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모스 7장 강해 설교말씀 중에서 삶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삶의 변화와 사랑의 실천이 영생이다
성경 본문: 암 7:7-17, 골 1:1-14, 눅 10:25-35
한 잔의 물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마르다고 하면서 물을 찾는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어리석은 짓을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 있는 행복을 누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조사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교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25%의 교인이 기도를 안 하고 있고,
35%의 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고,
60%의 교인이 신앙 관계 서적을 읽지 않고,
70%의 교인이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있고,
85%의 교인이 한 명의 영혼도 인도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해서 100%의 교인이 하나같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고 합니다.
믿음생활 그 자체가 복된 길이요, 영원한 하늘나라를 향한 영생의 삶입니다. 그런데도, 이 믿음에 있어서의 알짜 알맹이들은 다 빼놓은 채, 교회를 다닌다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마치 찐빵을 먹는데 앙코(팥소)를 다 빼놓고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것들은 다 배제한 채, 어떤 특별한 은사를 기대하거나 체험을 바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우리는 어떤 특별한 집회에 참석하면 놀라운 은혜를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마련해 주신 신령한 제도를 통해서 평소에 은혜를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잔칫날이라고 해서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전부 살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탈이 날 염려가 많습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을 〈삶의 변화와 사랑의 실천이 영생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선생이 골로새서 1장 6절에서 말하기를, 복음의 말씀은
①「어디서나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②복음을 듣는 사람에게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하는 어느 율법 학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 27절에서 대답하시기를 「마음과 목숨과 힘과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곧 영생의 삶은 하나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생의 삶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삶의 변화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사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 구체적인 예로써, 바울은 에바브라라는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7절을 보니, 에바브라는
①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②그 사람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열심히 애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바브라를 비롯한 골로새 교인들이
③성령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바브라를 비롯한 골로새 교인들은
ㄱ.복음을 통하여 삶의 변화를 가져왔고
ㄴ.복음에서 깨달은 바를 실제 삶에 적용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말씀을 통한 삶의 변화와 사랑의 실천으로 영생의 삶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라와 골로새 교인들이 그처럼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라고 1장 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①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밝히 알 수 있는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②주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하여 주님을 기쁘게 해 주기를
③다른 사람에게 착한 일과 친절을 베풂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기를
④하나님의 능력으로 더욱 전진하며 기쁨이 충만한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에바브라를 비롯한 골로새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1.1. 그들에 비해서, 우리는 영생의 삶을 충분히 살아가고 있지 못합니다.
사실 많은 변화가 성도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좀 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우리 성도들의 신앙이 발전했는지 모릅니다.
신상에 어려운 일이 닥쳤건만 쉽게 신앙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교회 출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날에는 세상 적으로 무슨 일이 잘되어야 예수 믿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적인 어떤 변화보다는 자신의 삶의 태도나 성품이 새롭게 바뀌어지고 있음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헌금을 해도, 자신의 형편을 핑계 대고 형식적이며 의무감에서 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밖에 성경을 읽는 것이나 교회 봉사하는 일도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생활의 재미를 맛보며 사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골로새 교인들과 비교할 때, 아직도 우리는 부족한 것이 많음을 솔직히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 부족한 것 중에서 몇 가지 만을 생각해 보고, 좀더 나은 신앙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①삶의 변화나 전진이 아직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뭔가 새로운 생활을 해보려고 무척 애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저들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복된 삶이 누렸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갖고 주께 기도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그러한 변화가 너무 미미합니다.
말씀을 깨달았으면 깨달은 대로,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대로, 그대로 살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을 때에, 삶의 변화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현실과 너무 쉽게 타협하고 맙니다. 은혜를 받았을 때에는 금방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나, 현실은 너무나 말씀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말씀 따라 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몇 번쯤 말씀 따라 살려고 노력하다가는, 그러한 노력을 아예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②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사람의 수고나 애씀으로써는 도저히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니와, 인간이 바라는 행복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주의 뜻대로 살려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텐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세상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 공동체나 이웃에 대하여 관심을 잘 기울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0절에서 「이웃에게 착한 일과 친절을 베풂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이론이나 성경 말씀 안에서만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란 힘듭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삶의 변화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 뵐 수가 있습니다.
