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부활 주일설교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다가와서 말하자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만남(요 20:11-18)
Ⅱ.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 20:11-18
1. 주 예수에 대한 막달라 마리아의 지속적이고도 뜨거운 사랑(11)
[1] 그녀는 베드로와 요한이 떠난 후에도 무덤에 계속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녀의 주님이 매장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여인은 비록 그리스도의 여의였지만 그를 위해 그의 무덤을 지키고자 하였다. 설사 그의 사랑이 위로를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그를 사랑하고자 한 것이다.
[2] 그녀는 거기 남아서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주님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여읜 사람들은 울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들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반드시 울어야만 한다.
[3] 울면서 구부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11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에는 그것이 마지막으로 놓여 있던 장소를 거듭 살펴보며, 그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울음은 결코 찾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울면서도 몸을 구부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2. 무덤에서 그녀가 본 두 천사들(12, 13)
[1] 그녀가 본 천사들의 모습: 그들은 무덤 속의 '흰 옷 입은 두 천사들'로 하나는 '머리 편에' 다른 하나는 '발 편에 앉아 있었다' ① 그들의 본성: 그들은 하늘로부터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파송된 천사, 즉 사자들이었다. ② 아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목적: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그가 탄생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천사들은 그를 수종할 임무를 맡은 것이다. ③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주의 부활을 알려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주를 대면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파송되었다. ④ 그들의 수효 :그들은 주의 부활을 찬양하기 위해 내려온 수많은 천군의 무리가 아니라 그것을 증거하기 위한 단 '두 명'이었다. ⑤ 그들의 복장: 천사들은 순결함과 거룩함을 의미하는 흰옷을 입고 있었다.
영광을 입은 성도들이 천사들처럼 될 때, 그들은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나아갈 것이다. ⑥ 그들의 자세와 위치: 그들은 그리스도의 무덤 속에 앉아 있었다. 이 천사들이 무덤 속에 들어간 것은 우리에게 무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무덤은 우리가 하늘로 가는데 있어서 아무런 장해도 되지 못한다. 이들 천상의 파수 군들은 무덤을 지키는 경비병들을 쫓아내고 그 무덤을 지켰다. 이는 어둠의 세력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낸다.
그들이 서로 마주하여 하나는 예수의 침상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은 것은 우리에게 속죄 소의 양끝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두 그룹을 상기시켜 준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위대한 속죄 소가 되신다. 그의 머리 편과 발 편에 두 그룹들이 있는데, 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길에 이르지 못하도록 불 검을 가지고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그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안내해 주는 고마운 사자들인 것이다.
[2] 막달과 마리아가 슬퍼하는 이유에 대한 천사들의 동정적인 질문: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13절). 이 물음 속에는 그녀의 울음에 대한 힐책이 담겨 있다. 즉 이 물음은 "네가 기뻐할 이 때에 어찌하여 우느냐?"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흘리는 많은 눈물은 이 마리아의 경우처럼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찾기도 전에 눈물의 샘에서 말라버릴 것이다. 이 질문은 천사들이 성도들의 슬픔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서로 동정을 베풀어야 한다. 또한 이 질문은 그녀의 애통을 기쁨으로 변모시키는 소식을 그녀에게 전해 주기 위한 하나의 단서로 제기된 것이다.
[3] 그녀와 현재 겪고 있는 곤경에 대한 그녀 자신의 우울한 설명: 그녀는 "내가 향유를 부어드리고자 하여 와 보니 사람들이 복된 주님의 시신을 가져가 버렸고 또 그들이 그것을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첫째, 그녀의 연약한 믿음: 사람들은 간혹 상상에 불과한 곤란으로 말미암아 불필요하게도 스스로 당황하곤 한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 이러한 곤경이 오히려 참된 유익이 됨을 발견한다. 둘째, 그녀의 강인한 사랑: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들의 환상에 놀라 자신의 조사 작업을 중단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심취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이 나의 주님을 데려갔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천사들의 모습이나 미소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나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미소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천사들의 출현은 그리스도를 찾는 그녀의 조사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실마리가 될 뿐이다. 천사들이 그녀에게 '네가 어찌하여 우느냐'고 묻자, 그녀는 "내게는 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나이다. 사람들이 내 주님의 시신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버림받은 자의 슬픔, 그것은 경험해 본 자들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슬픔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위로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것들을 상실하고 어둠 속을 걸어가게 되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3. 그녀가 천사들과 대화하고 있는 동안 그녀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14-17)
그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타나셨다. 이제 마리아는 주님이 계신 곳을 알게 될 것이며, 그녀의 오른편에 계신 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뵙는 것을 진실로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지체 없이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를 찾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되 때때로 그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 그리스도의 시신을 보기를 갈망한 마리아가 살아 계신 그의 모습을 목격한 것을 보라. 이와 같은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하신다.
