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지명 이름 설교말씀 중에서 가우다 라는 지명을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가우다 Cauda
1. 위치
이탈리아 크레테 섬에서 남서쪽으로 약 3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2. 명칭
오늘날의 희랍어로는 가우도스(Gaudos)라고 하며 이탈리아어로는 고조(Gozzo)라고 한다. 오래된 사본에는 이 섬의 명칭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클라우다와 카우다가 각각 언급된다. 시내 사본은 베자 사본과 불카나 라틴 성서와 함께 클라우다를 카우다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일반 문서에서는 또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데 희랍 저술가들은 클라우다를, 라틴 저술가들은 가우두스를 더 많이 사용한다.
3. 성경의 언급
1)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호송되어 갈 때에 이 섬 근처를 지나갔다. 그런데 가우다 남쪽에 왔을 때 무섭게 몰아치는 유라굴로라고 하는 광풍을 만났다.
2) 바울 일행은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짐을 바다에 내버리고 배를 가볍게 함으로써 광풍을 견디었다(행27:16).
4. 광풍(회오리 바람)
1) 바람의 종류
히브리어로 수파와 사아라는 대략 같은 의미로 쓰이면서 격렬하고 사나운 바람, 즉 폭풍을 지칭한다. 폭풍은 우기에 발생한다. 진정한 회오리 바람, 갈갈로 불리우는 선풍은 드물다. 주로 이러한 바람은 공기가 불안정한 초겨울에 해안 부근에서 주로 발생한다. 선풍은 좁은 길을 따라가며 부는데 대단히 파괴적이다.
2) 성경의 언급
엘리야를 쓸어 올린 바람은 수파였다(왕하2:11). 왕하2:12;합3:8에서 나타나는 불수레와 불말들은 회오리 바람을 동반한 것으로 생각되는 천둥과 번개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아3:6에 나타나는 연기의 기둥들이란 표현은 회오리 치는 먼지 기둥으로 건조한 지표면에서 공기가 불안전하여 발생하는 바람이다.
3) 유라굴로
바울의 배에 불어닥친 질풍과도 같은 북동풍의 이름이다(행27:14). 이 명칭은 후에 헬라어로 된 사본과 번역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풍(風)을 뜻하는 '유로스'와 '파도'를 뜻하는 '클뤼돈'이라는 헬라어의 합성어로 파도를 일으키는 남동풍을 의미한다.
원어설교 : 가우다 Cauda
가우다 כאודא : 카우다 Κλαυδα : 클라우다 Cauda
행27: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가우다는 지중해에 위치한 그레데 섬 남서쪽 약 37Km 지점의 조그마한 섬입니다. 이곳은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호송되어갈 때, 바울 일행이 탄 배가 마탈라 갑(岬)을 돈 후 진로를 서북서쪽으로 정했다가 느닷없이 유라굴로라는 돌풍을 만나 표류중에 구조되었던 섬입니다. 한편 가우다라는 명칭은 오래된 한 사본에는 Κλαυδα(클라우다)로 표기되었는가 하면, 시내 사본이나 베자 사본, 라틴 불가타(Vulgate)에서는 Καυδα(카우다)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이름 모두는 불확실한 파생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그 뜻은 불명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명을 통하여 좋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인생은 잠시 표류할 수 있습니다
Καυδα(카우다)는 바울이 목적한 섬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죄수 신분으로 황제 앞에 나아가 재판받고자 로마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배의 선장은 항해 일정을 변경하자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기 경험을 내세워 무리한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탄 배가 가벨 마탈라(Cape Matala) 근처에 이르렀을 때 갑작스러운 돌풍, 미친바람이라 일컬어지는 '유라굴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바람에 밀려 정상 항로에서 약 36.8Km 떨어진 가우다까지 표류하게 됩니다(행27:16). 이 사건은 영적으로 인생의 선장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 하나님의 권면과 충고를 무시한 인생은 많은 풍랑을 만나게 되며, 그리하여 목적없이 이리저리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영적 교훈을 전해 줍니다.
2. 소망을 가진 인생은 절망을 이깁니다
바울이 탄 배는 미친 돌풍 유라굴로를 만나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Καυδα(카우다)에 당도하게 됩니다. 배는 파선 직전이었고, 그 배에 실은 화물들은 파도에 휩쓸려 버렸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거친 풍랑 속에서도 승선 인원 모두가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절망의 풍랑 속에서도 거친 파도를 보지 않고 자신을 지금까지 보호해 오신 하나님만을 바라본 바울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하는 인생에게는 죽음 같은 파도라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소망의 끈을 잡고 있는 인생에게는 절대 안전과 절대 평안이 주어질 것입니다(사40:31).
