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5장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계명의 준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은 율법을 지켜서 거룩한 성화 구원을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형제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요일 5:1-21)
1-5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즉 중생했다는 증거이다. 요한복음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성경에 증거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즉 신적 구주이시다(사 9:6; 미 5:2; 요 20:30-31). 또 우리를 중생케 하신 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들 곧 중생한 성도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된 한 식구이며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육신의 형제들을 사랑하며 형제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요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듯이, 영적 형제들 간에도 그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와 천국의 자녀된 형제들은 육신의 가족보다 더 귀하다. 육신의 부모님이 낳으신 형제들도 귀하나 그들은 백년 동안 형제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낳으신 형제들, 즉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원한 형제들이다.
[2-3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 . . .
요한은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것임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형제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킬 때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계명들은 결코 무겁지 않다. 우리가 중생치 않았을 때 즉 죄의 종이었을 때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가 심히 무거웠으나, 우리가 중생한 후에는 하나님의 씨가 우리 속에 심겨졌고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역사하므로 우리는 비록 연약함이 있어 때때로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즐거이 지키며 또 지킬 수 있다. 로마서 8:4, 1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30).
[4-5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 . .
요한은 또 말한다. “대저[이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이김이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짐이 아닌 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세력을 이긴다는 뜻이다. 즉 죄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도 요한은 3:9에서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말하였고, 또 4:4에서는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하나님께로서 나왔고] 또 저희를[적그리스도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하였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영께서 계시고 또한 그의 생명 원리가 심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은 우리를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어주셨다.
로마서 6:14, 18, 22,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고린도전서 15:54-57,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히브리서 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요한은 덧붙여서 말하기를,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믿음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영생을 얻었고 부활을 소망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로써 마귀와 그 세력들은 성도들 앞에 완전히, 영원히 패배하고 말았다. 이 귀한 사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 진리와 그 은혜 안에 다 내포되어 있다. 죄는 죽음과 불행을 가져왔으나 의는 생명과 영원한 복과 영광을 가져왔다.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5:1-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1절부터 5절까지에서 우리는 우선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첫째로, 여러분은 중생했는가? 중생의 표는 예수께서 신적인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진실히 믿고 있는가? 복음 신앙은 중생의 증표가 된다. 둘째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과 그의 구원 사역을 아는 자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여러분은 참으로 온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주신 하나님을 알며 그를 사랑하는가?
무엇보다, 본문이 가르치는 교훈은, 만일 우리가 거듭나는 은혜를 얻었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죄와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생케 하신 다른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당연한 의무이다. 우리가 육신의 형제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낳으신 영적 형제들을 더욱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이것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과 세상의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완전한 의와 거룩을 얻은 자들이고 또 그 의와 거룩 안에서 장차 영생과 영광을 누릴 자들이다. 주 안에서 형제된 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고 실천할 만한 일인 것이다.
6-10절, 물과 피와 성령의 증거
[6절]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 . .
요한은 말한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뜻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가리킨 것 같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물과 피를 흘리셨다. 요한복음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초대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인간이셨다.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때가 되어 인간의 본질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요 1:14).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말대로, 그 이후 예수 그리스도는 계속 그리고 영원히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말씀은 물과 피라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또한 상징적 의미도 가짐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면 물은 죄씻음을, 피는 속죄의 죽음을 가리킬 것이다. 이 둘은 기독교 복음의 근본적 내용이다. 이 둘은 세례와 성찬의 의식으로 표현되는 것들이다.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까닭은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우리의 죄씻음을 위해 속죄제물로 죽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다. 그의 대속의 죽음은 우리의 죄씻음의 근거가 되었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7절]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한은 또 말한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신다. 즉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구주이심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참되시며 그가 증거하시는 내용도 참되다.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6:13-14,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오늘날도 진리의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증거하시며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신다.