[1] 그리스도는 먼저 자신을 그녀로부터 숨기셨다.
1)그는 보통 사람처럼 서 계셨으며, 그녀도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14절). 그녀는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뒤를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았으나, 그가 예수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되'(시 34:18)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그를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분은 항상 그들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열심히 주님을 찾는 자들은 그를 찾는 데 있어서 모든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마리아는 혹시 무엇을 발견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풀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찾으려는 진지한 소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종종 그의 백성 가까이에 계시지만,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그녀도 그가 예수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
2)그리스도는 그녀에게 평범한 질문을 던졌으며, 그녀는 그가 질문하는 대로 대답했다(15절).
①그리스도께서 그녀에게 던지신 질문은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15절)."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는 말씀은 그가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하신 말씀으로 추정된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의 슬픔을 아시고 "너희가 어찌하여 우느냐?"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는 그의 백성들의 근심을 아시고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너희가 무엇을 바라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로부터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②그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15절). 첫째, 그녀의 오해: 마리아는 우리 주 예수를 동산지기로 착각했다. 불행한 시절 속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은 종종 그리스도를 쉽게 오해하기 마련이다. 둘째, 그녀의 진실된 예정: 그녀의 심령이 그리스도를 찾는 데 얼마나 열중하고 있었는가를 보라.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를 찾는 일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녀는 그리스도에 관해 말할 때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만일 이 동산지기가 그리스도를 옮겨갔다면, 그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주님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강렬한 애정의 또다른 증거는 그녀가 그의 시신을 어디에 두었든지 그것을 옮겨오려고 한 점에서 볼 수 있다. 그러한 시체는 그녀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옮기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참된 사랑이 있었으므로 그녀는 그 이상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어떤 장애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장소에는 결코 머물지 않은 신다.
[2] 그리스도는 결국 자신의 정체를 그녀에게 드러내셨고 그녀에게 자신의 부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심어 주셨다.
1)그리스도께서 이 선한 여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방법: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16절). 그는 그녀에게 늘 하셨던 대로 친절하신 태도로 말씀하셨다. 이제 그는 음성을 바꾸사 동산지기와 같은 어투가 아닌 자신의 본연의 어투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고 있다'(요 10:4). 그리스도의 "마리아야"라는 이 한 마디 말씀은 폭풍 속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나다"라는 말씀과 같은 성질의 말씀이었다.
2)그녀가 이러한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 경위: 그녀는 뒤로 돌이켜 랍오니여 곧"나의 선생님이시여"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 대해서 나의 선생님이라는 경칭을 사용했다. 유대인들은 랍본이란 말을 랍비라는 말보다 더 명예로운 칭호로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마리아도 이 칭호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나의 위대하신 선생님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와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허용해 주셨을지라도 그는 우리의 선생님이시다.
그녀는 감격에 벅차서 그리스도께 이 칭호를 드렸다. 그녀는 예수 님을 바라보기 위해 천사들로부터 돌이켰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 심지어 가장 총명하고 가장 훌륭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그들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벗어나게 하여 그리스도께 집중시켜야 한다. 그녀가 그를 동산지기인 줄로 생각했을 때 그녀는 그와 말을 하면서도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가 그리스도의 음성을 알게 디자 그녀는 몸을 돌이켰다.
