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장에서는 사무엘의 출생이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이 출생하기 전에 한나와 엘가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해서 브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아이를 달라고 서원하여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해서 사무엘을 주셨다. 엘리 제사장은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아서 한나의 기도를 보고 술에 취한 것이라고 오해했다. 목회자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한나의 서원기도와 사무엘 출생(삼상 1:1-28)
● 1,2절 -----------------------------------------------------------
"라마다임소빔"이란 땅은 다른 데서는 간단히 "라마"라고만 불린 곳인데, 사무엘이 거기서 났고, 거기서 살면서 일하다가 거기서 죽어 장사함이 되었다(1:19-20, 7:17, 15:34-35, 16:13, 19:18-19, 25:1, 28:3). 이곳은 예루살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사무엘은 레위인으로서(대상 6:1, 28) 베냐민 지파 기업에 속한 라마에서 살았다.
"엘가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형성하셨다'는 뜻이다. 1절에 그의 선조들의 이름들이 기록된 것은 본서의 역사적 사실성을 확증한다. 성경의 기록 성격은 이렇게 어디까지나 역사성을 생명시한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엘가나가 "두 아내"를 둔 것은 남자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진리(창 2:24; 말 2:15)를 어긴 것이다.
● 3,4,5,6,7절 -----------------------------------------------------------
엘가나가 실로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가족과 함께 그 제물을 나누어 먹을 때마다 브닌나와 한나 사이에는 서로 암투가 있었다. 그 암투의 원인은 엘가나가 한나를 더 사랑한 까닭이었다. 곧, 브닌나가 남편의 사랑을 더 받는 한나를 시기하여 그의 성태(成胎) 못하는 것을 약점으로 잡아 "격동하여 번민케" 하였다(6절).
"갑절"이란 히브리어는 '특별한 분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De Groot). 70인 역(LXX)은 이것을 "한 분깃"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이것을 "두 사람을 위한 분깃"(einen teil f* zwei Personen)이라고 번역한다. 이 번역이 옳을 것이다.
● 9,10,11절 -----------------------------------------------------------
한나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그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였다. 한나의 기도는 눈물의 기도였고(10절), 서원(誓願)의 기도였다(11절). "통곡"이란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대단히 울었다'(weeping much)는 뜻인데 이것은 그 기도의 간절 성을 말해준다.
"서원함"은 하나님께 약속함이니, 그것은 서원한 자가 반드시 그대로 갚는 것으로 성실됨을 드러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서원하려면 그 서원 대로 갚을 진실성을 지녀야 한다.(시 15:4, 50:14, 116:14, 18).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 칭호는 하늘에서나 땅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님이란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성품을 가리킨 명칭인 만큼 어려운 처지에서 구원을 사모하는 한나로서 부를 만한 칭호이다.
● 12,13,14절 -----------------------------------------------------------
한나의 기도의 모습(12-13)은 특이하였다. (1)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기도하였고(12절 상반), (2)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았으며(13절), (3) 여호와 앞에 심정을 통한 기도였다(15절 하반). 우리가 오랫동안 앉아서 기도함으로 기도하기 싫어하는 육체적 방해를 이기고 기도다운 기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은 것은 하나님과 대면하듯이 교제하는 믿음 있는 영혼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 앞에.... 심정을 통한 것" 이라 함은 여호와 앞에 심령을 토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도 믿음으로 하는 기도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기울어져 버린다. 그것은 시 37:5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난제를 맡겨버리고 그가 해결해 주실 줄 믿는 믿음의 기도이다. 벧전 5:7 참조.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가정의 고통을 신앙으로 이긴 여자였다. 그의 가정은 늘 평안치 않았다. 그의 남편 엘가나에게는 또 다른 아내(브닌나)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한나를 격동하여 번민케 하였다. 그러므로 한나의 당한 고통은 보통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레 18:18 참조. 가정이란 평안해야 될 곳인데 도리어 그 가정은 죄짓는 곳이 되어 버렸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가정 제도를 주시고 축복하셨건만 인간이 타락하여 가정적으로 당하는 고통이 많다. 어떤 사람은 밖에서 남들에게는 좋게 대하면서도 가정에 들어가서는 가족에게 혈기를 내고 가족을 괴롭히는 예도 있다.
