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0장에서는 죄악으로 인해서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말씀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니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를 통해서 징계했다.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이스라엘을 구원한 메시아의 사역(사 50:1-11)
[1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 . . .
이사야는 말한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보냄을 입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것은 그들 자신의 죄악 때문에 된 것이다. 인간은 불행을 스스로 초래한다. 오늘날 우리의 불행도 우리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또 우리의 자유의지의 악용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2-3절]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어졌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렀지만 그들은 그를 찾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시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와 불행과 멸망의 길을 택하였다. 하나님께 구원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마르게 하실 수 있고 강물이 광야가 되게 하실 수 있다. 이스라엘이 멸망의 길로 간 것은 하나님께 구원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죄악이 크기 때문이다.
[4-5절]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본문은 일차적으로 메시아에게 적용된다고 본다. 메시아의 사역은 말씀의 사역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에게 학자의 혀를 주실 것이다. ‘학자’라는 원어(림무딤)는 ‘가르침을 받은 자들, 제자들’이라는 뜻이다(BDB, KJV, NASB). ‘곤핍한 자’는 죄로 인해 곤핍한 자들,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마 11:28)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에게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2:49-50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내 자의(自意)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고 말씀하셨다.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자신이 먼저 그 말씀을 잘 배우고 깨달아야 하고 잘 가르칠 수 있다. 또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친히 실행하실 것이다. 성경말씀을 전하는 자는 먼저 자신이 그 말씀을 실행하고 순종해야 하고, 그래야 다른 이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다.
[6-7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메시아께서는 매 맞고 수염을 뽑히고 뺨을 맞고 수욕과 침 뱉음을 당하실 것이지만, 부끄러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그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실 것이다. 과연 주께서는 그러하셨다. 오늘날에 주의 제자된 우리도 주의 도우심으로 그러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8-9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간증하였다.
[8-9절]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메시아께서 고난 중에 부끄러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으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변호하심을 확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옳음을 변호하실 것이다. 그는 그를 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다투거나 그를 대적하고 정죄할 자가 없다. 그와 다투거나 대적하는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이런 확신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신자들에게도 적용된다(롬 8:31-34).
[10-11절]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흑암’은 슬픔과 불행과 고난을 가리키고, 또 ‘빛’은 기쁨과 행복과 평안을 가리킨다. 지금 고난 가운데 사는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종 메시아의 음성을 듣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이름을 의뢰해야 한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참 신자의 모습이요 사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그의 걸음을 선하고 유익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의 행복만 추구하는 불신자들이 있다. 자기가 피운 불 혹은 횃불은 자기가 만든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들은 슬픔 중에 누울 것이다. 그들의 등불은 꺼지고 말 것이다. 그들은 슬픔 중에 멸망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인생의 가장 근본적 문제이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는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얻은 불행이었다. 그러므로 평안과 행복과 영생을 원하는 자마다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해야 한다. 사람이 선한 행위로 구원 얻지 못하지만, 사람은 결코 선한 행위 없이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려면 죄를 회개해야 한다. 참된 회개가 없이는 참된 구원도 없다.
둘째로, 메시아의 구원 사역은 말씀 사역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셨다. 오늘도 성경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전하고 가르치고 믿고 실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전하고 가르치고 믿고 실천하자.
셋째로, 메시아의 사역은 고난의 사역이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은 고난을 당하신 주님이시다. 그를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길이다(마 16:24). 우리는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자.
넷째로, 참 성도는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을지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이름만 의뢰하며 따라가야 한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그것이 참 믿음의 길이며 참 신자의 가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며 참는 자는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역대하 22장 주석성경말씀] 아하시야와 아달랴(대하 2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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