[8절]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성령과 물과 피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또한 그 셋의 증거는 하나이다. 그 셋은 공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의 요지이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9절]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우리는 사람들의 증거를 받아들이며 세상을 살고 있다. 매일 신문의 뉴스들이 그러하며 법정의 판결도 많은 부분 사람의 진실한 증거에 의존한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세상 생활은 지극히 불안정할 것이고 의심으로 가득 찰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이 사람들의 증거를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증거하신다면 그것은 더 확실하고 믿을 만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친 음성으로 자기 아들에 관해 두 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실상 하나님의 증거의 말씀들이다. 성령의 증거는 하나님의 증거이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저주받은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들 속에서 자기 아들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에 대해 그리고 그의 속죄사역에 대해 증거하셨다. 성령과 물과 피도 다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 증거한다.
[10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 . . .
요한은 또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그 증거가 있다. ‘증거가 있다’는 원어(에케이 텐 마르튀리안)는 ‘그 증거가 있다’는 말이다. ‘그 증거’는 하나님의 증거를 가리킨다고 본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며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증거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해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6절부터 10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오셨고 성령께서 그것을 증거하심을 말하였다. 성령과 물과 피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속죄사역을 증거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에 대해 직접 증거하셨다. 그는 예수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친히 하늘에서 음성으로 증거하셨고(마 3:17) 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증거하셨다(마 17:5).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 곧 그의 신성과 인성을 증거하셨고 또 그의 죽음 곧 그의 속죄사역에 관해 증거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증거, 성경의 증거를 믿고 확신하자.
11-13절, 영생을 주심
[11-13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 . . .
요한은 말한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증거의 내용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본래 영생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시험하시는 첫 명령을 어느 기간 동안 잘 지켰더라면 그는 영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명령을 어겼고 하나님의 경고하신 대로 죽었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시 49:12). 그러나 인간 속에는 여전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싶은 강렬한 소원이 있다. 죽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전도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한다(3:11).
영생은 생명의 원천이시며 생명 자체이신 창조주 외에는 아무도 인간에게 줄 수 없다. 그런데 그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약속하셨다. 요한일서 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음을 증거하였다. 디도서 1:2,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영생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진리의 중심이다. 영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삶이다. 그것은 강하고 영광스러운 생명이다(고전 15:42-44). 영생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다(요 6:27).
하나님의 증거의 두 번째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영생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 요한은 1:1-2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 자체이심을 증거하였다. 또 그는 5:20에서 그를 ‘영생’이라고 불렀다. 영생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요한이 쓴 요한복음에서도 밝히 드러나 있다.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47-4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영원한 생명이시지만, 그가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代贖)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죄의 값은 죽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결과는 영생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에서 잘 증거하였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모신 자, 즉 그를 믿은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못한 자, 즉 그를 믿지 않은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썼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 믿음은 영생을 얻는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이 되고 영생이 된다는 것은 신약성경 전체가 증거하며 특히 요한복음이 밝히 증거한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본문의 교훈은 확실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고 그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우리는 영생의 가치를 깨닫고 어리석게 그것을 세상의 것들과 바꾸지 말자. 영생과 바꿀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일진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음을 알고 감사하며,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절대 복종하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을 널리 전하자.
14-17절, 기도의 응답
[14절]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 . . .
