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장 구약 성경말씀에서 요셉은 억울하게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서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유혹을 물리친 요셉
사건 개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간 요셉은 성실함으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다. 이때 요셉의 준수한 용모에 반한 여주인이 요셉을 유혹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만리타국에서의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지 않기 위해 유혹을 물리쳤다. 그러자 여주인은 요셉에게 앙심을 품고 오히려 요셉이 자신을 겁간하려고 했다고 누명을 씌웠다.
역사적 배경
요셉 이야기에서 보이듯이 여인의 유혹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동방 지방에 많이 알려져 있었다. 특히 기원전 1225년경 이집트 19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파피루스에 쓰여 있는 ‘두 형제 이야기’는 요셉 설화와 그 전개 과정이 아주 흡사하나 끝에 가서 유혹한 여인을 남편이 살해하기 때문에 그 성격이나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본문에서 주인의 아내는 눈짓을 하며(7절) 노골적인 욕구를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나와 동침하자(12절)는 말은 여주인이 종에게 한 당당한 명령으로 볼 수도 있고 상대방에 대한 강력한 요구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식의 유혹 과정은 안주인이 상당한 자유를 행사할 수 있었던 당시 사회 풍습을 나타낸다. 즉 당시 집안에 있는 종들은 전적으로 여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따라서 집안의 종이 때로는 여주인의 성적 노예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런 점에서 요셉이 여주인의 성적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요셉은 여주인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와 같은 요셉의 이야기는 근동의 다른 설화와 비교할 때 여호와 종교가 지니는 도덕적 우월성을 증거하고 있다.
구속사적 의미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던 요셉에게 여주인의 동침 요구는 매우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유혹을 이겨냈다. 그것은 요셉이 지닌 신전 의식 때문이었다. 요셉은 혼자 있어도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처럼 행동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범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요셉의 신전 의식은 오늘날 심각한 범죄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모습이다.
단어연구
●눈(에네하)
인간이나 동물의 눈을 가리키는 이 말은 상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본문에는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준수함에 끌려 유혹과 욕망의 눈길을 흘리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간섭지(야다)
‘알다, 구별하다’라는 뜻의 이 말은 경험을 통해 대상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보디발은 자신의 소유물의 운용에 대해 구체적이고 완전하게 알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득죄하리이까(웨하타티)
‘어긋나다, 방황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정도를 벗어나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죄는 불신앙, 불법, 불의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신의 마음과 욕심에 끌려 죄를 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참조,시51:5).
●도망하여(와야나쓰)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어떤 장소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나타내는 전쟁에서 패한 군사들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 본문에는 요셉이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피하는 행위를 보여준다.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롱하게 하도다(레차헤크)
이 말은 상대의 인격과 행위에 대한 조소와 경멸을 가리킨다. 본문에서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의 가증한 행위를 요셉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강해설교
세상이 아무리 악하여져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법을 지키며 사는 경건한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소수의 경건한 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많은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들이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요셉은 흠을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여인의 유혹을 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할 수 없다고 말한 신앙고백은 죄악의 유혹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필요한 신전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증거 하는 경건한 요셉이 죄와 싸워 이기는 모습 속에서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의 지혜를 배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함
[해석]
요셉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거하였을 때 그의 준수함을 보고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하였습니다. 요셉은 그 여인에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큰 악을 행할 수 없으므로 동침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끈질기게 유혹하였고 요셉은 그 유혹을 뿌리치기 위하여 그녀와 함께 있는 것조차 금함으로 스스로를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지켰습니다. 또한 그 여인이 요셉의 옷을 잡고 동침할 것을 강청하자 요셉은 자신의 옷을 버리고 도망함으로 여인의 유혹을 끝까지 뿌리쳤던 것입니다. 정욕에 넘어가기 쉬운 시기인 젊은 청년 때에 요셉이 이와 같이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을 보고 계시다는 신전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만 피하면 자신의 죄가 감추어질 것이라고 믿고 범죄를 행하게 되지만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으므로 범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적용]
성도가 죄악 많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범죄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어 세상의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못할 것이 없으며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못함이 없으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위뿐만 아니라 그 마음 중심까지 감찰하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음의 죄까지 하나님께 정죄받게 됨을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이웃에 대하여 신실함
