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사사기 17장 하나님 말씀] 미가의 우상숭배(삿 17:1-13)

두란노 서원 2022. 3. 1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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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7장에서는 미가의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시대의 타락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미가의 우상숭배(삿 17:1-13)

 

사사기 17-21장은 사사 시대에 두 가지 죄악의 예들을 말씀한다. 그 하나는 우상숭배의 죄악이며 다른 하나는 음행의 죄악이다. 첫 번째 것은 미가의 집과 단 지파의 우상숭배의 예를 기록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베냐민 지파 기브아의 음행의 예를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사사 시대뿐 아니라, 인류의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대표적인 두 가지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1-3]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 . . .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은 1,100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1,100, 아마 1,100세겔은 삼손 때 블레셋 방백들이 들릴라에게 준 금액으로서 매우 큰 액수이었다. 미가는 그것을 어머니에게서 도둑질하였으나, 어머니의 저주의 말씀을 듣고 아마 두려운 마음이 들어 어머니께 사실을 고한 것 같다. 어머니의 돈을 훔친 것은 큰 죄이다. 잠언 28:24,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의 고백을 듣고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다. 여기에 도덕적 혼란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마땅히 엄히 책망했어야 했다. 죄의 고백이 결코 복받을 일은 아니다. 더구나 그가 이미 저주를 선언한 후이었다. 그는 쉽게 저주하고 쉽게 축복한 것 같다. 그것은 다 도덕적 결함이었다.

미가가 은 1,100개를 그 어머니에게 도로 드리자 어머니는 말했다.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리리라.” 미가의 어머니의 경건은 순수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의 아들을 위해 한 신상을 새기며 부어만들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들을 위하는 행동이 아니고 아들을 멸망케 하는 행동이었다. 그가 아들을 참으로 위하려면 모든 우상을 버리고 모든 우상숭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바로 섬겨야 했다. 또 미가의 어머니는 이런 우상을 만들기 위하여 그 은을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기를 원했다. 이것은 참으로 무지와 혼란일 뿐이다.

[4-5] 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 . . .

미가가 그 은을 어머니에게 도로 드리자, 어머니는 그 중에서 은 200개를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었고 그 신상들은 미가의 집에 있었다. 우상숭배는 미가의 어머니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미가의 집에는 신당이 있었고 그는 에봇과 드라빔도 만들었다. 에봇은 제사장의 옷들 중 하나이다. 또 드라빔은 가정수호신으로 섬기는 우상이다. 창세기 31장에 보면,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신상인 드라빔을 훔쳐 자기 약대의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아서 그것을 숨긴 일이 있다. 미가는 또 자기 아들들 중 하나를 세워 제사장을 삼았다.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만 될 수 있는 직분이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던 미가는 에브라임 지파의 자손이었을 것이다. 그가 후에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을 보면 그는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 아들들 중의 하나를 임의로 세워 제사장을 삼은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악이었다. 이와 같이 미가는 열렬한 우상숭배자이었다.

[6]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 . . .

본문은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사 시대를 잘 묘사한다(21:25에도 나옴).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표현은 사람들이 주관주의와 인본주의의 넓은 길을 걷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통일된 하나님의 지식이나 통일된 신앙적 지식이 없었다. 진리 안에서의 다양성은 좋은 것이지만, 진리에 대한 다양한 견해, 그것도 서로 모순되는 다양한 견해를 용납하는 것은 영적 혼란일 뿐이다. 사사 시대가 바로 그러한 종교적 포용주의 혹은 다원주의의 시대이었다. 그것은 결국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이다. 바른 길은 인간의 주관적 사상들을 버리고 성경에 계시된 진리의 바른 사상을 수납하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다.

[7-9]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 . . .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었다. ‘유다 베들레헴은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19:15)과 구별된 표현으로서 사사기 17장과 19장 및 룻기 1장 등에 나온다. 그 소년은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다. 이 사람은 거할 곳을 찾으려고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지역에서 그들의 거처할 성읍으로 여섯 개의 도피성을 포함하여 48개의 성읍들을 얻었었다(21:1-4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십일조를 잘 바치지 않음으로 생기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레위인들이 경제적 안정을 찾아 방황한 것 같다. 미가는 자기 집에 방문한 그 레위 소년에게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라고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고 하였다.

[10-11]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 . . .

미가는 그에게 말했다.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레위인은 제사장이 될 수 없다. 단지, 그들 중 아론의 자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가는 그 레위 소년을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초청한 것이다. 그 레위 소년은, 아마 경제적 어려움을 가진 터이었으므로, 그 초청을 수락하고 그 집에 들어갔고 그와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다. 그것은 그가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12-13]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 . . .

미가는 그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했고 그는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했다. 그러자 미가는 말했다.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미가는 매우 종교적이었고 열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복을 사모했으나,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보다 오히려 그의 징벌을 받기에 적합하였다.

본장은 사사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예로 증거한다. 그것은 특히 지식의 어두움이었다. 그것은 우상숭배의 현실이었다. 미가의 가정은 가정적으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그의 모친은 우상숭배자이었다. 미가 자신도 우상숭배자이었다. 그의 아들도 우상숭배자이었다. 미가의 집에는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이 있었다. 그의 집에는 우상을 모셔 놓고 그를 섬기는 신당이 있었다. 그의 집에는 하나님이 인정치 않는 제사장이 있었다. 미가는 처음에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집을 우연히 방문한 한 레위 소년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그 레위 소년은 그 제사장직을 거절해야 했으나, 그는 경제적 안정 때문에 그 직을 수락했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었다.

이런 어두움에 덧붙여 도덕성의 혼란도 있었다. 어머니의 거액의 돈을 아들 미가는 도둑질하였었다. 어머니는 그 돈을 훔친 자를 저주하였으나, 아들이 그 범인이라는 자백을 듣고 그를 책망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축복하였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뒤죽박죽의 혼란이었다.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진리와 사랑을 둘 다 유지해야 한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하지 않는 곳에는 도덕적 혼란만 있을 것이다.

본문 6절이 증거하는 대로, 사사 시대의 특징은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이었다. 그것은 주관주의, 인본주의, 종교적 다원주의이다. 그것은 결국 멸망에 이를 넓은 길이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다 우상이다. 우리에게 하나님 대신에 절대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은 다 우상이다. 우리의 절대적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종적, 절대적 의미이시며 가치이시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의 어두움에서 방황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참된 경건성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진리의 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성경책에 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신구약 66권에 다 계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책에 정통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여러 사상과 주장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더욱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귀를 기울이며 그 교리와 생활 교훈에 집착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건전하게, 주관적이지 않게 해석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 죄인은 구원을 받고 도덕성의 회복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한 인격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다(119:105). 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우리는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 거기에 도덕적 온전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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