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성경공부자료

[성경 원어 설교말씀] 율법(律法)의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개념

두란노 서원 2023. 1. 14. 09:21
반응형

교회에 많이 듣는 말씀이 율법이다. 율법주의 신앙을 하지 말라고 많이 말씀을 듣는다. 오늘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율법의 개념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통해서 깨달아 보자.

 

율법(律法)의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개념

 

세상에는 모든 법들이 있다. 인간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 법을 이탈하면 문제가 생긴다. 무법천지가 되면 세상은 힘 있는 자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법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서로의 약속이다. 법 안에서 자신의 뜻대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문제다. 이 세상에서 법이 계속해서 개정되고 만들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불법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죄를 짓기 때문에 이 죄에 대하여 처벌을 내리기 위해서 법을 만들게 된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으면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신가? 이 세상의 법이 만들어진 기본 모태는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법을 기본으로 세워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법 위에 성경의 법이 권위가 있다. 하나님의 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의 교회는 문제가 있으면 세상의 법에 호소를 한다. 고발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 한다. 하나님의 법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법이 세상 법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우리가 율법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법이 세상 법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율법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라고 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 된 인간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 자신의 행위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올바른 행위 외에는 구원 얻을 자가 없다. 이제 우리는 율법주의 신앙에서 벗어나 예수그리스도의 올바른 의로 구원을 얻고 율법을 지켜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헤브라이즘의 관점에서 율법을 알아보자.

헤브라이즘 관점에서의 율법

하나님은 율법이 있기 전에 믿음으로 구원을 주셨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 율법은 그 다음에 모세에게 시내 산에서 언약하셨다. 이것을 볼 때에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고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은 백성들이 광야 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의 뜻대로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하려고 율법을 수여하셨다.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우리는 보통 모세가 받은 율법이 최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수여하셨던 율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서 순종하고 지켰다.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있었는데 이삭 때도 흉년이 왔다. 이때에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갔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했다. 하나님이 거주하라고 한 땅에 머물면 복을 주고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법도라는 단어가 (토라 8451) 율법, 가르침, 훈계, 법령,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야라 3384) 창이나 화살이 관통되다, 가르치다, 교훈하다, 알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보통 우리가 죄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과녁에서 빗나가다, 라는 의미로 알고 있다. 율법은 창이나 화살이 과녁에 정확하게 꽂힌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확하게 모두 지켰다는 의미다. 우리가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죄인 된 인간은 율법을 모두 지킬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온전케 하셨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은 사람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공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것을 그의 공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은 의다. 이렇게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은 의롭게 보신다. 나의 의는 1%도 들어가진 않은 의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의는 전혀 없었다. 아브라함이 구원을 받고 난 후에 율법을 지켰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렇게 율법을 지킨 것처럼 열심히 지켜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거주하면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 서로 토론해 보자. 나의 구원이 나의 행실인지 아니면 예수그리스도의 공로인지를 생각해 보자. 그러고 난 후에 나는 율법을 지켜야 할 것인지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지를 논의해 보자. 율법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으로 구원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지 구원시키는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은 대표적으로 십계명을 들 수가 있다.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세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율례이다. 그래서 율법은 613개의 계명으로 쪼개져 있다.

우리가 (토라)의 단어를 해부해 보면 (타브)400이라는 숫자 값을 가지고 있다. (바브)6이라는 숫자 값을 가지고 있다. (레이쉬)200이라는 숫자 값을 가지고 있다. ()5라는 숫자 값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모두 합치면 611이 나온다. 여기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나온 것은 하나님 안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베이트)의 숫자 값은 2이다. 그래서 율법은 613개를 의미하고 있다.

출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와 기뻐하더니 광야에서 삼일 길을 걸어서 마라에 도착했을 때에 마실 물이 없음으로 모세를 원망하였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한 나무를 지시하셔서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게 되어 마실 수가 있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규례를 지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에서 규례라는 단어가 (호크 2706) 규정, 관습, 의무,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카크 2710) 조각하다, 새기다, 쪼아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행세칙이 필요하다. 이것이 규례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들의 의무다. 이 말씀을 마음 판에 조각하여 새기듯이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나의 잘못된 불법의 행동이 있다면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정으로 쪼아내듯이 쪼아서 다듬어야 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내가 구원을 얻었으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구원받고 천국 가는데 율법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말할 것이다. 이런 자들은 무법방종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율법을 폐기한 사람이다.

