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기도자료

[장례식 발인예배 찬송] 찬송가 292장 내 본향 가는 길

두란노 서원 2022. 10. 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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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92장 내 본향 가는 길

 

떠날 기약(딤후 4:6)

 

서론 :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딤후 4:6).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 중에서도 마지막 말씀이다. 이때 바울은 벌써 이미 나이 많은 60 노인이었다. 이 편지를 쓰는 곳도 로마 옥중이다. 아마도 그는 이미 네로 황제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고, '떠날 기약' 즉 사형당할 날을 앞에 둔 유언인 것 같다. 즉 자기의 장례식을 앞두고 미리 장례 설교를 하는 감이 있다.

 

내 본향 가는 길 보이도다

인생의 갈 길을 다 달리고

땅 위의 수고를 그치라 하시니

내 앞에 남은 이 오직 저 길 <1>

 

이 찬송가는 작곡자도 작곡가도 전혀 밝혀지지 않은 찬송가로 조용하면서도 매우 장중한 곡이다. 음악적으로도 뛰어난 진행 선율을 갖고 있으며 우리말로 옮겨진 가사도 매우 격조가 높다.

장례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고, 국가와 민족에 따라 다르며 종교에 따라 차이가 많이 생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엄숙'하게 치러진다는 것이다.

이는 인생 생애의 마지막인 동시에 또다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죽음을 패배와 비참으로 알았으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장례식 거행 시에 종려나무 가지나 감람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찬송을 부르며 향을 피우고 길에 꽃을 뿌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관제와 같이 벌서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고 하였는데,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액체 제물(기름, 포도주, )은 맨 마지막에 드렸다고 한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이제 피를 흘려 순교의 제물이 될 것을 예감하고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유언적인 유훈으로 남겨 놓는다. 물론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한 이후 하나님께 산제물로 바쳤다. , 그의 학식, 재능, 체력, 시간, 기술 등 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제는 그의 생명, 피까지 제단에 붓고자 하는 심정이다. 그러면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다"라고 하였는데, '떠난다'는 말은 '별세 : 이 세상을 이별한다'는 뜻이고 '돌아가셨다'라고 말함은 '본래 왔던 본고향으로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떠난다'의 헬라말 원어는 '아나루시스'라고 하는데, 이 말의 깊은 뜻은 바울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죽음에 대한 뜻을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쓴 것이 분명하다.

 

1. 멍에를 벗는다는 뜻이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말이나 소의 목에 얹는 기구이다. 또는 자수 성과 자유가 없는 고통스러운 구속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소가 밭을 갈다가 그 밭을 다 간 후에는 소의 목에서 쟁기의 멍에를 벗어 놓으므로 소가 편히 쉬게 되지만, 소나 말이 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먼 길을 갈 때에는 목에 멘 멍에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 것인가? 그러나 그 목적지에 도달하여 멍에를 벗게 되면 주인도 "그놈(우마를 가리킴) 참 수고하였다"라고 위로하는 말을 한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받은 사명의 멍에를 멘 다음에는 그 멍에를 메고 일생을 살았다. 그 사명을 완수하고자 지금까지 애쓰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멍에를 벗어 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거운 멍에를 벗게 될 때에 그 안식은 멍에를 메고 일한 사람만이 아는 평안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를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라고 하셨다.

세상에서의 주인(사용주)은 가만히 뒷짐 지고 종(노동자)만 혹사시키며 큰소리치는데, 우리 주님은 멍에를 메게 해 주셔도 쉬운 것이요, 짐을 지워 주셔도 가벼운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그 뜻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고 일하도록 의무감을 주시는 것뿐이요, 실제로는 주님께서 멍에를 메시고 짐을 져 주시기 때문이다.

 

2. 고랑을 풀어놓는다는 뜻이다.

 

죄수나 포로에게 쇠고랑을 채워서 자유를 허락지 않고, 무엇이든지 자유자재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지배자의 명령에 따라 일거수일투족이 움직여지고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 등 인생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마저 박탈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살아 있는 사람 치고 가장 불쌍하고 처량한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는 자기가 쇠고랑을 찬 경험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어 믿게 한 까닭에 그 종의 주인의 고발로 억울하게 그 발에 차꼬(쇠고랑의 일명)를 차고 옥에 갇힌 일이 있었으며(16:24-26), 또 삼 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바울 반대파가 온 성을 요란케 하며 폭행하는 바람에 천부장이 출동하여 바울을 쇠사슬로 결박하였던 일이 있으며(21:23), 또 가이사랴 감옥에 있을 때나 로마로 호송당해 갈 때, 로마 옥중에 있을 때도 언제나 고랑을 차고 사는 신세였다.

물론 그는 세상 국법을 어긴 정치범이나 파렴치한 범죄자는 아니고 예수의 이름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박해자들에 의한 무고한 고랑을 찬 신세였으나, 그는 이런 일을 이미 각오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잘 참고 이겼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영광과 기쁨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제 '떠난다'라는 뜻은 매었던 쇠고랑이 풀어진다는 뜻으로 이제 감옥 쇠고랑은 풀리고 천국 생활에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3. 장막 줄을 풀어 거둔다는 뜻이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생활을 할 때, 매일처럼 이동하다가 또 어느 한 지점에 머물러 얼마를 살다가 또 이사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견고한 기본적인 집을 지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므로 자연히 장막(이동식 주택)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떠난다'는 뜻은 이제 그동안 살던 장막 줄을 풀어 거두어 가지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그들은 이런 일을 반복하다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안주하였다.

고린도 후서 5:1 이하에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한 말씀대로 땅의 장막은 육체의 장막이기에 낡아지고 병들고 죽어가지만 하늘에 있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신령한 장막은 영원무궁하다. 이제 바울은 그 육신적인 직업도 장막을 깁는 일을 하며 선교비를 자작 조달하였는데 이제는 그 일도 끝나고, 육체의 장막 생활도 끝나고, 하늘의 신령한 장막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4. 배의 닻줄을 거둔다는 뜻이 있다.

배는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다가 일단 그곳을 떠나게 될 때에는 닻줄을 거두어 올리고 배는 떠난다.

바다 여행에 여러 번 경험이 있는 바울로서는 이제 인생 항로 마지막에서 배 닻줄을 거두어 올리고 돛을 높이 달고 먼 항해를 떠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여행은 고생이 따르나 역시 즐거운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탐색한다는 것이나, 관광한다는 일은 무척 의미가 있으며 즐겁고 유익하고 보람된 일이 너무 많다.

이제 바울은 한 많은 세상, 풍파가 심하던 거친 항구를 아주 떠나기 위하여 배 닻줄을 감아올린다. 우리 주님이 선장이 되시고 바울은 사공이 되어서 천국 영생 포구를 향하여 노 저어 가는 기분은 최고의 상쾌감이었으리라 믿는다. 더구나 항해 목적지가 천국 영생 포구이니 신바람 나게 출항하는 셈이다.

 

주 예수 예비한 저 새집은

영원히 영원히 빛나는 집

거기서 성도들 즐거운 노래로

사랑의 구주를 길이 찬송 <2>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못다 한 일 많아 부끄럽네

아버지 사랑이 나를 용납하시고

생명의 면류관 주시리라 <3>

결론 : 바울은 곧이어 디모데후서 4:7-8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 4:7-8)라고 간증한 그대로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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