하건만, 우리의 생활이 아직도 개인 생활에 치중해 있다 보니, 하나님을 깊이 아는 일과, 하나님의 세계를 밝히 아는 일이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실은 가깝고 이상은 멀기 때문에, 웬만한 결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주님의 나라에 깊이 들어가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사실상, 믿음대로 산다는 게 실현하기 힘든 이상만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믿음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믿음의 세계가 이 세상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이 세상 유혹이나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믿음 생활을 쉽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에 가려면, 현재 이 세상에서 힘쓰고 있는 것보다 몇 곱절이나 힘써야 함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예 신앙 자체를, 이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갖는가 하면, 또는 그 중요성을 별로 깨닫지 못한 채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서 기울이는 노력보다, 믿음 생활에 더 많이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2. 주는 우리를 구원 하사 자유와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면, 그 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무와 한숨밖에 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당초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어디까지나 하늘나라 시민을 만들기 위한 훈련장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장 5절 말씀을 보면 「믿음과 따뜻한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늘에 마련해 두신 희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아무리 애써 봤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허무한 삶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둔 믿음의 생활만이 삶의 보람과 의미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이 세상 삶이 의미가 있지, 하늘에 대한 소망 없이 이 세상 삶에만 치중하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 질곡에서 벗어나 영원을 바라보고 살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유와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자신이 원치 않는 삶을 억지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노예가 되어 있어서, 죄가 시키는 대로 살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시 죄에 빠지게 된다면, 전적으로 우리 인간의 책임입니다. 얼마든지 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세상에 더 애착을 두고 살다가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안에서 살려고 하다가도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실수는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살게 되면, 그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빛 가운데 있어서 그 죄가 밝히 드러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그 죄를 고백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고로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닌 자유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①빛의 나라에 속한 자에게 주시는, 모든 훌륭한 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하십니다(골1:12)
모든 훌륭한 것이란, 이 세상의 것 가지고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과 믿음의 생활입니다. 세상 욕심을 가진 자는 이런 삶을 도저히 실현할 수 없을 것이로되,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들은 주안에서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생활입니다.
②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골1:13).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죄요, 또한 죄의식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욕심이 아닌, 하늘에 뜻을 두고 사는 자에게는 죄가 큰 문제가 안됩니다. 주께서 우리 대신 그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있음을 주님이 아신다면, 죄의 문제는 주님이 확실하게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③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삶의 변화와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애쓰게 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을 채워 주십니다(골1:11).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하나님의 위대한 힘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어디에 다 마음을 두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렴풋이 나마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은 믿는 성도라면 다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드린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은 모두 다 갖고 있으나, 그 나라에 가기 위한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우리는 돈과 힘, 아니면 벼슬이나 지식으로 하늘나라를 갈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이 아닌 돈을 모으고 지식 쌓은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하늘나라를 모르고 하늘에 대한 소망도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만약 이 세상에는 소망이 없고 하늘나라에만 참된 행복이 있음을 믿으신다면,
3.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생의 삶을 지금부터 살아야 합니다.
어느 율법 학자가 예수께 묻기를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당신이 직접 대답하지 않고 그 율법 학자에게 되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고 말입니다.
그 율법 학자는 대답을 했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라고. 그 율법 학자는 정답을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복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되물을 것입니다. 「성경에 어떻게 해야 복 받을 수 있다고 했는가?」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쯤은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분일지라도, 세상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의지입니다.
세상을 다 이겨내고 믿음대로 살 수 있을 만큼의 큰 의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의지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의지는 세상을 향하고 있던 우리의 몸을 하늘나라를 향하여 몸을 돌리는 정도이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이 다 아셔서 우리의 길을 안내하고 지도하며,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힘까지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환경이나 기회를 말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이 주님께로 기울어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다른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①우리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 일도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장이나 세 장 정도의 성경을 읽고,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도를 하면 됩니다. 관심이 하늘나라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생활입니다.
②항상 주께 대한 감사를 잊지 말고, 이웃과는 사랑을 나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을 잊지 않으면 감사가 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 감사가 아닌 불평이 입에서 나오게 되면, 주님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징표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깨달으면 주의 은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 욕심에 사로잡혀 살게 되면 원망할 일과 불평할 일이 더욱 새롭게 생각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살 려면, 말씀을 가까이해야합니다.
③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아는 일에 힘쓰고 주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격이 변하고 생활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에 들어서 있습니다. 생명 길을 가는 자는 그 생활이 달라져야 합니다.
생명이 있음은 그 생활의 변화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삶의 변화와 사랑의 실천으로 영생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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