[해석]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할 때에 주인이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위임하였으나 그 아내만은 금하였기에 범죄 할 수 없음을 말함으로 주인에 대한 신실함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요셉의 말속에는 주인과의 언약을 어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신실함을 지녔던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보디발과 결혼이라는 언약을 통하여 정조를 지킬 것을 언약한 사이였지만 보디발이 보지 않는 틈을 이용하여 그 언약을 파기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보디발과 자신과의 사이에 증인이 되시므로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할 수 없음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웃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웃과의 관계를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적용]
성도의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은 현실의 삶 속에서 이웃에 대한 신실함으로 증거 되어야 합니다. 보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실함이 없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실함을 보인다는 것은 외식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법도 잘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법도 지키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법에 비해 하나님의 법은 더 거룩하고 공의롭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추구할 때 그 삶은 세상의 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이 됩니다. 즉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이라는 칭송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라 하는 자들이 세상의 법을 어겨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성도가 착한 행실을 보여서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회생활 가운데서 이웃과의 약속과 신의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감찰하시고 성도의 신앙을 판단하십니다.
3. 죄악의 자리를 피함
[해석]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지 않는 데에는 그의 지혜로운 처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건성에 대해 자만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보디발의 아내가 성적으로 유혹을 할 때 그 자리를 피하였던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도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잘 인식하고 있었기에 범죄를 행치 않기 위하여 그 자리를 피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한 후로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금하였음을 보아 더욱 분명해집니다. 요셉은 자신을 자만하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여 자신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과신하여 자신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자만심이 사람을 실족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적용]
성도가 범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언제든지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겸손히 인정하여 할 수 있으면 유혹을 받을 만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다 하더라도 사단의 교묘한 술책에 넘어갈 위험성은 언제나 내재하고 있는데, 이는 죄에 오염된 본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은 신앙의 인물도 한때 사단의 유혹을 받아 범죄에 빠짐으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복 있는 자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한다고 증거 했습니다. 성도는 이러한 성경의 교훈을 따라 악한 곳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격리 함으로 범죄에 빠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힘쓰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할 수 있으면 믿는 자들까지라도 삼키려고 노리고 있으므로 성도는 언제나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요셉과 같이 죄악의 유혹이 있을 때 단호히 배격하고 유혹을 받을 만한 자리에 거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경건 생활을 유지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설교관주
●하나님의 신실하심(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실한 성도인 두기고(골 4: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살아감(히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신실한 마음을 소유함(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정을 맹세하는 언약(삼상 18: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가 금지됨(출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는 죄악(렘 29: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니라 나는 아는 자요 증거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였더라
●이웃을 사랑으로 대함(롬 13:9-1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웃에게 참된 것만 말하는 성도(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신의 있는 약속(롬 9: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임(창 20: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 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둠(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리스도께 자신의 처지를 의뢰함(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음(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구약성경 창세기 21장 강해] 백세에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창 21:1-7)
'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성경 창세기 30장] 부자가 된 야곱(창 30:25-43) (0) | 2024.12.24 |
---|---|
[구약성경 창세기 21장 강해] 백세에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창 21:1-7) (1) | 2024.11.20 |
[창세기 19장 성경말씀] 소돔을 위해 기도하는 아브라함(창 18:22-33) (1) | 2024.11.12 |
[창세기 17장 강해설교말씀] 할례 제도의 제정(창 17:1-27) (0) | 2024.11.08 |
[창세기 10장 강해설교] 최초로 국가를 세운 니므롯(창 10:6-20) (0) | 2024.11.02 |
[창세기 8장 강해설교말씀] 아라랏산에 도착한 노아의 가족(창 8:1-5) (0) | 2024.11.02 |
[창세기 7장 강해설교말씀] 마침내 시작된 홍수 심판(창 7:6-24) (0) | 2024.10.23 |
[출애굽기 모세 설교말씀] 모세의 출생(출 2:1-25) (0) | 2024.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