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욥기 1장 주일설교말씀] 크고 위대한 신앙(욥 1:13-22)

두란노 서원 2021. 2. 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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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욥기 1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크고 위대한 신앙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의인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처음에는 율법주의 신앙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욥이 사탄의 시험을 통해서 믿음이 견고해지고 나중에는 율법주의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서 복음으로 돌아선 사람입니다. 그러고 난 후에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율법주의 신앙에서 복음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율법주의 신앙을 자신의 의만 드러내게 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크고 위대한 신앙(욥 1:13-22)

 

욥 1: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욥 1: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욥 1: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욥 1: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 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오늘날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사람과 객관적인 사람입니다. 주관적인 사람은 생각과 말과 행동에 언제나 자기중심적입니다. 반면 객관적인 사람은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호응할 수 있을만한 합리성과 타당성을 가지고 있습니. 그리고 주관적인 사람들은 편협한 갈망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것은 바로 객관적인 생각입니다. 객관적인 생각입니다. 객관적인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행복과 불행을 함께 받아들일 줄 아는 생각입니.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2절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푸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축복과 고난, 부요와 가난, 행복과 불행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밤낮 축복받기만 바라고, 행복하기만을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싫어합니다. 언제나 행복하기만을 원하고, 평화롭기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모르고서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으므로 고난을 모르고 고난을 소화할 줄 모르는 인생은 불행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주십니까? 시편 11971절에서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고난도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종 고통과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 고난은 인격을 온전케 해줍니다.

히브리서 58절에는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라고 합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불완전하던 인격이 고난과 역경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연단을 완전한 인격으로 승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고난은 우리에게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줍니다.

밤낮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되면 과거에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재미에 탐닉했던 사람도 영원한 내세에 관심을 갖고 어서 주님 앞에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은 말씀을 사모하도록 해줍니다.

시편 11971절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 편안할 때에는 성경을 안 읽던 사람이 고난을 당해보십시오. 설교말씀이 자기를 두고 하는 말처럼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넷째, 고난은 우리에게 죄를 짓기 않게 해 줍니다.

베드로전서 4장 1절에는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쳤음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제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짓게 됩니까? 편안할 때입니다. 돈이 아쉽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에게 경제적인 고난, 불행의 고난, 질병의 고난 등의 가시를 주셔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경건하게 살도록 종종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문제는 고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하는 우리의 생각, 관념, 행동, 자세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리스도인은 고난을 모르는 자가 아니라 고난을 소화해내는 사람인 것입니.

 

오늘 본문의 욥은 우스 땅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는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욥은 신앙생활, 윤리 생활, 도덕생활도 깨끗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열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큰 부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동안에 자녀들을 잃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온몸에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어 살이 헤어지고 그 속의 뼈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욥을 비난합니다. 친구가 비난하고 이웃이 비난합니다. 그는 완전히 몰락한 것입니다. 욥이 이러한 참담한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욥과 같이 고난을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승화시켜 나아가야겠습니다.

1. 고난을 수용하라

욥기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받아들이라, 고난을 수용하라'라고 말합니. 욥은 겉옷을 찢었습니다.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서 외쳤습니다. 욥기 120절에서 22절을 보면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게 아니하니라"라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고난을 수용하는 욥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고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잘 사는데 왜 우리 가정에만 이런 고난이 오는가? 납득하지 못합니다. 욥의 아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신앙생활을 안 했습니까? 십일조를 안 했습니까? 정직과 순결을 지키고 주일성수도 잘했는데 왜 이 꼴이 되었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2:9,10). 그러나 욥은 아내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우리가 하나님께 재앙도 받아야 되지 않겠소?"라면서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욥은 자기의 순전한 믿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2:3).

 

여러분이 어려운 고난을 수용하지 못하면 낙심할 것입니다. 원망할 것입니.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고난을 수용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고난이라는 깊은 생각을 하게 되면 감사와 찬양이 욥처럼 흘러나올 것입니다.

 

여러분! 왜 고난이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왜 사업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가정에 어려움이 있고 병들고 아픔을 당하는 것이 왜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 고난 때문에 교만하던 사람이 겸손해지고, 신만 의지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면 그 고난을 받아들이면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고난 속에서 생각하라.

전도서 714절에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생각하라'라고 하는 말은 '믿음으로 생각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생각''신앙적인 생'입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당하는 고난이 어처구니없습니다. 나는 축복받고 잘 살아야 될 사람인데 어찌하여 이런 고난을 받는가?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생각해보면 고난은 극복할 마한 것이고, 한층 높은 차원에서 우리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겨나가야 할까요?

 

다섯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 고난은 나 혼자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구나 각기 다른 모양으로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즉 인간의 존엄성은 생각하는 능력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 적 본능의 사람인지 정신적 차원의 사람인지의 구별은 똑같은 문제를 두고도 어떻게 생각하며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로 고난은 우연히 오는 것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연히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우리에게 종종 고난을 주십니다. 즉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목표를 이루시기도 하십니다.

 

셋째로, 고난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중에는 고난도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단코 고난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넷째로, 항상 고난만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곤고한 날이 있으면 형통한 날도 있는 것입니다. 고난만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본문 욥기 전체를 볼 때 욥은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나? 라면서 고통의 원인을 생각했습니다. 둘째는 왜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고통과 괴로움을 주시는가? 라며 고통의 목적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19:25)는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욥은 고난을 생각하면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욥이 깨달은 것은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닌 증거적 고난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장차 자기보다 이천 년 후에 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때가 되면 십자가를 지고 고난과 죽음을 맛보심으로 해서 죄와 사망에 처한 인간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 예수의 장차 받으실 고난을 생각하고 바라보며 감사하며 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욥의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고난이 물러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깨닫기만 한다면 그 고난은 이미 고난이 아니라 축복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이런 고통과 고난이 올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사시는 그 십자가의 아픈 고난, 감당키 어려운 그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고난에 대해 인내하라.

 

욥기서는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참으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511절에는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 욥은 모든 행복을 다 잃어버리고 가정적, 경제적, 사회적 모든 기반을 잃어버리고 참담한 환경에 빠졌을 때에도 참고 또 참았습니다. 아내가 모욕을 해도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입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욥은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해도 참고 또 참으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섰습니다. 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했습니다(벧전 2:19). 또 야고보서 41절에서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라고 했습니다. 왜 참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참는 자를 옳다 인정하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그 어려운 시련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견딜 때 하나님은 그 고난을 제물로 받으신 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내하는 욥에게 놀라운 축복을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그래서 재산과 자녀의 복을 갑절로 받았습니다. 욥기 42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시게 받았더라"라고 합니다. 나님 앞에 합격품 신앙이 축복받는 신앙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고 욥처럼 고난을 잘 감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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