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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지리 설교문] 가바다 Gabbath

두란노 서원 2020. 4. 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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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란노 서원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성경 지명 설교문 중에서 가바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가바다 Gabbath

 

1. 이름과 특징

 

1) 의미 : '열려진 공간', '언덕 고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람어에서 유래되었다.

2) 장소 :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궁 앞의 돌로 포장된 광장의 이름이다. 헤롯 궁은 후에 총독 관저로 사용되기도 했다.

3) 용도 : 재판이나 연병 등의 중요한 행사들이 벌어지곤 했다.

 

2. 위치 추정과 그 근거들

 

1) 위치 : 총독의 관저 밖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2) 위치 추정 : 예루살렘 북쪽의 '빌라도의 집'으로 불렀던 헤롯 왕의 요새인 안토니아 망대 옆이었다는 설이 일반적으로 주장되고 있다.

3) 추정 근거

6세기 초의 인물인 테오도시우스가 안토니아 망대를 빌라도의 궁과 동일시하고 있다.

안토니아 망대의 일부인 성 마리아 수녀원의 건물 밑에서 돌로 포장된 장소가 2,000나 발견되었다.

포장에 썼던 돌덩이들의 크기는 0.8m2, 두께는 30cm가 넘었다.

이 돌판들에서는 로마 군인들이 오락을 위해 표시한 여러 기호들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어떤 돌에는 배수로를 내기 위해 잘려나간 흔적이 있다.

이 뜰은 동쪽으로 연장되어 '편태 수도회'의 건물 바로 밑까지 이르렀다.

 

3. 안토니아 망대 지역

 

1) 이 지역은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었는데, 이후의 지도자들이 이 성벽을 지역의 바깥쪽까지 확장하였다.

2) 현재는 예루살렘 안쪽으로 편입되었다.

3) 세 개의 개선문들이 후대의 통치자들에 의해서 세워졌고 중앙의 개선문은 '고난의 길'이라고 부르는 비아 돌로로사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4) 오늘날 '에케 호모 아치'로 알려진 세 부분으로 된 아치(개선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전통적으로 전해 오는 비아 돌로로사에 있다.

5) 북쪽 아치는 1870년경 시온의 성모 수도회 내에 지어진 에케 호모 교회의 성가대석이 되었다.

6) 가바다로 알려진 리토스트로톤을 보려면 이 수도회의 허가를 얻어야 들어갈 수 있다.

 

4. 근거에 대한 견해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안토니아 망대 지역에서 예수의 재판이 없었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추 정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확정적인 장소 추정은 어려운 실정이다

 

5. 성경의 언급

 

요19:13에서 나오는데, 빌라도는 가바다(박석)라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예수님을 심문하고 유대인들에게 내어준 일과 관련되어 있다.

 

원어설교 : 가바다 Gabbath

가바다 Γαββαθα : 갑바다 Gabbatha

요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가바다는 '그 집이 있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גב ביתא(가브 베이타)에서 유래된 것으로 '산등성이'나 '고지'처럼 높은 곳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성전이 있는 구릉지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은 이곳에 모자이크로 포장된 뜰을 만들고 자신의 궁정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빌라도 총독은 이 처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는 불의한 재판을 열었던 것입니다.

 

1. 가바다는 하나님의 처소를 상징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처소를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시113: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바다의 어근인 가브(높은 곳)가 하나님의 처소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욥도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처소는 '높은 곳'으로 표현되었으며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을 향해 나아갈 때 '성전으로 올라간다'라는 표현을 썼던 것입니다(행3:1).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의한 자들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사람들의 원성을 두려워하였고 자신의 명성을 지키려고만 하였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처소가 우리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요 1:14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살아 있는 처소로서 '높은 곳'(가브, גב)을 버리시고 우리 가운데 친히 거하셨습니다. 여기서 '거하신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헬라어 동사 ερκηνωσεν(에르케노센)은 '장막에 산다'는 뜻으로 장막 같은 인간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물러 계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의 몸을 하나님의 처소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처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죄의 몸이 멸하고 새로운 부활의 몸으로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처소는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산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이 주인이요, 성령이 다스리고 관리하는 처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우리 몸은 하나님의 처소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시고 그리고 지금은 우리 가운데도 거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처소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6:19-20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께서 값을 지불하고 산 것이 되었으니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어야 합니다(고전10:31).

 

설교1 : 가바다 Gabbath

빌라도의 법정

요19:7-16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사람들의 죄를 심사하고 재판하여 그 결과를 선고하는 법정처럼 정의가 요구되는 장소는 없을 것입니다. 법정은 그 나라와 사회 정의의 지표로서 합당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빌라도 법정 가바다는 불의한 법정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의 무지와 불의한 속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반면에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구속 지혜도 볼 수 있습니다.

 

1. 교만한 자들의 자리입니다

1) 세상 권세를 얻은 자들의 자리임

가바다는 그리스말로'높은 곳'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북쪽에 있는 로마 주둔군 요새 안에 있는 관정이 곧 가바다입니다. 그곳은 로마 제국의 고위 관료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빌라도는 이 가바다를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할 법정으로 정한 것입니다. '높은 자리 가바다'라는 명칭에 걸맞게 그곳에는 유대 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자리 잡았고, 로마 황제에게 직속된 행정 장관인 총독 빌라도가 재판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회에서 화려한 사회적 배경과 유능한 자질을 지니고 남다른 노력을 한 결과 귀족이 되고 고관이 된 높은 사람들만이 앉은자리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높은 권세와 영예를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권세에 대적하는 자리에 앉을 경우가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겸손하여 자신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2) 그 자리로 인해 불행하게 되었음

