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1장 주석 강해 중에서 유다 지파 예루살렘 헤브론 정복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유다 지파가 아도니 베섹을 정복하고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정복하는 이야기입니다.
유다 지파 예루살렘 헤브론 정복(삿 1:1-10)
삿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 말은 사사기 전체의 서문(序文)이자 표제어로서 여호수아서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여 역사적으로 사사기는 여호수아서의 연속임을 말해 준다. 책머리에 이 같은 역사적 서술을 도입시킨 것은 사사기 전체의 역사적 배경을 알림과 동시에 독자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강력한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죽은 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 말은 모세의 죽음이(수 1 : 1) 광야 생활의 종결과 가나안 입성과 정복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하듯 여호수아의 죽음이 가나안 정복의 시대가 끝나고 정착 생활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됨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여호와께 물자와 가로되. '묻자와'의 원어 '솨알'은 단순히 '누구에게 묻다', '상의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특히 여기서와 같이 그 대상이 여호와일 때는 전쟁 전에 전쟁의 승패 여부를 여호와께 확인하는 관례적인 행위에 사용되고 있다(삿 20 18, 23, 28 ;삼상 14 : 37 : 22 :13), 따라서 묻는 행위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전쟁에 임할 태세가 갖춰져 있음에 대한 표현이다. 한편, 백성들이 여기서'이 물음'을 한 이유는, 분배받은 영토 안에 있는 거민들을 쫓아내고 땅을 완전히 정복하라는 여호수아의 명령을 순종하고자 하는 백성들의 의지를 표현하고자 함이다. 다시 말하면 가나안 땅에서 거주하고 있는 거민들을 쫓아내어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완전히 건설하여 복락을 누리기 위한 제일보를 내디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경유로 해서 물었으며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추측컨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데 사용된 우림과 둠밈으로나(출 28 : 30 ;민 27 : 21) 제비뽑기와(수 7 : 14 : 잠 16. 33) 같은 방법으로 백성들은 물었을 것이며 하나님은 답하셨을 것이다.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싸우리이까. 이는 백성들이 전쟁을 위해 여호와께 물었던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이 물음에서 볼 수 있듯 이 번 전쟁은 각 지파별로 치르게 되어 있다. 이는 이스라엘 전체가 한 군대를 이루어 정복에 임했던 수 1-10장의 양상과는 달라 보여 사사기서와 여호수아서가 연결된 책이 아닌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호수아서의 정복 과제와 사사기의 정복 과제가 다름을 알 때 오해는 풀리게 된다. 여호수아서는 정복의 당면 과제로 가나안 전체에 대한 점령을 초점 화하고 있는 반면, 사사기서는 각 지파가 분배받은 영토 안에 거하는 가나안 거민들을 각 지파가 진멸하여 정복을 완결 짓는 전투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본서는 여호수아서의 역사와 단절되거나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복의 점진적인 면을 보임으로 역사의 계속성과 점진성과 통일성을 깨닫게 해 준다..
한편 '먼저'의 원어'테힐라'는 '개시', '시작', '첫 번'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는 것이 아니라 분배받은 땅 안에 거하는 거민들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한 '첫 번 출전'을 말한다. 따라서 이 물음은 가나안 거민을 완전히 좇아내고 완전한 가나안 정복을 위해 어느 지파간 첫 번째로 출전하겠느냐는 의미이다. 올라가서' 원어 '알라'는 '오르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여기서는 '전쟁에 나가다'로 이해됨이 옳다. 이것은 구약에서 전장(戰場)에 나가는 행위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된 것에 근거한다. 한편 구약에서 전장에 나가는 것을 대개 '오른다'로 표현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고대의 요새화 된 성읍들이 보통 산이나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른다'는 표현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대개 전쟁에 참여하여 전투를 벌이는 행위로 이해되었고 말해졌다(신 1:26, 42, 43 ; 9:23 ;수 7:2, 3;삿 1:22:4:10).
