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4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구원의 이름 예수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자신도 주님처럼 고통을 당할 것 같아서 주님을 앞에 두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했지만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난 이후에는 달라졌습니다. 대제사장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받을 만한 이름은 예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아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이름 예수(행 4:12)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2장부터 4장까지의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특이한 것 하나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아주 날카롭게 대립되어 긴장 상태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립의 이유가 바로 예수 이름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말끝마다 예수 이름을 들먹였습니다. 2-5장의 내용 중에서 예수 이름에 관한 언급이 13회나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21 2:38 3:6 3:16(2회) 4:7 4:10 4:17 4:18 4:30 5:28 5:40 5:41) 그런데 제사장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 이름이 대중에게 소개되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왜냐면 자기들이 못 박아 죽인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은 저주의 이름이었고 부인하고 싶은 부담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서 공회 앞에 세우고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 4:18)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제사장들이 뭐라 하건 간에 더욱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이 전하여지는 곳마다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어떤 능력이 나타났습니까?
1. 죄를 사하고 정복하는 능력입니다.
예수 이름은 죄를 정복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만 의지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예수 이름 외에는 우리에게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행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의 능력입니다. 왜냐면 그 이름에 죄 사함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마귀를 정복하는 능력입니다.
예수 이름 앞에서는 사단 마귀가 떠나갑니다.
사단은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입니다.(유 6, 벧후 2:4, 14:12-15) 귀신은 타락한 천사인 사단의 졸개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천사 세계를 창조하시고 천사장 셋으로 하여금 천사들을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가브리엘, 미가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그를 따르던 몇몇의 천사들을 저주하시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이 타락한 천사들이 바로 마귀와 귀신들입니다.
(1) 마귀는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킵니다.
마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놓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도 사단이 들어가 성령을 속이게 하였습니다.(행 5:3)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들어가 선악과를 먹게 하였습니다.(창 3:4-5)
① 마귀는 우리의 영혼을 파괴시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② 적극적으로 불순종을 유도하고 죄를 짓게 만듭니다.
③ 하나님의 일을 등한히 여기게 합니다.
히 2:3절에 “하나님의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라고 했는데 마귀에게 파괴된 영혼은 영혼 구원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래서 영적인 일들을 등한히 하는 것입니다. 게을러져서 주의 일에 열심을 품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가장하기 싫을 그때가 가장 열심히 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 가기 싫을 때에 교회 가야 합니다. 기도하기 싫을 때에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영을 파괴시키기 때문입니다.
(2) 마귀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와 생각을 파괴시킵니다.
마귀가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요 13:2) 마귀는 사람의 정신을 파괴시켜 혼미하게 만듭니다. 부정적이고 더러운 욕심으로 가득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생각을 파괴하여 쓸데없는 걱정 근심에 빠지게 합니다.
사울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갔습니다. 그는 흥분하고 온갖 잡념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는 피해 망상증에 걸려서 가만히 있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삼상 16:14 18:10-11)
어느 여학생이 수학 시간만 되면 몸이 뒤틀리고 헛구역질을 하며 몹시 아팠습니다. 그러다가도 다른 시간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졌습니다. 도무지 의사들이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도 그 원인을 몰랐습니다. 얼마 후에 한 목사님과 상담하면서 원인을 발견하였습니다. 언젠가 자기 계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계부에 대한 반항감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학 선생님의 목소리가 계부의 목소리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계부에 대한 혐오감이 수학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솟구치는 것이었습니다. 밝고 명랑하게 자라야 할 소녀가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것입니다.
마귀는 어떤 기회만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서 생각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은 마귀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있는 우리의 생각에 평안으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 중심에 예수를 모셔야 합니다. 그러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3) 마귀는 온갖 질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마 8:16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병이 마귀가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귀가 주는 병이 있습니다.
행 10: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모든 질병을 준 마귀를 쫓으니 육신의 건강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행 3:6절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명할 때에 그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리고 행 4:10절에 그가 건강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나사렛 예수의 이름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이름에는 병을 정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었던 제자들은 행 4:30절에서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라고 기도하였습니다.
3. 예수 이름에는 고난을 이길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성도님이 목사님께 '고난이 좀 없어지게 해 달라'라고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말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도 좋겠습니까?” 영문을 몰라하는 성도에게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고통 없는 곳은 없습니다. 고통 없는 곳은 천국 밖에 없습니다.”
그때 그 성도는 목사님의 말뜻을 알아듣고 “목사님! 고난이 있는 것이 좋겠군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고난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있다면 공동묘지 일 것입니다. 인생은 해산의 고통 중에서 태어나 고생의 쓴 나물과 고통의 떡을 먹고 눈물의 쓴잔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이깁니다. 진정 예수 이름으로 살아갈 때에 고난 자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고난을 이길 수는 있습니다.
고난을 이길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난에서 이기게 하시고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시 119:92절에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법이 고난을 이길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주 예수의 이름은 고난을 이기는 권능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지방에 한 부유한 부인이 아름답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친구들을 위해 집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나르던 하인이 음료수 병을 떨어뜨려서 그것이 깨지는 바람에 음료수가 값비싼 벽지에 튀겨 벽지를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부인은 그것으로 인해 몹시 마음이 상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른 사람들이 사냥하러 나갔을 때 손님 중에 당시 유명한 화가인 랜드시어 경이 붓과 물감을 끄집어내어 하인이 음료수 병을 떨어뜨려서 보기 흉하게 얼룩진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 얼룩을 배경 삼아 그의 가장 유명한 역작 중 하나인 궁지에 몰린 수사슴 한 마리를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그 부인과 일행들은 사냥에서 돌아와서 그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 화가는 보기 흉한 얼룩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얼룩진 고난의 날들을 아름다운 축복의 삶으로 그려내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고난을 이길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들의 전도의 주제는 예수 이름이었고 내용도 예수 이름이었습니다.
예수 이름은 죄를 정복하고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마귀를 물리치고 정복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모든 질병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 때문에 임한 온갖 고난을 이기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의지하여 죄를 정복합시다.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하며 저주에서 해방되어 축복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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