높은 자리는 그것을 얻은 개인과 가문에 영광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행과 오명을 가져다주는 예도 허다합니다.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불의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야심만만한 빌라도 총독은 로마 황제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무고하게 학살하는 죄를 많이 자행했습니다(눅13:1). 유대 역사가 필로는 빌라도가 포악한 살육, 부정 축재 행위로 인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약점을 많이 잡혀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가 무죄인 것을 알면서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요구대로 사형을 언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12). 유대 종교 지도자들 역시 자신들의 영예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를 모함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온 백성들의 신뢰가 예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만 자신들의 종교 지도적 위치와 안정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빌라도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죄악을 범하여 영원한 불행의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2. 거짓으로 포장된 자리입니다

1) 가바다 법정은 위선으로 포장되었음

히브리말로 가바다라는 뜻은 화문석으로 포장된 '박석'(13)을 의미합니다. 가바다는 넓고 얇게 다듬은 돌로 바둑판 모양처럼 치장된 곳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재판정으로 손색없는 고상하고 화려한 장소였습니다. 이처럼 가바다는 법과 정의, 종교 수호의 양심으로 위장된 자들이 모인 장소였습니다. 빌라도는 법과 질서라는 명분으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이익과 영예를 위하여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정죄하려고 모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화려하고 고상한 명분으로 자신들을 위장하고 불의를 정의로운 것으로 포장한 자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과 위선은 급히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성도들은 위선으로 자신을 꾸미는 우매함을 결단코 피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진실함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2) 가바다 법정은 진리를 외면하였음

거짓과 위선의 해악은 진실과 진리를 대적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진리는 진리를 대적하기 마련입니다. 가바다 법정은 세상의 거짓과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대적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은혜와 정의가 세상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사단이 역사한 곳이 가바다입니다. 거룩한 의인이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존재를 없애고 그분의 실상을 왜곡시켜 죄인으로 만든 곳입니다. 성도들은 이와 같은 가바다 법정에 불의한 무리들 속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님처럼 차라리 모함받고 정죄받는 자로 남을지언정 가바다에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 편에 서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영원하신 판결이 선고된 자리입니다

1) 주께서 정죄 판결을 선고하신 곳임

가바다는 재판정입니다. 그곳에서 빌라도는 예수를 죄인으로, 또 사형받을 자로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세상의 불의에 대한 영원한 정죄 판결이 선고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11)고 주님께서 빌라도와 거짓 모함자들에게 먼저 판결하셨습입니다. 불의한 법정 가바다는 영원한 죄인들의 무리가 모인 곳으로 주님께 정죄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거짓과 불의에는 반드시 주 하나님의 정죄 판결이 선고된다는 진리를 인식해야 합니다. 아무리 은밀하게 위장된 것일지라도 그분은 엄정한 재판관으로서 그 죄의 삯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2) 주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시켜 줌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16). 이와 같은 빌라도의 판결에 사단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형장으로 보낸 결과에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바치는 일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속 섭리의 백미요, 정점이었습니다. 그 일은 구속 사역의 중심이 되었고 근거가 되었습니다. 가바다 법정은 결국 하나님의 구속 섭리를 돕고, 성취시켜주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고 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도를 증거 합니다.

빌라도의 법정 가바다는 사단의 하수인이 된 자들이 주님을 십자가로 보낸 곳입니다. 세상 악과 불의의 집결지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장소도 하나님은 구속 섭리의 중요한 도구로 삼으셨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설교자료

◈ 교만한 마음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덕이며, 교만은 최대의 죄라고 말해준다(잠1:7잠6:16,17벧전5:5). 이러한 교만은 흔히 권력의 교만, 지식의 교만, 의로움의 교만 등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교만은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될 때 생겨난다. 그리고 교만한 자는 반드시 패망한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잠16:18). 이러한 교만에 관한 중요한 모형이 아담과 하와에 의해 주어졌다.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선악과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 사랑의 동기는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자기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을 기대했던 교만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국은 사망이었던 것이다(창3). 그러므로 인간에게 죽음과 영벌을 가져다준 본래적 죄악인 교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한계를 발견(롬12:3)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은총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요15:5)이다.

 

◈ 위선적인 태도

'위선'이라는 말은 본래 희랍 연극에서 사용되던 말인데, 단순히 역을 맡음을 뜻하였다. 그러나 이 말이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실제가 아닌 것을 가장하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했다. 구약에서는 행악자와 죄인들, 악인들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구약적 개념의 '위선자' 는 신약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바리새인들을 향한 호된 질책으로 사용되었는데(막12:15마24:51), 그가 저들을 비난하신 것은 그들이 거짓을 가장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들의 잘못된 선에 대해서 독선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안디옥에 있는 베드로와 바나바를 포함하는 기독교 유대인들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이 용어를 썼는데(갈2:14), 여기서 바울은 저들이 원래의 약속을 포기함으로써 선한 신앙을 깨뜨린 무책임성을 정죄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과 바울에 의해 표현된 위선이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마음과 태도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선적 태도 때문에 교회는 많은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 하나님의 심판

히9:27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하여 마지막 심판 날에 책임을 묻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의 자기 행위, 자기 신앙, 양심, 율법, 복음, 하나님의 의와 진실, 그리스도의 말씀, 생명 책에 기록된 사실들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심판은 모든 인류에게 엄정한 결과를 초래할 터인데, 악인들로부터 의인들이 분리될 것이며(마13:36-43), 악인은 즉시로 형벌을 받게 된다(살후1:6-10). 반면에, 의인은 영원한 보상을 받게 된다(딤후4:8).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루하루 각자의 행동과 마음을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조명해 보아야 할 것이다.

 

 

[비교종교학 연구] 원불교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면서 원불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원불교에 대하여 한국에서 생겨난 종교들은 많이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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