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성경 지리 강해 설교말씀] 갈멜성읍 Carmel

두란노 서원 2020. 5. 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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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지명 강해 설교말씀 중에서 갈멜 성읍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갈멜성읍 Carmel

 

1. 위치 및 특성

1) 이름의 뜻 : 포도원, 과수원을 의미하며 문자적으로는 비옥한 땅을 뜻한다.

2) 소속 : 유다 지파에게 속한 성읍이었다(수15:15).

3)현재 위치 : 헤브론에서 남남동으로 약11Km 떨어져 있는 엘-카르밀(el-Karmil)이다.

2. 성경 속의 갈멜 성읍

1) 부자 나발이 자기 양 떼의 양털을 깎았던 곳이다(삼상25:2).

2) 나발의 아내이었다가 후에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의 출생지이다.

3) 사울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운 장소이다(삼상15:12).

4) 다윗의 용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헤스레의 출생지이다(대상3:1).

 

원어설교 : 갈멜성읍 Carmel

갈멜 성읍 כרמל : 카르멜 ό καρμηλος  : 호카르멜로스 Carmel

삼상15:12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갈멜은 유다 마온 지방의 한 성읍으로 헤브론 남남동 11Km 지점에 있는 현재의 '엘 키르멜'(el-Kirmil)을 말합니다. 이 성읍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포도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의 포도원은 당시 사람들의 유일한 재정적인 원천이며 재산이었습니다. 이곳에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을 물리친 후에 자신을 위해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삼상15:12).

 

1. 갈멜은 인간의 교만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사울이 아말렉 군대를 쳐서 싸움에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는 아말렉인과 그들의 재산을 모두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핑계로 재산을 탈취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그를 버리실 것을 사무엘에게 알리는데, 이를 알지 못한 채 사울은 갈멜에 이르러 자신을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는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교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멜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인간의 교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2.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이십니다(골1;15).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 낮고도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천한 도시로 여겼던 나사렛의 사람이었고, 우마가 거주하던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목수의 평범한 아들로 자신의 삶을 지내셨고,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온갖 고생과 수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그리스도는 심각한 갈등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치기도 하셨습니다(마26장).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3. 우리는 빚진 자의 자세로 겸손해야 합니다

사울은 "헬라 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목숨을 건진 채무자입니다. 우리가 지닌 생명은 물론이고 우리의 재산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축적한 명예와 부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원칙적으로 볼 때 그는 아말렉인들을 전멸시키고 자신이 취한 탈취물을 없애버림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욕심은 탈취물을 움켜쥐게 하였고 그의 교만은 자신을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빚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라고 고백한 바울을 본받아서 항상 겸손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겠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갈멜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분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내려와 수많은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이와 같이 예수님을 본받아 항상 낮아지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설교1 : 갈멜성읍 Carmel

갈멜 기념비를 경계하라

삼상15:12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등산을 가보면 큰 바위에 무수히 많은 이름들이 새겨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바위에 새겨 자기 이름을 기념하고, 대대로 남겨지길 바라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아말렉 군사들을 진멸하였습니다. 아말렉은 무서운 용사들로 가득하였기에 아말렉을 이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말렉을 완전히 무찔렀으니 사울의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일순간 하나님의 도움을 망각하고 갈멜에 전승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대대에 걸쳐 자랑되길 바랬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런 유혹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성도의 심중(心中)에도 항상 유혹이 찾아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만을 대대로 기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 그 기념비는 교만의 상징입니다

1) 자랑을 삼가해야 함

자랑을 좋아하기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유명한 사람일수록 자랑하기를 더욱 좋아합니다. 사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기 원했습니다. 갈멜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기념비를 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아말렉을 물리친 것은 하나님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를 망각하고 교만해진 나머지 자기를 자랑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자랑하기 좋아하고 교만한 자는 결국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마저 가로챕니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자의 위험이 여기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호(聖號)를 대대로 자랑할지언정,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불신적 행동은 삼가해야 하겠습니다.

2) 자기를 믿지 말아야 함

사울이 하나님의 이름을 대대로 기념하지 않고 자기를 높이는 기념비를 세운 것은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더욱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즉 사울은 아말렉을 물리친 것이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대신 이 놀라운 승리는 자기의 전술이 뛰어나고 자신의 힘이 위대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자기 힘만 믿고 자기 지혜만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실제는 하나님이 하셨는데,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의지하는 자의 결말은 패망입니다(시49:6). 정녕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자를 도우시고 높이십니다(시40:4).

 

2. 그 기념비는 불순종의 증표입니다

1) 주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

어떤 자가 하나님을 대대로 기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모두 진멸하라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좋은 가축들을 하나님께 드릴 제사용으로 모두 살려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울을 심히 꾸짖으시고, 폐위(廢位)를 선언하셨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일 같지만,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고 금하시는 일은 반드시 삼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달라서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사55:8-9). 따라서 성도는 자기 좋은 대로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통해 대대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2) 불순종을 회개해야 함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기념하며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했을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땅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놓고서도 선지자 사무엘이 잘못을 지적하자 계속해서 자기변명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울의 죄악을 답습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했다면 성도는 그 자리에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잘못을 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영화롭게 하는 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지만, 철저하게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을 높이는 자를 통해서도 영광 받으십니다..

