil). 즉 그 뱀에 물리게 되면 그 강력한 독성으로 인해 즉시 온몸에 높은 열이 생기며 죽어가기 때문에 붙여진 말일 것이다.

한편 원어상 '불뱀'이란 말 앞에 정관사''(the)가 붙은 것은 그 뱀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종류이며, 또한 특별히 하나님께서 보내신 징계의 도구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연계를 활용하여 당신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것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능력이다(11:36).

물게 하셨다고 했는데 나샤크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피엘 강조 능동형을 사용하여 피할 수 없이 물어버렸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불뱀은 구속사 관점에서 사탄을 상징한다. 사탄에 물리면 원죄의 죄악에 죽게 된다.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영혼이 살아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날 수 없다.

7절은 바야보 하암 엘 모쎄 바요메루 하타누 키 디바르누 바아도나이 바바크 히트팔렐 엘 아도나이 베야세르 메알레누 에트 하나하쉬 바이트팔렐 모쎄 베아드 하암입니다.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21:7

우리가... 범죄 하였사오니 - 이때 백성들은 불뱀의 습격 원인을 정확히 간파했으, 또한 그 해결책 역시 올바른 것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허물을 바로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는 당신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행하시는 회유와 권면의 채찍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범죄의 길에서 돌이키게 한다(3:12; 눅 15:14-17; 12:5-13).

모세가... 기도하매 -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재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온 인류의 중보자이신(8:34; 딤전 2:5; 1: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14:13; 16:23, 24)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여기서 모세의 기도는 백성들의 중재 요청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광야 여행 중 유일한 경우였다. 이는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음을 암시하며, 또한 이제 그들이 모세를 참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8절은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 모쎄 아세 레카 사라프 베심 오토 알 네스 베하야 콜 하나쓔크 베라아 오토 바하이입니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21:8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 하나님은 모세의 중재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a fiery serpent, KJV)과 동일한 모형 뱀을 만들어 깃발을 단 긴 장대 위에 매달게 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뱀의 파괴성을 앗아 가시고, 대신 은혜로우신 생명의 메시지(복음)를 널리 주심을 상징한다. 즉 이것은 죄의 권세를 무찌르고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17:15; 5:26; 11:10, 12). 그러한 의미에서 이 장면은 죽음(사단)의 권세를 물리치시기 위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늘과 땅으로부터 버림받아 허공에 높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생생히 예표한다(요 3:14, 15; 3:13; 2:15).

한편 여기서 장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스''빛나다', '눈에 띄다'란 뜻의 '나사스'에서 유래한 말로, 곧 많은 사람들의 눈에 확연히 띄도록 깃발(flag) 혹은 돛(sail)을 달아맨 긴 깃대(flagstaff, flagpole)를 가리킨다(60:4; 11:10; 렘 51:27).

그것을 보면 살리라 - 하나님은 불뱀의 치명적인 독성(毒性) 제거하는 유일한 치료법으로써 그들을 쓰러뜨린 불뱀 형상을 보게 하셨다. 이는 '치료하시는 여호와'(15:26)의 능력의 부족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1)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허물을 다시 한번 똑똑히 자각하게 하고 (2)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다는 순종의 도를 가르치며 (3) 또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생명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장대에 높이 들린 자'(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길밖에 없음을 가르치는 구원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14:6; 4:12).

9절은 바야아스 모쎄 네하쉬 네호쎄트 바예시메후 알 하네스 베하야 임 나샤크 하나하쉬 에트 이쉬 베히비트 엘 네하쉬 하네호쎄트 바하이입니다.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21:9

놋뱀을 만들어 -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놋쇠(bronze)로 불뱀을 만들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자유주의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그들은 이것이 뱀을 높이 받듦으로써 뱀의 노여움을 풀고자 시도한 고대 토템(Totem)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W.R.Smith). 또는 강력한 놋뱀을 만듦으로써 그 위력으로 역시 뱀을 쫓아내고자 한 고대의 사귀(邪鬼) 축출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Frazer). 그러나 이러한 이방적 해석은 전혀 터무니없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은 오히려 바로 이러한 이방의 온갖 우상 숭배 및 사술(邪術)의 철저한 배격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20:4, 5; 19:31; 20:27 ). 한편, 그런데 모세가 불뱀을 ''으로 만든 이유에 대하여 학자들은 이 재료가 햇빛에 반사될 때 내는 붉은 빛깔 때문에 선택되었다고도 하고 또한 불에 잘 견디는 내열성(耐熱性) 때문에 선택되었다고도 한다(Keil, Lange).

따라서 그들은 영적으로 이 놋뱀이 불로 상징되는 심판과 그 심판의 고통을 견디어 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를 상징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놋뱀은 가나안 정착 이후에도 계속 보존되었으며(히스기야 왕 때까지), 심지어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숭배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왕하 18:4). 따라서 히스기야 왕은 종교 개혁 실시 때 이 놋뱀을 부셔 버리고, 그것을 '느후스단'(놋조각)이라 했던 것이. 실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 그 자체에 신통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놋뱀을 통해서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숙한 여호와 신앙의 선민이 되어야 했다.

장대 위에 다니 - 루토(Luther)는 그의 요한복음 3장 설교(Luther's Sermon on John iii. 1-15)에서 이 사실, 곧 놋뱀을 만들어, 그것을 장대 위에 달아, 그것을 쳐다본 자가 치료된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놋뱀(구리뱀)을 만든 사- 놋뱀의 실제 모양은 불뱀이로되 독()이 없다. 이것은 실제 사람의 형사이시되(2:7), 전혀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8:3; 고후 5:21; 4:15; 벧전 2:22-24).

(2) 놋뱀을 장대위에 높이 매단 사실 - 이것은 실제적으로 (일차적으로) 땅에 거하는 모든 악(사단)의 세력에 대한 공개적인 처형이며, 영적으로는(구속사적으로는), 그리하여 이제 사단의 권세가 모두 처형된 승리의 그 자리에 우뚝 솟아계신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습이 만백성에게 현시된 그 사실을 상징한다(3:14; 2:14, 15). (3) 놋뱀을 쳐다보아야 산 사실 - 이것은 일찍이 뱀(사단)의 머리를 쳐부술 자로 계시된 여인의 후손(창 3:15), 곧 인자(人子)되신 그리스도를 전적 의뢰하여야만 모든 뱀의 독성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대진리를 상징한다(Keil & Delitzsch, Pentateuch, Vol. I-iii. pp. 140, 141).

쳐다본즉 살더라 -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만 구원의 기쁨이 전달되었다(3:16).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즉시로 살아났다. 우리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죽음에서 바로 살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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