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요한복음 2장 헬라어 강해] 가나 혼인잔치 포도주 사건(요 2:1-12)

두란노 서원 2021. 3. 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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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2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가나 혼인잔치 포도주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후에 공생애 사역이 시작됩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번째 기적입니다. 혼인잔치는 기쁨이 있는 날인데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수치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혼인집에 수치가 사라지고 기쁨이 임할 수 있도록 포도주의 기적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십자가에서 영원한 복음을 주실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혼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주님과의 정혼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부는 이제부터 신랑을 기다려야 합니다. 신랑은 반드시 신부를 데리러 온다고 했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는 날이 종말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재림하셔서 신부인 나를 데리고 천국의 집으로 가서 혼인잔치를 치르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과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가나 혼인잔치는 바로 신랑이신 주님과 신부인 내가 앞으로 혼인잔치를 해야 할 것에 대한 예표이며 주님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신부인 성도는 영적인 신부 수업을 받으면서 신랑이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나 혼인잔치 포도주 사건(요 2:1-12)

 

1절은 카이 테 헤메라 테 트리테 가모스 에게네토 엔 카나 테스 갈릴라이아스 카이 엔 헤 메테르 투 이에수 에케이입니다.

요 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_ "사흘 되던 날" 이것은, 1:43에 기록된 날부터 계산된 날짜인 듯하다. 이렇게 자세히 날짜까지 기록한 것은, 그 저술자가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실을 확증한다.

"갈릴리 가나." 레스틴에는 이 밖에 또 다른 "가나" 란 지방이 있는 것인 만큼, 여기서 "갈릴리"란 말을 붙여서 밝힌다. 이곳은 나사렛 동북편 5마일 되는 곳에 있다고 한다. "혼인"은 기쁨의 상징이다. 이것은, 신약 시대의 복음이 율법과 달라서 그 주는 기쁨이 가정적(庭的)이고 보편적(普遍的)일 것을 표상(表象)한다.

2절은 에클레데 데 카이 호 이에수스 카이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에이스 톤 가몬입니다.

요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 예수님은 염세주의(厭世主義)를 가지신 이가 아니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리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 이것은 그의 겸손인 동시에 그의 긍휼이다. 성결은 격리(隔離)가 아니다(Sanctity is not singularity). 청함을 받다라는 단어가 칼레오 동사인데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문법이다. 직설법은 예수님이 실제로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 시제는 예수님은 가나 혼인잔치에 가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동태는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가나에 가셔서 포도주 기적을 베풀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3절은 카이 휘스테레산토스 오이누 레게이 헤 메테르 투 이에수 프로스 아우톤 오이논 우크 에쿠신입니다.

요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2: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 당시에 "포도주"는 팔레스틴에 있어서 일반 음료였고, 다른 나라에서처럼 유흥과 오락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팔레스틴은 사막 지방과 같아서 물이 귀하므로 과즙으로 된 음료가 필요하였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더러 "포도주가 없다"라고 한 것은, 포도주를 기적적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겸손히 말한 청원이다. 예수님께서 그전에 이적을 행하신 일이 없었을 터인데, 그의 모친께서 이런 청원을 어떻게 하였을까? 그것은 난제가 아니다. 수님께서 그전에 이적을 행하신 일이 없다 할지라도, 그의 인격에 초자연적이고 비범한 일들이 관련되어 있는 것인 만큼, 마리아로서 그에게서 이적을 기대할 만하였다.

4절은 레게이 아우테 호 이에수스 티 에모이 카이 소이 귀나이 우포 헤케이 헤 호라 무입니다.

요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 그가 자기 어머니더러 "여자여"라고 하신 것은 하대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 한국 풍속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같으나, 헬라 어풍(語風)으로는 그것이 무례한 말이 아니다(Hendriksen).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향하여, "여자여"라고 하신 것에는 뜻이 있다. 메시아의 공적 역사(公的役事)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만이 주장하고 혈통적 모친 된 권세가 간섭할 수 없다.