3. 하나님은 안전한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유라굴로를 만나 죽을 위기를 맞았던 바울 일행이 당도했던 작은 섬 Καυδα(카우다)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처소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바울을 죽음의 거친 파도에서 구출하셨으며, 또 간수들의 칼날에서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가우다라는 섬으로 바울과 그 일행을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날마다 거친 세파(世波)에 도전받고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안전한 구원의 처소를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 스스로는 무능력하지만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날마다 구원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세파에 이리저리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소망하는 인생은 비록 현실적으로는 고난중에 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처소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 소망을 끝까지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설교1 : 가우다 Cauda
인생의 세 가지 한계
행27:9-22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모든 사람은 세계의 한계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시야에 한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은 한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행하여 불행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본문은 바울 일행을 태우고 로마로 향하던 알렉산드리아 상선이 큰 폭풍을 만나 한계 상황에 이른 내용입니다. 이들은 바울을 통해 행선을 금하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항해를 하다가 큰 재난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에 대해 한계를 지닌 인생들의 모습을 보며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1. 앞길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1) 순풍에만 항진할 수 있음
그 배가 정박했던 미항에서는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나버렸습니다. 그것은 계절이 겨울철로 접어들어 다음 초봄까지는 항해를 중단해야만 하는 의미를 갖습니다(9,10절). 겨울철에는 바다에 역풍이 불어 폭풍과 난파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백부장과 선원들은 남풍이 순하게 불매…행선했다고 했습니다(13절). 당시 그리스와 로마 무역 선단의 항해 기술이 아무리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순풍을 보내셔야 항해도, 무역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위성의 발사도 기상이 나쁘면 연기하는 예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인간의 과학기술도 한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욥37:17)고 말씀 하십니다. 성도들은 순풍이 불어 모든 일이 잘 될 때 "내가…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고백하는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2) 희망은 있으나 확신할 수 없음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행선하더니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13.14절). 남풍이 불어 의기양양하게 항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울 일행은 폭풍을 바다 한가운데서 만났습니다. 전도 여행으로 인해 무수한 항해 경험을 지닌 바울 사도의 경고와 하나님의 자연 섭리를 무시하고 일시적인 순풍에 유혹되어 항진을 한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인생들은 자기 한 치 앞의 운명도 예측할 수 없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약4:13,14)라고 야고보 사도는 교훈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있으나 그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존재가 세상의 인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단절된 불신 인생들의 삶은 이처럼 불확실하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2. 큰 재앙에는 속수무책입니다
1) 피신할 곳을 찾지 못함
"광풍이 대작하니…가우다 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그냥 쫓겨가더니"(14-17절) 폭풍이 너무 심하여 어떻게 손 쓸 겨를도 없이 그저 폭풍과 파도에 밀려 표류하는 모습을 성경은 증언해 줍니다. 그들이 폭풍에 밀려 가는 도중 '가우다'라는 작은 섬이 있었습니다. 가우도스(Caudos), 또는 클라우도스(Claudos)라고도 불리는 이 섬은 그레데 섬 서쪽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평소 순풍이 불 때는 작은 배들이 정박하여 휴식을 취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라 굴로 같은 폭풍을 만난 큰 상선은 접근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스르디스'라는 모래 암초에 걸려 난파당하기가 쉬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스스로를 높이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와 능력이 통하지 않는 재앙도 있으며 그 재앙 앞에서는 피할 길과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존재가 바로 우리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유라굴로처럼 성도들을 덮치는 거대한 재앙은 무엇입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무서운 재앙을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한계를 지닌 존재인 것입니다.