1. 그는 고요히 눈물로 참았다. 가정에서 말다툼하는 것은 참으로 무섭다. 그것 때문에 가족이 흩어지는 일도 있다. 말다툼으로 이기는 법은 없다. 말다툼이 시작될 때에 듣기만 하고 마음의 격동이 진정되도록 고요히 기다리는 것이 힘이다. 상대방과 같이 격동하면 자신이 손해를 당할 것 밖에 없다. 링컨(Lincoln) 대통령이 재직 시에 국무장관 스탠톤(Stanton)으로부터 그의 정견(政見)에 반대를 받았다. 곧, 그가 자기의 의견을 스탠톤에게 보냈을 때에 스탠톤은 링컨 대통령을 어리석다고 하면서 그 의견서를 찢어 버렸다. 그 소식이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을 때에 대통령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고요히 말하기를, "아마도 국무장관이 옳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이후부터 스탠톤은 대통령에게 잘 순종하였다고 한다.
2. 그는 기도로써 이겼다. (1) 자기 욕심을 따라 자식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구하였음. 이는 사욕(私慾)으로 구한 기도가 아니다(약 4:3). (2) 오랫동안 기도하였음. 기도는 시간을 잡고 해야만 참되어진다. (3) 취한 듯이 간절히 기도하였음.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다(눅 11:8). 한나는 이렇게 기도로써 그 가정의 난제를 해결 받았다. 톰 카터(Tom Carter)는 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모친은 그를 위하여 기도를 쉬지 않았다. 톰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 어머니는 아들의 기도를 쉬지 않았다. 톰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 어머니는 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예수 믿게 되도록) 계속 기도하였다. 하루는 교도소에서 전보가 왔는데 그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에 그 어머니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톰이 구원받기를 기도했는데 톰이 죽었다는 말이 웬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옳습니까? 전보가 옳습니까?" 하며 장시간 기도한 후 확신을 얻고 일어나서 교도소에 연락하기를, "전보에 잘못이 있소. 내 아들 톰이 죽었을 리 없소"라고 하였다. 그런데 과연 교도소에서 사무 착오로 전보를 잘못 보냈음이 밝혀졌다. 그 후에 톰은 회개하고 전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 19,20절 -----------------------------------------------------------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이문구는 "여호와께서 그를 기억하신지라"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기억해 주신다는 것은 그가 은혜를 베푸셔서 도와주심을 가리킨다. "사무엘"이란 말은 쉐무아 엘(하나님께서 들어 주심이 되었다)의 단축형이다.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20절하반). 이것은 "사무엘"이란 말의 직접적인 의미가 아니고 한나가 여호와께 구한 대로 그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 24,25절 ----------------------------------------------------------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24절 중간). 여기 이른바 "수소 셋"이란 말은"3년 된 수소 한 마리"라고도 번역된다.(Syriac, Arabic Version). 이 번역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25절의 "수소"란 말이 복수인 것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그러므로 "수소 셋"이란 번역이 옳다. "수소"와 "가루"는 감사제(화목제)를 위한 것이다. 한나는 사랑하는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그를 바치게 된 것을 감사하여 감사제를 드린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신앙의 표현이다. 장성한 자식도 아닌 "어린"사무엘을 부모의 품에서 떼어 여호와의 성막에 두고 돌아간다는 것은 육정(肉情) 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 28절 -----------------------------------------------------------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여기 "드린다"는 히브리어는 청구에 응해줌을 의미한다. 곧, 한나가 하나님께 청구(기도로 구함)하여 사무엘이란 아기를 받은 것과 같이, 한나 자신은 하나님의 청구에 응하여 그를 하나님께 넘겨 드린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을 무언 중에 자기에게 바치라고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은 다시 그에게 바침으로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된다.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히브리 원문에는 여기 "그 아이"란 말은 없고 그저 "그"라고 번역될 수 있는 내용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그"말이 엘가나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 한역대로 "그 아이"라고 번역함이 문맥에 잘 부합한다(C.J.Goslinga).
[이사야 40장 성경말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의 축복(사 4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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