그 점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모친도 하나의 "여자"의 지위를 가질 뿐이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여기서 자기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실 때에, 그는 자기 어머니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될 자로만 취급하신 것이다.

메시아의 공생애(公生涯)에 있어서, 수님은 그의 하실 바 일을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만 하시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는 혈통적 인연에 매이지 않아야 될 것이었다"라고 하였다(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 PP.171-172).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런 표현은 구약에도 많은데(11:12; 삼하 16:10; 왕상 17:18; 왕하 3:13), 반드시 냉정한 어투는 아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의 구속(救贖) 사업에 있어서는 비록 예수님의 모친이라도 그 모친 된 권세로써 간섭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 밖에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도울 중보자(中保者)가 없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여기 이른바 "내 때"란 말은 메시아의 영광을 나타낼 때를 의미한다(7:30, 8:20, 13:1, 17:1).

그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혼인잔치에 포도주 그것을 보급시키신 자선 사업을 목적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로 하여금 그를 메시아로 확실히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11).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한 말씀에 대하여 고데이 (Godet)는 해석하기를, 그가 메시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는 예루살렘에서야 될 일이고 가나에서 될 일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한.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가 가나에서 포도주를 만드시므로 메시아로서의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우리 본문은 말하지 않는가? 11절 참조. 그러므로 여기 이른바, "내 때"는 바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의 권능을 나타내실 일정한 시간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시어 그의 중보 역사의 일체를 시행하신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순종은, 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 대로 맞추어 움직이신 것이다. 이런 일은 일반인으로서는 생각도 해 볼 수 없는 절대 완전하신 순종이다.

5절은 레게이 헤 메테르 아우투 토이스 디아코노이스 호 티 안 레게 휘민 포이에사테입니다.

요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 이것을 보면, 그 모친이 예수님의 의미하신 바를 깨달았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만 순종하여 성역을 이루어 나가신 사실이, 그 모친에게 알려졌다.

예수님의 성역은 순종으로 일관하셨다. 그러므로 거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순종 일관 주의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 모친은 하인들더러,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라고 부탁한. 순종은 무엇에서든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시게 하는 비결이다. 루터(Luther)말하기를, "순종은 이적보다 낫다"라고 하였다.

말씀을 하시든지 - 레고라는 동사인데 가정법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을 사용했다. 가정법은 말씀을 하실 수도 있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현재는 지금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모르지만 하인들은 무조건 말씀에 따라야 한다고 마리아가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순종을 엿볼 수 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난다.

6절은 에산 데 에케이 휘드리아이 리디나이 헥스 케이마나이 카타 톤 카다리스몬 톤 이우다이온 코루사이 아나 메트레타스 뒤오 헤 트레이스입니다.

요 2:6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 유대인의 가정에는, 연회 할 때에 물을 많이 사용하기 위하여 돌 항아리를 비치하였다.

그것은, 주로 식사 전후에 손 씻는 예식을 행하기 위함이었다. 그 풍속은 성경이 제정한 것이므로, 진정한 종교적 의의와 효과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런 번잡한 예식을 변하여, 맛있는 신약의 종교(포도주는 신약의 기독교를 상징함)로 변화시켰다.

그것이 물론 포도주를 만드신 비유적 의미이다. "두 세 통 드는 항아리"의 용량(用量), 77리터, 혹은 115리터에 해당된다. 렇게 큰 항아리가 여섯이나 놓여 있었다. 우리 본문이 이렇게 많은 분량에 대하여 관설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의 많은 분량을 말하여, 그의 이적의 놀라운 사실을 지적하려는 까닭이다.

7절은 레게이 아우토이스 호 이에수스 게미사테 타스 휘드리아스 휘다토스 카이 에게미산 아우타스 헤오스 아노입니다.

요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절은 카이 레게이 아우토이스 안틀레사테 뉜 카이 페레테 토 아르키트리클리노 카이 에넹칸입니다.

