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9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소돔의 롯을 방문한 두 천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천사는 아브라함을 만나서 이삭을 낳을 것을 예언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할 것을 아브라함에게 알리고 소돔과 고모라에 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와서 의인 롯을 만나게 됩니다. 롯은 천사들을 보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하나님은 롯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소돔에 있는 롯을 찾아갔습니다. 성경은 롯을 의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원론적으로 보면 상급이 없는 의인을 상징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성도 중에도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께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나중에 천국에서 받을 상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롯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여 상을 쌓아 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것이 많습니다. 바울도 부름의 상을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실 상을 좇아서 열심히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소돔의 롯을 방문한 두 천사(창 19:1-11)
1절 바야보 쉐네 하말아킴 세도마 바에레브 베로트 요셰브 베샤아르 세돔 바야르 로트 바야콤 리크라탐 바이쉐타후 아파임 아르차
창 19:1 저녁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19:1절
저물 때에 - 소돔성의 타락상을 바로 살필 수 있는 최적의 때이다. 왜냐하면 음란과 음란과 방탕, 각종 사악한 죄악들이 활개 치는 때는 주로 어두운 밤 시간이기 때문이다(잠 7:7-9). 이런 의미에서 어두움은 성경상 죄악의 신세를 상징한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을 때에도 어두움을 사랑한 유대인들은 그를 영접치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요 1:4-11; 19:15).
오늘날 여전히 어두움의 때에 처해있는 우리들(눅 22:53) 역시 불법과 각종 죄악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근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살전 5:6).
두 천사 - 타락한 소돔 성을 불로 심판할 목적을 띠고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분노의 천사'(삼하 24:16)들이다(18:22).
성문에 앉았다가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재판 장소, 사업 거래소, 고지(告知)) 장소 및 사교생활의 주요 무대였다(신 21:19; 수 20:4; 왕하 7:1; 느 13:19; 시 69:12; 잠 1:21). 따라서 성문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볐는데 롯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지도층 인사로서 그곳 거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추측케 해준다.
일어나 영접하고 - 숙부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동일한 나그네 대접 행위이다. 이러한 롯의 친절은 소돔 주민들과는 달리(4-9절) 희미하게나마 아직도 롯에게 남아 있는 경건성의 반영이다(벧후 2:7,8). 그러나 그의 결정적인 잘못은 죄악으로 가득 찬 타락의 도시 소돔을 과감히 떠나지 않고 계속 그들 속에 함께 섞여 산 데 있다(살전 5:22).
2절 바요메르 힌네 나 아도나이 수루 나 엘 베이트 아드데켐 베리누 베라하추 라겔레켐 베히쉐카메템 바할라케템 레다르케켐 바요메루 로 키 보르호브 날린
창 19: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19:2절
내 주여 - 이 역시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롯도 천사들의 신분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일반적인 존칭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 '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호브'는 '넓은 공터', 즉 성문 안의 '광장'을 의미한다. 삿 19:15에 의하면 집으로 초대받지 못한 여행자들은 이러한 성읍의 길거리에서 유숙하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사들이 롯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려 한 까닭은 소돔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3절 바이프차르 밤 메오드 바야수루 엘라이브 바야보우 엘 베이토 바야아스 라헴 미쉐테 우마초트 아파 바요켈루
창 19: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19:3절
식탁(미쉬테) - '솨타'(마시다, 술취하다)에서 온 말로 '마실 것', '향연'의미한다. 이는 여행 끝에 지친 나그네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음료수나 포도주를 대접한 것을 나타낸다.
4절 테렘 이쉐카부 베아네셰 하이르 아네셰 세돔 나사부 알 하바이트 미나아르 베아드 자켄 콜 하암 미카체
창19: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19:4절
무론 노소하고 - 이처럼 늙은이나 젊은이나 예외 없이 정염(情炎)에 사로잡혀 몰려왔다는 사실은 소돔 성읍이 만연된 도덕성의 부패를 확실히 보여 주는 동시에 그 성읍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13절)을 시사해 준다. 롯의 집을 에워싸는데 문법을 니팔 수동태 완료 시제를 사용했다. 이것은 외부 낯선 사람이 롯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서 모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돔과 고모라가 이렇게 육체적으로 타락해져 있음을 반영한다.
5절 바이크르우 엘 로트 바요메루 로 아예 하아나쉼 아쎄르 바우 엘레이카 하라옐라 호치엠 엘레누 베네드아 오탐
창 19: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19:5절
저녁에 네게 온 사람- 두 천사는 완전한 사람의 형태로 왔기 때문에(18:2) 그들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용모는 금방 소돔 주민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상관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 )는 본래 '경험을 하여 상대방을 아는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성교(性交). 즉 동성애(同姓愛)를 가리키는 완곡어로 사용되었다(삿 19:22). 남색(男色)을 가리키는 영어 'sodomy'는 소돔 주민들의 이러한 성적 문란에서 파생된 치욕스러운 단어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2:24)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동성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롬 1:26,27; 고전 6:9) 모세의 율법(레 20:13)을 통해 이 죄를 엄격히 단죄하고 있다.
6절 바예체 알레헴 로트 하페트하 베하델레트 사가르 아하라이브
창 19: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19:6절
뒤로 문을 닫고 - 손님들을 안전히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몸으로 폭도들을 맞닥뜨린 용기 있는 행동이다. 고대 동방에서는 자기 집에 온 손님의 안전을 위해 목숨도 불사한 채 보호하는 것이 관례였다(8절).