삿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
1:2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유다는 유다 지파를 가리킨다.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서 수효가 가장 많아 가장 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민 1:27 ; 26:22).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강한 유다 지파를 먼저 택한 이유는 민족의 대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죽고 난 이후에 다소 가나안 정복 정착의 완성에 대해 의기소침 해 있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고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가나안 정복 정착 사업을 완성케 하려는 것이었다. 한편 유다 지파의 이러한 강성함은 창 49:8-12의 야곱의 예언의 성취이며, 정복 전쟁의 선봉에 섬은 축복의 실현이다. 이 땅. 여호수아 생전에 각 지파에게 땅이 분배되었으나 아직 미 정복 상태로 남아 있는 '모든 땅'을 지칭하는 말이다. 유다 지파를 선봉에 세운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남은 모든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삿 1:3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1:3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나와 함께‥‥싸우자.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에게 미정복지 정복 전쟁에의 동참을 제의한 것은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이 유다 지파의 남쪽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의 영토 중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당연한 것이었다(수 19:1-9). 그래서 시므온 지파는 자기의 기업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한 정복 전쟁에서 유다 지파와 연합 전선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한편. '가나안 사람'은 일반적으로는 요단 강 서쪽 지역에 사는 모든 주민들을 일컫는 용어이며. 엄격한 의미에서는 산지에 사는 주민인 아모리 사람과 구별되는 해안 평야와 골짜기에 사는 주민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수 9장 연구자료, '가나안 일곱 족속'을 참조하라.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 이 말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땅을 분배한 방법을 나타낸 줌과 동시에 그 땅이 하나님께로부터 지정된 것이요 주어진 것임을 나타내 준다.
삿 1: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1:4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일곱 족속 중 두 족속을 일컫는 말이다. 즉 여기서 가나안 사람은 1절에서의 가나안 사람과는 구별된다. 본 절의 가나안 사람은 1절에서 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가나안 사람이 아니라, 블레셋 중부와 요단 서편 계곡 및 평원에서 살던 사람에 국한된다. 그리고 브리스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산지지역에 살고 있었던 듯하다(수 17:15), 아마 브리스의 원어 페리지'는 '성벽이 없는 성읍의 거주자들'이란 뜻의 '페라조트'에서 유래된 호칭인 듯하다 (Armerding). 한편, AV에서는 이를 '시골뜨기들'로 번역하고 있다. 손에 불이신지라.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적군을 패배시켰다는 것을 말하는 성경의 일반적 용어이다. 베섹.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유다 지파의 진격로(路)가 동쪽으로부터 진입하여 북쪽에 있는 므낫세 지역의 가나안 성읍을 점령하고 이어서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진격했기에, 베섹은 삼상 11:8의 암몬을 치기 위해 사울이 군대를 소집한 베섹과 같은 곳으로 추측된다.
삿 1: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1:5 아도니 베섹. '베섹'이라는 지명과 '주권자', '통치자'라는 '아돈'의 합성어로 '베섹의 주' 또는 '베섹의 우두머리', '베섹의 왕'이라는 뜻이다. 이 아도니 베섹은 베섹의 군주로 칠십 군왕을 다스리던 권세자였으나 하나님의 징계로 결국 망하게 되었다. 한편, 70인 역(LXX)에선 수 10:1-3의 '아도니 세덱'을 '아도니 베섹'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에 의거 몇몇 학자들은 둘을 동일 인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삿 1: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1:6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 엄지 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른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고대 근동 지역에서 패배한 적군의 군왕의 신체를 절단한다는 것은 커다란 수치를 안겨 주는 행위였다. 뿐만 아니라 군사적 의미에서 엄지 손가락을 잘음으로 칼, 활, 창 등의 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하고 엄지발가락이 없으면 걷는 것이 불편하여 전투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은 전사(戰士)로서의 기능을 상실케 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고대 왕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전쟁을 수행하는 일이기에 이러한 절단 행위는 그에게 왕직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케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이러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또 다른 양태는 눈을 찢는 것이 있었다(삿 16:21 ;삼상 11:2).