2) 모든 것을 상실당함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18,19절). 사람들은 재앙을 만나 모든 것을 상실해 버리는 불행, 자신의 것을 유지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생은 '상실의 과정'입니다. 꿈, 순수성, 건강, 생명도 결국은 상실하고 맙니다. 더 나아가 불신자들은 내세에 대한 희망도 없습니다. 죽음 너머에는 하나님의 영벌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이제 모든 희망을 버리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죽음과 영원한 심판'이 유라굴로처럼 자신들을 몰아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점 역시 중대한 인생의 한계입니다. 키에르 케고르가 말했듯 사람들은 자신들이 절망과 죽음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구원의 길과 가치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1) 지식과 고집으로 진리를 무시함
알렉산드리아 무역선이 이처럼 불행을 당한 이유는 사도 바울의 권고를 무시한 까닭입니다(9-11절). 선원들은 자기 기술을 과신했으며 로마 백부장은 자기 권위를 앞세웠을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자신들의 사상과 지혜를 신봉하고 교회가 전도하는 구원의 진리를 무시하는 영적 한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2)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알지 못함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니라"(22절). 선원들은 아마 겨울 전에 큰 항구로 가야 물건값을 더 받을 수 있었기에 무리한 항해를 했을 것입니다. 또한 로마 장교는 죄인들을 속히 호송하고 가족과 함께 즐기려고 서둘렀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재물과 향락을 얻기 위해 자연의 이치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외면하며 오직 목적 제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결과 재물도 생명도 모두 잃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는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물과 영예를 분토처럼 여겨야 함을 교훈해 줍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인생들의 한계는 바로 불신앙으로 행하는 세상 사람들의 불행한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섬기는 성도들은 이 같은 한계들을 믿음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설교자료
◈ 금식하는 절기
주님의 말씀은 금식에 대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관념을 형성시켰다.
① 주님의 제자들은 '신랑'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자주(눅5:33) 금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막2:19)"는 주님의 말이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 부활 절기의 특별한 규율이 되었다.
② 또한 주님은 금식은 반드시 허식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다(마6:16). 비록 주님이 40일을 금식하셨지만 금식 자체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지시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많은 유대인들은 안나(눅2:37)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가지 금식을 자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심지어 몇몇 사본들은 이방인 고넬료(행10:30)도 금식을 행하였음을 지적한다. 초대 교회의 빈번한 금식은 기독교인 사역의 표시였는데, 사도 바울의 금식(고후6:5고후11:27)과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서임식 또는 엄숙한 임명이 있기 전에 금식을 하였다(행14:23행13:2). 의심할 것도 없이 유대인들은 속죄일을 계속 지켰고 누가는 그 속죄일을 여러 날 금식하는 절기(행27:9)로 언급함으로써 일정한 기간 동안의 금식 이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에 대한 강요는 없었음이 명백하다.
◈ 팔레스타인 기후의 특성
문화사에 있어서 기후는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지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기후의 독특한 성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① 팔레스타인은 여름에 비해 겨울에 강우량이 더 많은 지중해의 특별한 기후 영역에 속해 있다.
② 팔레스타인은 지구를 휘감고 있는 사하라 대(帶)의 북단에 있는데 이 사하라 열풍은 매여름 이 지역을 엄습해 온다.
③ 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개별 기후 지역을 형성한다. 즉 해안으로부터의 사막, 아한대에서 아열대를 포함한다.
④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남서풍은 겨울에는 폭풍우와 홍수를 여름에는 시원한 기운을 가져온다.
⑤ 5월과 9, 10월에 시로코 열풍은 타는 듯한 무더위를 동반하여 곡식을 시들게 하며 짐승들과 사람들을 축 늘어지게 한다.
⑥ 메뚜기, 곰팡이 그리고 열대 및 온대 기후에 속하는 해충들이 끊임없이 위협한다.
⑦ 온갖 종류의 극단적인 기후들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다.
◈ 전도 여행
여행을 하면서 전도를 행한 최초의 인물은 예수 이외에 바울을 들 수 있다. 바울은 3차에 걸쳐 전도를 목적으로 여행했다.
① 제1차 전도 여행은 구브로로 항해한 다음 거기서 다시 밤빌리아 해변의 아달리아로 항해한다. 그는 북으로 거친 산을 넘어 버시디아의 안디옥까지 약 160Km를, 그리고 동남쪽으로 이고니온까지 약 32Km를, 남동쪽으로는 더베까지 약 48Km를 도보로 여행했다..
② 제2차 전도 여행은 행 15:41-18:22에 기록되어 있는데 2320Km의 장거리 여행이었다.
③ 제3차 전도 여행은 행 18:23-21:17에 기록되어 있는데 소아시아를 통과하여 에베소에 이르는 800Km의 긴 여행이었다. 바울은 이외에도 전도를 위해 수많은 여행을 한 전도의 일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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