7절 바요마르 알 나 아하이 타레우
창 19: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19:7절
롯이 손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딸들의 순결과 명예를 희생하려 한 것은 소돔 사람들의 막을 수 없는 타락 행위에 대하여 그나마 덜 심각한 죄악으로 대처하려 한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분명 죄로써 죄를 막고자 한 세속적 타협안이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악과의 타협은 더 큰 악을 초래하여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 하나님 앞에서의 궁극적인 해결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따라서 성도는 다른 것들에 대하여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지만 악에 대하여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끝까지 대항해야 한다.
8절 힌네 나 리 쉐테 바노트 아쎄르 로 야드우 이쉬 오치아 나 에트헨 알레켐 바아슈 라헨 카토브 베에네켐 라크 라아나쉼 하엘 알 타아슈 다바르 키 알 켄 바우 베첼 코라티
창 19:8 내게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19:8절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 - 롯의 이 두 딸은 이미 소돔인과 정혼한 상태에 있는 딸들이다(14절). 따라서 이 둘을 폭도들에게 색욕 거리로 내주려 한 롯의 행위는 딸들 뿐 아니라 정혼한 사위들의 명예까지도 훼손시키는 결례였다.
내가... 이끌어 내리니 - 족장 시대에 있어서 자녀에 대한 아비의 부권(父權)을 보여 준다. 당시의 부권은 자식의 생사 여탈권(生死與奪權)을 쥐고 있을 만큼 막강하였는데 드라빔 사건(31:29,32). 다말 사건(38:24), 정탐꾼 사건(42:37)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9절 바요메루 게쉬 홀르아 바요메루 하에하드 바 라구르 바이쉐포트 솨포트 아타 나라 레카 메헴 바이프체루 바이쉬 베로트 메오드 바이게슈 리쉐보르 하달레트
창 19: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9:9절
이 놈이 - 욕설이 섞인 모욕적인 인사이다. 이것은 소돔 사람들이 롯에 대하여 전혀 존경심을 품지 않았다는 증거인데, 경건을 유지해야 할 신앙인이 악에 물들면 세상 사람보다 더욱 멸시받기 마련이다.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 (이쉬포트). '솨파트'(재판하다, 소송을 제기하다)의 부정형으로 과거부터 공공연히 소돔 사람들의 방탕한 행위에 대해 책망과 항의를 해온 것을 가리킨다(벧후 2:7,8). 즉 비공식적이긴 하나 롯은 소돔 성으로 이주한 이래(13:12) 지도자적 위치에 있으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악을 멀리하지 않는 롯의 책망과 항의에는 그곳 소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에는 힘이 미약했을 것이다.
그들의 육욕적인 분노와 광포를 저지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온유한 방안으로 롯이 중재에 나섰을 때, 그들은 롯에게 오만 불순하고 거칠고 포악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에게로 감히 나아갔다(6절). 그는 그들에게 정중하게 말하고,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불렀으며(7절), 그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청했다. 그들의 비열한 계획에 심히 괴로움을 당한 롯은 지각없고 부당하게도 자기 두 딸을 그들의 처분에 맡기겠다고 제의했다(8절). 두 악이 있을 때 우리는 보다 작은 악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두 악 중 아무것도 선택해서는 안 되며, 선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자기 손님들이 당연히 받을 환대의 예와 자기 집의 보호 책임을 변호했다. 그러나 롯은 육욕과 욕정에 사로잡혀 있는 이 완악한 죄인들에게 타이르고 있으니, 차라리 울부짖는 사자나 사나운 곰에게 타이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들과 롯의 논쟁은 그들을 격노케 했을 뿐이며, 그들의 죄악을 채우고 분량을 가득하게 했을 뿐이다.
그들은 롯을 조롱하면서, 롯은 자기들의 도성에 거하는 자유민도 아니면서 자기들의 치안관이 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비난했다(9절). 남을 타이르는 사람은 부당한 찬탈자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임을 명심하자. 또 그런 사람들은 친구로서 친절을 베푸는 동안에도 오히려 심판관의 권위를 가로채려 한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인간이란 흔히 많은 비난을 받기까지는 바른말을 하지 않는 법인지도 모른다.
10절 바이쉘르후 하아나쉼 에트 야담 바야비우 에트 로트 알레헴 하바예타 베에트 하델레트 사가루
창 19: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9:10절
손을 내밀어 -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열고서는 황급히 집으로 롯을 끌어들인 행동을 의미한다. 그들은 롯을 구출했다(10절). 남에게 물을 대접하는 자가 물을 대접받게 된다. 롯은 천사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했고, 이제 천사들은 그 친절에 보답하여 그의 안전을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한다. 나아가서, 선행으로 위험에 처해 있는 자들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해 천사들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성도들은 롯과 같이 죽을 지경에서도 완전히 안전한 집으로 인도되며, 그 문은 그들을 쫓아오는 자들을 영원히 차단해 버리리라.
11절 베에트 하아나쉼 아쎄르 페타흐 하바이트 히쿠 바사네베림 미카톤 베아드 가돌 바일르우 리메초 하파타흐
창 19: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19:11절
눈을 어둡게 하니 - 왕하 6:18에 나온 것과 동일한 초자연적 역사로 일시적인 시각 장애 현상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착시(錯視) 현상으로 인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도 엉뚱한 곳을 헤매었던 아람 군대처럼(왕하 6:19,20), 소돔 거민들 역시 시각 장애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랑게(Lange)는 '천계의 신령한 능력과 지상의 마귀적 충동이 정면충돌한 필연적 결과'였다고 평하였다. 그리고 아벤 에즈라(Aben Ezra)는 '눈과 아울러 마음까지 어둡게 되었다'라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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