삿 1:7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1:7 칠십 왕. 이들이 누구인지는 성경이나 다른 문헌에 나타나지 않지만 아도니 베섹에게 정복당한 성읍의 '성주'(城主)나 '부족장'(部族長)을 의미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당시 가나안은 여러 부족 연맹체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왕들은 가나안의 한 지역이나 성읍 또는 부족을 다스리던 통치자를 말한다.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상'은 바닥에 앉아 먹기에 편리하게 만들어진, 크기가 작고 키가 낮은 것일 수도 있고 의자를 놓고 먹는 탁자일 수도 있다. 하여간 이 상은 식사를 위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한편,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는다는 것은 실제로 칠십 왕들이 상 밑에 들어가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개와 같이 주인이 먹다가 떨어뜨렸거나 남긴 부스러기를 다 모아 먹는 광경을 연상케 한다. 따라서 이는 아도니 베섹이 그들을 홀대(忽待)했으며, 칠십 왕들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했는지를 대변해 주는 단면이기도 하다(마 15:27 참조).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이는 남에게 보인 손해만큼 가해자가 동일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동형 복수법의 인과응보의 원리를 보여주는 구절이다(갈 6:7). 아도니 베섹은 유다의 공격 전에는 칠십 왕을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다스렸던 권세가로서 위세를 떨쳤지만, 심판의 칼날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하여 칠십 왕이 당했던 수치와 고통을 똑같이 당해야 할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한탄하고 있다. 따라서 아도니 베섹의 고백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거나 자신의 죄를 회개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동형보복법적 사상에 따라 겪게 될 자신의 고통스러운 처지에 대한 탄식과 한탄에 불과한 것이다. 종국에 그는 그의 죄로 사망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의 삯은 사망인 것이다(롬 6 23).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어떤 학자들은 아도니 베섹을 예루살렘까지 끌고 간 것은 그가 예루살렘의 왕이었기에 예루살렘 성을 지키던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정복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추정한다. 또한, 이러한 추정하에 아도니 베섹과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 세덱을 동일시하려 하였으나 이 는 객관적인 근거 가 없는 추정에 불과하다(5절 참조),
삿 1: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1:8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예루살렘이 완전히 정복되어 이스라엘의 영토가 된 후 수도로 성립이 된 것은 다윗 시대였다(삼하 1:21 ; 5:6-9 ; 왕상 5장). 따라서, 본 절의 예루살렘 정복은 완전한 정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지역의 요새화 되지 않았던 남서쪽 산지를 점령하고 파괴하는 데 성공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이해는 19절에서 '골짜기 거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유다가 그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다는 내용과 잘 부합된다. 한편, 이때 정복하지 못한 땅들은 수많은 세월이 흐른 다윗 왕 때에야 정복되어 수도로 정해졌으며 성전도 세워졌다(삼하 5:9).
삿 1: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9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내려간다'는 것은 해발 800m에 달하는 고지대인 예루살렘에서 사막과 평원과 구릉 산지를 향한 진군이 계속됨을 나타낸다. 산지와 남방과 평지.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할당받아 정복을 완성해야 할 땅의 지형을 말해준다. 여기서 '산지'란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에 이르는 구릉성 산지를 가리킨다. 또한 '남방'의 원어는 '네게브'로서 유다의 남쪽에 위치한 사막 지역을 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평지'는 '쉐펠라'라고 부르며 산악 지대와 해안 평원 사이를 가르는 구릉지대를 일컫는 말이다.
삿 1: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1:10 헤브론. 예루살렘 남쪽의 고산지대로, 남부 구릉 산지의 중심 성읍으로 갈렙에게 할당된 지역이다 (삼하 2:1:5:1-5). 역사적으로 아브라함 가족의 소유로 된 가족묘라고 알려진다. 이는 아브라함, 사라, 이삭, 리브가, 야곱, 레아가 매장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창 23:2-20 ; 25:9; 35 17-29 ; 49:31 ; 50:13). 또한 헤브론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권좌를 옮기기 전인 통치 초기에 수도로 삼아 7년 6개월 동안 치리 한 곳이기도 하다(삼하 2:1;5:1-5). 한편, 헤브론의 옛 이름인 '기럇 아르바'는 '넷'을 의미하는 '아르바'와 '성', '도시' 등의 뜻을 지닌 '키르야'의 합성어로서 '넷의 성읍'을 의미하는데 이는 아마 네 개의 도시가 서로 동맹을 맺고 있던 것에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이는 '연합'이라는 뜻을 지닌 '헤브론'이라는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오늘날의 '엘 칼릴'(El -Khalil). 세세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강하고 힘센 아낙의 후손들이고 팔레스틴의 남부 구릉 산지에 거주하던 토착민으로 유다의 군대에 죽임을 당해 망하였다. 이 세 이름은 개인의 이름이기보다 씨족이나 부족의 이름이다. 한편, '세새'는 '태양'을 의미하며 '아히만'은 운명의 신인 '메니(Meni)의 형제'란 뜻이며 '달매'는 '둑', '고랑', '이랑'의 뜻을 지닌 '테렘'에서 유래하여 '이랑을 깎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씨족의 이름이 그들이 섬기는 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상숭배가 얼마나 만연 했는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죽인 것은 그 땅에 만연한 우상숭배를 척결하는 것을 의미하며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代行)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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