3)그리스도께서 그녀에게 명하신 상세한 지시들(17절):그리스도는 본문에서"나를 만지지 말라. 그리고 가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①이때 그리스도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17절)고 말씀하심으로써 그와 친근한 교제를 나누며 대화를 하고 싶었던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셨다. 마리아는 그를 감격스럽게 포옹함으로써 그녀의 기쁨을 나타내려고 하였으나, 그리스도는 그때 그것을 금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해야 하셨기 때문에 나를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는 제자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는 자기를 만져보라고 명하셨다. 그녀는 주님을 믿고 찬양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전처럼 그와의 친숙한 관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육체적 현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금하심으로써 그가 그의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후에 그녀와 나누어야 할 영적인 친교로 그녀를 인도하셨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아직 승천하지 못하였으나 가서 내 형제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승천하리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운명하시기 전과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후에도 그가 승천하리라는 사실을 누누이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주님의 육체적 현현 이상의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사물의 현상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를 만지지 말라! 더 이상 상세한 것을 묻거나 기쁨을 나눌 시간이 없노라. 이는 내가 아직 승천하지 못했기 , 때문이다.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는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지체치 말고 전력을 다해 달려가라." 마리아는 주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지체하지 말고 주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 날은 기쁜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기 때문이다.
②그리스도는 그녀에게 제자들에게 전할 메시지의 내용을 지시해 주셨다.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올라간다 하라(17절). 이 메시지를 전달받을 사람: 이 소식을 가지고 형제들에게 가라,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의 영광의 문턱에 서 계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자들을 그의 형제로 여기신다. 이제까지 그는 그들을 친구라고 부르셨으나, 형제라고 부르신 적은 결코 오만하시지 않으시다. 그는 높아지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초라했던 관계들을 수치로 여기시지 않으셨다.
그는 제자들이 모두 모두 그를 버리고 도망간 이후로 결코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 일을 잊으시며 그들을 책망하시지 않으신다. 이 메시지의 전달자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예수께서는 그녀에게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므로 그녀가 그리스도의 전령이 된 것은 그녀의 그리스도에 대한 변함없는 추종의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사도들에게 보냄을 받은 사도가 된 것이다. 메시지의 내용: 그것은'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로써 하나님과도 연쇄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그리스도는 "그는 나의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시다. 곧 그는 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너희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예수 안에서 신자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은 그들의 존엄성을 매우 고양시켜 준다. 우리는 양자 됨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하나님을 우리들의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하나님이 곧 너희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기꺼이 인정하신 것은 그의 겸손하심을 나타내 준다. 구속 자이신 그리스도를 지원하시기 위해 그의 하나님이 되신 그분은 구속받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제는 구원받은 자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하늘 나라로 올라가신 그리스도의 승천은 우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승천하리라고 그들에게 전하라고 그의 육체적 현존의 존속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내가 부활하였으나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고 그들 의 용무를 위해 하늘나라로 갈 것임을 그들에게 전하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영적인 생명으로 부활한 사람들은 그들도 부활하여 승천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이 세상이 그들의 집이요 안식처라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늘에서 난자는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내가 승천하니 하늘의 것만 구하노라 는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씀은 제자들과 저희를 통하여 그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말씀이다. 그가 승천하셨을 때, 그는 그의 아버지이시자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올라가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자들이 그의 승천을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그는 우리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시기 위해 우리의 선두 주자로 승천하셨다.
혹자는 '내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그의 말씀 속에는 우리의 부활에 관한 약속이 포함된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내가 살았으니 너희 또한 살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제자들에 대한 막달라 마리아의 성실한 보고 (18)
그녀는 제자들에게로 와서 그녀가 주님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고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은 눈물을 흐리며 주의 깊게 주님을 찾았던 그녀와 함께 머물지 않고 그녀를 그곳에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 이제 그녀는 주님의 몸이 산 몸이요 영광을 입으신 몸임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찾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것을 발견했으며, 몸소 주님을 목격했다는 기쁨에 어쩔 줄을 몰랐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실 때, 그 속에는 우리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시려는 경륜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그녀 역시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전해져야 할 메시지인 그리스도가 그녀에게 하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고난 주간 설교] 예수님의 죽음과 바라바의 석방(마 2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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