 

3. 그 기념비는 거짓 예배의 증거입니다

1) 자기 욕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피함

하나님은 인간의 욕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사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 가축들을 모아 하나님께 제사드리려 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제물, 이런 제물로 주께 예배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자의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가난한 자를 수탈하여 얻은 물질, 피 묻은 손으로 드리는 예배는 결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사1:13). 자기 욕심으로 드리는 예배, 이는 가증스러운 예배일뿐입니다..

 

2)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만 드림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은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 라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요4:24). 이는 곧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사울은 이런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예배를 빙자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자기의 욕심을 채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왕위까지 폐위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올바르게 예배드리는 자를 기쁘게 여기시며 이런 자를 통해 대대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항상 하나님 앞에서 기념비를 세우고 날마다 그분의 은혜를 기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일평생 두고두고 기념하며 기억하는 일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입니까? 스스로 자문하고 그릇된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늘 기도하고 겸허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2 : 갈멜성읍 Carmel

마온의 부자

삼상25:2-13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업이 갈멜에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면서까지 남의 재산을 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끝이 없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물질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그 물질로 인해서 실패하고 낭패를 본 갈멜 사람 나발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나발이 살던 마온은 갈멜산에서 2km 남짓 떨어진 곳입니다. 이곳은 목초지가 발달하여 목축에 적합했는데, 마온의 부자 나발은 목축으로 거부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1. 배은망덕 한 자입니다

1) 은혜를 모르는 자임

나발은 마온에서 갈멜에 이르는 드넓은 목초지에서 목축으로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성품이 악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름조차도 '어리석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발은 목축으로 양 떼를 늘리고, 재산을 모으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었기에 사울의 추격을 받던 다윗이 지치고 허기진 채로 찾아와 도움을 청했을 때 외면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전에 자신이 나발의 목자와 같이 있을 때 그의 가축을 돌보아 주었던 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다윗이 베푼 은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윗의 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 갈멜 사람 나발은 자신의 재산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지친 나그네를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도 이전에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조차 말입니다.

 

2) 몰인정한 자임

다윗이 나발에게 식량을 요청한 때는 나발이 양털을 깎는 때였습니다. 유목민들에게 양털 깎는 일은 농부의 추수와 같은 것이어서 그 시기에는 매우 즐거운 축제 분위기가 됩니다. 다윗도 이 같은 풍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발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발은 다윗의 요청을 듣고 다윗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바도 없고, 다윗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며 요청을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좋은 풍속이 있었습니다. 목축을 주업으로 삼는 유목민들은 자신도 어떤 어려운 처지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의무처럼 나그네 된 자를 후히 대접하였습니다. 만약 다윗이 나발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할지라도 사울의 추격에 지친 다윗을 돕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나발은 축제와 다름없는 시기인 양털 깎는 때에 다윗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은 다윗의 요청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나발은 자기 재산이 조금이라도 축날까 봐 다윗의 요청을 몰인정하게 거절했던 것입니다.

2. 교만한 자입니다

1) 사람을 물질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자임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받는 딱한 처지에서 나발에게 식량을 조금 나누어 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받아 지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다음 왕으로 세운 선지자 사무엘이 죽었다는 소식으로 더욱 절망 가운데 처해 있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사울의 추격을 받을지라도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가진 재물로만 판단하는 어리석은 나발에게 다윗은 거지에 불과했습니다. 나발처럼 어리석은 부자는 물질로 사람을 판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재물은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질지도 모르는 허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허락하신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질이 자기 것이라고 욕심을 낸다면 그로 인해 교만해지고 눈이 어두워져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2) 재물이 없으면 무시하는 자임

다윗을 알지 못한다는 나발의 말은 다윗의 현재 처지를 보고 깔보며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다윗은 블레셋 최고의 장수 골리앗을 쳐 죽인 이새의 아들이었습니다. 비록 사울의 추격을 받는다 할지라도 다윗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온의 부자 나발은 사람을 단지 재물로만 판단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차기 왕이 될 다윗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나발은 다윗에게 입은 개인적인 은혜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의를 갖추어 식량을 요청한 다윗을 반역자요, 유랑자 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발은 다윗이 단지 가난한 나그네란 이유만으로 그를 대접하기를 꺼려했고, 깔보는 교만한 자였습니다.

 

3.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는 불신자입니다

1) 현실만을 중시하는 자임

재산을 가진 정도로 사람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부자 나발은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 알려고 하지도, 또 어떤 인물이든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사울에게 쫓기며 험한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다윗은 차기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나발은 자신의 소유를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나발은 만물의 소유주가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티끌 하나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나발은 모든 가치 기준이 재물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도 알아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은총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자임

나발이 다윗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원조를 거절했다 할지라도 다윗의 사환이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요청했을 때 거절한 것은 엄연한 잘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은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선대하고 돕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신10:17-19). 갈멜 사람 나발은 재물만 탐한 나머지 하나님과 그 법을 무시하였습니다. 이처럼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면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다가 결국 그분의 징계를 받고 말 것입니다(삼상25:38).

 

부자가 더 인색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윗의 요청을 거절한 나발도 부자였지만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재물로 사람을 판단한 나머지 다윗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갈멜 사람 나발처럼 재물이 인생의 전부요, 재물만 있으면 하나님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온의 부자 나발의 행동은 물질만을 추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외면하는 불신 세상의 풍조에 대한 단면입니다. 성도들은 결코 그와 같은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론 설교] 거듭남의 체험

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구원론 설교 중에서 거듭남의 체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도가 거듭남의 체험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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