요한은 말한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성경의 어느 한 부분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전체를 읽고 연구하고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성경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자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으나, 그 말씀 듣기를 좋아하는 자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것이다. 잠언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보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는 기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기도 응답을 받을 것이다. 이사야 1:15-16,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라.”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며 순종하며 기도해야 하며, 그때 기도의 응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15절]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그의 뜻에 맞게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의 뜻대로 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라는 믿음도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도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또 우리의 간구의 응답을 믿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도의 효력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을 그가 들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믿어야 한다.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받는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6-17절]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죄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이며, 다른 하나는 ‘사망에 이르는 죄’이다. 요한은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라고 말한다. 죄의 값은 죽음인데(롬 6:23)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영생을 얻은 후에 실수로나 연약성 때문에 범하는 죄를 가리킬 것이다. 사도는 앞에서 중생한 자가 범죄치 않는다고 말했으면서 여기에서는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다고 말하는 것은, 중생한 자가 계속 죄 가운데서 생활할 수 없다는 뜻이며 중생한 자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중생한 자도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그는 그 죄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즉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올 것이다. 그는 그 실수 때문에 구원과 영생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형제가 그런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그러면 그는 회개하고 영생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가질 수 없는 죄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언급하신 ‘성령을 훼방하는 죄’와 같은 죄이다. 그런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 그것은 성령의 일을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대적하며 양심의 감동을 극도로 억압하는 죄로 생각된다. 교회 안에 이런 죄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종종 이단자들 속에서 이런 유의 죄를 볼 수 있다. 이단은 실수나 무지나 연약의 죄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이론적으로 다 아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무지해서가 아니고 순전히 고의적이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진리를 대항하고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의 뱀처럼 확신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이런 이단과 배교의 죄는 너무 크고 두려운 것이어서 실상 그런 자들을 형제로 여길 수도 없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제 그런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심을 믿어야 한다. 기도의 응답을 믿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로, 우리는 누가 범죄하는 일을 보거든 그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고의적으로 대항하는 이단자와 배교자를 위해 우리는 기도할 자신이 없지만, 주를 진실히 믿는 형제에 대해서는, 비록 그가 실수와 연약이 있을지라도 그를 끝까지 사랑하고 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18-21절, 바른 지식과 삶
[18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 . . .
요한은 말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며]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 범죄치 않는다는 것, 즉 죄 가운데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 진리는 본 서신 3:6, 9-10에서 이미 말씀한 바이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계속]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계속]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계속]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중생한 성도는 계속 범죄할 수 없다. 중생한 자는 그 영혼 속에 범죄할 수 없는 새 생명의 원리가 심어져 있고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새로워졌기 때문에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중생한 자 속에 심긴 새 생명은 하나님만 향하고 의(義)만 향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생명이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라는 원문은 전통사본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며”라고 되어 있다(KJV). 중생한 자는 계속 범죄치 않는다고 자신을 방임해서는 안 되고 항상 자신을 지키며 범죄치 않기 위해 힘써야 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악한 것들이 많다. 이것은 중생한 자에게도 똑같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19-21에서 이런 죄악들을 경계해야 할 것을 교훈하였다. 또 그는 고린도후서 7:1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죄악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중생한 자는 악한 자가 만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지키시기 때문이다.
[19절]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 . . .
요한은 말한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하나님께로서 났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는 것을 안다. 중생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 사역이다. 거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도울 수 없다. 중생한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중생은 우리 영혼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어두운 세계에서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나는 사건이다. 온 세상은 이 두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와 죄악된 세계로 나누어진다.
[20절]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 . . .
요한은 말한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또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참된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또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중생의 방편을 나타낸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중생을 얻는다. 하나님의 아들을 알고 믿는 것이 중생의 증거요 그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 구원이다. 요한은 또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증거한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명확한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그는 신적인 존재로 높임을 받는 정도가 아니시고, 참 하나님이시다. 또 그는 우리에게 영생이 되시고 친히 영생을 주시는 구주이시다.
[21절]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요한은 끝으로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아멘.]” 성도가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근본적 요소이다. 우상이란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처럼 높임을 받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큰 죄악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우상숭배를 제거해야 한다. 현대인은 돈이나 육신의 쾌락, 인간의 지식과 과학, 아니 인간 자체를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 대신에 높이고 가치 있게 여긴다. 이것들은 다 우상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섬기며 순종해야 하며 모든 우상을 멀리해야 한다. 중생한 성도들은 우상들을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만일 우리가 그런 것들을 멀리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중생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알게 되었다. 중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일이며 이렇게 중생한 자는 계속 범죄하거나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가 중생한 자로서 자신을 죄로부터 또 우상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교훈한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신의 죄악된 일들을 다 버려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 대신에 높임을 받는 모든 것을 다 배척하고 오직 성삼위일체 되신 하나님만 믿고 따르며 신구약성경에 밝히 계시된 그의 뜻과 계명들만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의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다.
[요한계시록 22장 성경 좋은 말씀]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계 2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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