요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2:7, 8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 하인들은 즉시 순종하였다. "이제는 떠서"라는 말을, 샘물에서 "물을 길어서"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Westcott), 확실치 않다.

"연회장", 그때 풍속에 연회의 손님들 중 주빈이었다고 한다. 이 이적에 있어서, 물이 어떻게 포도주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말한 바 없고, 다만 고요히 역사하시는 주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런 기적이 나타났다.

9절은 호스 데 에규사토 호 아르키트리클리노스 토 휘도르 오이논 게게네메논 카이 우크 에데이 포덴 에스틴 호이 데 디아코노이 에데이산 호이 엔틀레코테스 토 휘도르 포네이 톤 뉨피온 호 아르키트리클리노스입니다.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 - 주님의 기이한 역사의 유래를, 사람마다 알지 못하나 오직 주님께 충성하는 종들만은 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다음과 같다. (1) 복종의 원리.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4), 침묵하며 순종한 후 하인들더러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다(5). 이것은, 무조건 순종을 말함이.

무조건 순종은 하나님께만 하는 법인데,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 대우를 받으신 것은 당연하다. 과연 하인들은 조금 후에 그렇게 순종하였다(7-8).

루터(Luther)의 말과 같이, 참된 신앙의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무슨 일을 지정해 드리지 아니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복속시킨다(Wahrer Glaube schreibt Christus nicht vor-wad ertunsoll-,sondern weiss sich darin zu schicken.-Evangelien Auslegung, 4, P.93).

(2) 변화의 원리(6-9). 결례의 항아리 물의 포도주로 변화된 것은, 예수님의 권능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이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서 죄인들이 변화되어 성도가 될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악한 사람이라고 변화시킬 수 있다. 1733년부터 선교사들이 5년 동안 창세기 1장을 가르쳤어도 하나님의 인상도 받지 못하던 에스키모족 중에서도 마침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겼다. 루터(Luther),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또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말하였다(Evangelien Auslegung, 4,P.98).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은 죄인들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10절은 카이 레게이 아우토 파스 안드로포스 프로톤 톤 칼론 오이논 티데신 카이 호탄 메뒤스도신 토테 톤 엘랏소 쉬 테테레카스 톤 칼론 오이논 헤오스 아르티입니다.

요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 기독교의 복음은, 사람들을 이 세상보다 선미(善美)한 내세(來世)로 인도하는 것이다.

여기 이른 바 "좋은 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되는 구원의 기쁨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1) 혹설에, 여기 "좋은 포도주"는 취할 수 있는 강한 술을 의미한다고 하나,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이적으로 만든 술인 것인 만큼 취하게 하는 성분이 강하지 않고도 좋은 술일 수 있다.

(2) 어떤 학자들은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만드신 술은 발효(醱酵) 하지 않은, 취하지 않는 술이었을 것이라고 하나, 그렇게 주장할 만한 본문의 증거는 없다.

설혹 예수님께서 만드신 술은 취할 수 있는 성질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을 절제 있게 마시는 사람들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절제"의 덕을 가르친다(5:23). 금주(禁酒)를 규칙으로 가지는 한국 교회에 있어서, 예수님의 이 이적이 문제 될 것 없다.

한국인의 특수한 사정(술 취하기 잘하는 한국인)으로 보아, 금주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친 "절제"를 위한 것이다.

11절은 타우텐 에포이에센 텐 아르켄 톤 세메리온 호 이에수스 엔 카나 테스 갈릴라이아스 카이 에파네로센 텐 독산 아우투 카이 에피스튜산 에이스 아우톤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입니다. 

요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여기 "표적"이란 말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리는 신령한 증표라는 뜻이다.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메시아의 증표로서의 권능을 나타내셨다는 의미이다. 피스튜오라는 동사인데 직설법 과거 능동태 복수 3인칭이다. 직설법을 사용한 것은 제자들이 주님의 표적을 보고 실제로 믿었다는 의미다. 과거 시제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제자들은 주님의 표적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허락해 주시니 믿게 된다. 우리도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니 주님의 기적을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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