사람이 율법을 폐기하게 되면 무법자가 된다. 세상에서도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 처벌을 받는다.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법을 폐기한다고 해서 법이 폐기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율법을 폐기하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려고 더 노력하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한다. 이렇게 구원의 확신을 얻고 구원받은 사람이 열심히 주님의 뜻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살게 되면 하나님은 이 사람을 축복하시고 기억하게 된다.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자를 기억하여 자신의 손바닥에 이름을 새겼다고 말씀하고 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이름이 새겨져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손바닥에 새겼다는 단어가 (하카크)이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나의 이름을 손바닥에 기록하시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끌로 나무에 철심으로 철판에 이름을 새기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이처럼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자신의 손바닥에 새겨서 기억하신다. 이렇게 구원받고 난 후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럴 때에 실제로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의 확신은 없지만 열심히 율법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내세의 축복은 없지만 현세의 축복은 있다. 우리들은 내세와 현세에서 복을 받아 누려야 한다. 현재 내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인가? 하나님 앞에서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서인가? 각자 생각해 보자.

그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의 또 다른 말씀이 무엇인가? 이 말씀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공포가 되어야 한다.

33: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하는 말씀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여호와께서는 시내 산에서 강림하실 때에 그의 오른손에는 백성들을 위해서 번쩍이는 불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라는 단어가 (다트 1881) 법령, 포고, 칙령,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율법의 말씀을 공포하는 것을 말한다. 한 번 공포되면 법을 위반했을 때에 처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른손에 번쩍이는 율법의 공포의 불을 가지고 계셨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번쩍이는 율법의 불을 공포하셨다. 이 율법의 법이 공포되었는데도 내 마음대로 살면 결국 법대로 처벌을 받게 된다. 우리가 율법을 어겼다고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법대로 육적인 고통의 처벌을 받게 된다.

다윗의 경우를 우리가 들 수 있다. 하나님은 율법에 간음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공포하셨다. 그런데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간음함으로 죄를 지었다.

삼하11: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여 임신한 사실을 알고 우리아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보내어 맹렬한 전투가 있을 때에 우리아를 선봉에 세우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적에게 맞아 죽게 하라고 편지를 썼다. 그러고 난 후에 우리아는 전투에서 죽게 된다. 이 소식을 접한 다윗은 안타까워하지도 않고 전쟁에서는 어느 누구나 죽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아의 장례가 끝난 후에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였다. 다윗은 구원을 못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했고 살인하지 말라고 했던 율법을 어겼다. 율법을 어긴 대가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삼하12:10-11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다. 강제로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로 삼은 대가는 너의 집에서 영원토록 칼이 떠나지 않겠다는 처벌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너의 눈앞에서 너의 아내를 빼앗아 너의 이웃들에게 주고 또한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 대낮에 동침하는 처벌이 내려졌다.

다윗이 율법을 어긴 대가는 혹독했다. 이것은 다윗의 일생가운데 모두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율법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의 법을 무시했기 때문에 처벌이 강하게 내려진다. 나는 현재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구원받았으니 율법을 무시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자. 구원의 확신을 얻는 순간 하나님의 율법이 나에게 공포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율법을 어기면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지만 율법은 공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법대로 처벌하게 된다. 아무데서나 사랑의 하나님을 외쳐서는 안 된다. 율법을 어겨놓고 사랑의 하나님을 외쳐서 처벌을 피하려고 하는 신앙은 어리석고 미련한 신앙이다. 율법은 용서가 없다.

우리가 구약의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율법을 공부했으니 이제는 신약의 헬레니즘 관점에서 율법을 공부해 보자.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율법

신약에도 율법이라는 단어가 있다. 헬라어를 통해서 율법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은 신약에서 율법은 폐기된 줄로 생각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율법이라는 단어가 (노모스 3551) 율법, 규범,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네모) 할당하다, 분배하다, 지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율법은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할당된 법이다. 이 율법을 어기면 말씀에 지정된 대로 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율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분배된 것이다. 부자라고 율법을 어길 수 없고 가난한 자라고 해서 율법에서 봐주는 것이 없다. 율법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된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여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분이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었다면 이제부터는 율법에 할당된 몫을 지킴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율법을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관점에서 공부를 했다. 율법은 죄를 깨닫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뿐이지 구원을 시키는 것은 아니다.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율법이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통해서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한다.

[구원론 복음 설교말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4가지 의미(사 52:10)

 

[구원론 복음 설교말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4가지 의미(사 52:10)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4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혼 구원만 생각하지 말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의 4가지를 정확하게 알아서 성경을 볼 때 구원이 나올 때마다 정확하게 분별하는

drn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